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8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82화(182/373)
동이 틀 무렵. 그 광대한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폭풍우는 제법 멀리 가셨는지 반대쪽 하늘 너머의 가장자리가 가뭇한 정도.
바람은 아직 제법 불고 있었지만 비는 쏟아지지 않는다.
“비가 와서 그런가, 기온이 좀 내려간 거 같네. 으으.”
“그래도 물 새는 곳에서 자는 것보단 백번 낫지. 암.”
“이르게 뭐 좀 주워 먹고 움직일 채비하자고.”
“아니, 곧 소용돌이 지대로 갈 건데 뭘 먹을 생각이 나남? 다 게워낼 거 같은데.”
갑판 위로 해적들이 하나둘씩 올라와 바람과 비에 엉망이 된 흔적을 치우기 시작한다.
파도가 얼마나 높이 쳤는지 엘리스의 배, 퀸은 그 크기가 꽤 큰 편이었는데도 갑판 위에는 해초를 비롯해 물고기도 몇 마리 보이는 모양.
그것들을 억센 솔과 밀대로 금방 슥삭슥삭 치우는 모습을 보며 케인에게 말을 던졌다.
“폭풍우가 물러갔으니 어때. 한숨 잘래?”
내 말에 케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바다는 사방이 넘실대는 마나 덕에 안 그래도 기감 잡기 힘들다 했는데 폭풍우까지 쳤으니 아무리 케인이라도 멀리까지 탐지하긴 힘들었을 터.
그래서 혹시 밤중에 인어족이 습격할까 봐 홀로 그 바람 부는 갑판 위에 서 있는 걸 보았다.
그러니 지금은 해도 떴겠다, 좀 쉬는 게 어떠냐고 걱정한 건데 저 표정 봐라, 저저.
형이 어, 그렇게 가르치던? 이 자식이.
“눈, 인마.”
“뭐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케인아.”
나는 허허실실 웃으며 케인과 어깨동무했다.
“사람에게 부드러운 눈빛. 환한 미소가 얼마나 대인관계에 큰 도움이 되냐면 말이지.”
“다툼이 생기면 검으로 해결해도 되지 않나.”
“되겠냐?”
너 뭍으로 돌아가기만 해봐. 이번에는 내가 어떤 디저트를 사오라 할지 기대해도 좋다.
거기에 앞으로는 점원분께는 죄송하지만 환한 미소는 덤으로 시켜야겠어. 누군가 기절할 수 있지만 그분 인생에서도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될 것이 뻔하다.
내가 한 생각을 읽었는지 케인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진다.
“밥이나 먹자.”
먹고 오늘은 소용돌이 지대에서 나가야지. 인어 놈들이 쫓아오기 전에.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나오니 갑판 위가 분주하다. 폭풍우 때문에 접어둔 돛을 펼치니 엘리스 해적단의 로고가 보인다.
저거 참 시선 강탈이란 말이지.
“닻을 올려라! 좌현 우현, 위치로!”
“위치로!”
“마나엔진실은 어때? 좋아. 그럼 마정석은 소용돌이에 근접하면 밀어 넣는다. 아직 실드도 추진력도 필요 없어. 물길을 보고 물을 타자고!”
분주해지는 해적들과 엘리스를 보다가 나는 건빵을 우물우물 침으로 녹여 먹는 레비를 보고는 안아 올렸다.
뜨끈한 물 봉지 같네.
“그렇게 먹고 모자라?”
“이거 은근 맛있어.”
누가 바다의 까마귀 아니랄까 봐 내가 선물해 준 장신구를 아직도 팔과 목에 차고 있다.
나는 포동포동 말랑한 그 몸을 도닥이며, 바람을 만끽하는 듯 보이는 루나와 보던 책을 탁 접는 리프. 그리고 옆에서 몸을 푸는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곧 소용돌이 지대로 들어갈 거 같아요, 도련님.”
―저번처럼 도울 준비 끝났습니다.
“밧줄 풀리면 내가 당장 튀어갈 테니 걱정 말라고.”
레이첼이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데 제로가 내 팔을 잡는다.
“아델리안 님은 들어가시죠.”
“날 못 믿어?”
아니, 이제 좀 크게 흔들려도 중심 잘 잡고 걸어 다닌다니까?
남들 다 일하는데 나만 선실에 있자니 좀 그래서 이번엔 뭐라도 도울까 했더니 다들 방실방실 웃으며 내 몸을 슬슬슬 선실로 민다.
아, 리프는 웃지는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힘주어 밀더라고…….
“그럼 케인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무슨 간수도 아니고, 케인이랑 같이 들여보내는 건 뭔데.
“음냐아…….”
나는 건빵을 갉아 먹다가 잠이 든 거 같은 레비를 보다가 손에 야무지게 쥔 건빵을 슬쩍 빼앗아 아공간에 집어넣으며 자리에 앉았다.
객관적으로 어딜 가도 나 정도면, 아니 정확하게는 코덱스의 사용자라는 것만으로 제법 괜찮은 전력에 들어갈 텐데 하필 내 파티가!
이런 괴물들뿐이라!
‘내 업보구만.’
너무나 강한 파티를 꾸린 업보라고 해야 할까.
아무 일도 안 하고 레비만 도닥이며 앉아 있으니 별생각이 다 든다.
그럴 바엔 다른 일이라도 할까 싶어 아공간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뭍으로 돌아가 정비한 뒤 얻을 아티팩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발인가.”
“맞아, 사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건 이동기라고 생각하거든.”
그 모습에 케인이 슬쩍 보더니 내 대답에 고개가 모로 기운다.
“이동기만?”
…이 자식이.
“일단 툭하면 너희들에게 들려 다니는 것도 그렇고.”
“무겁진 않다.”
“짐짝처럼 들고 다녀지는 나도 배려를 해. 네 팔만 배려를 하지 말고.”
너도 한번 자그마한 루나나 가녀린 리프에게 사과 상자처럼 들려 봐 봐, 한번.
내가 혀를 차며 바다 페어리가 있을 만한 곳의 조건을 정리하는데 밖이 왁자지껄하다.
“곧 소용돌이 지대로 들어갑니다!”
“집중해, 집중! 실드 켜!”
“곧 진입합니다! 셋!”
“둘!”
“하나!”
쾅!
소용돌이 지대로 돌입한 순간.
배가 작은 지진이라도 만난 듯 흔들리며 한쪽으로 기운 순간 케인의 몸이 흔들리더니 그 모습이 흐려진다. 엄청나게 빠른 이동으로 인한 잔상.
펑! 촤악!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순간 시야에 가득 찰 만큼 배와 비슷한 크기의 물대포를 케인이 오러로 베어내어 배 양옆으로 물줄기가 터져나갔다.
“으악, 이게 뭐야!”
“인어, 인어족이다! 분명 인어족이야!”
연달아 날아오는 거대한 물 폭탄을 케인이 바다 쪽으로 뛰쳐나가 전부 갈라 터트린다. 그 덕에 금세 해무가 끼듯 밖이 물안개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 인어족?”
잘 자던 레비가 깨서는 불안한 듯 매달려 안긴다.
나는 레비를 꽉 끌어안으며 숨을 골랐다.
“도련님!”
“젠장.”
혹시 몰라 인어족이 습격했을 때를 대비해 정해 둔 계획이 있긴 하지만.
‘설마 바로 쓰게 될 줄은.’
루나가 제일 먼저 들어와 내 손을 잡는 모습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이 먼저 나선 걸 보면 왕족 급이 여럿 왔거나 가장 강한 녀석이 왔단 소릴 테니 나머진 계획대로 움직인다.”
“네!”
물의 마나에 취약한 레이첼이 제일 걱정이지만 드래곤은 드래곤.
나는 바들바들 떠는 레비를 달랜 뒤 루나에게 몸을 기댔다.
자잘한 녀석들이 습격했다면 케인이 날 전담으로 맡았겠지만 지금 케인은 가장 전방에서 인어족을 막고 있다.
그럼 엘리스의 배에 피해를 최소화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유리한 곳으로 전장을 변경하는 것이 우선.
물의 마나에 약한 레이첼은 인어족의 습격이 확인된 순간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이동에 특화된 루나가 날 먼저 들고 이동한 뒤 힘이 반절 정도 빠지면 제로가 나를 들고 이동한다.
리프는 관리자로 지정된 케인과 육성보다 조금 더 먼 곳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일행의 후미에서 따라오다 케인이 낙오되지 않게 챙기는 역할.
어차피 저들이 원하는 건 레비니, 레비를 안고 우리가 빠지면 해적선을 굳이 침몰시킬 필요가 없지.
재미 삼아 하기에는 케인이 강하니 거슬릴 터.
‘소용돌이 지대를 횡으로 종단하다 빠져야 해.’
바다 위에서 싸우며 날 지키는 건 인어족에게 유리했다. 아무리 우리 파티가 강해도 나나 레비에게 유효타가 한 번이라도 들어가면 불리하므로.
그러니 인어족도 쉽게 헤엄치지 못하는 소용돌이 지대를 길게 이동하며 그나마 크기가 큰 섬에 모이는 게 최선이었다.
“무서… 무서워.”
“괜찮아, 레비. 인어족은 케인이……!”
“소용돌이 너무 무서워! 넌 안 무서워? 이게 안 무서운 거야?”
나는 루나가 헉헉거리며 빠르게 도는 물살을 따라 밖으로 크게 돌다가 다음 소용돌이로 점프하는 것에 몸이 들려지며 어깨를 으쓱였다.
‘루나에게 미안함은 잔뜩 들지만. 두렵다라…….’
하긴 푸르다 못해 중심은 거먼 물이 배보다 크게 소용돌이친다.
발밑은 수면이 구겨진 것처럼 휘돌며 곳곳의 포말은 생기자마자 압력으로 터지는 게 아닌 으깨지는 모양새.
잘못 헛디뎌 바다에 빠지는 순간 저 깊은 바닥까지 끌려 들어갈 것 같다.
거기에 저 멀리서 케인이 싸우는지 물이 터지고 갈라지는 소리에, 그 소리에 지지 않는 소용돌이의 굉음까지.
레이첼부터 루나까지 안색이 창백한 걸 보면 두려울 만하지만.
“난 괜찮아.”
나는 레비가 밖을 보지 못하게 품 안으로 얼굴을 눌러주며 곁눈으로 상황을 탐색했다.
“흐아. 으. 제로!”
“예. 선배님.”
루나야 수고했다.
나는 소용돌이에서 물이 튀는 덕에 젖은 루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뒤 제로에게 몸을 얹었다.
“조금만 더…….”
너무 작은 섬은 오히려 포위당하기 쉽다.
소용돌이 지대라 그런지 대부분의 섬이 모래로 이루어진 원반과도 같았다. 낮기만 하고 높은 곳은 없는.
규모가 좀 있고 지형지물이란 게 조금이나마 있는 곳이어야만 우리가 더 유리하지, 모래뿐이라면 인어족이 마음먹기에 따라선 바로 바다로 바뀔 수 있으니까.
“젠장!”
“도련님!”
순간적으로 구름이 진 건가 했다. 머리 위가 어두워 졌으므로.
그것이 이렇게 큰 해일일 줄은 몰랐지.
소용돌이 지대의 그 거센 압력을 밀어 부수며 솟아오른 해일 너머로 언뜻 푸른 피부의 거대한 인어족 하나가 내 쪽으로 손을 뻗는 게 보였다.
‘레비!’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레비와 나를 움켜쥔 것 같다!
제로가 이를 악물고 나를 잡아낸 그 순간.
“아델리안!”
그리고 케인이 크게 소리치는 게 들리더니 내 옆으로 번쩍! 하고 무언가 빛나는 게 반원으로 긁어 나가더니 해일 너머의 팔을 동강 내고 날 끌어당기던 힘이 풀렸다.
첨벙!
그 반동에 제로와 내가 몸이 엉켜 바다에 빠지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에 나를 잡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루나와 놀란 얼굴로 날 보는 레이첼이 보인다.
‘숨을……!’
아껴 쉬어야 해!
나는 레비를 꽉 끌어안으며 숨을 참았다. 내 주머니 안의 아이기스가 거친 물살을 전체 공격으로 판단한 듯 몸 전체를 두르는 실드가 전개된다.
“후아!”
실드가 부서지기 직전 벌어준 몇 초의 시간!
나는 당장 코덱스를 꺼내 날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든 파티원들의 윤곽을 눈으로 훑으며 실드와 바인딩을 연달아 전개했다.
실드로 수압을 상쇄하고 바인딩으로 물살에 밀려나가는 것을 당긴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뿔뿔이 흩어지는 순간 당분간 만날 수 없을지 몰라.
어떻게든!
콰지직, 콰직.
아이기스가 연달아 실드를 전개했으나 수압으로 계속 깨져나간다.
주머니에서 꺼내 충전할 여유 따윈 없으니 곧 최소한의 기능만 남기고 정지하겠지.
그전에 제발.
조금만 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오러를 다룰 줄 알아 이 괴물 같은 소용돌이 안에서도 어떻게든 나에게 다가온다.
저 멀리 보이는 흔들리는 분홍색과 붉은색.
그쪽으로 바인딩을 연달아 전개하니 코덱스에 박혀 있던 마지막 마정석까지 부서졌다.
갈아 끼울 시간 따위 없어!
아공간을 열어 떠오르는 로프 아무거나 밖으로 빼자마자 아이기스마저 작동 중지한 듯 몸을 거센 손으로 친 것처럼 물살이 덮쳤다.
더불어 얼마나 깊이 딸려 들어왔는지 몸을 쥐어 잡은 것 같은 수압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고 귀가 먹먹하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진다.
‘젠장… 케인!’
너만 믿는다…….
나는 무언가가 내 몸을 낚아채는 감각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