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8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85화(185/373)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더 이상 물이나 얼음의 속성석을 대량으로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매물 자체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트레잇의 노예나 종족도 그러합니다. 인어족은 애초에 포획할 수도 없습니다. 고작 한두 마리를 포획해 봐야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카이만이 그 애타는 보고에 엎드려 있던 수하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더불어 폭풍우의 구슬도 추적 중이나 말 그대로 그들도 원하는 곳에 넘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정도입니다.”
쫓고 쫓기는 이 둘 다 강력한 정예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한쪽이 단숨에 도망가지도, 혹은 붙들지도 못한 채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만을 반복 중이었다.
그 말은 카이만의 손에도, 탈취한 그들이 몸담은 세력에도 당분간 폭풍우의 구슬이 들어갈 리 없단 의미였다.
그 말에 카이만이 허, 하고 웃었다.
그의 숨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붉은 마나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짧게 불꽃이 일어났다 사그라들었다.
“…아쉽군.”
그렇게 준비하고 노력했건만 오롯한 나의 것은 아니었단 말인가.
카이만이 미간을 매만졌다. 불의 정수가 지닌 힘을 꽤 많이 옮겨 담았으나 애초에 그것이 가진 힘이 너무나 강대하였으므로.
이 이상은 도박이나 진배없었다.
불의 마나를 중화할 다른 것들과 섞어 흡수하던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욕심낸다면.’
목숨을 걸어야겠지.
성공한다면 화룡인이 되겠으나 실패한다면 한 줌 재도 남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저 불의 정수에게 고스란히 다시 바치게 될 터.
그리고 그런 도박을 하기에 카이만은 너무나도 가진 게 많은, 냉철한 이였다.
“정수를 나 혼자 담아내기는 결국 역부족이었군.”
인정할 것은 빠르게 인정한 뒤 득실을 따져야만 한다.
그것은 오랜 세월 대륙을 상대로 계속 저울질을 했던 크루거의 본능이었다.
“가디아가 곧 방학이겠군. 이곳으로 데려와라.”
카이만의 말에 그와 떨어진 곳에서 부복한 이들이 몸을 떨었다.
“설마… 그러하실 생각입니까.”
이곳에 있는, 카이만의 가장 충성스러운 이들이 아니었다면 그의 말에 ‘힘에 미쳐 드디어 가디아까지 희생하여 저 불의 마나를 중화시키려 하는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카이만은 가디아만을 아카데미로 멀리 보내놓고 아델리안은 그렇게나 망나니짓을 하며 가문의 영광에 진흙을 바르더라도 결국 곁에 두는 걸 보니 아델리안만을 아낀다고 비춰졌으니까.
나아가 가디아가 아델리안만을 아끼는 카이만을 증오하고 아델리안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란 기억 덕에 그를 혐오하여 결국 남성이란 존재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그래, 내 몸으로 정제한 불의 정수가 가진 힘을 가디아에게 나눠줄 시간이다.”
죽은 대공비와 닮은 딸아이.
속을 알 수 없는 뱀, 차가운 피를 가진 이라 불리는 카이만이 유일하게 아끼는 사람.
이 모든 업과 고통으로 빚어낸 정수의 힘을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그것이 가디아였다.
“그렇다면… 아델리안 공자는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카이만이 비틀어 웃었다.
“그 아이는 언제나처럼 미끼에 지나지 않지.”
애초에 그 가치는 가디아의 방패막이에 지나지 않는 법.
혹은 크루거 반지의 살아있는 보관함일 뿐이지.
카이만 자신이 너무나도 강대하여 방계 혈족이 차마 이를 드러내지 못하겠지만, 의심이 많은 카이만은 만에 하나 있을 암살의 위험에서도 가디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아델리안을 이용했다.
“언제나 그랬듯 내버려 두어라.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방탕한 삶과 더불어 별것 아닌 반항뿐이니.”
지킬 필요도, 감시할 필요도 없지.
근황을 알 필요도, 앞으로의 계획에 집어넣을 이유 또한 없었다.
그저 존재하면 존재하는 것이요, 죽는다면 크루거 반지의 새로운 보관함을 찾는 게 번거로워진 정도의 값어치.
“이 넘실대는, 폭력적인 마나의 공간이 아니었다면 굳이 크루거의 반지를 밖에 둘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면 그 아이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고작 그 정도의 미물일 뿐.
카이만이 의자의 팔걸이에 손을 올려 턱을 괸 뒤 느리게 웃었다.
“때가 되면 가디아만을 안전하게 데려오거라.”
* * *
‘뭐지.’
분명 레비를 침대에 앉힌 뒤 몸을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보이는 곳은 마법 천막 안이 아닌 모호한 공간.
숲이었다가 바다였다가 비공정이었다가 뒤집힌 배의 선실이기도 했다.
마치 두서없는 꿈속처럼.
‘일단 바로 움직이진 말자.’
갑자기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부터 생각해 보자.
지금은 모래사장이 된 바닥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파도도 치지 않는 바다는 잔물결도 없이 마치 유리를 한 겹 올려놓은 것처럼 어색한 모습이다.
그 끝의 하늘은 한쪽에는 해가 지고 다른 쪽은 해가 뜨며 그 위에는 달이 돌고 있었다.
일단 레비와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바다 마녀의 은혜가 맞다.
그런데 그건 각자 가장 두려운 것을 맞닥뜨리게 하는 던전일 텐데.
‘난 뭐지.’
부유감 때문에 나 자신에게는 그 은혜로움이 비껴 나간 건 알겠다. 더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비는 내가 끌어안고 있었으니, 즉 접촉한 상태였기에 내가 엉켜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바다 마녀의 던전은 마법이라기보다는 주술에 가깝게 분류되어 있으니까. 주술이라는 것은 마법보다는 조금 더 영적인 것과 밀접하지.
물론 나도 과몰입 오타쿠 정도의 지식을 기반으로 예상한 거니 흑마법이나 영혼 마법같이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르기야 하겠다만.
‘그런데 여긴 뭐냔 말이지.’
레비까지는 접촉해서 엉켰다고 치자.
그럼 여긴 뭔데.
나는 턱을 문지르며 곰곰이 생각하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여야 한다.
적어도 나의 악몽은 아닌 게 확실하니까.
그럼 당장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우리 파티 중 누군가의 두려움 속이라는 것.
‘혼자 둘 수 없지.’
바다 마녀가 바랐던 결과는 혼자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었겠지만.
‘알 게 뭐야.’
스텟을 올리려고 우리 애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아니다.
이 던전을 깨고 나서 얻을 그까짓 것들?
다 필요 없어.
내 일행의 멘탈이 더 소중하지.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난입한 김에 강제로 깨우면 된다.
‘아, 설마.’
마지막에 아공간에서 빼낸 로프 때문인가.
그걸 누가 잡았고 그게 접촉으로 판정된 거라면.
‘아니지, 기절하기 직전에 누군가 나를 낚아챘단 말이지.’
일단 가정은 둘. 로프도 접촉으로 치든가. 기절하기 직전 끌어안은 이가 판정된 것이든가.
걷고 있으니 어두운 밤과 밝은 낮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교차된다.
어떤 것을 두려워하길래 이런 공간일까.
“아하핫! 하하. 죽어! 죽어버려! 흑… 흐윽… 후… 후훗. 라랄라.”
어디선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뇌리에 울리는 것이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서 들린다.
‘리프.’
나는 또다시 사방이 뒤엉키듯 변하는 공간에서 뛰어 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향했다.
걸음마다 꽃이 피거나 늪이 생기더니 하늘이 일렁거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폐허가 솟았다 무너진다.
골렘인 리프가 가장 두려워할 것.
‘분석 및 이해가 되지 않는 것.’
“아아… 아아아! 싫어. 아니야, 즐거워. 재미있어! 나는 뭐지? 나는. 웃는다는 게 뭐지?”
마치 어디 한군데가 고장 난 것처럼 갑자기 웃고 노여워하고 화를 내더니 즐거워한다.
감정이란 게 미미하던 리프에게 억지로 감정을 쏟아 부운 것처럼.
해석할 수 없는 공간에 제어되지 않는 감정.
다른 곳보다 유독 아래로 파묻힌 곳에 리프가 주저앉아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웃다가 손톱으로 긁으며 울더니, 주먹으로 땅을 부수며 화를 내고는 이내 엎드려 흥얼거린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웃을 때도 울 때도, 화를 낼 때도 기뻐할 때도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이런 자신이 낯설고 두려운 것처럼.
점점 더 거세지는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즐겁게 제자리에서 뛰다가도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울더니 손뼉을 치며 뱃속이 꼬일 것처럼 웃다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두리번댄 뒤 이내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내리치려고 한다.
“리프!”
나는 뛰어가 리프의 손을 잡았다. 원래라면 리프의 힘에 내 손이 딸려 가야 했겠지만 꽉 부여잡은 리프의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하! 관리자님? 아파… 아파요……. 놓아 주세요… 흑.”
날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
아프다는 말에 내가 잡은 손을 무심코 놓으니 내 손 모양으로 허옇게 눌렸던 살이 다시 붉게 번지며 손자국이 올라온다.
‘…골렘이 아니야.’
“이것 봐요, 관리자님. 저, 저 나약해졌어요. 하하핫! 재미있지 않으세요? 웃으세요! 아니야……. 전 아직 명령을 잘 수행할 수 있어요. 재생이… 재생이 안 되잖아! 왜지? 왜 낫지 않죠?”
리프의 손은 땅을 치고 긁어댄 덕에 손톱이 깨져 붉게 번지고 온통 생채기가 나 있었다.
갑작스러운 주위의 변화와 본인의 변화.
계산이란 것이 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것.
그런 것이 네 두려움인가.
하지만 그게 살아간다는 거니까.
나는 울고 웃으며 화를 내던 터에 흐트러진 리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고는 머리를 도닥였다.
“괜찮아.”
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갑자기 변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네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도.
“그런 것만을 네게 바란 적 없다는 걸 너도 알잖아.”
오로지 효율만을 생각하고 그 쓸모만을 생각했다면. 리프를 리프가 아닌 단순한 도구로 여겼다면.
성능 향상이란 단어 아래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나도 알고 리프도 알고 있다.
어차피 자르고 부수고 붙이고 뒤틀어도 핵만 멀쩡하면 죽는다는 개념이 없는 것이 골렘이니까.
늘 무표정하던 그 얼굴에 언젠가 미소가 번지길 바랐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거든.
나는 어쩐지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참으며 웃고는 리프를 안고 다독였다.
“난 네가 쓰는 글도 정말 정말 좋아하거든.”
네가 나의 방패가 되지 않아도 그런 거 그냥 케인이 다 하면 되니까.
그림이면 더 좋지만 글도 괜찮지.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내가 네게 바라는 거니까.
일렁거리던 풍경이 녹아내린다. 몸을 스치는 온기에 실눈을 뜨니 마법 천막의 가장자리.
“놀랐잖아!”
그리고 말캉한 무언가가 내 다리에 퍽 하고 들러붙었다.
품을 내려다보니 리프가 무표정하게, 하지만 내 눈에는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안겨 있다.
그에 다리에 붙은 레비를 들어 올려 하하 웃으며 리프에게 안겨주고는 아공간에서 과일과 물을 꺼내 준 뒤 으쓱였다.
“레비, 내가 사라진 지 얼마나 지났어?”
“으음. 한 5분?”
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리프를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관리자님.
“이 던전이 그런 곳이라. 괜찮아? 그나저나 리프, 네가 날 물속에서 붙잡았던 거지?”
―예.
평소보다 더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쑥스러운 모양.
나는 리프와 레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로프를 모두 잡긴 했단 말이지?”
―예. 분명히 그랬습니다. 이곳으로 이동되기 직전 로프에 걸린 마나 기감으로 볼 때 전원 이동되었습니다.
자초지종을 가볍게 들은 뒤 천막 안의 모닥불에 걸어둔 주전자를 들어 데운 물을 두 명에게 나눠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녀석들도 얼른 데리고 올게.”
내 생각대로라면 로프의 길이만큼 움직이면 모두 만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