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8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86화(186/373)
지상 최강의 생명체.
몸을 이루는 피륙은 금속만큼 단단하고 그 밖을 두른 한 겹의 비늘은 금속보다 더 단단하다.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마정석을 녹여 만든 것처럼 강한 마나를 띠고 있으며 그 심장에는 세상 무엇보다도 진한 속성이 깃들어 있다.
그 내뱉는 숨결마저도 지고한 존재.
드래곤.
그 몸을 이룬 것들은 홍옥이라고 하기엔 색이 너무나도 진하고 루비라고 하기엔 그 안에 빛이 깃든 것처럼 화사했다.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전투적이며 파괴력이 강하다는 레드 드래곤. 그리고 그 레드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강하며 고고한 레이첼.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의 동공만 해도 사람의 키와 비슷하다.
그 거대한 동체는 날개를 펴면 더욱 크고 길어졌다.
그 강인한 몸은 대륙에서도 적수가 없었다. 100년에 한 번씩 모든 종족의 수장이 만나던 자리에서도 모두가 우러러보는 가장 높은 자리가 그녀의 자리였거늘.
얇아 보여도 세상 무엇보다 질기고 튼튼한 피막이 찢기고 날개의 뿌리가 꺾인 채로, 강인한 꼬리는 비틀려 바닥에 말뚝이 박히고 몸의 곳곳엔 신전의 기둥을 뽑아 만든 것 같은 작살이 꽂힌 채로.
가장 낮고 더러운 바닥에서 레이첼은 눈을 떴다.
―감히…….
감히 하찮은 것들이!
목에 걸린 쇠사슬이 바닥에 추락한 거대한 비공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바닥에 깔린 얼굴에 박혀 있던 눈동자는 이미 터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하늘로 향한 눈동자엔 노을인지 불타오르는 화염의 빛인지 모를 붉은빛으로 가득했다.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작다는 화이트 드래곤의 몸통만 한 비행선이 수십 정 날아다니며 드래곤을 사냥한다.
마나포를 날리고 작살과 말뚝을 터트렸다. 사슬을 감고 필요하다면 비공정을 추락시켜서라도 드래곤을 바닥으로 끌어 내린다.
쿵, 쿵!
검고 거대한 인간형의 기갑 골렘이 그 심장에 인간을 넣고 태운 그대로 움직여 무기에서 마나를 빛처럼 뿜어 다른 드래곤을 갈랐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레이첼이 분노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수십에 달하는 몸에 박힌 말뚝에서 마나가 연신 뽑혀 나간다.
하나하나는 그렇게도 강한 드래곤이 마치 불개미에게 뒤덮인 거대한 짐승처럼 무너졌다.
하늘에서 비공정이 날개를 겨냥해 찢고 부수어 떨구면 수십, 수백에 달하는 목각인형처럼 생긴 골렘이 달라붙어 공격했다.
그렇게 힘이 빠지면 거대한 기갑 골렘이 바닥으로 떨어져 울부짖는 드래곤을 마나를 실은 검으로 난도질한다.
그 가슴을 찢고 드래곤 하트를 꺼내면 그 드래곤 하트는 또 다른 기갑 골렘을 일으키고 비공정으로 들어가 다시 골렘을 양산한다.
바닥에 기는 버러지! 모든 종족의 찌꺼기!
그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한 인간족 주제에 감히!
레이첼이 크게 울부짖으며 터져버린 눈으로 핏물과 하나 남은 눈으로 눈물을 흘릴 때 검은 머리칼이 눈동자 앞에서 흩날렸다. 무언가가 레이첼의 머리를 타고 내려가 심장 위에 서 있었다.
“네 심장도 뽑아주마.”
강한 오러가 비늘을 가른다. 수십 개의 갈고리가 끼워지더니 갈라진 피륙을 양쪽으로 벌렸다.
거대한 비명이 찢어졌다. 사방을 진동케 하는 울부짖음. 언뜻 곁눈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사내가 검을 높이 들었다.
‘나의 심장!’
맥동할 때마다 플레어처럼 화염이 솟구쳤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뼈도 남기지 않고 하얀 재만 남았을 열기에도 사내와 검은 오롯하게 빛을 내며 빠르게 떨어졌다.
* * *
‘딱 봐도 레이첼의 두려움 속이다.’
하지만 너무 구체적인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래곤을 공격하는 비공정은 둘째치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시체들과 부서진 골렘, 그리고 건물의 파편.
인간도 수인족도 엘프도 드워프도.
인간족과 아인족이 뒤엉켜 잔뜩 죽어 있다. 발아래가 전부 시체들이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다.
누군가의 잘리고 망가진 몸을 밟아가며 혹은 운 좋게 골렘을 밟으면 좀 더 편하게 균형을 잡으며 계속 걸었다. 괴성이 들리는 방향으로.
‘분명 레이첼은 양산형 골렘을 본 적 없을 텐데.’
리프와 만난 정령의 숲 다음이 접경지 가비오렌이었지. 그러니 레이첼은 비공정의 양상형 골렘도, 그 아래 있던 기갑 골렘도 본 적이 없다.
아니, 기갑 골렘은 관리자 등록으로 비공정을 확인했던 나와 케인, 그리고 리프만이 그 모양을 제대로 알고 있지.
그런데 지금 저 멀리서 드래곤의 뿔을 뜯어 그 뿔로 드래곤을 찔러 죽이는 저 기갑 골렘은 무엇인가.
‘…뭔가 이상해.’
로프를 잡은 덕에 내 기억과 섞였다? 그것도 하나의 가설이지만.
‘…아직은 섣불리 판단해선 곤란하지.’
나는 아공간을 열어 코덱스를 확인했다.
분명 마정석이 전부 터져나갔을 코덱스지만 원상 복귀 되어 있었고 이번에도 아공간은 코덱스 하나만을 뱉은 후 작동하지 않는다.
한 번의 악몽 속에서 한 번만 아공간을 쓸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아공간을 한 번 열면 그제야 아공간을 눈치채고 제약이 걸리는 걸까.
―크아아아!
―소멸하라, 버러지!
사방에서 드래곤 피어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일반 사람이 아닌 양산형 골렘은 애초에 두려움이 없기에 계속해서 덤벼들고 하늘을 나는 비공정은 마나 기막을 둘러 피어를 상쇄했다.
대지에도 하늘에도 남은 건 드래곤과 비공정을 비롯한 골렘의 세력뿐.
비공정과 기갑 골렘 안에는 사람이 존재하겠지만 당장 지상에 남은 이는 나뿐.
아니.
하나 더.
저 멀리 거대한 레드 드래곤 위에 서서 검을 든 사내가 보였다.
너무나도 멀어 그 형체만 겨우 보이지만 키가 아주 훤칠하고 검은색의 머리칼을 가진 사내.
그가 레이첼로 보이는 레드 드래곤의 심장을 찌르려는 듯 검을 높이 든 모습에 나는 다급히 코덱스를 열어 수십에 가까운 매직 미사일을 날려 사내를 밀어 버린 뒤 레이첼의 심장 위로 실드를 씌웠다.
“레이첼! 정신 차려!”
악몽에서 깨는 방법은 레비와 리프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두려움이 사라지면 될 테니까.
나는 레이첼에게로 달려가며 그 몸을 묶은 사슬을 공격해 하나씩 끊어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바람으로.”
몇 번이고 윈드 커터를 날려 마나가 깃든 사슬들을 잘라낸다. 3서클인 윈드 커터의 페이지를 전부 소모하며 레이첼의 팔을 관통하여 묶고 있던 사슬을 잘라내니 나머지는 스스로 뽑기 시작했다.
―크윽. 아아아악!
고통스러운지 레이첼의 비명이 피어처럼 터진다.
가슴을 찢어 벌린 갈고리를 뽑아내니 불을 뿜어내던 심장 어림이 닫히며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내 뺨을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뒤늦게 번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손등으로 뺨을 매만지니 피가 묻어난다.
저 멀리서 검은 머리의 사내가 오러를 날린 모양. 바로 내 몸을 두 쪽으로 내지 않은 건 경고인가.
“…다.”
무언가 말하는 것 같지만 일반인인 난 듣지 못한다고!
“레이첼에게 손대지 마.”
하지만 그쪽은 강해 보이니 내 말이 들리겠지.
나는 코덱스에 막혀 있던 마정석을 하나 빼 주머니를 뒤져 기능을 잃은 아이기스에 흡수시키며 웃었다.
“내 소중한 동료거든,”
나는 코덱스를 뒤로 넘겨 차징 시간이 필요 없는 마법 중 가장 강한 5서클의 페이지를 한 장 찢었다.
“대지가 내 뜻대로 움직이리라.”
어스필드.
일정한 시간, 일정한 공간만큼의 대지를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마법.
사내와 레이첼 사이에 공간을 지정한다. 레이첼 근처로 오지 못하게 땅을 솟구쳐 기둥을 만들어 내며 길을 막고 발밑을 없애거나 갑자기 들어 올려 퉁겼다.
“헉, 헉…….”
나는 입에서 쇠 맛이 날 만큼 가쁘게 숨을 쉬면서 레이첼에게로 뛰었다. 이게 그냥 레이첼의 악몽 속인 걸 알면서.
깨어나면 다친 것들도 얼추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붉은 피가 흐르는 모습에 다시 코덱스를 열어 단 한 장 있는 리커버리를 찢으려던 순간.
―…아델…리안?
레이첼의 그 거대한 눈이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사방을 보고 뒤를 돌아본 뒤 내가 솟구치게 만든 대지의 기둥을 뛰어올라 검을 휘두르는 사내를 바라보다 날개를 크게 펼친다.
그 사내의 모습이 붉은 날개로 가려졌다.
―꿈이구나.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부서지는 것 같더니 나는 화염과 시체로 가득한 대지가 아닌 어두운 복도에서 어느 닫힌 문 앞에 있었다.
“…뭐지.”
낮게 아이기스가 우웅 하고 내 주위를 맴돈다.
찢기 직전의 리커버리를 얼른 닫으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레이첼이 깨어남과 동시에 다른 이의 악몽으로 튕긴 건가.’
순서는 리프의 말을 생각해 보자면 던전에 들어온 순서.
그렇다면 거리도 상관있을 수 있겠지.
들어오기 전 레이첼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이라면 바로 연결될 수도 있는 건가.
‘머리가 아파.’
너무 많은 생각이 스치지만 일단은 아이들을 얼른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 주는 것이 먼저지.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해.’
어쩐지 눈에 익숙하다.
익숙한 거대한 저택의 어딘가. 아주 오랜만이란 생각이 든다.
‘라베스의 본가.’
그렇다면 루나겠지.
나는 눈앞에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흑… 흑…….”
아주 가늘게 들리는 우는 소리.
내가 문고리를 잡고 바로 열려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쓸모없군. 짐이다.”
“더러운 짐승일 뿐 아닙니까.”
―제발 이곳에 남아주세요. 그편이 우릴 돕는 길입니다.
“가진 재주라고는 하나 없는 주제에 뭘 믿고 나대는지 모르겠어.”
케인과 제로. 리프와 레이첼의 차가운 목소리.
천한 수인족임을, 그 몸에 흐르는 피를 탓하며 그 무엇 하나 쓸모 있는 구석이 없다고. 언제나 웃고 있는 것도 가식적이라 매도하는 말들.
“너를 내 곁에 둔 게 후회돼, 루나.”
그리고 오만하며 건방지고 누군가를 깔보는 성정이 그 영혼의 습성인 것 같은 사내의 목소리.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아주 재수 없는 꼬라지를 한 내 얼굴을 보고는 씩 웃은 뒤 발로 또 다른 나의 배를 걷어찼다.
“컥!”
내 눈에는 아주 볼썽사납게 나자빠지는 아델리안을 나머지 아이들이 얼른 다가가 끌어안는 모습이 상당히 기분 나쁘네, 이거.
“루나.”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누군가에게 비는 것 같은 모습으로 울던 루나를 잡아 일으켰다.
“너무해.”
분명 소심함이란 트레잇 없어졌잖아.
1황녀도 걷어차던 그 패기는 어디 팔아먹고 말이지.
고작 저딴 목소리에 울고 그럼 쓰나.
내가 손등으로 뺨의 눈물을 훔쳐 주자 루나가 자신의 귀를 잡고 눈을 꾹꾹 눌러 닦는다.
그리고 나와 아델리안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나에게로 와락 안겼다.
“도련님!”
“그래.”
“도련님이… 막 저보구 쓸모없다구…….”
말하다가 점점 화가 나는 듯 쌍심지가 켜지는 루나를 보니 뇌리에 광분이 스쳐 지나간다.
난 얼른 루나의 귀를 당겨주며 쓰다듬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늘 믿고 있는 거 알잖아.”
“그럼. 그럼. 잘 알지.”
루나를 달래던 내 어깨에 누가 팔을 올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레이첼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 순간 마법 천막 안에 들어와 있다.
내 다리에 뭔가 따끈한 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건 레비일 테고.
루나의 옆으로 슬쩍 리프가 붙는다. 조금은 서늘하고 어둡던 루나의 악몽 속 저택과는 달리 모닥불을 피워둔 천막 안은 온기가 돌았다.
“아델리안. 또 사라지기 전에 먹을 거 좀 놓고 가.”
이… 뻔뻔한.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내 품에 안긴 루나와 나를 번갈아 보는 레이첼의 모습에 한숨을 쉬고는 루나를 놓아주며 아공간을 열었다.
“먹으면서 기다려. 케인과 제로까지 데려올 테니. 절대 천막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지 말고.”
아마 일회성 던전이겠지만 또 두려움에 끌려가면 곤란하니.
내 말에 꺼내준 육포를 이로 뜯어먹던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