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7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71화(171/373)
바람이 불었다. 비가 오기 직전 흙냄새를 품은 습한 공기가 샤하드의 몸을 한번 휘감아 맴돈다.
살갗에 감기는 젖은 공기에 샤하드는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그만하실 예정입니까?”
“무릎도 아프고, 비가 올 것 같군.”
샤하드의 말에 수건을 건네던 그의 보좌관이 허허 하며 웃었다.
“제 조모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요즘 자고 일어날 때마다 옷이 짧아지고 있을 정도야.”
샤하드가 수건으로 땀에 젖은 머리를 닦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또래의 영애들보다 가벼운 몸, 허약한 체력 따위는 이제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의 보좌관과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몸은 아직 마른 편이나 그것은 뒤늦게 성장하는 몸을 아직 체격이 따라잡지 못하는 중일 뿐.
아마도 성장기가 끝난 뒤엔 어지간한 기사보다도 훤칠해질 터.
앙상한 겨울나무의 가지 같던 모습을 떠올리던 보좌관이 익숙하게 되돌아온 수건을 받으며 웃었다.
“오늘도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재미있네.”
샤하드의 적금색 눈동자가 느리게 지는 노을과 섞여 이지러진 빛을 뿌렸다.
세리아를 완전히 적으로 판단한 이후 샤하드가 선택한 것은 완벽한 은신.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의 통제와 더불어 시작된 탐색.
그리하여 시작된 정보 수집은 거르고 걸러 중요한 내용만 자신에게로 전달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매일 같이 보고서가 올라오는 상태. 그만큼 세리아 쪽의 세력이 뿌리가 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관련된 내용 또한 많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요즘 들어 더욱 정보를 캐내는 것이 중요해진 이유가 있었으니.
‘세리아 쪽에서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바로 세리아가 트레잇을 발현했다는 것.
분명 샤하드가 확신하기로 세리아는 봉인으로 추측되는 트레잇 외엔 별 볼 일 없는 게 확실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다른 형제의 트레잇은 봉인으로 막아둔 가운데 자신마저 십수 년간 두각을 나타내지 않은 채로 황태녀의 자리에 오르지 않을 리가 없지.
오르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게 맞는 일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세리아가 발현한 트레잇이 마나 계열이 확실하단 말이지.”
“예, 샤하드 님.”
가볍게 샤워를 마친 샤하드가 옷을 입으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속임수라고도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까지 무능력했던 세리아가 자신의 능력을 보일 리 없었으니.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정황만 따지면 세리아가 강력한 트레잇을 얻은 것은 확실한 상황.
‘왜냐하면 처음 칼을 쥐었던 나처럼 써보지 못해 안달인 것 같거든.’
마치 실수인 것처럼 굴고 있긴 하지만 그게 요 이삼 주 동안 서너 번이다.
세리아 자신은 참고 참다가 티를 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근 20년 가까이 이번 황실에서는 대단한 트레잇의 계승자는 나오지 않은 것처럼 꾸며댄 상황에서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서너 번이면 말이 안 되는 셈.
‘아니, 오히려 그 인내심을 칭찬해야 하나?’
트레잇의 봉인이 풀린 후 몸이 뒤틀릴 만큼 경련이 일어나고 먹은 것을 전부 토해 내다 못해 묽은 것만 게워낼 만큼.
그만큼 기쁘고 황홀하여 그 약했던 몸으로 검을 휘둘렀던 샤하드 자신보다 세리아가 인내심이 강한 것일지도 모르지.
“이노센트의 말이 확실해진 거 같은데, 어찌 생각하지. 더불어 날 노리는 것 또한.”
“더 이상 제가 그들을 견제하지 않는 게 낫겠군요.”
샤하드가 올라온 보고서를 읽어보다 그중 몇 장을 자신의 보좌관에게로 넘겼다.
“신의 계약서를 썼는데도 이렇게까지 의심하는 사람은 너뿐일 거다, 이옐.”
샤하드의 보좌관. 이옐이 종이를 읽으며 대꾸했다.
“신의 계약서라고 만능은 아닐 겁니다. 애초에…….”
보고서를 읽다 말고 이옐이 목소리를 낮췄다.
“신도 만능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만신전이 없었을 것이다. 오롯한 하나의, 유일신만이 존재했겠지.
“내가 이노센트와 손을 잡은 것처럼, 세리아는 성신교와 손을 잡은 게 확실한 상황이지.”
“그게 아니고서야 그 성녀상의 대가를 이렇게 무난하게 넘겼을 리 없습니다. 애초에 저희의 정보 인력을 반 이상 거기에 썼는데도 겨우 알아낸 게 그 성녀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사실 아닙니까.”
자신의 보좌관, 이옐의 말에 샤하드가 이제는 제법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으로 자신의 한쪽 눈과 뺨을 쓸었다.
대륙은 넓다. 워프 게이트가 없다면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넘어가는 것만 족히 30일 이상 잡아야 하는 거리가 즐비했고 연락 수단은 비용의 문제로 대부분 사람의 손, 아니면 전서구 정도.
그러니 정보의 가치는 때론 상상을 초월했다.
미리 정보를 얻을 인력을 양성하고 준비했다면 모를까 이제야 힘을 얻기 시작한 샤하드는 다방면의 정보를 모으는 것 대신 선택과 집중이란 방법을 택했다.
이노센트와 손잡고 그들이 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그것을 검증하는 것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
“우습게도 그렇지. 세리아 쪽으로 그 망나니 아델리안이 멍청하게 성녀상을 넘긴 것부터. 그 성녀상의 효과까지 전부 이노센트가 알려줬지.”
우리는 고작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는데 지금까지 쓴 골드의 삼 분의 일은 투자했고 말이야.
“그리고 또 다른 삼 분의 일은 사실상 성신교에 대해 파헤치는 비용이나 다름없었죠.”
“그래서 얻은 거라곤 이노센트의 정보가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뿐이지.”
모든 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당연히 안 되겠으나 처음부터 거짓일지 모른다는 마음가짐으로 바닥부터 조사할 필요는 이제 없지 않냐는 샤하드의 말에 이옐이 고개를 숙였다.
“전 늘 샤하드 님의 편입니다. 그러니 오늘부로 이노센트의 정보는 가벼운 교차 검증 후 받아들이기로 하죠. 그리고 솔직히… 쉽게 믿기 힘든 내용들뿐이었지 않습니까.”
공유해 주는 정보가 어지간해야 덥석덥석 믿지. 그들이 말해 주는 것들 대부분 보통 사람이 들으면 단박에 헛소리라며 일축할 것들 아니었나.
‘기적을 빌 수 있는 아티팩트와 흑마법사도 아니고 단시간에 악명을 얻기 위해서도 아닌, 말 그대로 신에 대한 제물로 인간 공양을 하는 종교라니.’
이옐이 고개를 한번 내저었다. 전자는 그렇다 치고 후자가 더욱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신은 인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그 세가 결정된다.
너무나도 사이하고 악한 신이라도 최소한 그 신을 인지하는, 그리고 광신하는 이들을 필요로 하지, 무턱대고 고문하고 죽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약물로 세뇌하여 가짜 신앙이라도 뽑아내는 것이 더 값지겠지.
고통을 바라는 것은 흑마법사들의 방법과 같았다. 그들은 믿음과 신앙이 아닌 강렬하고도 아주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흑마나를 필요로 하니까.
고통, 분노, 슬픔, 노여움, 절망, 수치. 그런 것에서 비롯된 부정하고 타락한 마나.
‘그런데 신을 공양하는 것에 그런 게 필요할 리가. 악신도 원하지 않지. 신이 원하는 것은 신앙과 믿음. 숭배.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원한다 하면…….’
“마족이라도 연관되어 있는 걸까요. 그럼 성신교가 믿는 것은 신이 아닌 마왕일지도 모릅니다.”
이옐의 말에 샤하드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내가 두각을 나타낼 경우 세리아가 선택할…….”
샤하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 켜져 있던 불이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마법입니다.”
“분명 대비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을 텐데?”
마치 누군가가 양손으로 눈을 가린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그리 멀리 않은 곳에서 끄륵읍 하고 피거품을 게워내는 소리가 들렸다.
샤하드와 이옐은 검을 빼든 채 마나 기감으로 서로를 찾아 등을 맞댔다.
“각종 경고 마법과 방어 마법을 단번에 푼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순간 차원이 다른 신호가 가니까 기껏해야 일시적 교란 후 시야 차단 마법을 걸었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얼마나 버텨야 기사들이 올 것 같은지 계산해 봐, 이옐.”
“10분. 10분입니다.”
“가능성은?”
천천히 이옐이 쥔 검에서 눈부신 오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샤하드의 검에서도 미약하지만 오러가 깃들기 시작했다.
“샤하드 님을 제외한, 저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아 왔을 테니.”
100%라고 확신합니다.
이옐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짙은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 *
“아니, 왜 지나가던 고래의 숨구멍에 손을 넣고 그래?”
하늘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레이첼의 모습에 다들 몬스터라도 튀어나왔나 싶어 집결했더니 결론은 그거였다.
유유자적하게 헤엄치다 숨 좀 쉬려고 수면 가까이 올라온 고래를 발견한 레이첼이 냅다 숨구멍에 팔을 찔러 넣었다는 것.
“아니, 그게 눈앞에서 어? 있는데 안 넣어보냐고! 근데 그 큰 구멍에 내 손 좀 넣는다고 그렇게 뿜을 줄 몰랐지!”
“너라면 네 콧구멍에 누가 손가락 집어넣으면 어쩔 건데.”
“죽여야지?”
문득 생각하는 건데, 내로남불 같은 단어는 이제 사자성어에 들어가도 되지 않나?
“정말 레이첼은 참.”
“레이첼 후배님 덕에 재미있는 거 봤습니다. 그런데 날아갈 때 어떻던가요?”
자신의 코를 가리며 으르렁대는 레이첼을 보다가 나는 고개를 저었고 나머지는 그게 유쾌한지 웃어댄다.
힐긋힐긋 보던 해적들도 낄낄거리는 걸 보니 처음에 꽤 경계하던 모습도 풀어진 모양.
그렇다고 레이첼이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우습게 볼 일도 없는 게 레이첼이 바다에 빠지자마자 고래를 어퍼컷 쳤는지 고래 머리가 들리더니 정작 레이첼은 바다 위를 걸어서 돌아왔기 때문.
처음엔 단순하게 엘리스의 손님 정도로 보며 고까워하던 눈빛이 많이 변했다.
일반 선박의 선원도 아니고 해적들이니 성정이 거친 건 어쩔 수 없지. 그걸 이유 없이 우리가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도 방법이 아니고.
‘다만 해적이다 보니 확실한 금전적 대가와 더불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알려주면 적어도 우리 힐러인 레비를 데려오기 전까진 쓸 만하겠지.’
애초에 해적들, 충성심이 있을 리 없다. 거기에 언젠가 아르만이 힘을 키운 뒤에는 오히려 척결해야 하는 이들.
‘다만 제로가 엘리스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
아르만이 쉽게 하기 힘든 더러운 일이나. 혹은 자잘한 해적의 견제에 이용할 수 있겠지.
내가 아무리 아르만을 키운다 해도 남해 군도 자체를 제국에서 독립시키지 않는 한 질이 아닌 병사의 양을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거기에 해적을 척결한다고 해도 거대한 해적이 아닌 소규모로 움직이는 것들은 하나하나 단속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잡는다 해도 절멸될 수는 없는 일.
그러니 상황 봐서 엘리스를 키워 양강 체계로 굴리는 것도 방법이고…….
‘해군이 아닌 같은 해적이라면 유사시엔 집결도 가능할 테니.’
어차피 결국에는 악신교단과 대륙의 싸움이 될 테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동안 옅은 진동이 느껴진다. 세이렌을 꺼내 보니 그 찹쌀떡 같은 것이 몸을 떨었다.
케인이나 제로, 그리고 알카이도처럼 아무 이유 없이 연락할 이들의 경우 세이렌으로 연락하면 바로 들리지만, 지금은 진동하는 데다 세이렌의 몸에 떠오르는 표식을 보니.
“도착했나.”
<―예. 관리자님.>
드디어 정령의 숲에 있는 비공정까지 세이렌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