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8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80화(180/373)
“짜증 나게, 정말.”
한가한 녀석들이나 보내지.
인어왕족의 방계. 하얀 상어 가죽을 입은 니비즈가 물살을 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바룩은 너무 까탈스러워. 자기가 첫째면 다야?’
저번에 인간의 무리들이 경계를 뚫고 들어와 레비니아가 지니고 있던 폭풍우의 구슬을 탈취한 후에 부쩍 의심병이 늘었다.
‘덩칫값도 못하긴.’
검녹색의 해초 같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니비즈가 이를 갈았다.
거구의 인어족 사내 바룩.
가장 오래, 많은 인어왕의 피를 이어받은 까닭에 산란못에서 태어난 형제 중 가장 강하여 형제들의 합의하에 왕이 되었다곤 하지만.
‘진짜 로열 블러드도 아니면서.’
마치 진짜 로열블러드 출신처럼 부려 먹으니 화가 난단 말이지.
니비즈 자신이 정찰에 유리한 트레잇은 가진 게 사실이나 정말 전쟁 중이거나 위험한 적이 나타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부려 먹다니.
‘주는 장신구나 보식이 덜 반짝이기만 해봐.’
바다의 까마귀라 불리는 인어족답게 화려하게 빛나는 것들을 사랑한다.
그것이 자신의 손에만 들어온다면야. 잔뜩 몸에 끼얹거나 그 위에서 굴러다녀야지.
니비즈가 보석을 상상하며 씩 웃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왜 이리 조용하지?’
한동안 폭풍우가 치는 섬이 있던 구역인데다 그 섬의 결계를 뚫어보려고 종종 인어족들이 오고 간 곳.
그래서 이 해변 근처는 원래 해양 몬스터가 적은 편이긴 했다. 고작해야 자잘한 것들이나 등갑이 강한 터틀류 중에서도 중소형, 아니면 길잃은 어린 씨서펜트나 크라켄이나 볼까 말까 한 곳.
‘그런데 너무 조용해.’
하지만 지금은 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 외 자잘한 몬스터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더 깊은 바다 안쪽에 자리 잡은 대형 몬스터의 구역에서나 볼법한 일.
‘…설마 근처에 둥지라도 생겼나?’
니비즈는 헤엄치는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천히 마나를 눈에 집중해서는 곳곳을 아주 세심하게 훑기 시작했다.
“…저거 뭐야.”
거리가 있는 데다 폭풍우 덕에 물이 뒤집히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물 위에 떠 있는 그것.
배.
니비즈는 물속에서 느리게 유영하며 고개를 까닥였다.
“인간들이 또 왔다고?”
폭풍우의 구슬은 이미 훔쳐 간 후니 더 뜯어 먹으러 오진 않았을 테고.
거기에 인어족과 동맹을 하기로 한 인간들이라면 아직 오기로 한 날짜가 남아 있는 상황.
그렇다면 저번과는 다른 인간놈들인 데다 동맹도 아니란 소리겠지?
‘설마 레비니아를 데리러 간 녀석. 인간들에게 잡힌 건 아니겠지?’
이 바다에서 군선이 몰려온 것도 아닌, 꽤 큰 배지만 고작 한 척인데 그럴 리가.
아무리 머저리라도 그럴 수는 없다. 이 바다에서 인어족이?
니비즈는 푸훗 하고 웃었다. 그녀의 입에서 보글거리는 공기 방울이 잘게 올라왔다.
‘저기에 자리 잡고 술이라도 빼앗아 마시는 중인가?’
하긴 그 녀석은 좀 껄렁한 편이었으니 그럴지도?
니비즈는 지나가는 큼지막한 물고기를 손으로 움켜쥔 뒤 눈을 마주했다.
“인간족의 배가 있어. 인간족. 배. 인간.”
일단 중간 보고로 서너 마리 보내놓고 좀 더 탐색해 볼까.
니비즈는 서너 마리의 물고기에게 말을 실어 왕궁으로 보낸 뒤 일단 섬 쪽으로 헤엄쳤다.
‘레비니아를 여기에 아직 가둬놨는지, 저 배로 옮겨놨는지 보고.’
가둬놨으면 그냥 내가 들고 가야겠다. 그 머저리 녀석은 인간들을 부려 먹으며 즐기게 내버려 두고 말이지.
니비즈가 실실 웃으며 비바람이 거칠게 부는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 숨을 크게 쉰 뒤 한 걸음 한 걸음 모래를 밟기 시작했다.
몸에 두른 하얀 천을 풀어 꼬리 대신 다리로 변한 아래에 두르며 빗물에 소금기가 씻기는 머리칼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레비니아를 내가 데려가면 바룩이 보석을 더 얹어 줄지도?’
행복한 생각.
슷―
그리고 동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세상이 빙글 돌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 천천히 앞으로 무너지는 목 없는 어느 인어족의 모습.
‘어……?’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하려던 니비즈의 입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역시 왔나.”
눈앞이 새까맣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먹먹해진 귓가로 들린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 * *
“이, 이것은 말도 안 된다! 무언가 거짓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
“무슨 소리야. 게임은 공정하다니까. 안 그래, 루나?”
“…일단은 그렇긴 하구.”
삐액 하고 소리치는 레비와 실실 웃으며 사탕을 들고 가는 레이첼. 뭔가 미묘한 얼굴로 일단 끄덕이는 루나.
“거짓말! 뭔가 마나로 나 몰래 어찌 한 거 아니야?”
―하긴, 처음 하면 그런 의심이 들 수 있지.
“그럴 리가요, 레비 후배님. 다들 마나로 살짝 귀퉁이를 보이지 않을 만큼 들어 올린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걸리면 사탕이 다섯 배라.”
…아, 사기 젠가를 한 적은 있구나, 너네?
폭풍우가 오는 바람에 잠시 생긴 여유 시간.
나는 애들 놀라고 보드게임을 빼줬고 더불어 레비에게도 사탕 한 병이라는 초기 자금을 안겨 줬었다.
그리고 지금 4연속으로 젠가를 무너뜨린 레비는 처음에 생각 없이 몇 개 집어 먹은 것이 화가 되어 반병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 길길이 날뛰며 이것은 음모가 있다며 말랑한 몸을 흔들어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거 손가락이 문제 아냐?’
나는 물에 잘 불린 떡같이 통통한 손가락을 보며 꽤나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 냈다.
더불어 다른 녀석들은 이제 슬슬 젠가 고수고 말이지.
“그러지 말고 이번에는 주사위 게임 어때.”
새로운 뉴비의 사탕병을 반이나 털어 나눈 고인물들을 보며 나는 웃은 뒤 새로운 게임을 제안했다.
주사위야 버튼 누르면 나오는 형식이니 저 손가락이 핸디캡이 되진 않을 테고.
새로운 게임에 다시 눈이 반짝해진 레비와 그런 레비가 귀여운 듯 보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마법 난로 옆에 앉아 차를 마셨다. 이제는 폭풍 덕에 기우뚱대는 선실에서도 잘만 마시는 것이,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네.
더운물이 속으로 들어가니 나른해진다.
눈에 비치는 풍경 또한 따스했다.
즐겁게 웃는 소리. 언제 습격당할지 몰라 경계하거나 악신교단이 몬스터를 몰아넣어 밤새 죽이는 짓이 놀이가 아닌 시간.
원작에서는 나누는 대화도 갈수록 삭막해졌지. 인간들을 살려둘 필요가 있냐든가, 악신교단과 다른 인간들이 무슨 차이가 있냐든가.
결국은 케인이 일단 악신교단부터 전부 없앤 뒤 생각하자는 말로 미루고 또 미루고.
‘보기 좋네, 지금.’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걸 이리 바라보고 있으니까 흐뭇하다.
“그런데 왜 너는 안 해?”
문득 레비가 말을 움직여 황금 열쇠를 뽑다 하는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같이하고 싶어?”
젠가는 신체적 능력치가 부족하여 저 괴물들과 같이하긴 힘들지만.
부루마블은 다르지.
내가 히죽히죽 웃으며 하는 말에 다들 윽, 하는 얼굴이다.
“응! 같이하자!”
“레비가 같이 하자는데 당연히 해야지, 그럼.”
내가 히죽거리며 끼어 앉자 레비를 제외한 나머지의 눈빛이 아주 도전적이다.
누구는 그리 생각할 수 있다. 부루마블 그거 운빨 게임 아니냐고.
‘물론 운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하지만 나름 부루마블도 전략이란 걸 쓸 수 있다는 말씀.
황금 열쇠로 나오는 갖가지 이로운 카드를 적재적소에 쓰는 것부터, 군데군데 땅을 먹기보다는 한 줄을 채우는 것이 중요한 때가 있고 군데군데 먹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싼값의 별장을 여기저기 짓기보다는 그 판, 유독 사람들이 잘 걸린다 싶은 곳에 집중 투자하는 것도 방법.
내가 돈 좀 벌었고 땅도 넉넉한데 누가 독침 전법으로 몇 군데 몰아넣어 내가 걸리기만을 바란다?
워프게이트, 즉 지구식으로 따지면 우주 여행 같은 칸에 걸렸을 경우 전략적으로 무인도로 가서 다른 녀석들이 자멸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
물론 이것은 무인도 탈출 후에 가장 잘 걸리는 6, 7, 8번째 땅이 다수 내 것일 때 더욱 유용한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파티원이 조만간 내 땅을 밟을 것 같다?
그럼 다른 곳에 있던 싼 곳의 땅을 팔아서 황금 열쇠로 먹어둔, 언제든지 건물 짓기 카드로 호텔을 바짝 지으면.
“…으앙! 파산이야!”
나는 울먹거리는 레비의 둥근 머리를 도닥이며 새로운 사탕병 한 개를 꺼냈다.
“다음엔 이렇게 그냥은 안 준다?”
“응!”
고작 사탕병 하나 새로 줬다고 저 눈에 깃든 무한한 신뢰감 좀 봐라.
나는 루나와 제로, 리프와 레이첼에게도 사탕을 조금씩 돌려준 뒤 청포도 맛으로 하나 입에 넣는데 누군가 선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빨리 왔네?”
“돌아왔다.”
나는 머리에 빗물을 털며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케인을 보다 낮게 침음을 흘렸다.
별일 없으면 폭풍우가 끝난 뒤 섬에서 돌아오기로 했는데 지금 왔다는 건.
“몇이나 정찰 왔어?”
“하나.”
그럼 아직 인어족 쪽에서는 제대로 상황 파악은 되지 않은 타이밍이었단 소리겠지.
일단 수고했다는 듯 옆에 앉은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이틀 정도는 시간을 벌었을 거야.”
“문제는 폭풍우 아닌가.”
케인이 까닥하며 내미는 손에 사과 하나를 아공간에서 꺼내 올려주고 다시 차를 마셨다.
“맞아. 사실 출발했어야 하는 시기지만.”
누군가의 구출은 원래 시간 싸움. 이렇게 발목 잡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한데 빠져나가야 하는 곳은 폭풍우가 예정된 날의 소용돌이 지형. 뒤로 돌아가자니 뒤는 인어족의 영역을 한참 거슬러 가야 하는 상황.
“내일이면 그치지 않을까?”
“혹은 모레일지도 모르지.”
밖이 우웅 하고 귀신 우는 것 같은 바람 소리와 더불어 배 전체를 때리는 것 같은 빗소리로 가득하다.
낮에도 거의 밤처럼 어둡고 돛을 다 접고 레비가 있는 무인도가 아닌 다른 돌섬 하나를 바람막이로 쓰고 있는데도 바람에 배가 밀리는 기분이 들 정도.
“일단 오늘은 안 오겠지만.”
빠르면 내일 이맘때, 늦어도 모레에는 누가 더 올지 모른다.
“배가 부서지지 않게, 이왕이면 나가서 싸우는 게 낫겠지.”
케인의 말에 나는 한번 고개를 끄덕인 뒤 크루거의 반지를 돌렸다.
“최악의 경우엔 레비를 들고 우리만 빠져나가는 게 나을 수 있어.”
레비가 목적일 테니 레비를 우리가 들고 배를 버리면 굳이 배를 뒤쫓진 않을 터. 쫓는다고 해도 많은 수는 아닐 것이다.
마정석을 꽤 많이 나눠줬으니 소용돌이 지대만 벗어난 후 마정석을 태워 오롯하게 속도에만 신경 쓰면 일시적으로 바닷속의 인어족보다 빠를 테고.
‘배는 좀 망가지겠지만.’
살아남는 게 먼저지.
그런 사이 케인과 제로, 레이첼이 일단 인어족을 틀어막는 동안 루나와 리프가 나와 레비를 안고 이동하여 어느 섬에라도 떨궈 놓는 게 낫다.
‘쓸 만한 마법은 광격기인 데다가 바닷속으로 내가 들어갈 순 없으니까.’
레비는 다른 곳이었다면 같이 있는 게 유용하겠으나 이곳에서는 오히려 어그로만 끌릴 게 뻔하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치료받게 하고 싶은데.”
“난 지금도 괜찮다만.”
신나서 주사위를 굴리는 레비를 보며 한 말에 케인이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이 자식이 지 몸 아까운 줄 모르고.
“레비가 아직 순발력이나 정확도가 떨어지는 편이라.”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했던가.
하긴 원작도 그렇고 게임에서도 단일 힐이나 버프보다는 광역 힐이나 광역 버프가 특화긴 했다.
그 이유가 세밀한 컨트롤이 잘 안 되는 거였다는 건 몰랐지만.
“여길 나간 뒤 뭍에 들리면 치료 시작하자.”
더불어 녹즙도 보양해야지. 하며 실실 웃었더니 순간 사방이 조용하다.
슬쩍 보니 레비를 제외한 모두가 나를 흘금흘금 바라보는 것에 나는 더욱 상쾌하게 웃었다.
“다치면 녹즙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