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8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87화(187/373)
“과일 사세요, 과일!”
“으아앙. 엄마아…….”
“어휴. 내가 뛰지 말라고 했잖니. 많이 아파? 어디 보자.”
눈을 뜨니 낯선 천장, 아니 낯선 마을이다. 아공간은 한 번 열면 다시는 못 열 거 같아 미리 빼둔 코덱스를 동아줄처럼 움켜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딜 보아도 평범한 마을. 어디에선가 빵 굽는 냄새가 나고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웃고 있었다.
그전의 악몽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경에 나는 잠시 두리번거리다 천천히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케인, 혹은 제로.’
둘 중 하나의 악몽인데.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라니. 어째서?
어딜 둘러봐도 평범한 사람들뿐이다. 꽤 오랜 시간 돌아다녔는데도 별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몸에 스치는 묘한 위화감.
나는 돌아다니다 조금 지친 기분에 닭꼬치 하나와 구운 감자 두 알을 사서 입에 넣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이상한 점이 없는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무언가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간질거림. 서서히 해가 지고 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사람이 비틀거리며 지나간다.
‘음?’
그 사내를 눈으로 쫓던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골목 안쪽으로 걸었다.
술집이 가까운 골목과 더 안쪽 으슥한 빈민가까지.
하지만 빈민가는 텅 비어 있고 취한 이들은 있어도 고성방가는 들리지 않는다.
으레 늦은 시간이 되면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다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 그것에 맞춰 순찰단원이 돌기도 하고 혹은 자경단이 순찰을 돌기도 한다.
그런데 자경단도 순찰단원도 없으며 으슥한 뒷골목에는 시정잡배 또한 존재하지 않고 빈민마저 없다?
거리의 사람들은 행복하기만 하고 큰 슬픔도 고통도 없어 보였다.
나는 무언가 소름이 돋는 기분에 주위를 살피는데 아주 먼 곳에서 전쟁에 쓰는 뿔나팔 소리와 더불어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무 멀어.’
당장 확인하고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나는 다시 번화가로 나가 상가를 돌아다니며 말을 찾기 시작했다.
이 정도 규모의 마을이라면 마차를 운행할 텐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마차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농사에 쓰거나 짐말로 쓰는 작은 말 한 마리를 끌고 가는 사내가 보이자마자 다가가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나에게 팔도록.”
허리춤의 동전 주머니에서 골드를 하나 꺼내 건네니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보다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말은 어디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그것까진 알 필요 없다.”
어차피 악몽 속이니 실제 사람도 아닐 테고. 나는 왈가왈부하기도 싫어 사내의 손에 금화를 쥐여 주고 말고삐를 낚아채는데 갑자기 사내가 내 손목을 콱 쥐며 씩 웃었다.
“…인간이네?”
“인간?”
“인간이라고?”
사내의 말에 곁을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꺾어 나를 바라본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허리가 굽은 노인부터 아직 코 흘리는 어린아이까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쪽으로 오는 모습.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사용자의 눈.’
[잭스_잭스를 복제한 도플갱어], [톰_톰을 복제한 도플갱어], [브라운_브라운을 복제한 도플갱어]…….이 거리의, 아니 이 마을 모든 이들이 도플갱어였다.
나는 사내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아플 만큼 강하게 잡혀 어쩔 수 없이 코덱스를 열었다.
“내가 먼저 잡았으니 내가 먹! 으악!”
매직 미사일로 밀어버리고는 시큰거리는 손을 한번 털어내며 얼른 짐말에 올라 고삐를 쥐었다.
“이랴!”
“거기 서!”
“이왕이면 저렇게 잘생긴 얼굴이 좋단 말이야. 내가 먹을 거야!”
“나눠 먹자. 응?”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날 쫒아 온다.
전투마가 아닌 일반 짐말이라 지구력은 좋을지라도 속도는 빠르지 않아 나는 중간중간 그들에게 마법을 날리며 급하게 마을을 빠져나왔다.
“젠장.”
사용자의 눈을 켜자마자 보이던 무수한 도플갱어의 트레잇들.
그것이 주는 압박감에 서늘한 공포심이 번졌다.
나는 고개를 한번 젓고는 뿔나팔 소리가 들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던 곳으로 연신 말을 재촉했다.
* * *
몸이 무겁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분명 의식은 있되 감옥에 갇힌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괴…물.”
사내의 말에 누군가가 사내의 뺨을 후려쳤다.
머리에 쓴 작은 금관이 그 반동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굴러간다.
“그래도 일반인이 아닌 왕족이라 예의상 우리의 군주 앞에 데려왔음을 영광으로 알지는 못할지언정.”
누군가가 타박하는 말에 입에서 피를 흘리던 사내가 이를 갈며 올려다본다.
그 눈동자에 비친 괴물은 긴 잿빛 머리와 녹색의 보석안을 지니고 있었다.
“너를 증오한다, 도플갱어의 군주여! 나만은 아무리 네가 집어삼킨다고 해도 내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거부한다! 내 영혼에 걸고 맹세한다. 나는 나로서 영원할 것이다!”
사내의 그 절규에 도플갱어의 군주가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누구나 그리 말하고는 하지. 내 아이가 되기 전까진.”
제로.
아니 도플갱어의 군주는 두려움에 휩싸인 인간 사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 인간은 녹아 도플갱어 군주의 발아래 그림자로 흡수되더니 등 뒤에 길에 늘어진 그림자에서 다시 태어났다.
다시 태어난 그 사내는 도플갱어의 군주에게로 무릎걸음을 디뎌 다가가 그 옷깃에 입을 맞췄다.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동질감과 소속감. 모든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 희열을 준 상대에게 보이는 경외.
걷는 걸음걸음.
죽음 위를 걸을 때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으아아……! 버텨! 더 이상 전선이 밀리면 안 된다!”
“이 괴물! 내 친구를 돌려줘!”
“기억 안 나? 우리 어린 시절 양을 치다 새끼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려 밤새 찾으러 돌아다녔잖아. 그때 너와 한 대화도 기억도 다 있는데. 무엇이 다르단 거야.”
“이봐, 제이크. 우리 어제까지 같이 참호 속에서 떨던 것 기억하는가. 이제 난 두렵지 않다네. 오히려 홀가분해. 왜 좀 더 빨리 이리되지 않았을까 후회할 뿐이야.”
“거짓말하지 마! 너는. 너는 내 동료가 아니다!”
방금 죽은 동료가 되살아나 웃는다. 분명 얼굴도 기억도 같으나 저것은 괴물이었다.
인간을 잡아먹고 사는 괴물.
마법이 서로 날아다니고 방금 동료를 지키며 죽은 이가 되살아나 너도 함께하자며 죽어 가면서까지 지켰던 동료를 찌르는 전장.
죽은 이들은 도플갱어의 군주가 삼킨 후 다시 태어난다.
그 모습에 도플갱어 군주의 몸에 갇힌 채로 의식만 떠 있는 제로는 괴로움에 질식할 것 같았다.
누군가의 인생을 수백 수천 수만을 삼켰다.
태어나고 자라 나이 들어 죽던 그 순간까지.
삶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그 기억들이 뒤엉켜 하나의 인격이 아닌 조각난 인격이 되어 몸을 지배한다.
덩어리가 크면 그것이 나뉘어져 있음이 잘 보이나 잘게 쪼갤수록, 그것들이 모래알보다 더욱 작을수록 멀리서 보면 결국 하나로 보이는 법.
수백 수천 수만의 기억이 한데 엉켜 마치 하나처럼 의식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플갱어의 존속만이 오롯하게 박혀 있었다.
대륙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삼키고 하나가 된다. 각자 전부 하나의 기억을 갖고 그 존재로 살아가되 결국은 도플갱어의 군주가 지배하는 군집.
하나이되 모두이며, 모두이되 하나인 생명체들.
오롯하게 군주의 이름 아래 모든 이들은 평등해지고 행복해질 터. 자유 의지라고 적고 군주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라고 읽는다.
개개인이 하나의 자아를 가지고 생활하나 모든 것은 군주가 통제하니 다툼도 슬픔도 없는 세상.
외로움과 고통.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나 자신과 타인에게 벽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며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도 나와 타인이 서로 공감하지 못하고 이어져 있지 않기에 생기는 비극이다.
하지만 모두가 군주에게 삼켜져 다시 태어나면 나는 너요, 너는 우리가 된다.
이해하지 못하여 다툴 필요 없고, 나보다 못하다 하여 동정할 일도 없으며, 나보다 잘났다 하여 부러워할 일도 없다.
주어진 기억과 삶을 충실히 살고 나면 도플갱어의 핵만 남아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삶이 조금 고되면 어떠하리. 결국 이 삶도 나요, 저 삶도 나인 것을.
지금은 인간과 아인족이나 도플갱어의 군주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천적.
몬스터도 그 강대한 드래곤도.
전부가 삼켜지고 나면 이 대륙은 잘 돌아가는 하나의 연극판처럼 극한의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모두가 하나의 배역을 맡아 꾸리며 행복하게 될 것이다.
‘아니. 아니야.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쏟아지는 기억에 제로가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삼키고 또 삼키고. 걷는 걸음마다 피와 죽음이 흩뿌려지고 그 등 뒤로 망토처럼 늘어진 그림자에서 새로운 것들이 태어난다.
“괴물…….”
누군가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태어나 무릎을 꿇고 복종한다.
아무리 증오하고 혐오하며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진다 하더라도 결국 집어삼켜 다시 태어나게 만들면 그 모든 것들이 경외로만 남았다.
그야말로 괴물.
‘제발 그만…….’
이것을 피하기 위해 케인의 피를 삼키지 않았다.
가뮈르의 피를 삼키고 삼켜 엿본 수많은 기억 중 하나. 언젠간 있게 될, 혹은 있었을 과거 혹은 미래.
대륙을 전부 집어삼키기 전에 제발 누군가가 멈춰주길.
제로가 기도했다.
* * *
“이건… 뭐야.”
짐말을 부지런히 재촉해 언덕을 올라 보니 마치 종말이 와 있는 것 같다.
시체 하나 없는 전장.
죽어도 다시 살아나 움직이거나 혹은 몸이 녹아내려 핵으로 변한 뒤 어디론가 사라진다.
피는 강처럼 흐르되 시체는 단 한 구도 없는 모순.
거대한 전쟁. 인간과 아인족이 뒤섞여 싸우나 한 곳은 공포에 질려 죽을 각오로 무기를 휘두르고 한쪽은 측은지심에 물들어 상대가 가엽다는 얼굴로 마치 구원이라도 하듯 상대를 죽여댄다.
누군가 죽으면 너무나도 기쁘게 그의 시체를 그림자로 던지고 그 시체는 조금 있으면 다시 태어나 전장에 합류했다.
그 거대한 전쟁의 가장 뒤에서 느긋하게 걸어가며 저 앞에서 던져지는 죽음을 삼키고 새로이 내뱉는 자.
이 모든 비극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사내.
흩날리는 회색 머리칼과 녹색의 보석안.
늘 순하게 웃던 얼굴이 아닌 텅 비어 공허함만이 깃든 얼굴.
모든 도플갱어의 군주.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자.
‘제로가 아니야.’
제로이되 제로가 아니다. 우리가 이름을 붙였던 도플갱어의 군주가 아니었다.
미궁에 갇히지 않았을 때의 모습인가. 원래라면 있었을 종말에 가까운 메인 스트림은 모두 5개.
수인족과의 전쟁, 전염병, 몬스터 웨이브, 제국의 황위 찬탈 내전, 그리고 언데드의 준동.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보다 저것이 더욱 대륙의 멸망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주인.
나는 가장 뒤에 서서 텅 비어버린 눈으로 기계처럼 죽은 것들을 삼키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제로를 보다가 말을 달렸다.
“제로!”
나를 봐라!
내가 너의 주인이니까.
나의 목소리에 수십 수백 명이 돌아본다.
짐말이 투레질을 하며 힘차게 달렸다. 나를 가늠하는 수백 수천의 눈동자.
이윽고 내가 무엇 하나 잘난 것 없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 느꼈는지, 하나라도 더 죽이는 게 낫다는 생각인지 모두 전장에 합류했다.
그리고 가장 뒤에 서 있던 제로.
아니 도플갱어의 군주만이 오롯하게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나를 부른 것인가.”
“그래.”
“나의 옷에 입을 맞추려 온 것인가.”
그 말에 크게 웃었다.
아아, 아공안을 아직 안 쓰길 잘했지.
나는 오만하디오만한 얼굴로 아공간을 열었다.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자. 명령이야.”
“나에게 명령할 이는 아무도 없지. 너도 그냥 나에게 종속되거라.”
그래, 그냥 하는 명령은 강제성이 없지.
도플갱어의 군주가 다가와 내 얼굴에 손바닥을 천천히 가져다 대려 한다.
그리고 나는 아공간에서 신의 계약서를 꺼내며 짙게 웃었다.
“을은 갑에게 그 어떤 위협적인 행위도 할 수 없다, 이 멍청아. 돌아가자, 제로. 명령이야.”
계약서를 쥐고 명령하는 나를 바라보던 그 무심한 눈이 점차 부드럽게, 순한 대형견처럼 휘어진다.
“예. 아델리안 님.”
제로가 느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