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7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78화(178/373)
일정한 오러의 경지에 이르면 심장 소리가 들린다.
물론 일반 사람도 귀를 막은 상태에서 조금만 집중하면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지.
하지만 오러 유저가 되면 귀를 막지 않아도 마음먹으면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즉 자신의 몸 상태를 좀 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점이 생기는 것.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처럼.
처음엔 눈을 가린 것처럼 어두워지더니 아주 점차, 밖에서 일어나는 발소리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등 뒤에 느껴지는 온기가 정말 이옐인지 아닌지 물어서 확인하려 해도 소리마저 삼켜버린 이 어둠 속이라면 어느 순간 자신의 심장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시끄러워.’
긴장과 전투를 앞선 흥분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거슬린다. 시끄럽다.
이 심장 소리가 멎는다 하더라도 적의 발소리가 들리진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단 낫겠지.’
샤하드가 미간을 좁히던 그때.
아무런 소리도 없었으나 무언가 미간으로 날아오는 것 같은 예감에 손을 뻗었다.
“하.”
무언가가 둔탁하게 샤하드의 검에 막혔다. 손아귀로 느껴지는 강한 반발력과 검에 부딪힌 순간 느껴진 감촉에 의하면 검이나 창 같은 물건이 아닌.
‘화살… 아니, 석궁의 볼트인가.’
거기에 더불어 동시에 등 뒤에서 느껴진 움직임.
이옐이 무언가를 쳐낸 것 같은 동작.
이로써 확실해졌다.
적은 샤하드와 이옐을 볼 수 있다는 것.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정 범위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수가 들어오진 않았다는 것.
‘지금 우리에게 씌워진 디버프와 상관이 있겠지.’
마법적인 방어를 구축해 둔 저택이다.
그런 곳에서 호위 병력에게 연락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데다 이렇게 완벽한 시야와 청각의 차단?
그 정도로 강력한 디버프라면 그만한 리스크도 존재하는 법.
“집중해.”
이옐에게는 들리지는 않겠으나 샤하드는 자신에게 그리 되뇌었다.
아직 연습 삼아 슬라임 한 마리 죽여본 적 없지만 지금은 실제 전투 상황.
‘죽여야 해.’
하지만 어떻게?
지금은 이옐과 등을 맞댄 상태기에 약간이라도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떨어지게 되면 어떨까. 이 바닥도 하늘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앞과 뒤 옆을 어찌 구분하며 걸음을 디딜 때 어느 정도로 힘을 주어야 할지 알 수 있는가.
자신이 좀 더 강해진 뒤라면 모를까. 하필 이때.
누가 보냈을지는 명확했다.
‘세리아!’
샤하드가 이를 으득 갈았다. 적들도 그것을 아니 근거리로 치고 들어오는 대신.
“이번엔 심장인가.”
이렇게 소리 없는 공격만 멀리서 날리는 거겠지.
이제 겨우 오러 유저에 발을 디딘 샤하드로서는 이런 악조건에서 두 번이나 쳐낸 것조차 천운에 가까웠다.
강한 집중에 심장이 터질 듯 뛰고 귀가 시끄럽다.
땀이 흘러 속눈썹에 맺혔다 떨어진다.
아마 이옐은 샤하드의 호위이기에 혼자서 어떻게든 발악할 수 있을 테지만 떠나지 못하고 등을 지키고 있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한 손을 뒤로 뻗어 이옐을 밀거나 글을 몸에 적는 것도 큰 위험이다.
적들은 암흑이 아닐 테니.
샤하드가 가라는 듯 등으로 이옐을 살짝 밀자 이옐도 마찬가지로 느리게 민다.
“감히 내 명령을 거역해?”
살아난다면 급여를 삭감이라도 해야겠어.
샤하드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고작 날아온 건 석궁의 볼트 두 발.
다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와중에 일반 화살보다 빠른 그것을 쳐내기 위해 과도하게 집중을 한 탓일까.
말 그대로 심력이 갉혀 나간다.
등줄기가 땀으로 젖어 들었다. 단순하게 말려 죽이려는 목적인가 싶을 만큼.
‘10분?’
이옐이 이번엔 틀렸다.
이들은 일반 암살자들과는 달랐다.
일반 암살자처럼 달 없는 밤에 습격하는 정도였다면, 그래서 시력 정도만 차단하는 마법이었다면… 그래, 10분만 버텼으면 되었을지도 모르지.
‘단순하게 세리아 쪽 암살자나 고용된 암살자가 아니야.’
일반적인 암살자와는 그 궤를 달리하는 행위.
마치 두려움을 쥐어짜 내려 하는 것처럼.
“…성신교냐.”
샤하드가 입을 열어 묻자마자 느껴진 감각에 검을 휘둘렀다.
“큭…….”
이번엔 조금 늦었는지 팔을 스치고 볼트가 지나간다.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하게 알았다. 세리아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성신교를 보냈고 그들은 이왕 죽이는 것 최대한 공포와 고통, 두려움을 쥐어짜기 위해 이 짓거리를 하는 중이란 사실을.
‘감히 황족을 상대로 이럴 수 있을 정도의 위세란 말이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이옐의 등이 가쁘다.
아마도 숨을 몰아쉬는 모양.
거기에 더불어 맞닿은 몸이 축축했다.
‘부상.’
어쩌면 이옐은 샤하드 자신보다 강하니 샤하드에게 날아오던 볼트 몇 개를 더 쳐내거나 혹은 몸으로 막았을지도 모르지.
으드득하고 이가 갈렸다.
“큭!”
결국 막아내지 못한 볼트 하나가 어깨에 꽂힌다.
그것을 다른 손으로 뽑아내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재생의 대가는 고통.
이가 따닥 하고 떨릴 만큼 육신이 억지로 엉겨 붙으며 생기는 그 고통에도 샤하드가 형형한 눈빛으로 웃었다.
어떤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절망을 느낄 수도 있겠지.
시각과 청각이라는 가장 큰 감각이 막힌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격이란 그러하겠지.
‘하지만.’
샤하드는 지금까지 더한 절망 속에서 버둥쳐 왔다.
절망 대신 분노를.
‘저 새끼들을 죽일 수 있는 힘이 필요해.’
좀 더 강해졌어야 했다. 그동안도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내일이 없는 것처럼 굴 걸 그랬다.
세리아에게 자신의 능력이 들키건 말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관을 불러와 과한 훈련으로 망가진 몸을 계속 고쳐가면서라도 검을 휘둘렀다면.
좀 달랐을까.
“만약 내가 살아나간다면.”
이노센트가 나를 버린다 해도. 그들이 나를 이용만 하고 팽개친다고 해도.
“성신교, 네놈들만큼은 이 땅에 발 디디지 못하게 해주지.”
그러니 죽일 수 있을 때 죽여봐.
아니면 더한 적으로 너희 앞에 설 테니.
10분은 이미 예전에 지났다.
지원군은 오지 않는다.
샤하드는 검을 바로 세워 미간과 목 심장까지 이어지는 한 줄의 급소를 막듯 움직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서 있기만 하면 반격할 수는 없지. 결국 말라 죽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꺼질 것 같아도. 내디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 걸음을 딛던 그 순간.
「늦었습니다.」
탁한 쇳소리. 인간의 목소리라기보단 쇠를 긁고 때리고 퉁겨 낸 소리를 말소리처럼 들리도록 조잡하게 붙여넣은 것 같은 음색이 울리더니 순간 시야가 환해졌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분명 붉은 융단이 깔려 있지 않았던 저택의 바닥에 펼쳐진 검붉은 빛의 향연.
흰색 머리칼에 코 아래부터 가린 금속 마스크를 낀 사내가 양손에 붉은 피를 떨구며 샤하드에게 다가와 한 손을 자신의 가슴 위로 올리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노센트에서 보낸 당신의 방패입니다.」
쇠를 긁고 두드려 조악하게 맞춘 것 같은 소리.
음성이라기보단 말 그대로 조잡한 소리의 짜깁기 같은 것이 귀를 울린다.
“하.”
그 모습에 피를 많이 흘려 안색이 창백해진 이옐이 허리에 꽂힌 볼트를 빼내며 다가왔다.
“저보다 강합니다.”
귓가에 들리는 이옐의 목소리에 샤하드가 낮게 입을 열었다.
“나의 방패?”
「모든 설명은 이 안에.」
피로 흥건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품 안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내는 그를 보며 샤하드가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 * *
“그래서 잘되어 가고 있고?”
<제가 누군데요, 보스. 저 파이얀이야.>
“알지. 그나저나 안개화를 썼는데도 들키지 않은 건 의외인데?”
내가 소파에 누워 세이렌을 잡고 하는 말에 그 너머에서 잘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원래 그런 곳 특징이 말이야, 보스. 밖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는 확실하게 걸러내려 들면서 안에서는 은근히 허술하단 말이죠.>
“그래도 명색이 황립 아카데미잖아.”
누운 채로 창밖을 보니 갈매기가 날아가고 엄청나게 큰 구름이 하늘에 깔려 있다.
여긴 아주 평화롭기 그지없네.
<아카데미 본 건물에만 철저하지, 외곽의 창고에까지 알람 마법을 잔뜩 걸 리가요. 물론 처음엔 걸었겠지만 사람 하는 일이 다 그렇잖아요, 보스.>
한두 번씩 미루다 보면 안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무도 쓰지 않고 쌓인 거라곤 비상용 장작더미만 있는 창고에 굳이 마정석을 써가며 알람 마법을 걸지는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안개화하면 요마족 특유의 마나 파장 같은 건 안 나오나.”
<지금이 전쟁 중도 아닌데 누가 그런 걸 제국의 수도에 존재하는 아카데미에까지 걸어요.>
군사기지 같은 곳이면 몰라도 하는 말에 내가 끄덕였다.
하긴 그런 마법은 까다롭기도 하니 쉬이 쓰긴 힘들겠지.
“그렇다면 일의 진척은 어때?”
<제법 잘되어 가요. 베르뷔트가 날 얕잡아본 덕에 철저하게 꼬리 자르기를 하거나 서류를 조작하진 않았으니까. 조만간 재미있는 소식을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수평선과 그 근처 소용돌이 덕에 생긴 무지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하는 일 마무리하면 잠시 휴가다 생각하고 나 있는 곳으로 놀러 올래?”
어차피 돈 좀 쓰면 금방이다. 게이트만 타면 마차 같은 것으로는 수도에서 이곳까지 반년은 걸릴 테지만 게이트는 반나절 만에 해안 도시까지는 올 수 있을 터.
‘이런 멋진 풍경은 같이 나누며 살아야지.’
파이얀도 미궁에서 초보자 등 처먹을 때부터 생각하면 꽤 고생하며 지낸 게 맞으니까.
자존심에 다 말하진 않아도 일반 아인족도 아닌 요마족 혼혈이 겪을 일이 평범하진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랬으면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사이라는 내 말에 나와 손을 잡았을까.
결국 파이얀도 내 사람이 된 이상 행복한 게 좋다.
거기에 언젠가 만날 우리 디버프사인 메인 파티의 그 아이도 요마족이니까.
‘둘이 친하게 지내면 좋고.’
만나려면 나중에 마계랑 연결된 이후에나 가능하겠지만.
‘요마족, 그중에서도 서큐버스로 각성하여 상대를 홀리고 능욕하는 마족이었지.’
모두가 페로몬에 홀려 찬양하고 꿈속까지 지배하던 와중에 케인만이 불굴의 정신력으로 페로몬도 환몽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에 흥미를 가져 마족 군단에서 빠져나와 케인을 쫓아다녔지.
광역 정신 지배와 혼란. 환각과 더불어 매료와 도발, 마기를 이용한 신체 저하 능력까지.
연한 분홍빛 피부와 연보라와 하늘색이 섞인 머리칼. 박하와 솜사탕이 섞인 것 같은 체향이라고 했었지.
‘릴리스.’
뻔하디뻔한 이름.
그렇지만 어울린다 생각했… 어라?
난 묘한 기시감에 세이렌을 주물거렸다.
에이, 설마.
“파이얀, 안개화면 넌 뱀파이어 쪽 피가 이어진 건가?”
<글쎄요? 요마족은 정신계열 마족이라 뱀파이어도 가능하지만… 저도 제 부모님을 기억 못해서 확실하진 않아요.>
하긴 안개화도 미궁의 폭발에서 각성한 거고. 미궁에서 초보 모험가를 등쳐 먹던 파이얀이 마족의 열두 군단장 중 하나가 되기는 좀 벅차긴 하지.
같은 요마족 계열에 여성이니 비슷한 부분은 있을 거다.
요마족은 정신 능력의 트레잇을 타고나는데 파이얀은 매료라는 트레잇이. 우리 디버프사는 서큐버스라는 종족 트레잇이 있으니 비슷한 모양새겠지.
나는 으쓱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간 일 끝나면 놀러 와.”
<좋아요. 또 연락드릴게, 보스.>
다 같이 수영하고 수박이라도 먹자고. 이런 여름 이벤트는 서브 컬쳐건 게임이건 한 번씩 챙겨줘야 제맛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