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8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81화(181/373)
“유모, 이번에 다이어트한다고 하지 않았어?”
세리아는 홍차에 꿀과 우유를 듬뿍 섞은 뒤 버터를 잔뜩 발라 구워 낸 페스츄리와 크루아상을 생크림에 다시 찍어 먹는 유모를 보며 웃었다.
고소한 버터의 냄새가 향기롭다. 입에 넣으면 짭짜름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고소한데다 그 겉은 갈색으로 잘 구워져 씹으면 탄 맛 대신 살짝 그을린 맛으로 풍미를 더한다.
거기에 짠 기가 도는 입으로, 달고 향기로운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면 그야말로 천국.
처음부터 다시 빵을 입에 넣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다 맛이 조금 질린다 싶으면 각종 베리와 새콤한 과일을 으깬 것을 얹어 먹으면 다시 입 안이 호화롭지.
세리아의 말에 그녀의 유모가 돌돌 말린 크루아상의 끝을 잡고는 살짝 풀 듯 노란 속살을 뜯어 한입 먹으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우리 황태녀님의 위상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는데 어찌 참나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니 다이어트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푸흐. 그냥 맛있는 게 먹고 싶어서 내 핑계 대는 거 아니야? 그리고 아이참. 나 아직 황태녀가 아니라니까.”
자신의 앞에선 늘 어린 천사처럼 보이는 세리아의 말에 그녀의 유모가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우아하게 털어내며 대답했다.
“하지만 금방이죠. 그런 트레잇까지 지녔는데 황제 폐하께서 발표하실 날만 남은 거 아니겠어요?”
길게 뜯어낸 크루아상 위에 으깬 과일을 올려 한입 씹으니 고소하고 짭짜름하면서 버터의 풍미가 입 안에서 코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거기에 자칫 과할 수도 있는 버터의 풍미를 과일의 새콤함과 식감으로 맛을 더한데다 동시에 홍차로 마무리.
“다이어트는 다 먹어본 맛이니 안 먹어도 되지 않냐고 뭣 모르는 이들은 말하지만 말이에요. 아는 맛이라서 무섭다니까.”
입에 넣으면 이렇게 맛있고 행복할 게 뻔한데, 그걸 어찌 참을까.
다시 행복한 얼굴로 홍차를 마시는 유모를 보며 세리아가 웃었다.
“맞아, 유모. 아는 맛이 무섭다니까?”
비단 음식뿐이겠어.
권력도 재력도 그렇지.
누리면 누릴수록 더 갖고 싶은 게 그것들이니까.
평민들은 그런다더라구. 황족이나 귀족들은 그렇게 많이 가졌으면서 왜 더 가지려고 이렇게 쥐어짜냐고.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아도 사실 별 볼 일 없는 트레잇을 가졌다 해도 상관없지 않냐며. 능력이 없어 돈을 못 버는 것도, 굶을 일도 없는데 왜 저러냐고.
‘그야 아는 맛이니까.’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지, 많은 돈이 얼마나 행복한지.
고작 1황녀의 신분으로 누리는 게 이 정도라면 황제의 자리에선 어떨까?
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하며 강한, 인간의 제국. 테이트리아의 최정점에 선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세리아가 눈가를 접어내듯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허공에 찻잔을 놓자 느리게 잔이 움직여 테이블 위에 톡, 하고 앉았다.
그 모습에 세리아의 유모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단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볼 때마다 정말 벅차고 황홀해요. 황태녀님.”
“나도 그래.”
이런 감각을 모르는 인간은 얼마나 불행할까. 바람이 불 때 그 흐름 안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파동.
그것을 제어하여 마치 보이지 않는 손 하나가 더 있는 이 기분 좋은 감각.
“이런 걸 모르고 살았다니 말이 돼?”
그 멍청하고 보는 눈도 없으며 운까지 나쁜 아델리안에게 이 내가 감사 인사를 해야겠지 뭐야.
그 좋은 것을 건네주었으니.
“약간의 부작용도 교단에서 처리해 준다 했으니.”
세리아가 눈을 휘며 웃었다.
* * *
“아이고, 나 죽네.”
“엄살은.”
여인이 자신의 어깨를 다른 손으로 주무르다 툭툭 치며 눈꼬리를 내렸다.
“엄살 아니지 말입니다.”
뼈와 살을 분리하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아십니까. 게다가 인간의 몸 중 가장 단단하다고 볼 수 있는 게 두개골 아닙니까.
그것을 고작 단검 하나로 조각조각 따는 게 얼마나 세심하고 손에 힘도 많이 들어가며 어깨 근육을 많이 쓰시는지 대장은 아시냔 말입니다.
아, 이때 좋은 담배 하나 물고 쭉 빨면, 캬. 아주 신의 품 안일 텐데 말입니다.
“숨은 쉬고 말하냐.”
옆에서 주절주절 들릴 듯 말 듯 구시렁거리면서도 귀에 잘 박히는 어조로 아주 또박또박 발음하는 여인의 모습에 사내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이놈의 수염은 아침에 깎아도 점심때면 까슬하게 올라온단 말이지.”
“저녁에는 사실 눈에 확 보입니다.”
사내가 품 안에서 촛농을 먹인 천 뭉치를 꺼내 생담배 하나를 빼 들자 여인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망할 녀석. 저번에 하나 나눠주는 게 아니었다.”
그 뒤로 호시탐탐 아픈 척, 슬픈 척, 괴로운 척하면서 노리는 통에 제법 줄어든 담배를 보며 아쉬워하자 여인이 냉큼 받아들며 허리를 넙죽 굽혔다.
“잘 피겠지 말입니다!”
“오냐, 이놈아.”
둘 다 피 묻은 돌 위에 대충 나뭇잎을 깔고는 걸터앉아 진한 담배 연기를 삼키며 언덕 아래를 내려보았다.
“언제봐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말입니다.”
“취향도 이상한 녀석 같으니.”
“대장님은 아니십니까?”
여인의 의문스러운 눈빛에 사내가 허허 웃었다.
붉은 물감을 물에 풀어 뿌려 놓는다 해도 얼마나 많은 물감을 써야 저런 빛이 돌까.
저수지 하나 없던 마을의 중앙에 피로 된 못이 생긴 것 같은 모습이다.
장대에 꽂히고 펼쳐진 인간들과 그것을 주위로 쌓인 뼈로 만든 화톳불 자리.
매캐하게 올라오는 검은 연기와 피 냄새가 바람이 불면 엉켜 이 언덕까지 올라왔다.
“익숙해서 감흥 없는 풍경이긴 하지.”
“참 나. 감성과 신앙심이 메마르셨습니다.”
오늘도 인간들의 성신의 품 안에 인도하며 짜낸 그 감정의 마나가 성신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 텐데요. 하며 싱글싱글 웃는 여인의 모습에 사내가 재를 털며 말했다.
“데이지.”
“옙. 대장님.”
“네가 제물 의식조의 조장으로 내 밑에 온 게 언제였더라.”
“한 2년쯤 되었지 말입니다?”
2년이면 아직 저럴 때지 하는 눈빛으로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제물 수색조가 신호하면 당장이라도 움직일 테니 담배나 얼른 피워둬.”
사내의 말에 데이지라 불린 여인이 담배를 입에 물고서는 바닥에서 가는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손톱 밑의 피딱지를 긁으며 입을 열었다.
“멕켄 대장님. 그나저나 한 번씩 전달받는 소식지에서 봤는데 그거 사실입니까?”
데이지의 말에 자신의 까슬한 턱을 매만지던 멕켄이 질린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또 내 거 훔쳐봤냐?”
“에이. 대장님 게 제 거고 제 게 대장님 거지 말입니다. 그리고 훔쳐보다뇨. 마치 나보라는 듯한 친절로 펼쳐져 있더만.”
억울합니다. 저 대장님의 사생활 및 개인 용품에 쉽게 손대는 그런 부하 아닙니다. 하며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는 모습에 멕켄이 이마를 매만지며 대답했다.
“네가 묻는 그 사실이 뭔데.”
“황녀 말입니다.”
진짜 그 부작용인가 하는 거, 교단에서 처리해 준 겁니까?
하고 슬쩍 붙어 속삭이는 데이지의 모습에 멕켄이 조금 처진 눈가를 긁적이며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냐.”
성신의 은혜를 입은 적도 없고 맹세와 각오도 보이지 않은, 하다못해 교단에 입적하지도 않은 외부인을 위해.
눈 감은 성녀상.
그 위험한 것의 대가를 교단에서 완벽하게 치러줬을 리가.
“대장급 이상만 아는 이야긴데. 뭐 너야 나랑 쭉 대륙만 돌아다닐 녀석이니.”
멕켄이 담배를 깊게 빨아 연기를 삼켰다가 다시 프흐 하고 입술 양옆으로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마 대가를 상쇄한 것이 아닌, 뒤로 미루기만 했을 거다. 그것도 꽤 코스트가 많이 들어가는 방식이긴 하지만 대가를 상쇄하는 것보다는 싸게 먹히는 데다가.”
그 멍청한 황녀는 나중에 필요 없을 테니 말이지.
“그나저나 소식지에 또 체이서의 이야기가 있던데 말입니다. 최연소 집행자라 그런지 너무 그쪽 세력에서 빨아주는 거 아닙니까?”
고작 흑마법사랑 다시 손잡아 성과 좀 올린 게 무슨 대수라고.
저번에 바닷빛 진주 회수도 실패한 놈 아닙니까.
우리 대장이 최고인데. 하며 투덜투덜거리는 데이지의 모습에 멕켄이 허허 웃었다.
“원래 속성 기보의 경우 가까운 쪽이 파견 나가기로 한 건데 하필 누가 먼저 있었다잖냐.”
“그럼 더 빨리 갔어야지 말입니다. 발동시켰으면 바로 엘프들 쪽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던 거 아닙니까. 바보같이 먼저 주도권 뺏기고 제어권 뺏겨서 그 공간에서 추방당한 게 말입니까, 방구입니까.”
다른 파벌의 실패는 언제나 재미있는 법. 데이지가 담배맛 좋다 하며 흐흐 웃자 멕켄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집행자 놈들은 그나마 현장의 고생을 아는 놈들이지. 선별자들보다는 낫지 않냐.”
“하긴, 선별자놈들은 고상한 척만 해대고 아주 역겨워 죽겠습니다. 피를 묻히는 건 저희 회수자들인데 말입니다.”
데이지의 말에 멕켄이 처진 눈으로 보며 손톱으로 수염을 석석 긁은 뒤 입을 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 다 성신을 섬기는 것일 뿐. 더 나은 이는 없는 거지. 외부의 불신자나 배신자를 척결하는 집행조도, 교단에 필요한 이들을 발견하고 회유하는 선별자도. 그리고.”
원래 성신이 내린 목숨을 다시 거두어 그분을 채우는 우리 회수자도. 제 몫만 하며 기다리면 성신이 완벽해질 터.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고작 힘만 남은 신들이 아닌, 우리를 위해 우리가 있는 땅에 살아 숨 쉬는 신을 모시니 얼마나 그 영광 거룩하랴.”
그러니 동료들끼리 너무 다툴 생각 하지 말란 멕켄의 말에 데이지가 살짝 멍한 눈으로 아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괜히 애가 기죽나 싶어 좋은 말이라도 한마디 더 얹을까 했던 멕켄이 데이지가 뭘 보는지 확인한 순간 데이지의 뒤통수에서 뻑 소리가 났다.
“내가 이놈아, 좋은 소리를 하는데 개미는 왜 보냐, 개미는?”
“이 씨. 그렇다고 왜 때리십니까. 아프지는 않지만 개미 보던 거 놓쳤잖습니까. 아니, 저 개미들이 바로 제 앞에서 곤충 하나를 뚝딱 해체하는데 어찌 안 봅니까.”
“그나저나 이번에 몇 번 교단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조금 남은 담배를 마저 피운 뒤 피가 말라붙은 바위에 비벼끄는 멕켄의 모습에 데이지가 시선을 올렸다.
“하긴, 성신께서 몸에 적응하시느라 가끔 깨시긴 해도 그때마다 좋은 소식만 안겨드렸는데 말입니다.”
도플갱어 포션의 수급부터 흑마법사와의 연계에 약간의 삐걱거림이 생긴 데다 야심 차게 다른 파벌이 준비했던 전염병 계획도 크루거 가문 덕에 망하기 직전이 아니던가.
더불어 사이클롭스를 깨워 접경지에 소란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나 귀족부터 시작해 황족까지 도플갱어 포션을 이용한 꼭두각시를 세우려는 계획도 지금은 잠정적 중단 상태.
성신께서 알려주신 고대 유적의 핵으로 쓰이던 속성 비보를 탈취하는 것과 동시에 비공정의 가디언들을 엘프들과 동귀어진시키는 전략도 수포로 돌아갔다.
적어도 마치 누가 방해하는 것처럼 절묘하게도 말이지.
‘적어도 정령의 숲에 있던 유적만큼은 방해받은 게 맞지만.’
나머지는 좀 애매한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체이서가 말했던 방해자들의 외형이…….
잠시 멕켄이 생각하다 문득 무슨 소리를 들은 것처럼 고개를 올렸다.
“이번에 깨어나시면 뭐라 하실지.”
“적어도 우리들에겐 칭찬만 내리시겠지.”
그분에게 가해지는 부하를 줄이기 위해 많은 이들을 죽이고 바쳤으니.
이제는 검은 연기도 잦아드는 언덕 아래 참극을 보다가 멕켄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제물 수색조가 또 괜찮은 마을을 발견했나 보군.”
“제물 의식조는 공양에 쓰는 물건을 정리해서 갈 테니 먼저 가십쇼.”
데이지의 말에 멕켄이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에 오러를 두르더니 순식간에 뛰어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데이지도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 담배를 언덕 아래로 툭 던진 뒤 기지개를 켜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다시 움직여 볼까. 모든 것은 우리의 살아 있는 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