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6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67화(167/373)
“리프.”
―예. 관리자님.
아무리 비공정에서 가장 범용성이 뛰어난 방어 아티팩트, 아이기스를 들고 있다고는 하시나 허약하신 분.
리프는 아델리안의 앞을 비스듬하게 막듯이 서서 낮게 대답했다.
“내가 잠시 그들의 주의를 돌릴 테니 슬쩍 뒤로 빠져서 배 쪽을 부탁해.”
케인을 보내면 그 성격에 인어족을 단칼에 썰고 해양 몬스터를 찾아다닐지도 모르니까.
하고 속닥대는 그 목소리에 리프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선박 주위를 돌며 위협 중인 인어족은 단 하나.’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기본적으로 마나를 퍼트리기 마련, 강해질수록 자신의 마나를 감추는 법을 터득하게 되지만 지상과 달리 이런 물속에서는 루나나 레이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리프는 원래 골렘. 자신의 마나 심장 가동을 극도로 낮춰 억제한 뒤 천천히 물속에서 걸어 배 근처로 다가갔다.
헤엄치는 손바닥만 한 물고기보다도 옅은 마나. 그 덕인지 배가 내린 닻을 끌어올리지 못하게 주위를 맴돌며 위협하던 인어족은 리프를 알아채지 못하고 머리 위에서 긴 꼬리로 포말을 일으키며 헤엄쳤다.
“아아, 심심하구만. 섬으로 올라간 녀석들은 재미있겠어.”
인어족이라서 그런가. 물속에서 하는 말도 또렷하게 들린 그 순간. 리프가 모랫바닥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뭐, 뭐야?”
남청색의 꼬리를 가진 인어가 놀라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창을 쥔 손을 움직여 앞으로 물살을 쏘아대는 모습에 리프가 몸을 비틀어 헤엄치며 물을 박차 거리를 좁혔다.
“큭!”
리프의 공격을 미처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팔을 긁힌 인어족의 주위로 옅게 피가 번져나간다.
확실하게 전력은 리프 쪽이 우세.
하지만 인어족은 자신이 질 리가 없다는 얼굴로 꼬리를 휘저어 리프를 한번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멍청하긴, 마법이건 약초건 효과는 금방 떨어질 텐데 마나를 보아하니 그것도 없이 들어왔나?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 퍼렇게 질려 죽는 꼴을 보겠어.”
인어족은 호흡을 도와주는 마법이 풍기는 특유의 마나 파장도, 씹는 동안 잠시 물속에서 숨을 쉬게 해주는 특수한 약초를 씹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리프의 모습에 입꼬리를 올렸다.
이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여 자신에게 공격을 할 정도면 꽤나 강한 존재.
‘그렇지만 인어족이 아닌 한 호흡의 문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지.’
어차피 직접 죽일 필요도 없다. 가까워지면 꼬리로 밀친 뒤 가끔 창으로 긁어주기만 해도 상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전력이 밀려 부상을 좀 당한다 해도 결국 숨이 벅차 수면으로 올라가려는 것만 막고 있으면 질 수가 없는 게 바로 인어족과 타 종족의 싸움.
거기에다 물속이라는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래위가 없는 것과 동시에 똑같아 보이는 물이라도 아래쪽과 위쪽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는 경우도 다반사.
무조건 마나로만 몸을 부여잡고 움직이다간 지상에서 쓰는 것보다 배로 빠른 소모에 마나 고갈도 쉽게 오는 편.
“윽! 이 망할!”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티면, 조금만 더. 확실하게 자신이 잡히지만 않으면 된다.
인어족은 최대한 접근을 피하고자 꼬리로 후려쳐 강제로 멀어지게 하면 또다시 물길을 비집고 접근하는 리프의 모습에 으득 하고 어금니를 갈았다.
그동안 인어족이 내지른 창이 리프의 팔과 다리를 뚫거나 스치고 지나갔지만 피 한 방울은커녕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연하게 빠른 재생 덕에 바닷속은 온통 인어족이 흘린 피로 물든 상태.
그에 순간 진한 물감이 물에 떨어진 듯 시야가 흐려졌을까. 그때를 노린 듯 빠르게 접근하는 그림자에 인어족도 이번엔 꼬리로 후려치기보단 아예 꿰뚫기 위해 창을 내질렀다.
“죽어!”
퍽 하는 소리. 확실히 팔이나 다리 같은 부분이 아닌 내장을 찢어발기는 손맛.
인어족이 이가 드러날 만큼 크게 웃었고 이내 해류로 인해 인어족이 흩뿌렸던 피가 더 멀리 휩쓸리며 나타난 모습.
자신의 배가 창으로 뚫린 것을 바라보던 리프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창을 쥐고 좀 더 자신의 배로 밀어 넣듯 움직였다.
아니, 창을 잡고 밀어 넣어 한 뼘 한 뼘 인어족에게 다가가 창을 쥔 인어족의 손목을 쥐는 순간 입 모양을 벙긋거렸다.
“…잡…았다?”
그런데… 왜 저 계집은 입에서 공기 방울 하나 안 나오는 거지? 아까 전부터 왜 내 피 외엔 번지는 게 없는 거지?
이미 숨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 어떻게든 수면 위로 오르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치 숨을 쉬지 않는 존재처럼……?
“아.”
인어족이 무언가 깨닫고 리프를 본 순간, 마나를 씌운 리프의 손날이 강하게 인어족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 * *
솔직히 그렇게까지 인기가 없을 작품은 아니었다. 원작은.
잘만 썼으면 평작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세계관도 방대하고 내용은 사실 따지고 보면 구닥다리 냄새나는 클리셰 범벅의 영웅과 마왕 이야기라고 하지만 클리셰가 왜 클리셰인가. 다 먹힐 만한 내용이니 클리셰지.
무슨 일을 겪어도 부러지지 않는 주인공, 어떠한 고난을 겪어도 어떻게든 버텨가며 처절하게.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오해하고 욕하고 침을 뱉어도 분노하지 않고 가족과 어린 시절 소중했던 사람들을 위한 복수의 길을 걷는 이라니.
솔직히 이제 와서는 그런 전개가 식상하다 여겨지지만 사실 또 그게 주는 재미는 부정할 수 없는 거다.
거기에 흔한 남성향 판타지처럼 주인공이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렘도 넣었겠다. 가끔 비교적 알콩달콩한 부분도 나오겠다.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적당히 망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하렘 낚시 아니냐 이거?’
아직 난 내 주식 다 못 버렸는데.
하여간 호불호가 아주 심하게 갈리는 소설.
그러니 나 같은 코어 팬이 붙고 붙어 펀딩까지 받아서 게임도 나왔지.
‘일단 세계관이 쓸데없이 디테일했어.’
정말 세상 하나를 전부 글자로 옮길 것처럼. 가끔 이거 무슨 설정집 모음이거나 무언가의 해설집, 혹은 사전이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아주 시시콜콜한 설정을 몇 편에 걸쳐서 풀지 않나.
‘감정 묘사는 최대한 배제하고 행동과 배경 묘사가 많았지.’
보통 소설이 그렇지 않나. 주인공이 괴로울 때는 얼마나 괴로운지, 슬플 때는 얼마나 슬픈지 곁들여가며 적지 않냐는 말이지.
그런데 그런 거 없이 무슨 사관이 역사 기록하는 느낌으로 적힌 게 많았다. 거기에 보통 다른 시점.
즉, 적이나 언젠가 알고 지낸 아군의 이야기도 한 번씩 나올 만한데 거의 케인 주위의 이야기만 나왔으니까.
그래서 소수의 팬들끼리는 돌이끼 저거 첫작이라고 온갖 핍진성 다 넣는다 진짜. 이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던 거지.’
골렘이라 안 그래도 감정이 무딘 리프인데 작문(D)의 트레잇까지 더해졌으니.
들은 대로 적었던 거겠지. 원작은 리프가 케인을 만나기 전인, 그의 어린 시절도 나오긴 했으나 그건 아마도 케인의 입에서 직접 들은 것들을 최대한 짜깁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휘관형 골렘답게 분석을 토대로 글을 적을 테니 기후나 식생의 분포, 하다못해 인어족들의 번식 방법까지 아주 디테일하게 적은 거겠지.
“정말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해? 너희들 같은 양산형 인어 왕족은 알에서 태어나잖아. 왕의 피를 받았다며 왕자네 뭐네 운운해도 결국 그거 산란못에 푼 거 말하는 거 아냐?”
‘그 덕에 한번 긁었네.’
벌들이 그러하다. 애벌레일 때는 다 같이 로열 젤리를 먹지만 보통 3일이 지나면 일벌이 될 개체는 꿀이나 화분을, 여왕벌이 될 개체는 계속해서 로열 젤리를 먹지.
인어 왕족도 그와 비슷했다.
태어나기 직전의 알들이 모인 산란못에 뿌리는 왕의 피를 흡수한 덕에 다른 인어보다 좀 더 강한 것뿐인 주제에.
자신들을 방계로 자칭하는 수많은 양산형 왕족들은 사실 완벽한 인어 왕족의 혈통. 오롯한 로열 블러드를 위한 최정예 병사.
결국 레비를 위한 측근으로 발탁된 것들이 레비를 배신하고 바다를 수호한다는 인어족의 기본 신념을 뭉개며 노략질이나 해대다가.
‘레비를 팔아넘기기까지 하지.’
레비를 지키기 위해 로열 블러드와 거의 같을 만큼 힘을 키워준, 소위 말하는 형제라는 것들에 의해 레비는 차세대 인어족의 왕이 될 자리에서 강제로 내려와 꺾인다.
그 모든 것의 뒤에는 인간이 얽혀 있었고 차마 동족을 증오하기는 힘들었던 레비의 모든 증오심은 인간으로 향하게 되니.
‘이게 다 저놈들 때문이라니까.’
우리 힐러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당장 케인몬을 내보내도 시원찮지만.
‘그랬다간 싹 쓸릴 게 뻔하니.’
악신교단의 공양을 보고 나서 영 심기가 불편한 케인은 일부러 내가 뒤로 물렸다.
그리고 리프에게는 살짝 지령을 따로 내렸고.
“아, 이거 너희들끼리도 비밀이었던가? 실수.”
내가 일부러 오만함을 누르지 않고 있는 대로 비웃어대자 자칭 왕족이라는 인어족이 이를 뿌득 갈아댄다.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감히 지껄여? 이 섬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배가 눈앞에서 침몰하는 걸 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그 말에 나는 손으로 턱을 만지는 척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사실 우리 파티가 아주 강하니까 나도 배짱부리지, 보통은 이 상황에서 강하게 나가기 힘들 만큼 바다에서 인어족이란 밸런스 붕괴 그 자체니.
‘하지만 이쪽은 메인 파티거든.’
“할 수 있으면 해봐.”
내가 크게 웃으며 말하자 그 인어족이 올렸던 손을 강하게 내린다.
아마 바닷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인어족에게 마나 같은 것으로 신호했겠지.
더불어 섬 위나 조각배에 인간화하여 올라와 있던 인어족도 모여 물의 마나를 몸에 두르고 우리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 순간 내 앞에 한 발짝 나가 있던 루나가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고작 그 정도 힘이라니, 제압이라도 해보고 싶나 보지?”
전력으로 덤벼도 모자랄 판에 저 정도 마나면 살살하겠다는 의지인데.
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루나를 보조하기 위해 아공간에서 코덱스를 꺼내려던 순간 레이첼이 내 손을 잡는다.
“한입 뺏어 먹을 생각하지 말라고!”
특히 너! 하고 케인에게 으르렁거린 뒤 뒤늦게 루나를 따라 인어족들에게 붙는다.
그동안 주먹이 근질근질했던 모양.
“건방진 토끼족이!”
“물속에 처박으면 숨도 못 쉴 하등한 계집!”
“시끄러워.”
“캬하하! 하학!”
개중 가장 강한 인어족을 레이첼이, 나머지 서너 명의 일반 인어족을 루나가 맡았다.
루나는 속도가 빠르니 여럿을 커버하고 레이첼은 자신의 건틀릿에 오러를 덧씌우며 쾅 하고 인어족의 주먹에 마주 꽂는다.
나는 그걸 바라보며 내 지시로 뒤로 빠져있던 케인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뭐 먹을래?”
“사과.”
그럼 난 포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인어족과 나를 번갈아 보던 안내원에게도 사과 한 알을 건네며 아공간에서 의자도 꺼내 앉았다.
“저… 저기 위험합니다, 공자님. 다른 곳도 아니고 바다에서 인어족은…….”
“나도 알아, 사기 유닛이지 뭐.”
네? 하는 안내원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웃었다.
챠비드 같은 사막 스테이지나 하다못해 큰 수원이 없는 라비린의 미궁 같은 곳에 던져 놓는다면 모를까.
근처에 제법 큰 강만 있어도 속성 보너스를 받는 게 인어족 유닛이었으니 사방이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찬 바다는 어떻겠어.
‘재생력, 회복력, 기본 근력부터 마나에 관련된 각종 수치는 다 올라갔겠지.’
하지만 내가 키운 메인 파티가 진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
나는 불안한지 의자를 내줬음에도 앉지 못하고 이 좁은 섬 어디로 도망가야 살 수 있을지 궁리하듯 눈알을 열심히 굴리는 안내원을 보다가 케인에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