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8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89화(189/373)
하여간. 케인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나보다 어리다는 것이 이런 것에서 티가 난다.
‘모두가 없어진 세계가 두려움이라.’
인간 혐오에 찌들었던 케인의 두려움이 인간 외엔 없는 세계가 아닌 것만 해도 많은 발전이지.
나는 케인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 준 뒤 다리에 달라붙는 레비를 안아 올렸다.
“다녀오셨어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아, 배고프다. 육포 더 없어?”
“이제 아델리안 님이 오셨으니 정찰 나가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왜 이제 와…….”
난 왜 이제 왔냐며 엉겨 붙는 레비를 토닥토닥 쓰다듬었다.
이 말랑함. 힐링된다.
“어. 다녀왔어, 루나. 다친 곳은 없는데 좀 피곤하네. 그리고 꽤 많이 주고 간 거 같은데 벌써 다 먹었냐, 레이첼. 제로는 아직 정찰 생각도 하지 마.”
나는 미리 꺼내놓고 갔던 의자 위에 앉아 물을 마셨다.
다른 녀석들은 악몽을 한 번씩 꿨지만 난 케인부터 레비까지 전부의 두려움을 본 뒤라.
‘정보가 너무 많은데.’
정리할 기력이 없다. 일단은 좀 쉬고 싶어서 과일과 육포 등을 잔뜩 꺼내 놓고 의자에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늘어졌다.
“그냥 바닥에 눕지.”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케인이 한마디 한다.
“힘들어.”
너는 인마 한 번이지만 나는!
‘라떼는 말이야.’ 느낌으로 눈에 힘을 주니 케인이 손을 뻗는다.
짐짝처럼 들리기 전에 슬라임처럼 의자를 타고 내려 천막 바닥에 눕자 제로가 자신의 로브를 다시 덮어준다.
그것을 시작으로 루나는 내 팔을 잡고 모닥불 옆으로 옮기더니 리프는 자신의 로브를 말아 내 머리 아래에 끼워줬다.
거기에 레이첼은 입에 육포를 물리지 않나, 레비는 그런 녀석들을 보더니 평소 내가 하던 것처럼 자신이 나를 도닥도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거.
이번엔 내 머리 위로 물음표가 뜨긴 했으나 이것이 파티장에 대한 파티원들의 케어라고 정신승리하며 육포를 씹기 시작했다.
레비 때 알았던 것처럼 악몽 속에서 고생하면 돌아왔을 때도 몸에 변화가 있다.
그 덕에 나는 종일 말을 타고 걷고 돌아다닌 것처럼 몸이 축축 늘어지는 데다 피곤함으로 인해 졸리기 시작했다.
내가 자면 저 녀석들 돌아다니는 거 아닌가 몰라…….
“내가 일어난 뒤 탐색 후 나갈 채비할 거니까 사고 치지 말고. 꼭 이런 거는 혼자 나가는 사람이 당하니까 혹시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2인 1조로 움직이고.”
“자라.”
내 잔소리에 케인이 한소리 한다. 그 말이 무슨 스위치라도 된 듯 급격하게 수마가 몰려왔다.
“어디 나돌아 다니지 말고…….”
사고 치지 말고… 던전 안이니까…….
점차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더 이상 이기지 못하고 나는 잠이 들었다.
* * *
“엄청 피곤하셨나 봐.”
주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만 아니었다면 숨소리도 거의 내지 않아 죽은 것인가 의심되는 모습.
루나의 말에 다들 아델리안을 바라보다가 의자를 두곤 바닥에 둘러 앉아 입을 열었다.
“장막 쳤지?”
레이첼이 케인을 보며 하는 말에 제로가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아무리 큰 소리를 내도 아델리안에게 들릴 일은 없을 터.
보통 아델리안이 자면 거실이나 다른 이의 방에서 만나는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곁에 두고 대화하는 건 처음이라 다들 흘긋 흘긋 잠든 아델리안과 그 위에 엎어져 같이 자는 것 같은 레비의 상태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어찌 된 일인지 추측되시는 분부터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로의 말에 리프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더니 입을 열었다.
―소용돌이가 하나로 합쳐지며 생긴 와류의 끝이 던전의 영역까지 닿았던 것으로 추측됨.
바닷속에서 보드와 필기구를 잃은 탓에 루나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리프의 입모양을 읽은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로프가 아니었다면 모두가 함께 들어오진 못했을 거라구 생각해.”
“그리고 예상하건데 안에 시험을 치르는 이가 존재하는 경우 던전은 추가로 인원을 받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인어족이 분명 해류 아래까지 수색했을 텐데도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은 걸 테고.”
레이첼이 사과를 악력으로 반을 쪼개 루나에게 나눠주며 하는 말에 제로가 말했다.
“보통 던전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집니다. 절대 누군가에게 좋은 것만 주기 위한 던전은 없죠.”
그는 미궁에 있으면서 얻은 수많은 모험가의 일지엔 늘 그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며 말하고는 손으론 연신 육포를 모닥불에 구워 나누기 시작했다.
“보통은 그거지. 재미 아니면 제물.”
레이첼이 불에 구운 덕에 조금 부드러워진 육포를 길게 찢어 입에 넣고 질겅거리며 말을 이었다.
“여긴 단순하게 마법만 적용된 던전이 아니야. 그랬으면 너희는 몰라도 난 절대 안 걸렸지.”
명색이 내가 어? 하며 삐죽거리던 레이첼이 아델리안을 흘긋 바라보았다.
“마법뿐만 아니라 영적인 주술도 포함된 고차원의 던전이야. 가장 기피하는 것, 혹은 반기지 않는 상황을 실제처럼 여기게 만드는 곳.”
그리고 그걸 이겨내면 그것을 보상이라고 칭하는 던전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하나의 존재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 그것을 이겨낼 이가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뒤 그 향상된 정신 혹은 육체적 힘이 보상이라고 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것은 그 존재가 오롯하게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불굴의 대가이므로.
“완전히 악취미야. 악의로 뭉친 곳이지. 만든 녀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추잡스러운 녀석일 거야.”
레이첼이 으르렁거리며 하는 말에 제로가 난처하게 웃으면서도 반박은 하지 않았다.
사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모두 도련님을 만난 게 맞지?”
루나가 하는 말에 전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레이첼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너희는 마법이나 주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니 이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감이 안 오겠지만 말이야.”
뭔가 아주 자존심이 상한다는 얼굴로 레이첼이 다리 하나를 쭉 뻗어 괜히 아델리안을 톡 차자 루나가 레이첼의 허벅지를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아얏. 이건 내가 본신으로 돌아가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레이첼이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비비며 하는 말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입니까. 애초에 누군가의 무의식에서 두려움을 읽어 육신 자체를 이동시키는 공간을 만드는 것부터가 이상한데 그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이래서 마법도 모르는 것들이란! 하는 얼굴로 레이첼이 바라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솔직히 말해서 드래곤이 마법의 시초네 뭐네 해도 관심 없는 분야는 대충 알지 정확한 구동원리는 모르거든?”
숨을 쉬고 무언가를 먹고 달리고 휘두르고.
이 모든 행동은 어느 누구라도 보통의 신체조건을 가진 이라면 어렵지 않은 것들이다.
다만 그것을 풀어 설명하라고 하면 몇이나 가능할까.
두 발 달린 것들은 균형을 어떤 식으로 잡으며 한 발을 내딛기 위해 허공에 다른 한 발이 뜰 때 왜 쓰러지지 않는지.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고 각 신체에 쓰이는 힘은 어떠한지.
그것을 하나하나 설명하라고 한다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레이첼에겐 지금이 그러했다. 아델리안이 지금 얼마나 대단하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는지 자신은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탐구와는 거리가 먼 레드 드래곤이었기에 머리를 쥐어뜯다가 입을 열었다.
“가장 원하지 않는 것. 두려워하는 것을 이 던전이 우리를 분석해서 보여준 게 아니야. 우리가 우리에게 보여준 거지.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아주 간단해.”
영혼을 자극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스스로 상상하고 망상하여 현실처럼 느끼게 한다.
“악몽과 같은 거지. 혹은 원치 않던 나쁜 상상 같은 거? 다 너희 스스로가 만든 풍경인 거야. 다만 꿈처럼 누군가 깨우면 사라지는.”
그러니 외부의 자극에 대비해 신체를 잠시 감춘다. 시간 또한 마찬가지. 꿈속에서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난다 해도 깨면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지는 않는 것처럼.
“결국 내가 나에게 보여주는 환각 같은 거랑 비슷한데. 너는 네 꿈으로 남을 초대할 수 있겠어?”
레이첼의 말에 케인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델리안은 모두의 악몽 속으로 들어왔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일단 육체를 공간에서 분리시킬 때 반유체나 정령화 시키면 가능한 일이긴 한데.”
“문제는 도련님이 그걸 몇 번씩이나 견딜 만큼…….”
레이첼의 말에 루나가 말을 얹다 머뭇거리자 케인이 마저 입을 열었다.
“강하지 않지. 육신의 구성 자체가.”
게다가 정신력 소모 또한 어마어마할 터.
물론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직면한 일행들 각자만큼은 아닐 테지만 정신에 가해지는 압박이 그만큼 거세었을 텐데 간격을 길게 두고 침범한 것도 아닌 연달아 모두의 악몽을 겪었다.
“일반적인 곳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고독감이란.”
―계속해서 감정을 충동질하였어.
“단순히 두려운 것을 맞닥뜨리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압박감, 혹은 증폭되는 절망이 문제지.”
말 그대로 정신적으로 갉아 먹던 악몽들. 정신 방벽이 강한 종족인 레이첼마저도 악몽 속에서 저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델리안은 단순한 피곤함 외에는 느끼지 못한 눈치.
“마치 도련님은 그 특유의 공기를 느끼지 못하신 거 같아. 게다가 우리 모두가, 케인과 레이첼마저 벗어나지 못하구 던전의 시험을. 악몽을 꾸었는데 도련님은 아니셨어.”
자신을 몰아세우던 그 분위기. 마치 감정이라는 것이 실체화되어 물처럼 쏟아지는 것 같은 감각을 떠올리며 루나가 하는 말에 제로가 낮게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미궁에는 다양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그중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로가 어느 기억 하나를 떠올리며 읊어내는 것에 리프가 고개를 기울인다.
―무통증. 신체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
“아아, 나도 접경지에서 본 적 있어. 문제는 무통증이라는 게 만능이 아니지. 그냥 통증만 없는 거지, 신체가 불사가 되는 게 아니잖아? 오히려 장점보다는 단점이 너무 크던데.”
신체의 고통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더위, 추위를 구분하여 몸의 온도를 유동적으로 보호 가능한 것부터.
애초에 통증이라는 것은 일종의 경고. 이곳을 확인하라는 지시기에 만약 독뱀에 물리거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신체 부위의 절단 및 관통이 생길 경우 통증이 없다면 자신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은?
“아예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못하시는 건 아닌 거 같구.”
오랫동안 지켜봐 온 루나가 아델리안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케인 또한 입을 열었다.
“일정 수치를 넘어가는 것들에 무디지.”
애초에 드래곤의 피어를 견뎌낸 것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에도 이런 저런 사건들로 각자 의구심은 품은 게 사실이었다.
다만 아델리안은 워낙 아티팩트가 많은 편이었고 그 크루거 가문이라 뛰어난 아티팩트의 효능일 것이라 모두가 여겼던 일이었다.
하지만 간혹 보여주는 행동과 말. 그리고 가끔 느껴지는 그 특유의 분위기.
마치 자기 자신을 비롯해 모든 것을 버려도 홀가분해할 것 같은, 집착이라고는 일행 외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
“난 가끔 저 녀석이 무서워.”
레이첼이 사과심을 모닥불에 던지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인간들이랑 너무 달라서.”
그 어떤 선한 사람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욕구는 있는 법. 타인의 인정이나 혹은 자기애일 수도 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자신은 아는 법이니까.
그것에서 오는 자기만족감마저도 하나의 행동 동기요, 욕구가 되는 법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그렇게까지 이타적인 녀석이 아니잖아?”
자비와 자애. 헌신 그 자체로 만족하는 성향이면 차라리 안심했을 것이다. 그런 성품이라면 자신을 희생하는 것마저 자신의 욕망이니까.
그런데 아델리안은 타인에게 한없이 관대하거나 베푸는 이도 아니요, 때로는 아주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무리해서 누군가를 구하거나 모든 이득을 포기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은 버리고 누군가가 죽는 것에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래서 아델리안이 얻는 것, 그의 욕망이 무엇이냐는 소리.
“확실히 대륙의 평화는.”
잘 포장된 껍데기에 지나지 않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델리안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욕망이 무엇인지.
본인은 알고 있을까.
모두의 시선이 잠든 아델리안에게로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