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6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69화(169/373)
“이번엔 제법 큰 상단의 외동아들을 잡았으니 몸값으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크하. 술맛 죽이는구만!”
“이게 다 엘리스 선장님 덕분이지. 해적단 퀸은 이 근방에서 최고라고!”
시끌벅적한 소리. 바다 위 해적선 퀸은 사방이 온통 남색 물과 하늘로 뒤덮인 곳에서 유일하게 주황색으로 빛나는 것처럼 온통 횃불을 켠 채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짜식들. 신났네.”
키쉬. 아니, 이제는 엘리스라 불리는 여인이 그 시끌벅적한 소리를 선장실에서 들으며 부츠를 신은 발을 탁 소리 내어 테이블 위에 얹어선 의자에 기대 눕듯 앉아 히죽거렸다.
“어디 보자. 상단의 아들은 몇 골드나 받아야 하나.”
거기에 상단선을 나포하면서 얻은 배나 물품도 제법 질이 괜찮았다.
제일 좋은 건 상단의 아들을 넘길 때 그것들도 묶어 같이 넘기는 것이 제일이지만.
‘뭐 그 녀석의 몸값이 비싸면 물건은 인수 거부할 수 있으니.’
해적들이 이용하는 해적 상단에 넘기면 마진이 너무 적단 말이지.
엘리스가 럼주 한 병을 들어 코르크를 빼려는 순간 누가 노크를 하는 것과 동시에 들어왔다.
“선장님. 그 제로라는 분이 도착했답니다.”
짧게 다듬은 크림색 머리칼과 볕에 그을린 것과는 다른 갈색의 피부. 거기에 한쪽 눈에는 보석 안대를 찬 사람.
랑카의 말에 엘리스가 테이블에 올렸던 발을 내리며 급하게 일어섰다.
“그래?”
“예. 허니가 동쪽 작은 어촌에서 만나 데리고 왔답니다.”
분명 이 남해 군도에는 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동조가 없었다?
그게 잠시 의아했지만 아마도 많은 인간을 삼켜 강해진 자신과는 다르게 그 금발의 인간과 같이 다니며 거의 성장하지 못했을 종주라 요즘 바빴던 엘리스로서는 느끼지 못했을 거라 치부하며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모셔 와.”
심장이 두근거렸다. 누군가는 이것을 반역이라 칭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니야. 나는 종주, 우리 아기씨를 위해 하는 일이야.’
단순한 죽음. 그게 끝이라면, 그래서 그 피로 물든 손으로 다른 도플갱어를 이끌게 된다면. 그래, 반역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도플갱어들에게 있어서 육신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은 씨앗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날 테니.
제로, 종주 또한 마찬가지.
그를 삼켜 그의 능력을 엘리스 자신이 흡수한다면 제로는 그 유약하고 다정한 성미에 걸맞지 않은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몸을 주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게 해줘야지.
먹을 것, 입을 것, 그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책을 읽고 싶다면 아예 책만 가득 찬 배를 하나 끌고 다닐 수도 있다.
풍경 좋은 곳에 정착하고 싶다면 군도 안쪽의 엘리스가 확실하게 장악한 구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을 찾아 집을 지어줘야지.
‘종주… 아니. 제로. 우리의 아기씨.’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 그에게 주어야지. 더럽고 추한 것은 엘리스 자신의 몫인 것이다.
그 미궁의 감옥 안에서 늘 고통받으며 자신 때문은 아닐까 자책하던 제로의 모습을 엘리스는 떠올렸다.
‘다시는 그렇게 두지 않아.’
그냥 자신의 품 안에서 행복하면 된다. 그리고 알카이도라는 집사의 말 아래 사방으로 퍼져 각자 중요한 이를 잡아먹고 때를 기다리는 다른 동료들도 전부 모아 도플갱어의 낙원을 만드는 거지.
똑똑―
엘리스가 입꼬리를 올리는 순간 들리는 노크 소리에 눈동자를 옮겼다.
“랑카입니다. 모시고 왔습니다.”
끼익 하고 선장실 문이 열린다. 랑카와 함께 들어오는 로브를 입은 자.
그 모습에 엘리스가 그자의 가슴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키가……?’
키가 크다. 그리고 딱 봐도 건장한 체구.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체형만으로도 이미 제로가 아니었다.
‘설마 그동안 인간을 먹어 모습을 바꾸신 건가.’
그 아델리안이란 인간이 처음엔 절대로 사람을 먹게 할 생각이 없다고 공표하더니, 결국엔 쓸모를 위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렇게 바로 앞에 있는데도 교감과 동조가 되지 않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가짜.’
혹시 모르니 끝까지 확인은 해봐야겠기에. 엘리스는 조금 실망한 얼굴을 지우며 랑카를 내보낸 뒤 둘만 남은 이 선장실에서 제로에게 입을 열었다.
“종주.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랜만이야, 키쉬.”
“못 보던 새 많이 변하셨습니다?”
“키쉬보다?”
로브 아래서 흩어지는 웃음소리. 분명 대화하면서 느껴지는 말투나 어조는 제로였으나 이렇게 가까이 있는 데도 동조가 되지 않는 것에 엘리스가 혼란스러워 잠시 입을 다문 그때.
천천히 손을 들어 제로가 자신의 후드를 뒤로 넘기며 녹색의 보석안으로 엘리스의 보라색 눈동자와 마주했다.
“…종주.”
“내가 아닌 줄 알았나?”
보기 좋게 흐드러진 잿빛의 머리칼과 녹색의 보석안. 순해 보이는 얼굴은 그대로였으나.
엘리스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종주는 그 작고 작던 씨앗을 부수고 나왔음을.
그 거대하디 거대한 세계수도 처음엔 단지 씨앗이었던 것처럼.
자신이 미궁에서 보았던 제로는 단순하게 씨앗이었음을.
눈앞의 존재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늪. 높은 하늘. 육신이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천적이자 다시 태어나게 해줄 거짓된 창조주.
“날 보도록.”
‘아아. 난 왜 잊었을까. 어리석게도.’
모든 도플갱어의 주인. 그 근원이자 가치이며 자신의 육신을 내던지고 핵이 부서진다고 하더라도 지키고 따를 존재.
엘리스는 천천히 제로와 눈동자를 마주했다. 선장실 안에 켜둔 촛불로 인해 옅은 주황색이 감도는 그 녹빛의 보석안.
“금방 다시 보자.”
“예. 종주.”
‘교감도 동조도 하지 못했던 것은.’
제로가 원하지 않았기에.
감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제로가 원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만큼 격의 차이가 벌어졌기에.
엘리스는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것을 느끼며 느리게 웃었다.
* * *
‘역시 너무 많은 기억을 삼켜서 오염되었나.’
제로는 자신의 품 안으로 쓰러지는 엘리스의 육신을 받아 가까운 소파에 눕혔다.
잠시 기다리니 솟아오르는 도플갱어의 핵.
누군가의 기억을 삼킨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가진다는 것.
보통의 인간이라면 자아가 분열되거나 금세 미쳐버리겠지만 도플갱어들은 원래 그런 종족이라 그런지 한두 명의 기억으로는 쉽게 망가지지 않았다.
문제는 도플갱어는 자신이 정한 육신의 기억이 주가 되기는 하나 쌓이는 여분의 기억을 아예 없앨 수는 없다는 것.
만약 계속해서 사악한 내용만 적힌 책을 읽고 연극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고방식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그 사악함에 물들 수밖에.
해적 일을 하며 엘리스가 삼킨 기억의 주인들은 대부분 해적이나 노예. 혹은 노예의 주인같이 평범한 자들이 아니었다.
해적들의 그 난폭함과 노예의 절망. 노예의 주인들은 욕심과 갈망 같은 기억들이 주를 이루었을 테니.
‘오염되지 않는 게 말이 안 되는 법.’
제로는 핵을 손에 쥐고선 다른 손으로는 혹시 급하게 돈 쓸 곳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아델리안에게 받아온 마정석을 쥐었다.
* * *
“그렇게 된 겁니다.”
키쉬. 아니, 지금은 엘리스가 된 도플갱어를 옆에 앉혀놓고 제로가 대형견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하는 말에 내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이야, 이 배 엄청 커!”
“레이첼, 뛰지 마.”
―케인 님. 아래에 감옥도 있습니다.
“흠.”
그 와중에 나머지는 배를 확인하느라 신났고 그 모습을 해적들은 아주 못마땅한 눈초리로 힐긋힐긋 본다.
나는 일단 레이첼이 뛰어다니느라 소란스러운 밖을 분리하기 위해 손짓했고 제로가 슬쩍 문을 닫고 다시 왔다.
“그런데 말이야, 제로.”
“예. 아델리안 님.”
나는 소파에 앉아 턱을 괴며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그냥 엘리스를 네가 운이 좋아 고용했다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원래 키쉬라는 이름으로 내가 만났던, 네 휘하의 도플갱어인 것을 어째서 말한 거지?”
난 분명 그들에게 정보원 정도의 역할만 맡게 하라고 알카이도에게 말했고 그건 제로도 알고 있는 상황.
그런데 이렇게 멀리 남해 군도까지 보내 스파이겸 또 다른 세력 형성을 위한 도구로 쓴 것에 대한 항의의 표현으로 거짓 없이 말한 건가.
‘그럴 리가 없지. 제로가.’
저 순해 빠진 놈은 거기까지 생각해서 비꼬아 보고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도 대놓고 물었다. 속이고 데려와도 몰랐을 텐데 하는 뉘앙스로.
“음. 그거야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델리안 님은 제가 아무리 좋아도 해적 여왕 엘리스를 고용했다는 걸 안 믿어주실 거 같았습니다.”
그건 그래.
“거기에 일반적인 고용 관계로는 이 배를 아델리안 님이 원하시는 구조로 개조할 수 있을 리가요.”
그거까지 생각했냐? 침실 옆에 주방이 그렇게 갖고 싶었어?
“그리고.”
제로가 순한 얼굴로 느리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예지안도 있으신 아델리안 님을 영영 속일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너 인마. 내가 예지안 있는 거 믿지도 않으면서?
하지만 그것도 일단 내가 평소에 하는 주장과 일맥상통이라 그냥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제로. 많이 컸네.”
“예? 제가 키가 제일 큰 지는 오래되었습니다만.”
그거 말고 인마. 여러모로 말이지.
‘사용자의 눈’
[제로―도플갱어의 시작과 끝]대표 Traits : [복제(SSS)] [위압(S)] [천변만화(S+)] [마력지체(A)]
히든 Traits : [천적(SS)] [폭식(A)]
그동안 부유감의 하락 때문에 사용자의 눈을 거의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써야 할 때지.
제로만 해도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복제가 SS에서 SSS로. 천변만화는 A에서 S+로. 거기에 마력지체는 C+에서 A가 되었지 않나. 요리 스킬이 아예 밀려난 대신 위압이 생겼다.
재미있는 건 원래 제로에게는 위압이 아닌 위엄이 히든 트레잇으로 있었는데.
‘어째서 위압으로 변한 거지.’
사실 저리 순하게 웃는 놈이 위엄 있는 것도 상상은 안 되지만, 위압은 더하지 않나? 거기에 폭식도 올랐고.
‘거기다 저 천적은 뭐지.’
보통 천적 트레잇은 종족의 상성이 극악으로 나뉜 스테이지에 출몰하는 NPC 중 네임드 정도는 되어야 나타난다.
예를 들면 뱀족과 조인족의 주 스테이지인 칼날 협곡 같은 곳에서 천적 트레잇을 지닌 유닛 같은 경우 상대 종족의 노멀 유닛에 대한 압도적 우위에 설 정도.
그런데 제로에게 천적이 떠 있는 거면… 누구에 대한 천적이란 말인가.
“좋아. 일단 알았어. 나가 봐.”
“예, 아델리안 님.”
“네. 그럼 저도…….”
엘리스와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는 제로를 보며 나는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사용자의 눈을 오랜만에 켰으니 한 번에 봐놓는 게 낫겠지.
[루나 인덱스―질풍 같은 각투가]대표 Traits : [각력(S+)] [용맹(B)] [추종(A+)]
히든 Traits : [광분(A)] [의지(B)]
루나는 나아가는 각투가에서 ‘질풍 같은’으로 속도와 관련된 명칭으로 변한데다 각력에 승급이 붙었다. 귀여움이라는 단순한 외모적인 트레잇 대신 정신과 관련된 용맹이 붙은 게 고무적이다.
‘소심함이 붙었던 루나가…….’
아, 이거 좀 감동인데? 물론 광분이 오른 건 거슬리지만 육마 대신 의지까지 생겼다.
그동안 내 부유감을 아낀다고 너무 안 본 건가.
‘레이첼은 절대 보면 안 되고.’
대표 Traits : [재생(S)] [마나 심장(SS)] [복종(SS)]
히든 Traits : [작문(D)] [작화(S)] [희로애락(D)]
리프는 만들어진 골렘이다. 그렇다 보니 이미 완성형에 가까운 트레잇을 가지고 있던 터라 능력치상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복종은 아마 나와 오래 다니며 좀 더 유대감이 생긴 게 골렘이란 특성상 복종으로 올라갔을 테고. 그래도 희로애락이 생긴 것은 좋은 변화였다.
‘저게 좀 더 단계가 높아지면 리프가 웃는 소릴 들을 수 있을지도.’
그럼 리프가 확실하게 행복해졌다는 걸 나도 바로 알 테니까.
내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제 케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