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6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68화(168/373)
솜사탕처럼 몽실몽실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머리칼과 눈동자.
사랑스러운 외모와 아담한 체구에 조용하면서도 다정한 성격은 여자든 남자든 가릴 것 없이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먼 이국의 높은 귀족 출신이면서도 모두에게 따스한 성품.
그 고아하다 못해 쌀쌀맞기까지 한 크루거 가문의 영애. 가디아 수련 크루거에게 마저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가 결국 그녀와 가장 친해졌던 사랑스러운 아이.
잘 알지 못하는 이와도 눈이 마주치면 살짝 눈웃음을 지어주고 무언가 난처해하는 학우가 있으면 하나라도 더 돕지 못해 안달이었다.
속상한 일, 화가 나는 일이 생겨 잡고 하소연을 하면 몇 시간을 들어도 지겹다거나 싫다는 내색 없이 듣고 위로를 해주고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니 그 누가 베르뷔트를 싫어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 요즘… 꼭 찍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하소연하는 이들이 많이 줄었어.’
이렇게 지낸 지도 몇 년, 일상이 되어버렸기에 약간의 변화를 느꼈지만 베르뷔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편해졌지.’
자신에게 속내를 내보이며 고민 상담을 하는 이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이미지 관리와 더불어 그 안에 담긴 여러 정보를 얻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사실 아카데미에 다니는, 아직 어린아이들이 내뱉는 정보라고 해봐야 얼마나 이득이 되겠는가.
대부분은 듣는 사람이 지루하거나 지칠 만큼 비슷비슷한 레퍼토리들.
학업, 직업, 가족, 친구, 연인. 그런 것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불안감들.
그러니 이제 와서는 고위 귀족의 자녀가 아닌 이상 베르뷔트로서는 그런 만남이 줄어드는 것에 손들어 환영이었다.
그래, 처음엔 그랬다.
“오늘 제 기숙사 방에 놀러 오지 않겠어요? 오랜만에 같이 밤새워 대화해요, 우리.”
“오늘? 아… 오늘 좀 바빠서.”
“오랜만에 같이 차 한잔 어때요? 그러고 보니 저번에 말하던 것도 다 못했지 뭐예요.”
“아, 그거?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언제부터 베르뷔트가 남들보다 조금 더 신경 썼던 고위 귀족들마저 하나둘씩.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베르뷔트와 그들의 거리가 미묘히 벌어진 이 느낌.
대놓고 베르뷔트를 멀리하는 건 아니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즐겁고 유익하고 곧잘 속삭이면서도 이상하게 예전처럼 베르뷔트에게 정신적으로 기대는 그 비중이 줄어든 것.
‘이유가 뭐지?’
베르뷔트는 방 안의 소파에 앉아 자신의 손톱을 손질 중인 여학생을 흘긋 바라보았다.
“요즘 아카데미 내에서 퍼지는 소문 중 나랑 관련된 건 없어?”
늘 물어보는 질문.
“네. 그럼요, 베르뷔트 님. 특별히 베르뷔트 님 이름이 오르내리는 소문은 없어요.”
늘 같은 대답.
자신이 묻는 것에만 대답하라고 했던 언제나처럼. 그 말에 만족하고 넘어갔던 그전의 날과는 다르게 베르뷔트가 조금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내 평판도 그대로, 쓸데없이 관련된 소문도 없다면 요즘 티 타임이 줄어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베르뷔트의 질문에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손톱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있던 여학생이 움찔하고 멈췄다.
“그건…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모른다가 아니고 확실하지 않다?”
“…그 바이올렛이라고.”
그 이름에 베르뷔트가 몸을 일으켜 자신의 손톱을 손질하던 여학생의 뺨을 후려쳤다.
“뭐야. 내가 분명 가디아의 심부름이라도 나가는 날 아카데미 밖에서 처리하라 말했을 텐데?”
“하지만, 하지만… 통 심부름을 나가지 않았어요. 언제나 이 아카데미 안에서만 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귀족도 아닌, 고작 귀족의 시종을 죽이는 일 따위. 조금 늦어졌다 한들 큰일이 아니니 굳이 베르뷔트에게 진행 사항이 어떠니저떠니 하고 보고를 올릴 일도 아니었다.
그 바이올렛이 정말 단순하게 시종이었다면.
“한번 지껄여봐.”
“확실한 건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다만…….”
베르뷔트의 카피켓은 언제나 있었으니까. 외모뿐 아니라 베르뷔트의 인기가 그 다정한 성품에 있다고 생각해 자신도 누군가를 대하며 보듬어 주려고 하던 이들은 늘상 존재했다.
다만 대부분은 귀족이다 보니 왜 자기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 하는 근본적인 의문 때문에 늘상 실패했을 뿐.
“그래봐야 고작 평민들이나 천한 하급 귀족들이 그 시종을 찾아갔을 거 아냐?”
귀족이 왜 귀족인가. 오만방자하고 아랫것들은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평민이나 혹은 그들과 다름없을 만큼 막자란 하급 귀족 출신이 아닌 이상 베르뷔트처럼 귀족도 아닌 시종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말을 할 리가.
“그래서… 확실한 게 아니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래……. 고작 그런 시종에게 고위 귀족들까지 빠졌을 리는 없으니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단 말일 텐데.”
고작 하급 귀족 따위. 수십 수백 명을 그 바이올렛이라는 시종이 품는다 한들 베르뷔트 자신과는 그 격이 다르다.
‘하지만 기분은 나빠.’
애초에 이유로 지목될 만큼 영향력이 조금이나마 생긴 것 자체가 베르뷔트에게 거슬렸다.
“심부름을 나가지 않는다면… 아카데미 안에서 없앨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네?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여학생의 말에 베르뷔트가 달콤하게 웃었다.
“어차피 시종 하나 사라지는 건데. 무슨 큰일이 나겠어?”
* * *
“어때?”
“지루하군.”
이 자식. 자기가 못 싸운다고 우리 루나랑 레이첼이 열심히 하는데 지루하다고 해?
나는 혀를 한번 찬 뒤 고개를 돌렸다. 사실 케인에게는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루나는 동시에 4명을 상대 중인데다 그 4명이 서로 협공하는 덕에 한 명 한 명 바로 격살하거나 제압하지는 못하는 상황.
그리고 레이첼은 충분히 단시간 내에 때려잡을 수 있는 상대인데도 오랜만의 전투라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그거 외엔 말 못 해? 인어족이라더니 허리 아래 말고 목 위가 물고기야? 아니, 왜 말을 못해. 아까도 어버버 하면서 아니라고도 안 하고 째려만 보더니, 말 제대로 못 배웠어?”
레이첼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먹질을 해대는데, 내가 보기엔 지금 주먹으로 들어가는 대미지만큼이나 말로 패는 대미지도 큰 거 같다?
“크아아!”
번번이 자기 공격은 레이첼에게 막히고 레이첼의 공격은 맞던 인어 왕족이 갑자기 포효하며 물러났다.
“모두들 바닷속으로 들어가!”
“어딜 가는 거야!”
“이 자식이 한창 신날 때!”
결국 밀리던 인어족들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걸 루나와 레이첼이 뒤쫓아 물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중간중간 안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근처에 솟아나 있던 바위 하나가 쾅 소리가 나더니 반으로 쪼개졌다.
“내가 끝내는 게 낫지 않나.”
그 모습에 케인이 나직하게 입을 연다.
물속에서는 인어족이 더 강해지니 틀린 말은 아닌데. 이쯤하고 케인을 투하해 끝낼까?
―관리자님. 돌아왔습니다.
막 케인에게 대답하려던 순간 리프가 젖은 머리카락을 둘둘 말아 한 손으로 짜내며 걸어온다.
“수고했어. 옷은 배로 가면 갈아입자.”
내가 웃으며 리프를 반긴 그 순간.
펑!
“음.”
“어?”
“으악!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던, 우리가 타고 온 배에서 펑 소리가 나더니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잠깐만, 뭔데 이거.”
아니, 배 지키려고 리프를 보냈는데 저게 왜 터져, 저게.
“케인!”
내가 신호를 주자마자 케인이 물 위를 밟고 달려간다.
배에서도 난리가 났듯 으아아 하며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바다로 뛰어들어 이쪽으로 헤엄쳐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케인이, 몇몇은 루나와 레이첼이 건져 와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지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봐.”
나는 일단 물 빠진 생쥐 꼴이 된 선원들과 허망한 얼굴로 넋이 나간 선장을 흘긋 보다 불부터 피워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도련님.”
“아니. 그놈들이 밀리니까 갑자기 동료들이 죽든 말든 배로 가서 들이박잖아. 일부러 우릴 곤란하게 만들려 한 게 틀림없어.”
“못 가게 두 명 정두 잡긴 했는데…….”
“물속이라 이게 막… 나도 둘 정돈 잡았는데 제일 재수 없던 놈이 결국 터트리더라고.”
아이고, 두야.
내가 이마를 탁 치듯 부여잡았다.
“일단 젖은 옷부터 갈아입자.”
어차피 사고는 일어난 거니. 나는 마법 텐트와 개인 짐 가방을 아공간에서 꺼내 준 뒤 의자에 앉아 앓는 소리를 흘렸다.
“확인해 봤어?”
“멀쩡한 배는 없다.”
혹시나 싶어 케인을 시켜 섬을 전부 뒤져 원래 살던 사람들이 쓰던 배라도 어디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으나 악신교단놈들이 전부 부순 건지 관리할 사람들이 죽어 파도나 폭풍에 부서진 건지 탈 만한 배는 없었다.
“네 생각은 어때?”
“우리만 빠져나가려면 시간의 문제일 뿐 가능하지.”
하긴 나 외엔 전부 바다 위를 건널 수 있다. 마나의 총량이나 컨트롤에 따라 시간 차이는 날지언정 배가 없다고 아예 못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소리.
무작정 걷다가 섬이 나오면 잠시 상륙해서 쉬고.
그런 식으로 몇 날 며칠이든 고생만 하면 결국에는 사람이 있는 섬이 한 번은 나올 테고.
그럼 어떤 식으로든 방법은 존재하지.
“그럼 저 사람들은?”
“어쩌길 바라나.”
나는 우리와 좀 떨어져 모닥불에 옹기종기 모여 젖은 옷을 불에 말리는 선원들과 배가 침몰해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 선장을 흘긋하였다.
“우리 책임이니까.”
저쪽도 우리를 가끔 흘긋 보다가 눈을 확 돌리는 것이, 마음 같아선 매달리고 싶으나 인어족과 싸우는 것을 본 뒤라 매달리는 것이 두려운 모양.
하긴 보통 귀족이나 강자들 같은 경우 선민사상에 찌든 녀석들이라면 괜히 귀찮게 군다고 목이나 자르지 않으면 다행일 테니.
“저들을 모두 데려가려면 배가 필요하다.”
케인의 말이 맞았다. 그래, 그것도 조각배로는 어림도 없겠지.
애초에 악신교단이 공양을 했을 만큼 외진 곳.
지나가는 배를 기다리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렇다고 우리만 먼저 나간 뒤 배를 보내주겠다?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 알고. 그렇다고 저들 중 이곳의 위치를 아는 한 명만 데려가는 것도 짐이지.
케인을 제외하면 물 위를 몇 시간 동안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간당간당할 테니까.
게다가 식량도 문제다. 배도 없는 데다 제대로 된 낚시 도구도 없고 텃밭이 큰 것도 아니었으며 과실수도 거의 없다.
저들만 두고 가면 전부는 아니라도 몇몇은 굶주림에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케인 너 혼자.”
“싫다.”
뭐 인마?
“왜 싫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바다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곳의 위치를 기감으로만 찾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바닷길과 이 근처 지형 자체를 아는 사람만이 이 섬을 찾을 수 있단 소리. 케인이 도움을 청하러 본토로 갔다가 다시 오려면 혼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단 말이었다.
문제는 안내원을 데리고 나간다 한들 그자를 믿을 수 있냐는 것.
“인어족과의 전투로 우리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지. 거기에 이런 무인도에서 그냥 배로 탈출한 것도 아닌 내가 데리고 나간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할 것 같나.”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강자 정도는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바다에 다신 나가지 못하겠지.
더불어 우리는 악신교단의 공양을 확인하기 위해 원래라면 신고해야 하는 곳을 멋대로 가로챈 상황.
다시 이곳까지 올 배를 찾아 계약하고 한 명 데리고 나간 안내원의 말만 믿고 이 섬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케인은 참지 못하는 거다.
‘거기에 더불어 인간 혐오가 어느 정도 줄었다고는 하지만 거친 뱃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케인이 혼자 흥정하며 배를 구한다?’
…그래. 좀 힘들지, 그거.
루나도 날 두고는 안 갈 테고, 그럴 바엔 케인을 보내라 할 게 뻔한 데다 리프는 언어적인 문제로 제외.
레이첼은.
“물의 마나는 나랑 상성이 안 맞아. 잠시간은 가능해도 며칠을 물 위에서 이동하거나 헤엄치는 건 힘들어.”
케인 보내, 케인!
하는 레이첼을 보며 내가 머리를 쥐어뜯던 그 순간.
<아델리안 님. 어디 계십니까?>
순간 울린 세이렌에 내가 고개를 들었다.
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