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8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84화(184/373)
강한 힘의 반동에 아델리안과 제로의 몸이 엉켜 물속으로 떨어졌다.
강한 해류에 제로의 팔 안에서 아델리안이 떨어져 나가며 서로가 퉁겨지듯 가장 멀리 밀려 나갔다.
이윽고 아델리안이 해류의 중심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모습에 제로가 몸에 마나를 두르고 소용돌이를 가르듯 아래로 헤엄쳤지만 와류에 몸이 쑥 뒤로 튕겨 나갔다.
‘아델리안 님!’
제로의 눈에도 아델리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짧은 새 와류에 휩쓸려 바닥까지 내려갔는지 혹은 소용돌이 지대라 다른 소용돌이에 또 엉켜 들어갔을지.
혹은…….
제로의 보석안이 어두운 물속과 수많은 기포 너머 사방을 훑었다.
몸에 마나를 두르고 해류를 억지로 뚫지 않은 채 그 흐름에 맡기듯 아래로 좀 더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자 분홍색 머리와 붉은색 머리가 어렴풋하게 일렁거리는 가운데 저 아래 둥근 공기방울 같은 실드 안으로 황금색이 일렁거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루나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 있던 건 리프.
짙은 물속이라 연두색의 머리칼이 눈에 잘 띄지 않았으나 리프가 몸을 움직여 아델리안을 잡으려는 순간 다른 소용돌이에 휘말려 다시 쭉 멀어졌다.
그때 케인이 거센 와류를 제어하듯 물의 마나를 움켜쥐었다.
이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엉켜 돌아가던 마나가 케인 하나로 제어되어 물길에 잠시 틈이 생긴 바로 그 순간.
루나나 레이첼, 제로는 마나로 숨을 최대한 억제하는 컨트롤을 해야 했지만 숨을 쉴 필요가 없는 리프는 케인이 만들어 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모든 마나를 이용해 아델리안의 뒤를 쫒았다.
아공간이 열린 듯 긴 로프가 뱀처럼 휘몰아쳐 나온다.
그 중간을 움켜쥐고 리프가 드디어 의식을 잃은 듯 몸이 꺾이는 아델리안을 붙잡았다.
“컥!”
그리고 레이첼이 가장 먼저 숨을 터트렸다.
입 근처로 공기방울이 무수히 흩어졌다.
호흡이 부족한 듯 괴로운 얼굴로 목을 움켜잡은 그때 루나가 한 손으로는 로프를, 다른 손으로는 레이첼을 움켜쥐었고 제로 또한 물속에서 나부끼는 로프를 쥔 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언뜻 보이는 검은 인영과 금빛 안광.
마나를 제어하느라 밀려 나간 덕에 저 해류의 끝에서 다시 빠른 속도로 거슬러 오는 케인의 모습에 제로는 있는 힘껏 로프를 휘둘러 그 끝을 케인에게로 던졌다.
그리고 케인의 손끝이 몇 번 흔들리는 로프에 닿을 듯 말 듯 하다 겨우 움켜쥔 그 순간.
일행 전부가 물속이 아닌 차가운 동굴로 내팽개쳐졌다.
“크억! 컥!”
“레이첼, 괜찮아? 리프! 도련님은?”
루나가 물을 토해내는 레이첼의 등을 두드리며 고개를 돌리자 푸른빛이 어른거리는 동굴 안쪽에 아델리안이 레비를 안고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리프가 일어나려 하다가 이내 비틀거리며 쿵 하고 바닥에 쓰러지더니 그 모습에 아델리안에게로 달려가려던 루나도 그대로 바닥으로 엎어진다.
“젠장. 여긴……!”
안쪽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레이첼이 두리번거리며 마나를 끌어올리려 하지만 탈진 상태!
동굴 안쪽 벽에 조각된 꼬리가 두 개 달린 인어 여자의 석상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목도할 것이다.
마나를 탈진한 레이첼이 욕지거리를 뱉더니 저항하지 못하고 몸이 뒤로 넘어간다.
그 불길한 감각에 일행과 한참 멀리 떨어져 있던 제로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로브를 벗어 마나로 물기를 날리며 아델리안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동굴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여자의 목소리가 몇 번이고 메아리쳤다.
―너희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목도할 것이다. 저항하라. 벗어나라. 혹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라.
한 줌 남은 마나로 저항하기엔 그 술법이 너무나도 강대하여 제로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려는 그 순간 제로의 옷을 케인이 쥐고 안쪽으로 걸었다.
옷에 스몄던 모든 물기를 날린 후 마나로 따스해진 그 로브를 아델리안과 레비 위로 덮은 그때 케인마저도 황금색 눈동자를 즈려 감으며 무릎을 꿇었다.
* * *
“목말라…….”
어이가 없네…….
분명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것까진 기억하는데.
깨어나 보니 사막 한가운데다.
이글거리는 햇빛이 마치 바늘처럼 피부를 찌른다. 더운 것보다도 거의 구워지는 감각이라 숨이 막힐 것 같지만 로브를 머리까지 쓰고 수건을 꺼내 코와 입도 둘렀다.
바람이 불면 자잘한 먼지 같은 모래가 코와 입으로 들어가니 숨 막히는 것보다도 그게 더 괴롭더라고.
‘왜 사막은 더운데도 옷을 길게 입어 몸을 가리고 코랑 입을 막는지 몸으로 알고 싶진 않았는데…….’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숨을 쉬면 더운 공기가 몸속에 들어와 남은 수분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만 같다.
점점 세포 하나하나가 메말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것이 분명 레비가 이 어디인가에 있을 게 분명하니까.
다른 일행은 몰라도 레비는 내가 끝까지 안고 있었으니 같이 떨어졌을 터.
나도 이렇게 힘든데… 인어족인 레비는.
나는 잠시 불길한 상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레비… 레비…….”
망할. 힘이 없어 소리도 크게 나오지 않는다.
물을 마시고 싶지만 왜인지 크루거의 반지가 물 한 병만 뱉더니 바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걸 당장이라도 전부 마시고 싶지만.
‘아직 죽기 바로 직전은 아니니까.’
체감으로는 30분 정도 걸은 거 같은데 사막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도 모르니 생수 한 병을 쉽게 소모할 순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부유감이 바로 작동하지 않아서 현실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말이야.’
이거 현실 맞나?
환상 같은 거였으면 부유감 덕에 바로 알았을 터. 게다가 이 메마른 고통은 정말 진짜 같아서 일단은 걷고 있었긴 하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남해군도, 그것도 인어족에게 휘말려 소용돌이로 떨어진 내가.
왜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인가.
‘…머릴 굴려. 강수호. 제대로 생각해.’
물론 걸으면서 생각해, 걸으면서. 은근슬쩍 쉴 생각 하지 말고. 레비가 비쩍 말라 날 찾고 있을 테니까.
무거운 다리를 움직이며 마른 숨을 헉헉거리면서 눈앞이 슬슬 어지럽지만 계속 생각했다.
여러 가지의 가능성. 인어족이 결국 우릴 잡아 술수를 부렸다든가. 한번 차원이동 같은 거 했는데 또 했을 수도 있지라든가, 하는 생각부터.
‘욕 나올 거 같지만, 이거 던전 아니야?’
하는 아주 합리적인 추론까지.
‘정말 아니길 바라지만, 진짜 거긴 아니었으면 하지만.’
미궁 저층에서 늪지 트롤이 나오고 지나가는 길에 드래곤도 만나는 케인의 운이라면 가능하지.
케인 말로는 내가 사고를 몰고 다닌다지만 아니다.
주인공의 운명이란 게 그런 거지. 케인 녀석의 사주팔자를 한번 알아봐야 하는데.
‘이거 분명 그거다.’
나는 어디서 들은 게 있어 옷의 단추를 하나 뜯어 입에 넣었다.
이러니 자극으로 침이 조금 나오는 것 같아 그것을 삼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바다 마녀의 은혜.’
원작에서는 인어족의 영역을 그냥 힘으로 쓸어버린 후 레비가 복수한답시고 인어 왕족들을 집어넣는 던전이었다.
독자들은 저거 고구마 복선이라고 저기서 한 놈 정도는 던전의 시험을 통과해 더 강해져서 복수하러 올 거라고 했지만 그 뒤로 언급된 적이 없어서 복선 회수 안 하냐 돌이끼 하고 욕먹었던 그 던전.
‘지금 생각하면 정신머리 썩어빠진 녀석들이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단 고증이었겠지만.’
게임이었던 이노센트 사가에서는 정신력 보정받는 녀석들 중 버리기는 아깝고 쓰기는 애매한 유닛들을 도박 겸 해서 보내는 곳이었다.
게임 시스템상 트라우마 같은 하향 능력치가 붙은 녀석들을 보내 운이 좋으면 트라우마 극복하고 나와 등급 업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만들어 주었으니까.
어차피 쓰지도 않는 유닛을 던전에 버리고 돌아오면 고급 유닛 되는 그런 식이었는데…….
‘약간 자업자득의 느낌이 든다.’
메인파티도 불굴이 달려 있던 케인 외의 다른 녀석들은 살아 돌아올 확률이 적은 데다 가끔은 케인도 터져나간 던전이라 절대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망했네, 이거.’
이렇게 된 순간 어떻게든 단시간에 빠져나가야 한다.
던전 설명에서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극복해야 된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으니까.
‘사막,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햇살과 고독감.’
그리고.
―너같이 쓸모없는 아이는 처음이구나.
―실망이다.
―보잘것없구나.
웅장한 목소리. 그렇지만 하는 말이라고는 누군가의 자존감을 쉴 새 없이 깎아내리는 것들 뿐.
나는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제는 눈알이 마르는 것 같아 눈을 감고 소리에만 의지하여 계속, 계속. 생수병 하나를 옷 속에 움켜쥐고.
―물달팽이보다 못한 것.
―내 명성에 진흙을 바르는구나.
―너 같은 것이 나의 자식이라니 한탄할 일이로다.
“잘못… 잘못했어요……. 버리고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여기 저를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 제발 곁에 있어 주세요. 한번만 더 쓰다듬어 주세요. 사랑하는 딸이라고 하셨잖아요…….
죽어가듯 끊기는 소리 위로 몸을 덮었다. 손에 닿는 것은 껍질이 일어나 버석하고 주름진 몸체. 피부가 마르고 터져 피가 배어 나오는 그 몸을 안았다.
“레비.”
눈을 떴으나 너무 마른 듯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부유감이 있는 나조차 이렇게 괴로운데.
내 악몽이 아니라서, 내 두려움이 아니라 너의 것에 내가 들어와서 부유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겠지.
그나마 다행이다. 부유감이 제대로 적용되어 나만 홀로 현실로 돌아가 있었다면 너를 달래진 못했겠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생수병을 열어 그 마른 몸 위에 내 옷을 덮은 뒤 천을 가득 적실 만큼 뿌렸다.
그리고 그 위에 그림자를 만들 듯 웅크려 안고 속삭였다.
“네 잘못은 없어, 레비. 이제 덥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거다. 눈을 떠. 그리고 인어왕이 저렇게 말할 리가 없잖아.”
그 양반은 원작에서 영영 수면기에서 깨지 못했지만, 애초에 수면기로 들어간 이유 중 하나가 너를 위한 거였다고 한번 지나가는 말로 네가 직접 말했잖아.
너를 위해, 비록 머저리 같은 녀석들이긴 하지만 그 많은 방계 왕족을 만들고 갔는데 저렇게 말할 리가 없잖아.
“…정말?”
“그렇지 않냐? 그러니 네가 그 섬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기다리던 게 아니었어?”
“하긴… 맞아.”
품 안에서 쪼글쪼글해졌던 몸이 조금씩 말랑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뜨겁고 따가운 뙤약볕 아래서 등과 목덜미가 타들어 가는 것 같지만 품 안은 제법 시원했다.
아니. 어느 순간 온몸이 시원하다 못해 서늘했고 눈을 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지 다시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어둡네.’
푸른빛이 도는 동굴 안. 사방을 훑어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키니 제로의 것으로 보이는 큰 로브 하나가 흘러내렸다.
그것이 떨어지니 젖었던 몸이 좀 더 쌀쌀한 기분에 고개를 내젓곤 품 안에 숨을 고르게 내어 쉬며 잠든 레비를 바라보다 가볍게 볼을 꾹 누르니 말랑하게 들어간다.
평소처럼 아주 촉촉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말라 버석거리지도 까슬하지도 않은 몸.
혀로 입 안을 쓸어보니 단추 또한 없었다.
‘실제나 다름없는 환상.’
그렇지만 목은 굉장히 마르고 옷은 말라 있었으며 내 목덜미를 만져 보니 살짝 따끔한 것이 화상까지는 아니라도 피부가 붉게 일어난 것 같기는 했다.
환상이라고는 해도 사람이 믿으면 몸으로 나타난다더니 그런 건가.
“으으… 목말라.”
레비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기갈에 허덕거리며 일어남에 아공간을 열어 생수 두 병을 꺼냈다.
‘생수는 한 병 준 게 맞는 거 같은데.’
일단은 레비에게 물을 준 뒤 마법 천막을 꺼내 펼쳐 그 안에 불을 피운 후 레비를 침대에 놓았다.
“좀 쉬고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응…….”
레비도 방금 깨어나 정신없는 듯 멍하게 끄덕거리는 걸 본 뒤 동굴 안을 뒤지기 위해 다시 움직인 순간 나는 또다시 다른 곳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