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7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74화(174/373)
물이끼 냄새가 나는 동굴. 그 잘박거리는 물 안쪽에 자리 잡은 둥근 형체가 흔들렸다.
“더는 못 기다립니다. 누님.”
“싫어! 난 가지 않을 거야.”
레비니아의 외침에 방계 혈통의 왕족 사내가 자신의 지느러미 귀를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제가 왔으니 다행이지. 큰형이 왔으면 바로 질질 끌려 나왔을 겁니다. 그냥 말로 부탁드릴 때 스스로 나오세요, 누님.”
아무리 그 내재된 힘이 강하다고는 하나 나이가 지났음에도 성인식을 치르지 못해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반쪽짜리 아닙니까.
하는 말에 레비니아의 동체가 흔들렸다.
“내… 성인식을 방해한 건 너희들이잖아. 이 배신자…….”
“무슨 소리세요. 그때 의식에 난입한 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족 어린아이 아니었습니까? 그게 그렇게 억울하셨으면 그때 그 아이를 찢어 죽이지 그러셨어요.”
그럼 분풀이라도 되었을 텐데. 다 인간족이 끼어들어 그 사달이 난 게 아닙니까. 하며 실실 웃는 목소리가 동굴에 깊이 울렸다.
“10년. 아니, 너희들이 도와만 주면 5년 안에도 다시 의식을 치를 수 있어. 그럼 난 누구보다도 강해져 인어족을 영광으로 이끌 수 있는데… 왜 날 배신하는 거야, 왜!”
레비니아의 말에 사내가 귀찮은 눈빛으로 혀를 차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닙니까, 그래서. 누님이 왕이 되면 뭐 저희는 누님의 칼받이로나 살 거 아닙니까? 이런 입씨름도 지치네요. 지금 나와야 결혼식 전까지 형태를 가다듬고 할 테니… 그냥 모시러 들어갑니다?”
“싫어! 저리 가!”
잘박하게 깔려 있던 동굴의 물 위로 파문이 일며 물의 마나 그 자체가 사내를 밀어내려 파도처럼 일어났다.
“…하여간 대단하지.”
흐압!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마나를 일으켜 같은 물의 마나로 상쇄하며 한 걸음 동굴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아마도 누님이 치유와 정화의 힘이 아닌 다른 힘을 먼저 각성하셨다면.”
한 걸음, 또 한 걸음 더.
그가 다가올 때마다 레비니아의 웅크린 몸이 뒤로 물러났다.
“인간들이 감히 누님을 노려 결혼하려 들진 않았겠죠.”
결혼하면 어찌 되시려나. 불로불사라는 그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실험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형태에 따라 잔뜩 사랑받으실지도 모르고. 나름 이 바다에서 어깨에 힘 좀 주는 가문이라니 말입니다.
물속에 웅크리듯 잠긴 레비니아의 귀로 먹먹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가 마치 악몽 속에서 듣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던 그 순간.
“이것 봐라? 어딜 선수 치려고.”
어떻게 목소리 하나로도 이렇게 오만할 수 있는가.
드래곤은 되어야 이렇게 누군가를 미물처럼 굽어보며 아량을 베푼다는 목소리를 흘리지 않겠는가.
동굴 깊은 안쪽으로 손을 뻗던 인어족 사내가 이를 뿌득 갈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인간? 인간이 어찌 이곳에 들어왔지?”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하는 그 말에 오만하디오만한 사내가 웃음을 흘렸다.
* * *
배가 이리저리 기운다.
가구는 애초에 그걸 상정하고 바닥에 박은 듯 굴러다니거나 넘어지는 게 없다.
서랍마저 전부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서 어느 각도로 기울어도 열리지는 않는 모습.
그나마 테이블에 올려둔 차나 쿠키 정도만 굴러갈까.
그마저도 케인이 마나로 누르고 있는지 지금 45도 이상 기울었는데도 쿠키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키를 좌로 돌려! 우현으로 몰아! 야, 집중 안 해? 정령들로 균형 잡고 제대로 조타 하라고!”
이 큰 배가 처음으로 흔들린다. 바다 위라는 것을 몰랐다면 지진이라도 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선체가 진동했다.
“선장님! 이쪽으로 가면 대형 소용돌이 사이로 지나가는 겁니다! 너무 위험해요. 배의 방어막이 못 버팁니다!”
“마정석을 궤짝으로 지원받았으니 못 버틸 리 없어! 태워. 다 태우라고! 엔진에 쉴 새 없이 밀어 넣어! 소용돌이의 압력을 뚫고 지나간다!”
콰가가!
소용돌이가 내는 엄청난 물소리와 배가 진동하는 소리에 전부 악을 쓰며 대화한다. 나는 케인과 같이 선실에 갇혀 창문만 보다 내 뒷덜미를 잡은 케인의 팔을 툭 쳤다.
“놓지, 인마.”
“튕겨 나가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뭔 뒷덜미를 잡냐. 물론 다른 데를 잡으라 내줄 곳이 없긴 한데.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곱게 아공간에서 밧줄이나 꺼냈다.
“난파될 것 같진 않은데.”
“보통 드래곤을 만나 브레스를 볼 기회도 없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악운이 강한 거 같잖냐.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만. 사이클롭스처럼 내가 의도한 곤경도 있었으나 체이서나 레피드처럼 갑자기 맞닥뜨린 적도 있긴 했으니.
‘알고 보면 내가 모르는 만남이 더 있었을지도.’
그 생각을 하는데 밖에서 갈매기 우는 소리가 잠시 들렸던 것 같다.
“배가 뒤틀릴 것 같습니다!”
“추진력 말고 방어막에 마나 엔진 동력 다 쏟으라고!”
밖에서는 연신 악전고투 중인데 이 안은 한가롭다.
풀리는 밧줄을 당기거나 돛을 풀고 방향을 바꾸는 것을 빠르게 하려면 강한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루나와 제로, 리프와 레이첼은 밖을 돕는 중인데.
제일 강한 놈이 왜 나랑 있는지, 참 나.
그나저나 내가 넌 안 나가냐 하는 눈빛으로 보니 어쩐지 금색 눈동자가 흉흉하다.
“감옥에 넣고 나갈까.”
“차나 한잔 더 따라 봐.”
배가 기울어 반쯤 누워 있는 상태로 말하자 케인이 비딱해진 바닥을 익숙하게 딛고 서서 다시 반대쪽으로 기우는 선실 안인데도 불구하고 한 방울도 다른 곳에 흘리지 않고 잔에 차를 따른다.
물론. 난 지금 억울했다.
갑작스러운 난파나 소용돌이의 충격으로 내가 저 창문을 깨고 날아갈까 봐 케인이 붙어 있다기보단 분명 다른 이유인 게 분명했기 때문에.
물론 한 번 정도는 충격 요법을 더 쓸까 말까 생각은 하고 있는 와중이나 지금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지금 저 눈빛이 아주 억울했지만 모른 척, 배가 잠시 바로 선 동안 차나 마셨다.
게다가 이 근처에 있는 던전 중에서는 절대 피해야 하는 던전도 있단 말이지…….
‘바다 마녀의 은혜.’
유닛 종류에 따라서는 정말 기가 막히게 꿀던전인데.
우리 메인 파티만 따지면 저렇게 악독한 던전이 또 없다.
‘차라리 씨서펜트 둥지가 낫지.’
그건 이러나저러나 몬스터 둥지라 힘만 있으면 깨부술 수 있지만 바다 마녀의 은혜는 다르다.
정신력과 관련된 던전이다 보니 트레잇에 명상이나 집중, 굳은 의지, 철혈. 이런 트레잇이 붙은 유닛은 거의 업그레이드용 던전인데.
우리 파티처럼 전부 한구석 찔릴 곳이 있는 이들이 들어간다?
‘그나마 기대할 건 케인뿐인가.’
그것도 게임에서는 불굴 덕에 정신력에 마이너스가 달려도 어떻게든 클리어하는 식으로 스텟을 올린 거고…….
케인이 강인하다고는 하나 그거는 외적인 부분이 크다. 오히려 내면은 불안정하지.
그 불안정함을 딛고 버티고 어떻게든 쥐고 올라가며 결국 이뤄낸 게 대단한 거지만.
케인이 그 정도니 나머진 더 위험하니까.
절대 그쪽으로 쳐다보지 않을 생각하는데 순간 멀미가 날 것처럼 흔들리던 배가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빠져, 빠져나왔습니다!”
“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어이구야. 나 다리에 힘 빠져서 발발발발 떨리는 거 좀 봐. 이거 힘준 건데 우습구만.”
갑판 여기저기에 엘리스의 선원들이 드러눕는다.
“수고했다, 이 자식들아!”
“오!”
엘리스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하니 다들 누워서 손이나 슬쩍 발을 들고 외친다.
그 모습을 보며 루나와 레이첼이 크게 웃는다. 제로는 엘리스를 도닥이고 있고 리프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신도 갑판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그 모습에 나는 밧줄을 회수하며 케인에게 고갯짓했다.
“다들 쉬게 두고 우리 먼저 갈까.”
“명령이라면.”
“부탁이면 안 할거고?”
“글쎄.”
내 말에 농담으로 받아치고. 케인 많이 컸네.
나는 피식 웃으며 선실 밖으로 나왔다.
“쉬고 있어. 먼저 둘러보고 올게.”
“아, 올 때 야자!”
“전 물고기 말구 육고기요, 도련님.”
―사과 말고 다른 과일 부탁드립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아델리안 님.”
제각기 한마디씩 하는 거 보며 나는 익숙하게 케인에게 짐짝처럼 들렸다.
그리고 얇은 트램펄린 위를 뛰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바다 위를 쑥쑥 달리는 케인.
한 번 걸음을 놀릴 때마다 섬이 내 앞으로 쑥쑥 다가오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수상비. 등평도수?’
잠시 장르를 파괴하는 생각을 하며 그것에 감탄하던 찰나 문득 케인이 물 위에서 멈춰 섰다.
‘무력답수!’
“누군가 있군.”
바다 위라는 조건 때문일까. 꽤 섬에 가까워진 상태로 케인이 중얼거리더니 방향을 살짝 틀어 섬의 옆으로 움직인다.
“누군가라고 하면 몬스터는 아닌 것 같고. 인어?”
“그런 것 같은데. 수가 많지는 않다. 마나가 반사되는 좁은 공간에 들어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둘 정도로 추정되는군.”
레비가 원작에 나올 때는 이미 인어족에게 의해 강제로 인간 귀족과 결혼한 이후였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부인. 그렇지만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이 생기 없는 미소만 짓던 인어족.
나중에 합류한 뒤에는 물의 마나가 부족하여 종종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투덜거리기도 하고 물의 마나가 강해지는 곳이나 보름달이 뜬 날은 본래의 귀부인 모습으로 변해 노래도 부르곤 했지.
이노센트 사가에서 일러스트가 떴을 때는 그야말로 우아함의 극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메인 파티가 아닌 다른 이들과 있을 때는, 특히 인간족과 만나면 증오심이 어려서 문제였지만.
이번엔 그렇게 되기 전에 구하려고 온 건데.
“둘이란 말이지.”
진주나 산호를 갈아 뿌린 것 같은 백사장 위에 케인이 멈춘다. 나는 바닥을 딛고 선 그대로 주위를 훑었다.
“저쪽인가.”
“그래.”
얼핏 보면 그냥 지나갈 만치 입구가 좁은 동굴. 아이기스를 툭 쳐서 한번 주위를 맴돌게 한 뒤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결혼하면 어찌 되시려나. 불로불사라는 그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실험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요?”
듣기만 해도 아주 비열한 목소리.
이거 딱 봐도 방계 왕족이네.
배신자들.
“아니면 형태에 따라 잔뜩 사랑받으실지도 모르고. 나름 이 바다에서 어깨에 힘 좀 주는 가문이라니 말입니다.”
보아하니 지금 레비를 결혼시키기 위해 강제로 끌고 가려고 온 모양이구만.
어두운 동굴 안쪽, 물이 고인 곳에 무언가가 웅크린 것처럼 둥근 모습이 얼핏 보이고 그 앞에선 남자 인어족이 아주 의기양양하게 지껄이고 있다.
우리 힐러의 멘탈에 아주 좋지 않은 개소리를 말이지.
“이것 봐라? 어딜 선수 치려고.”
나는 심기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실실 웃으며 고압적으로 입을 열었다.
케인이 우리 주변에 마나 장막을 쳐둔 덕에 이제야 우리의 존재를 알았는지 인어족 사내가 깜짝 놀라 몸을 뒤돈다.
“누구냐. 인간? 인간이 어찌 이곳에 들어왔지?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그건 네 이야기고.”
너야말로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감히 우리 힐러를 건드리고 말이야.
나는 순간 나에게로 쏟아진 물의 화살을 아이기스가 막아내는 것을 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케인. 저 자식을 잡아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