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6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65화(165/373)
“키쉬… 밖은 어떤 곳이야?”
“밖? 밖은 좋은 곳이지. 이렇게 손이나 옷을 흔들면 공기가 움직여서 바람이란 게 불어 얼굴에 닿잖아?”
하지만 밖에 나가면 누군가가 손을 휘젓거나 옷을 펄럭이지 않아도 바람이 불지.
손을 잡거나 끌어안지 않아도 햇볕 덕에 몸이 따스하고.
가끔 이 미궁의 방에 떨어지는 모험가들이 들고 다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맛있는 것도 잔뜩 있다니까.
“맛있는 거?”
“왜, 저번에 한 번 먹어 봤잖아. 적당히 잘 말라 그냥 씹을 수 있는 데다 관리도 잘해 이상한 냄새도 안 나던 조그만 마른 과일.”
키쉬는 무지한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오늘도 한바탕 격렬한 전투 후 살아남은 이는 키쉬와 모든 도플갱어의 원류이자 종주인 그뿐.
미궁의 주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종 인간들을 이곳으로 몰아넣었고 단순한 이간질과 충동으로만 상대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플갱어의 종주, 아기씨가 혹여 인간들의 손에 죽기 직전엔 강제로 그들을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이 활성화된다는 것.
‘하긴, 우리가 죽으면 종주가 되살려 준다지만 종주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모두가 죽고 단둘만 남았던 순간.
그래서였을까, 평소에는 밖에 대해 먼저 입에 올리지 않던 그가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래서 키쉬는 그 드문 변화에 신나 입을 열었다.
“해랑 달, 별도 있어서 낮은 사방이 아주 환해. 저 횃불에 가까이 눈을 댄 것처럼.”
그리고 밤에는 이렇게.
키쉬가 자신의 손을 그 순한 갈색 눈 위에 올려 그의 눈을 가렸다.
“이렇게 어둡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 보이진 않아. 달과 별이 떠서 아주 은은하게 빛이 있으니까.”
손을 조금 펼치면 있는, 그 손 틈새로 횃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그리고 저렇게 고작 목만 축일 정도로 찔끔찔끔 나오는 물 말고 저 복도 보다 넓게 물이 흐르기도 하거든.”
그걸 강이라고 부르는데 그것들이 수십, 수백 개가 밖에 있어.
“그렇게 물이 많아? 그럼 그 물은 다 어디로 흘러가지?”
여긴 저 더러운 배수구로만 흘러가는데 밖에도 배수구가 있는 건가?
아니면 자꾸 자꾸 물이 모이면, 손바닥에 담는 물처럼 밖이 온통 물로 찰랑이는 거야?
그 물음에 키쉬가 배를 잡고 웃었다.
“하여간 종주는 순진하다니까.”
하지만 비슷하지. 바다라는 게 있거든. 아주 크고 많은 물이 모인 바다.
“밖엔 참 좋은 게 많구나.”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온전한 인간이 아닌 그 조각조각만을 삼키게 해 하나의 누더기처럼 꿰매진 그 몸은.
종주의 그 선량하고 나약하며 여린 심성처럼 평범하디 평범한 얼굴.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순해 빠져 아무것도 모르던 눈동자에 아쉬움과 안타까움. 부러움과 슬픔 등.
그런 혀끝이 쓰리고 아린 감정이 비치는 것을 키쉬가 느낀 순간 감정 동조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농담이야.”
종주는 자신이 이런 곳에 갇혀 밖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밖이 얼마나 지독한지 종주는 몰라. 춥고 배고프고 몬스터라는 괴물도 득실거리지. 누군가를 속이고 배신하고 우리처럼 잡아먹고 기억을 얻는 것도 없는데 죽이고. 밖이 얼마나 안 좋은데.”
이곳에 갇힌 키쉬와 다른 도플갱어들에게 미안해 괴로워한다는 것을.
단 한 번도 밖에 나가본 적 없는 이들과 그 언젠가 밖이란 걸 겪어 본 적 있는 이들이 한 곳에 갇혀 있다면.
과연 누구 때문일까?
“밖에선 잠도 마음 편하게 못 잔다니까. 깊게 잠드는 순간 누가 목을 자를지도 모르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나마 이곳은 인간이 들어왔을 때 외엔 잠이라도 편하게 자지. 물이라도 마음 편히 마실 수 있지.
그까짓 밖이 뭐라고. 우리끼리 있는 이곳이 더 낫다니까.
그렇게 키쉬가 말했을 때 그의 얼굴이, 종주의 얼굴이 어떠했더라.
‘아기씨. 밖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 아기씨는 바다도 모르지? 가만히 있어. 우리가 내보내 줄게.’
언젠가 한 명만 죽어도. 아니면 서로 의심해 뿔뿔이 흩어지게만 해준다면 그들 중 한 명을 내보내 준다고 제단에 미궁의 주인이 글귀를 새겼던 그 순간.
키쉬는 밖이 얼마나 좋은데 하며 말했고 그때 종주의 얼굴이 어떠했더라.
“오랜만이야, 키쉬.”
바다 보니까 좋더라. 수영이란 거 재미있던데 키쉬도 많이 해봤어?
서글서글하게 웃는, 저 잿빛 머리에 녹색 보석안을 지닌 저 얼굴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신이 알던 종주는 순해 빠지고 무지하며 여리고 나약해서 차라리 자신이 그의 업을 등에 짊어지고. 종주는, 제로는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하게만 살게 해주게 하려고 불렀는데.
‘저자는 누구지?’
키쉬, 아니 지금은 해적 여왕 엘리스가 멍하게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 * *
사람이란 게 그렇다. 로봇청소기나 로봇강아지 같은 물건은 망가져도 바로 버리기보다는 한번 고쳐서 쓰려는 사람이 많다고.
살아 있지 않은 것이라도 정을 주면 그것을 막 대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아니지. 로봇의 주행 및 보행 안정성 테스트를 위해 움직이는 로봇을 발로 차거나 밀거나 넘어뜨리려 애쓰는 동영상만 해도 안쓰럽다며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
‘부유감이 있다 해도 그게 다는 아냐.’
마나 장막 덕에 코로 느끼지는 못해도 사방에 잔뜩 퍼지고 있을 악취나 붉다 못해 이제는 검게 변한 액체가 흘러 고인 바닥을 보면 당장이라도 정화 마법을 거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지금은 무언가의 덩어리 같은 저것이 원래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난.
그것을 단순하게 오염된 무언가로 생각하고 마법으로 단순하게 정화와 클린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뭐, 제사까진 무리라도.’
나는 케인과 루나, 리프와 레이첼이 이 공간을 훑어보며 마나의 자취 및 그들이 남긴 흔적을 캐내는 것을 응시하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어? 도련님.”
“괜찮아, 루나.”
나는 차곡차곡 한곳으로 굴러다니던 머리와 조각들, 뭉쳐진 살점들같이 한때는 이곳의 주민이었을 흔적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다른 녀석들도 모이더니 금세 중앙에 허리 높이만큼 쌓인다.
나는 진득하게 묻고 흘러내리는 데다 벌레까지 기어 다니는 손을 모아 한번 기도하고는 아공간에서 나무와 기름을 조금 꺼냈다.
“흔적 확인은 다 했고?”
내 말에 케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눈동자만 움직여 바라보니 레이첼도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자.”
케인이 손에 오러를 둘러 쓰다듬은 덕에 문양이 지워지고 반들반들해진 벽이 점차 연기로 가려질 때쯤 내가 말했고 다시 그 길고 좁은 통로를 빠져나와 절벽 위로 몸을 옮겼다.
그제야 난 코덱스를 열어 정화와 클린을 퍼부었고 약간 미묘한 눈초리의 일행을 바라보았다.
“왜.”
안 어울리냐? 그래도 나름 동방예의지국 출신인데.
“아니다.”
“역시 도련님은 다정하셔요.”
“크, 이런 면이?”
골렘인 리프는 약간 생각에 잠긴 것 같은 무표정함이지만 나머지는 한마디씩 던지는 게.
어찌 보면 제법 각박한 이 세상에서, 그것도 귀족이 아무리 마법으로 지울 수 있다지만 진물을 다 묻혀가며 모아 불붙여 장례를 치르는 거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일 테니 그런 모양이다.
“뭐 악신교단 놈들이야 해줄 필요 없겠지만 저 사람들은 피해자고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있었으니까.”
게임에서야 저런 모습은 배경 오브젝트로 나와서 마우스 커서로 클릭하면 드랍템이나 정보 같은 걸 준 뒤 살짝 무너지는 모양새의 상호 작용이나 하는 그런 것들에 불과했지만 이곳은 현실이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 있었던 희생이야 우리가 아니라도 수습할 사람이 있었지만 이곳은 내가 정보를 샀기 때문에 우리 외의 누군가가 당분간 올 리 없다.
내가 볼일 다 봤다고 그냥 가버렸다면 일반 사람은 내려오기 힘든 저 절벽의 틈에서 저대로 얼마나 더 있었겠어.
그러니 이러는 게 도의에 맞지. 나는 마법 덕에 깨끗해진 손을 보다가 그냥 머리를 한번 쓸어넘겼다.
“어때. 한 번 가지고 바로 구분하긴 어렵겠지만, 감은 잡혀?”
슬슬 배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며 묻는 말에 루나는 안 그래도 처진 귀를 더욱 내리고 리프는 고개를 저었으며 레이첼은 딴청을 피운다.
“약간은.”
하지만 역시 주인공은 다르지.
나는 케인의 말에 피실 웃고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언젠가는 숨 쉬는 것만큼 익숙하게 잡아낼 거야.”
내 말에 케인이 살짝 미간을 모은다.
그만큼 자주 보게 될 거란 내 말을 저 녀석은 당연하게도 단박에 알아들었을 테니.
힘들게 올라왔던 좁은 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산길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던데 레이첼은 아주 신나서 뛰어 내려가는 걸 보면 이래서 오러 유저, 오러 마스터 하는 거 같네.
그렇게 잠시 비탈길을 내려갔을까. 문득 루나와 리프의 고개가 들려 저 먼 곳을 보듯 하더니 케인이 입을 열었다.
“섬에 우리 말고 오기로 한 자가 있나.”
“그럴 리가.”
“누군가 왔다.”
아니, 이 섬에?
하긴 원래 이 섬은 무인도가 아니라 엄연히 살던 사람이 있던 섬.
당연히 섬에 사람이 있다면 물자의 교류를 위해서라도 이웃이나 상인이 오고 갈 수 있으니 누군가 올 수도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하필 이 타이밍에 누군가가 왔다?
‘좀 이상한데.’
안내원보고 잠시 대기하라 했던 장소로 가니 레이첼이 짝다리를 짚고 서서 안내원을 내려보고 있었다.
“뭐야, 저거?”
“저도 잘 모릅니다…….”
“너희가 부른 거 아니냐고.”
“그럴 리가요…….”
“아델리안, 왔어? 저놈들 좀 봐.”
레이첼이 입술을 오리주둥이처럼 비죽거리며 내게로 다가와 바다 쪽으로 손가락질을 한다.
어찌 된 상황인지. 가볍게 주위를 훑어보니 조금 떨어진 배 근처로 무언가가 지나다니는 게 바닷속에서 누가 헤엄치는 모양.
거기에 안내원이 타고 온 조각배 위에 두어 명, 그리고 우리와 떨어진 해변에도 두어 명 못 보던 이들이 서 있었다.
“인어족?”
“맞습니다. 인어족인데… 어떻게 바로 알아보셨습니까?”
안내인의 말에 나는 그냥 웃었다.
보통 대륙인들이 진한 물감으로 그린 것 같은 머리카락이라면 인어족들은 전부 수채화 물감처럼 투명감 있는 색의 머리카락을 지녔다더니. 못 알아보면 원작을 헛읽은 거지.
“그런데 인어족들이 이 섬엔 무슨 볼일이래?”
전들 아나요, 하며 레이첼의 눈치를 보는 안내원.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좀 시달린 모양인데.
물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허리 아래를 감은 천과 머리가 덜 말라 있다.
내가 그들에게로 시선을 던지니 자기들끼리 조각배의 난간에 걸터앉아 속닥거리던 이들 중 하나가 일어나 내게로 다가온다.
그 모습에 루나와 리프, 레이첼이 슬그머니 나보다 반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쪽이 대장이야?”
“그쪽이 대장이냐?”
나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거의 제로만 한 사내를 보며 히죽 웃었다.
구불거리는 연녹색 머리칼에 건장한 체격. 귀는 사람처럼 둥글고 말랑한 살이 아닌 화려한 열대어 지느러미를 닮았다.
내가 똑같이 말을 되돌리니 사내가 피실 웃는다.
“재미있네. 귀족인가 보군. 오만한 것이.”
“그러는 너도 인어족 중에서는 귀족인가 봐? 이리 무례한 걸 보니.”
아니면 못 배워 먹었던지. 하는 말은 꿀꺽 삼켰다.
어차피 우리 힐러는 힘으로 빼앗을 생각이니 비열한 인어족이랑 사이좋게 지낼 생각은 없다지만 벌써부터 정도 이상 맞부딪칠 필요는 없으니.
내 적당한 도발에 인어족 사내가 크게 웃었고 그동안 난 가볍게 그의 몸을 훑었다. 육지에서 몸을 가리는 용도로 들고 다니는 천을 허리에 두른 것 외에 무기도 장신구도 없다.
그럼 신체 관련 트레잇이 있거나 혹은 인어족이니 정령이나 마법 관련 트레잇이 있을지도 모르지. 어떤 것이건 제 한 몸 지킬 방도가 있으니 맨몸이나 다름없이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일 텐데.
‘사용자의 눈을 쓸까 말까.’
쓰면 편리하지, 트레잇을 보면 어떤 녀석인지 가늠할 수도 있고.
그런데 굳이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애들도 아닌 저런 놈을 확인하려고 내 부유감을 깎아야 하나?
어차피 남들도 트레잇을 못 보고 사는 건 마찬가지인데.
일단은 보는 것을 미루고 나는 느리게 웃었다.
“자기소개나 해봐.”
네가 뭔데 여기 있는지 들어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