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7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72화(172/373)
“겉으론 다들 비실비실해 보이던데.”
“솔직히 선장님 친구인 그 회색 머리만 아니었어도 잔뜩 데리고 놀다가 팔아넘겨도 될 이들 아니냐.”
귀족으로 보이던 그 금색 머리의 오만한 애송이야 후환이 두려워 몸값만 받겠지만.
호위로 보이던 이들은 다르지. 호위라 봐야 귀족 애송이가 얼굴로 뽑은 이들일 터.
그게 아니고라도 그렇게 어린 이들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할까. 해적들 중에 있던 오러 유저가 은근히 마나 탐색까지 시도해 봤으니 약한 것은 확실한 사실.
설마 그 나이에 마나를 숨길 정도의 강자일 리는 더더욱 없고.
남자 여자를 가릴 것 없이 얼굴이면 얼굴, 몸이면 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이들이다 보니 모두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전문적인 노예상 짓은 해본 적 없지만 노예선은 자주 털어본 해적들이라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물론 목숨이 안 아깝다면야 지금이라도 도전해 볼 만하지. 슬쩍 아무나 입만 막고 이곳으로 데려오면!”
“아서라. 그러다 그 제로라는 분이 아시면… 난 아직도 그날 생각만 하면 오줌마렵다.”
갑판 아래 생활실에 옹기종기 모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순간 모두의 입에서 한숨이 나옴과 동시에 진저리를 쳤다.
“다른 해적단 녀석들이 알면 무슨 헛소리냐 하겠지?”
“젠장. 그 녀석들도 여기 데려와서 겪게 해야 하는데.”
사내의 말에 마주 앉아 있던 중년의 여성이 자신의 흉터를 긁으며 끄덕였다.
“내가 소싯적에 크라켄을 멀리서 본 적 있는데, 그때 생각이 나더라니까.”
어느 날 퀸의 해적들을 모두 모아 생긴 건 몸만 큰 소년처럼 맑게, 마치 순한 대형견 같은 얼굴로 웃으면서 그때 무어라 했던가.
‘곧 중요한 분을 모시러 갑니다. 불미스러운 일 없도록 유의해 주세요.’
그 곱게 던진 말에 안 그래도 거친 뱃사람들 중에서도 더욱 험한 일 하는 해적들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답했을 리가.
군대도 아니며 명예를 아는 기사도 아닌 해적들이었다.
물론 선장에 대한 기본적인 충성심은 있으나 어디서 굴러먹다 온 말 뼈다귀 같은 놈이 선장의 애인처럼 딱 달라붙어서 자신들에게 명령질하니 어느 해적이 가만있었겠는가.
더불어 엘리스 선장은 조율할 생각도 없는지 럼주나 마시며 재미있단 얼굴을 하니 다들 저거저거 저놈 한번 콧대를 눌러줘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밖에.
‘아, 그럼 그쪽이 우릴 부릴 정도로 돈이 많으신가?’
‘대가는 섭섭하게 주실 분이 아닙니다. 더불어 다른 일행분들도 좋은 분이니 잘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오호라, 우리랑 잘 지낸다? 그럼 다른 재미도 기대해도 되나?’
순간 어느 누군가 상스러운 움직임을 한 그때. 그리고 겁 없이 덤볐던 이들 뿐 아니라 모였던 모든 이들은 그 순한 얼굴 뒤에 깃든 두려움 그 자체를 마주했다.
“사람이 말이여. 기세라는 게 있긴 한가 봐.”
“마나를 뿜어 위압감을 준다거나 뭐 그런 거야 우리가 못 느꼈을 리 없지.”
“그… 살기 그런 거 아니겠어?”
“아냐. 나도 살기 같은 걸 겪어봤는데 차원이 다르더라고.”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 그대로 그 어떤 마나의 동요도 흐름도 없이. 수십 명에 달하는 해적들을 일순간 얼어붙게 만든 힘.
그것은 외부의 힘이라기보단 본능에서 비롯된 내적인 경고였다.
“나 비슷한 걸 느껴본 적 있긴 해.”
한 해적의 말에 모두가 눈을 돌려 바라보았다.
“저번에 나 혼자 낚시한답시고 작은 배 타고 놀러 갔다가 폭풍 덕에 난파된 날 있잖아. 그때 그 검은 물속에서 씨 서펜트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 그거 거짓말 아니었어?”
거짓말 아니었다니까 하며 화를 버럭 내던 해적이 조금 두려움에 잠긴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죽기 싫다고. 살고 싶다고. 그 생각으로 꽉 차서 그 순간 숨이 쉬고 싶단 생각도 안 들더라고.”
움직이면 죽는다.
그 본능적인 공포를 떠올리며 해적이 한 번 몸서리를 쳤다.
“그 느낌이란 말이지. 그나저나 제로라는 그분에게 난 죽기 싫으니 깍듯하게 대하련다.”
그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 뒤 갑판에 올라간 후.
하늘 높이 솟았던 제로의 동료가 고래를 어퍼컷으로 들어 올리더니 물 위를 걸어오는 모습에 다들 대놓고 그들을 집적거리지 않았던 자신을 칭찬하며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 * *
리프가 있던 비공정은 그 용도를 날틀 하나로 설명하기엔 문제가 있을 만큼 그 규모가 큰 개체다.
많은 양의 물건을 적재 가능하여 대형 수송선의 기능부터 시작해서 마나 주포 등을 이용한 공격선은 물론이거니와.
공중에서 이동 중일 때는 가장 단순한 골렘만을 생산 가능하나 바닥에 내려 자리를 잡는 경우에는 내가 타이탄이라고 부르는 대형 기갑 골렘까지 생성 가능한 전략적 무기 생산선으로도 쓸 수 있었다.
더불어 자아라고는 거의 없는 아이기스나 양산형 골렘과는 달리, 많은 골드를 쏟아붓는 경우엔 리프와 같은 지휘관 골렘도 생산 가능한 정도.
거기에 일정 조건하에 식량 생산도 가능할 뿐 아니라 바닷빛 진주의 모든 동력을 방어에 집중하면 아마 드래곤의 브레스로도 한 번에 부술 수 없을 정도라는 자료를 봤으니까.
거의 전천후 병기인 셈.
그런데 이쯤 되면 드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과연 저 정도 기술이 있는 세력이 왜 지금은 정보 하나도 제대로 남지 않았느냐와 동시에.
저런 비공정은 너무 비효율적 아닌가.
‘따지고 보면 노아의 방주나 다름없지, 그거.’
로스트 테크놀로지.
솔직히 원작을 다 읽고 게임까지 한 나로서도 가장 의아한 게 비공정이었다.
원작이나 게임이나 비공정의 등장은 리프의 픽업 스테이지 그 이상 그 이하의 가치도 없었으니까.
이미 전부 부서지고 바닷빛 진주를 탈취당한 뒤에나 도착했으니 별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그런 것을 단순히 동력원이 부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놀리는 건 비효율적이지.
비공정도 내 것이 된 이상 어떻게든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여 당장 시도한 게 그것이다.
‘지휘관 골렘의 생산 및 활용.’
이노센트라는 암약 단체를 제대로 굴리려면 컨셉부터 확실해야지.
음모론 같은 걸 좀 재미있게 알아본 사람들은 알 텐데. 남들은 모르는 진실. 마치 빨간약을 먹어버린 것 같이 정말 소수의 깨우친 자만이 이 세상의 부조리를 안다는 그 감각은 꽤 중독적이다.
물론 지구에서는 보통은 신나게 밤새워 음모론 읽고 뽕이 차서 공상하다가 한번 푹 자고 나면 재미있었다로 끝나지만 이런 세계에서는 다르다.
더불어 그 음모론이 그냥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진짜인 경우라면 어떨까.
“세상의 종말은 밀레니엄 때도 잘 먹혔다고.”
대륙 어딘가에는 종말을 기원하는 단체가 있으며 그 단체는 생각보다 거대해 온갖 곳에 손을 뻗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세상의 종말을 막으려는 단체가 나에게만 그 진실을 알려주며 정보와 함께 도움을 주고 동시에 그 진실을 알고 있기에 위험할 수 있으니 호위까지 붙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내 목적은 하나지만.’
내가 이노센트의 이름을 까발리는 사람은 모두 악신교단을 노릴 창이요, 대륙을 보호할 방패가 될 것이며 그 말은 교단 쪽에서 노리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란 소리다.
더불어 어지간하면 중요한 인물들이니 감시도 해야 하고.
나에게 전 대륙에 퍼질 세이렌 그 모든 것과 교신이 가능한 프로토 타입이 있다는 것을 알 리 없으니 당당하게 스파이를 심을 수 있단 소리.
즉 나는 지휘관 골렘을 주요 인물에게 붙여 정보원으로 쓸 속셈이었다.
“도착했나.”
<―예. 관리자님.>
비공정을 관리하며 동시에 엘프들의 정보 수집을 위해 리프 외 다른 지휘관 개체를 하나 깨워 놓고 나왔었다.
그리고 상단을 통해 가뮈르에게 전달된 세이렌이 이제야 그의 손에 들어간 모양.
“그럼 동봉한 문양을 새긴 지휘관 골렘을 중급으로 생산하려면 얼마나 소요되지?”
난 혹시나 몰라 마정석을 이용해 마나 장막을 생성하는 아티팩트를 가동한 뒤 선실 소파에 앉았다.
<―이 세이렌이라는 것과 더불어 많은 물자를 조달받았으므로 첫 한 기는 삼 개월 후. 그 이후부터는 한 달에 한 기씩 총 열 기가량 생산 가능합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거기에다가 사실 저쪽으로 보낸 물자는 지금 수도에서 세이렌을 팔아 번 골드를 상회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 자원을 넣고도 고작 열 기에 중급이라. 군대의 장군도 1성 장군이 있고 2성 장군이 있지.
대륙에도 백인장과 천인장은 같은 지휘관이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당히 중급 정도면 내가 원하는 목적에 부합되는 최저 요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물론 양산형 골렘처럼 공장식으로 찍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그렇다고 원래 만들어져 있던 지휘관 개체를 쓰는 것은 살짝 문제가 있었다.
리프와 동시대 만들어진 개체들은 누구와 전투하려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전부 최상급 골렘이었으니까.
―관리자님. 혼자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밖은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잠시 고민하는데 리프가 다가온다. 나는 그 무표정한 얼굴을 보다 문득 입을 열어 가볍게 내 생각을 설명했다.
“급한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빠른 게 낫지. 그런데 너와 같은 등급의 지휘관들을 붙이는 건 조금 과한가 싶기도 하고.”
내 말에 리프가 노란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같은 등급의 지휘관 개체는 경험의 공유가 가능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것은 악수와 같은 직접적인 접촉이나, 모든 기억의 공유가 아닌 파편적인 것이라면 마정석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 그 말인즉슨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며 좀 더 높아진 감정적 사고방식을 부여 가능하다?”
―지휘관님을 따라나선 초반보다 지금의 제가 조금 더 인간다워졌단 소리를 루나나 제로에게 듣곤 합니다. 골렘 특유의 무기질적인 분위기를 상쇄시킬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리프가 내 손에 들린 세이렌으로 잠시 시선을 옮겼다 다시 나를 바라본다.
―저와 같은 등급의 지휘관 개체들이라면 파손 후에도 제가 정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손을 뻗어 리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용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이 골렘의 기본적 요소인 건 알고 있다. 현대의 로봇으로 바꿔 생각하면 비슷하지.
절대 주인을 해칠 수 없고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며 그것에 의문 또한 지니지 않는, 자유 의지가 없는 충실한 생명체.
하지만 난 리프를 그렇게 둘 생각이 없다. 게다가 불가능하지도 않지. 내 복장을 몇 번이나 터트렸던 돌이끼만 생각해도 자유 의지 없이 그렇게 고구마만 먹이며 어? 마지막에 부인 어쩌고 하면서 하렘인 척할 리가 없다.
아니지. 하렘인 척이 아니고 일단 케인이랑 다 사이는 좋았으니까 척은 아니지…….
나는 내 주식을 부여잡은 그대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최상급 지휘관 개체를 깨우자. 하지만 이건 네가 나에게 조언한 것처럼 단순하게 효율과 정보만을 위해 내린 결정은 아니야.”
네 경험과 감정의 자율 상태를 같은 등급인 그들에게 공유 가능하다면 반대도 가능하겠지.
“모두 내가 준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많은 것을 경험하도록 자율 의지 제한을 최대한 풀어둘 거야.”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보완하며 결국은 크게 웃기도 하겠지.
나는 무표정한 가운데서도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아주 희미하게 의아한 기색을 띄우는 리프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