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7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77화(177/373)
어차피 네가 원하는 앞길을 막는 이라면 모두 죽여도 될 텐데.
가장 합리적이지 않나. 이유가 어찌 되었건 아델리안은 많은 비밀을 알고 있고 그 비밀 중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들어 있을 터.
그렇다면 나를 자신의 검으로 쓰겠다던 그 말을 따라 케인 자신을 마음껏 휘둘러도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 전 나뭇가지 같은 팔을 지니고 있을 때도 흑마법사의 실험실에서 고통에 이기지 못해 제발 죽여달라던 이들의 숨을 몇 번이고 거두었으니 지금은 말해 무엇하랴.
세상 사는 것이 그리 단순한 게 아닌 것을 알고 있으나 약간의 후환이라도 남을 이들을 전부 죽이면 문제만큼은 빠르게 해결되는 게 아닐까.
‘황실은 아직 무리겠으나.’
혹은 케인 자신이 아직은 더 강해져야 하는 것일지도.
드래곤, 혹은 제국의 황실과도 단신으로 대적 가능할 정도의 강자가 되면.
그리하여 이 대륙의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려도 상관없다 그리 말할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아델리안은 어찌 나올까.’
코덱스를 이용한 바인딩으로 묶여 동굴 바닥에 아직 살아 굴러다니는 인어족 사내를 보며 케인이 생각하던 와중 아델리안이 입을 열었다.
“모셔와. 많이 놀랐을 텐데 정중하게.”
모르는 이가 들으면 아주 고압적이고도 오만한 명령이라 하겠지만.
‘힐러를 만나 기분이 좋은가 보군.’
케인은 감흥 없이 몸을 움직여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그의 경지를 일컫자면 오러 마스터.
누군가는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경지.
보통 사람의 눈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라 하더라도 한 줌의 빛만 있으면 사물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니, 동굴의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만으로도 케인의 눈엔 안쪽에 웅크린 생명체가 똑똑히 보였다.
해파리를 닮은 매끈한 피부와 둥근 몸.
그리고 동시에 등 뒤에서 슥 날아오는 라이트.
그것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실망하겠군.’
그리고 그다음에 든 생각은.
‘기묘한 수집벽이 있단 소문에 신빙성을 더하겠어.’
케인도 종종 타인들이 말하는 아델리안의 그 기묘한 수집욕이 어디에서 비롯된 말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아델리안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사람을 모으고 다닌 데다 그 목표에 맞게 강한 이들을 필요로 한 것이니 트레잇을 보고 모았다는 말은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외형의 미적인 요소만을 중요시한다는 말에는 그리 동의하지 않았으나.
‘애완동물도 이런 걸 데리고 다닌다면.’
소문에 좀 더 박차를 가하겠지. 하는 행동을 봐서는 또 파티원이 될 이와 자신을 엮으려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틀렸던가.
“…어?”
뒤로 다가온 아델리안의 입에서 허망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니, 이번에도 그럴까 했던 모양이군.
케인이 귀찮다는 눈빛으로 아델리안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는 몰라도 케인 자신은 지금까지 아델리안이 은근슬쩍 동료들과 자신을 붙여두려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표정에서 티가 나니 모를 수가 없지.’
루나나 리프, 레이첼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안 그런 척 눈빛을 빛내며 보던 게 하루 이틀이었어야지.
그 둔한 레이첼도 본능적으로 아델리안이 시무룩해 보이면 자신에게 붙어 속삭일 정도.
하지만 이번에는 아닐 줄 알았는데.
‘계산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군,’
대놓고 영혼이 살짝 빠진 얼굴로 눈동자가 흔들린다.
케인이 레비니아의 말랑한 몸을 들고 올리니 오동통한 팔과 다리를 보며 아델리안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뒷말은 삼켰지만 누가 보아도 왜 이런 모습이지? 하고 당황해하는 얼굴.
그에 케인이 자신도 모르게 옅게 웃었지만 아델리안은 그것도 모른 채 애써 정신을 다잡고 레비니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엔 잔뜩 경계하듯 몸을 둥글게 말던 레비니아도 아델리안과 대화하며 점점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건 선물이야.”
“난 다 알아. 예지안이 있거든. 레비, 넌 이곳에 계속 있으면 안 돼.”
“물론 당장 계약하자는 건 아니야. 며칠이라도 네가 고민할 시간을 줄게.”
잔뜩 경계심을 품고 있던 물색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풀리고 엉덩이 쪽에서 바짝 서 있던 짧고 통통한 꼬리 같은 것이 살살 흔들린다.
도마뱀이나 혹은 물개 같은 모습.
별다른 마법도 걸리지 않은, 화려하기만 한 장신구가 말랑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들어차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물개 같은 무언가처럼 생긴 레비니아의 경계심이 풀려가는데 취향을 정확하게 알고 온 모양.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케인이 배로 돌아가자는 말에 팔과 허리 사이에 둘을 집어넣으려 하자 아델리안이 냉큼 레비니아를 데려갔다.
“쟤가 우리 힐러야?”
배로 돌아오니 모두가 독특하게 생긴 레비니아에게 관심을 보인다.
레이첼이 슬쩍 다가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니 제법 심각한 표정.
“인어족이라며?”
“네가 모르는 걸 왜 나에게 묻지.”
“하긴 너나 나나 상식은 다 팔아먹고 없으니까.”
당당하게 말하며 슬쩍 엄지를 치켜올리는 레이첼을 바라보다 케인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의아하단 말이지.”
저렇게 말랑말랑 탱탱해 보여도 유일한 로열 블러드인데.
“솔직히 말해 루나는 메이드로 만났다지만 나머지는 전부 아델리안이 찾아냈잖아.”
“그게 어쨌다는 거지.”
케인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되묻자 레이첼이 얼른 맛있는 걸 먹자며 레비니아를 꼬시는 아델리안을 흘긋 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를 포함해서 제로나 나 같은 경우는 마음만 먹으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대륙을 멸망시킬 수 있잖아.”
거기에 리프도 리프 단독으로는 무리일지 몰라도 많은 재화를 쏟아 비공정을 가동시켜 골렘들을 뽑아내면 가능한 문제고.
싱글싱글 웃으며 하는 말에 케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악신교라는, 이 대륙의 멸망을 바란다는 것들을 막기 위한 존재가 우리들이라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아?”
특히 너랑 제로 말이야.
레이첼이 특유의 밝은 얼굴로 속삭였다.
“넌 당장 우리 중 한 명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놈이잖아.”
제로 그 자식은 원래 괴물이고.
“아, 너도 괴물이긴 하지.”
제로보다 더한 괴물이지.
그 녀석은 어떻게든 가둬 아무도 집어삼키지 못하게 하면 되겠지만.
“넌 드래곤을 가둘 감옥에 처넣어도 시간만 주면 빠져나올 거잖아.”
죽이지 않는 한.
하며 레이첼이 태연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
아델리안을 만난 시간은 수많은 인간들에게 난도질당한 시간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짧은 시간.
긴 시간 동안 응어리진 혐오가 전부 풀릴 리 없지.
그런데 케인 자신은 지금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5년, 10년이 아닌 고작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 정도로 강해졌다면.
아델리안이 말한 대륙 최강이라는 말은 정말 단순하게 시간의 문제일 뿐.
그러니 훗날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게 가능하겠지.
“마치 넌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는군.”
폭력중독자 레이첼.
아니, 분노의 레이첼.
아델리안은 모르는 눈치지만 이 파티 전부 한군데 뒤틀린 구석이 존재한다. 그것을.
“맞아. 그렇긴 한데. 재미있잖아.”
대륙에서 가장 무능력하다고 불리는 이가 우리 모두를 제어한다는 게.
레이첼의 말에 케인이 낮게 웃었다.
“그 재미로만 만족하는 게 좋을 거야.”
“예예, 어련하실까. 당연한 소릴.”
난 지금 무투가 레이첼이니까.
하며 레이첼이 씩 웃었다.
* * *
바다햄스터도 아니고.
저 말랑한 볼이 아주 터질 거 같다.
“맛있어?”
“응!”
짧뚱한 손 같은 무언가로 포크를 야무지게 쥐고 제로가 만든 고기 조림과 빵과 내가 손수 찢어준 구운 생선살을 아주 열심히 입에 쓸어 넣는 레비를 보니 이게 조카를 보는 느낌인가 싶다.
내 애라기엔 좀 멀고 조카라고 생각하니 아주 심적 거리가 가깝다.
물론 실제 나이만 따지면 레이첼과 리프 다음이라 내가 그냥 조카는 무슨, 고손자보다 더 어릴 수 있다만.
‘…원래는 제일 연장자 느낌의 누님 스타일이었는데…….’
원래는 이렇게 천진난만 한 타입이었단 말이지?
“근데 내 야자는?”
“제 고기는요?”
―다른 과일은 없습니까. 관리자님.
섬으로 가기 전에 부탁한 게 있던 루나와 레이첼, 리프의 말에 나는 둔기로 써도 될 것 같은 비스킷을 강판에 갈아 스프와 섞어 먹으며 씩 웃었다.
“케인이 이따 가져올 거야.”
내 말에 그 단단한 비스킷을 오러 씌운 식사용 나이프로 토막 내 입에 넣던 케인이 한쪽 눈썹만 치켜올린다.
그럼 뭐, 내가 가리?
내가 시선을 슬쩍 돌리고 맛보니 제법 괜찮은 것 같아 레비니아의 스프에도 비스킷을 갈아주기 시작했다.
“우리랑 같이 가면 이런 거 자주 먹을 수 있어.”
풍선에 물을 살살 집어넣듯 아까 전보다 좀 더 말랑하게 튀어나온 레비니아의 배를 보며 속삭이자 어깨까지 팔찌를 올려 찬 레비니아가 고민하는 기색이다.
“정말?”
“이거 전부 제가 만든 겁니다.”
레비의 질문에 제로가 상냥하게 대답한다. 그에 레비가 고기 조림을 다시 와앙 입에 넣으며 우물거리더니 조금은 도도한 우파루파가 되어 입을 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귀엽다…….”
그 모습에 루나가 웃으며 중얼거린다.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은 듯 저 먼 곳에서도 해적들이 나와 힐끔힐끔 레비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럼 이따 나랑 같이 씻고 잘까?”
그 와중에 레이첼은 아까 얼굴을 챠닥 맞더니 그 말랑함이 그리운 듯 목욕으로 꼬시기 시작한다.
―저도.
“혼자만? 안 돼, 레이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레비를 사이에 두고 관심을 표하는데.
난 이상하게도 입 안이 씁쓸해져서 케인과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다 와인만 연거푸 마셨다.
‘내 주식…….’
하지만… 한 발 남았다.
가디아는 다르지.
암, 그렇고말고.
이대로 두면 케인이나 가디아나 평생 누구 만나기 글렀다. 솔직히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이라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행복한 가정, 마음의 평화. 누군가와 나누는 사랑이 동반된 신뢰와 더불어 오는 안정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케인은 가면 갈수록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건 원래의 메인 파티도 마찬가지. 원래 상처 입은 들개들은 서로를 핥아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강해질수록 곁에 남는 이들은 동등한 강함을 가진 이들일 뿐이니까.
물론 이제는 억지로 붙일 생각은 없었다. 다만 가디아 만큼은 저번에 보니까 가능성이 있어서 기대하는 것일 뿐.
‘그 정도 근거 있으면 과몰입은 아니지.’
남자라면 일단 덮어놓고 싫어하는 가디아가 심장이 떨리고 숨이 막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원래 모태솔로가 첫사랑에 빠지면 다 그럴 수 있는 법.
“많이 먹었어?”
“응! 많이 먹었어. 배불러 터질 거 같아.”
그리고 당장 중요한 것은 케인의 연애가 아니다.
‘몸이지.’
상장 폐지의 아픔에도 나는 제일 중요한 것을 잊지 않았다.
“오늘은 일단 쉬어, 레비.”
수도에서 한동안 사라진 뒤 돌아온 케인은 분명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 있을 터.
그렇다고 방금 만난 레비에게 당장 부탁할 수는 없지만.
‘몸 상태를 회복시키긴 해야 해.’
나는 말랑한 레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