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9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90화(190/373)
레비 때 몸이 화닥거린 걸 보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실제 몸에 미치는 영향이 있었단 소리겠지.
그걸 몇 번을 해 버리고 나니 꽤 진이 빨렸던 모양이다.
승마감이 좋지 않은 짐말도 오래 타고 달렸고.
몸살까진 아니더라도 몸이 꽤 무거운 감각에 여기서 빠져나가면 몸보신 좀 해야겠는데 하고 생각하며 눈을 뜨니 천연색의 눈들이 껌벅거리고 있다.
“왜 자는 사람 얼굴을 보지?”
뭔가 숨도 막히는 기분이고.
“너무 조용하시길래…….”
“숨소리도 별로 안 났지 말입니다.”
―깨어나시는 것 같아서.
“침 흘리나 구경하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데.
뭔가 가슴이 답답한 기분에 손을 올리니 명치 위에 레비가 엎드려 있다. 어쩐지 무겁더라니. 가위 안 눌린 게 어디야. 일단 몸을 일으키며 일행의 손을.
특히 레이첼의 손을 유심히 보았지만 이곳에 매직펜 같은 게 있을 리는 없었기에 다들 빈손이었다.
‘딸려 들어온 해초 같은 것으로 수염이라도 붙이려 했나.’
수상하단 얼굴로 보니 다들 아주 당당하게 내 눈을 보는 게 더욱 수상하다.
하지만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었기에 나는 찌뿌둥한 몸을 늘리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대충 몇 시간이나 잤지.”
“약 반나절입니다.”
어쩐지 먹을 게 하나도 없더라. 이게 가장의 마음인가. 분명 꽤 빼놓고 잔 거 같은데.
나는 범인으로 의심되는 레이첼을 보다가 어느새 일어난 듯 내 몸을 챠박챠박 치는 레비를 보며 아공간을 열었다.
보통 조리된 것들은 아공간에 넣으면 맛이 변질되지만 건빵은 소금과 밀가루, 물로만 만들어서 그런지 멀쩡해 보인다.
나는 레비가 먹다 만 건빵을 다시 입에 물려주며 그 김에 솥부터 이것저것 다시 꺼냈다.
그걸 보니 제로가 반색하며 들고 모닥불로 간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 같고.
“들어온 지는?”
“던전의 시험에 갇힌 시간을 감안해도 체감상 하루하고 반 정도?”
‘이틀까진 아니야.’ 하는 레이첼의 말에 의자에 앉아 늘어지며 생각했다. 일단 정리하기 편하게 던전의 시험을 악몽이라고 명명하자.
중간에 한 번 물었을 때 내 체감으로는 몇 시간이었는데 밖에 나와서 물었을 땐 5분 정도라고 했었지.
‘물론 레비가 말해 준 거라 신빙성은 좀 떨어지긴 하는데.’
레비도 장생종이다 보니 시간 개념이 나랑 다를 수도 있으니까. 하나 그렇다고는 해도 몇 시간씩 지나지는 않았을 터.
“너 일어났으니 좀 둘러본다. 괜찮지?”
“멀리는 안 갈게요, 도련님.”
―걱정 마시길.
내가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자 다들 이때다 싶은 듯 던전 안을 훑어볼 생각인 모양.
그에 잠시 고민하다가 내 눈에 보이게 천막의 입구를 열고 바로 앞까지만 조심히 다녀오라 이르고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럼 단순 계산으로 내가 반나절을 기절했던 상황에서 던전에 들어와 애들을 다 데리고 나오고 대화한 시간이 하루?
소용돌이에 휩쓸려 정신 잃은 시간도 몇 시간 포함일 텐데.
‘체감은 더 길었단 말이지.’
꿈이란 게 원래 그렇긴 한데. 부유감까지 있는 내가 이렇게 아리송하게 엮였을 정도면 정신에만 치중되는 마법은 아닌 게 확실했다.
내 몸도 피곤하고.
그 말인즉슨 나머지 녀석들도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데미지를 입었을 수 있단 소리.
애초에 내 악몽이 아니었으니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맞닥뜨렸다. 그런데 사실 내가 편법으로 깨부수고 데리고 나온 거지, 본인의 힘으로 두려움을 극복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시간이 좀 더 주어졌으면 가능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사용자의 눈을 시전했다.
‘음…….’
당장은 트레잇상 바뀐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트레잇으로 박힐 정도면 꽤 큰 문제니 다행이지.
다행스럽게도 트라우마 계통의 트레잇은 보이지 않는다. 천막 앞에서 무언가 대화하는 루나와 리프, 레이첼.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제로. 별문제 없다. 그럼 이왕 눈을 켠 김에…….
[레비니아_인어족의 로열 블러드]대표 Traits : [물의 축복A] [귀여움S] [물의 마나A]
히든 Traits : [덜렁이A] [물의 지배SS_비활성] [신체 변환B_비활성]
물의 축복이나 마나는 물의 지배가 활성 상태로 돌아가면 합쳐질 트레잇 같은데.
‘덜렁이’는 뭔데.
나는 살짝 스치는 생각에 건빵을 녹여 먹는 레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레비는 힐러치고는 특이하게 단일 힐이나 버프보다는 광역 힐이나 광역 버프가 특화긴 했다.
그 이유가 저번에 배에서 게임할 때 나온 것처럼 세밀한 컨트롤이 잘 안 되는 거였는데.
‘아예 대놓고 트레잇에 덜렁이가 붙었단 말이지?’
아니 분명 원작과 게임에서는 우아하고 귀품 있는 연상의 기댈 수 있는 누님이었는데.
나는 말랑함 그 자체인 레비를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레비. 그 누군가 회복시키는 거 말이야.”
“응?”
“그거 혹시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을 때 네가 원하는 사람만 회복시키거나 이로운 효과를 주는 것도 가능해?”
내가 순수하게, 정말 궁금해서 그런다는 얼굴로 웃으니 레비가 슬쩍 눈동자를 돌린다.
레비, 레비야?
“대충 스튜를 끓여 봤습니다.”
내 눈을 피하는 레비를 살짝 흔드는데 제로가 웃으며 다가온다.
아공간에 넣을 수 있는 먹을거리는 대부분 원재료에 가까운 것들이다.
감자나 양파, 당근 같은 기본적인 채소나 허브. 그냥 단순하게 말리고 분쇄만 한 밀가루 같은 가루류. 거기에 소금이나 잡내를 빼는 향신료 정도만 첨가해서 말린 육포 같은 것들.
생고기는 저번에 루나네에서 한번 다 털어 준 뒤에는 급하면 애들이 구해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보충을 안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눈앞의 이 스튜 뭐지.’
육포만 넣었다기엔 푸짐한 스튜를 보며 역시 제로다 하는 마음으로 칭찬했더니 제로가 대형견같이 순하게 웃는다.
“와, 맛있겠다!”
“일단 이 근처까진 별거 없는 거 같아요, 도련님.”
―테이블 정리하겠습니다.
리프의 말은 모두가 앉아서 먹을 테이블을 꺼내 달란 소리지.
아공간에서 테이블과 더불어 식기류를 꺼내니 다들 자기 것을 챙겨 놓기 바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레비나 다른 문제는 일단 밥을 먹고 할까.
나는 테이블로 레비를 안고 가며 무심코 구석에서 앉아 명상하는 것 같은 케인을 부르기 위해 바라보았다.
‘아니, 저거 뭐야.’
[케인 레이너스_이끄는 자]대표 Traits : [불망SS] [완벽B+]
히든 Traits : [갈망S] [기적A] [마나과부하A]
나는 순간 아찔해지는 감각에 일단 사용자의 눈을 끄며 의자에 앉아 내 옆자리에 방석을 몇 개나 겹쳐 깔아 놓은 뒤 그 위에 레비를 얹었다.
‘갑자기 말하면 어찌 알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밥 먹고 말하자. 밥 먹고.’
살짝 한숨 쉬니 케인이 눈을 뜨고 말없이 테이블로 와 앉았다.
“난 육포 많이!”
레이첼이 기운 좋게 내미는 그릇에 제로가 육포와 국물 외에는 거의 없는 국자로 배식한다.
루나에게는 당근을 많이. 나머지에겐 골고루.
물에 빠진 데다 아무리 온도 조절이 되는 마법 천막 안이라지만 밖에서 한 번씩 들어오는 공기가 서늘했던 터라 뜨끈한 스튜가 뱃속에 들어오니 몸이 풀리는 거 같다.
역시 한국인은 국물인가.
겨울밤을 새고 나가 한 바퀴 달린 뒤 편의점에서 사온 라면을 먹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자장면, 탕수육… 김치.’
부유감 덕에 향수병이나 그런 게 적긴 했는데 문득 떠올리니 먹고 싶긴 했다.
이럴 때는 부유감이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김치찌개 생각하다가 눈물이나 흘리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나는 애써 생각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밖에 아무것도 없다고?”
“그냥 이상한 석상? 마나는 느껴지지 않더라.”
“근처에 통로나 문 같은 건 없었어요.”
―기감으로 보아 아주 거대한 동굴은 아닙니다만 생명체는 저희뿐입니다. 벌레 하나 없습니다.
그럼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건 던전의 시험을 자신의 의지로 통과했을 경우 자연스럽게 밖으로 이동되는 경우인가.
실패해도 이동할 수 있겠지. 시체나 다른 것들이 없는 걸 보면.
“이따가 나도 확인해 볼게. 그전에 이번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내가 먼저 말하기 전에 너희는 나에게 할 말 없어?”
원래 식사 때는 이런 이야기를 안 하는 편이다. 해 봐야 소화불량밖에 더 되냐고, 이런 분위기.
하지만 저 녀석들은 위장이 튼튼하며 또한 레이첼의 활약으로 거의 다 먹은 김에 입을 열었다.
설거지는 장소가 장소다 보니 그냥 클린으로 싹 정리해서 아공간에 집어넣은 뒤 제로가 생수에 허브를 넣고 끓이기만 한 차를 식후 디저트 삼아 한 모금 마셨다.
“나 있어.”
레비가 먼저 통통한 손… 앞발? 그런 것을 들고 꼬부기 같은 입을 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내가 쓰다듬으며 웃었다.
“뭔데?”
내 물음에 그것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시험 중에 들어왔어?”
나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어떻게 나를 이곳으로 옮긴 거야?”
레비의 모습을 한 바다마녀에게 묻자 레비의 말랑한 몸이 바닥에 떨어진 젤리처럼 출렁이더니 천천히 변화한다.
녹색과 보라색이 섞인 점액질 촉수 같은 머리칼과 문어 같은 하반신.
원래 눈이 있을 곳보다 조금 높이 그리고 조금 낮게 있는 총 두 쌍의 고동색 눈동자. 회색과 녹색을 섞은 것 같은 피부와 문어의 껍질 같은 재질의 드레스.
“어떻게 알았지?”
바다마녀가 요염하게 웃으며 가장 통통한 빨판 다리를 꼬아 앉는 모습에 나는 오만하게 웃었다.
“비린내가 이렇게 나는데 모를 수가 있나.”
“내가 널 단박에 죽일 수도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오니?”
그럴 리가. 저건 허상에 지나지 않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부유감 덕에 정신계열이나 환상계열의 마법에는 거의 절대적 내성을 자랑한다.
그런데도 바뀌는 찰나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완벽한 환상이 아닌 실존하는 공간이란 소리.
나를 어느 순간 강제로 텔레포트 같은 걸 시킨 걸 테다.
원래 자신이 만든 던전이라면 엄청난 버프를 먹어 거의 신처럼 군림할 수도 있는 게 이 세상이니까.
그렇지만 정작 공간은 진짜인데 저 바다마녀는 반투명하게 보이는 것이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레비로 잠시 변했던 것을 바로 알아차린 게 그 이유였다.
‘머리를 쓰다듬을 때 바꾸다니. 영악하네.’
보통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눈치채지 못했겠지.
“궁금한 게 있어서 불렀으니 대답만 하면 돌려보내 줄게. 너만.”
“내 일행은?”
“시험을 그런 식으로 끝내놓고 어찌 나가겠단 말이야. 안 그래?”
자신의 물컹한 머리를 매만지는 바다마녀의 모습에 나는 의자에 깊이 기대며 입을 열었다.
“억지 부리지 마. 약간 비틀리긴 했지만 시험은 통과했잖아?”
“웃기지 마. 다들 자기 능력으로 통과해야지.”
마녀가 싸늘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한 손을 내 가슴 위로 올렸다.
“도구는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거야.”
[라헬라리브로아의 의식체_종잡을 수 없는 엿보는 자]대표 Traits : [마녀의 주술SS] [물질 간섭S] [사념과 영혼의 잔재S]
히든 Traits : [아집A] [확증편향B]
어차피 제대로 된 대화나 설득이 통할 상대가 아니라면 이쪽도 바득바득 우기는 게 방법.
저 정도 트레잇의 소유자에겐 굽신거려 봐야 개미가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늘 보아온 것들이므로.
애원과 설득 같은 것도 마찬가지.
‘차라리 이게 나아.’
나는 바다 마녀를 내려 보는 듯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그 아이들은 내 소유물이자 도구들. 그러니 내가 간섭하여 끄집어내는 것이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군.”
“아니, 무슨 소리야. 그들은 내 던전의 시험자들이라니까?”
바다마녀의 말에 나는 정말 의아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당신은 가위가 늪에 빠졌을 때 건져내는 것을 가위가 스스로 나오지 못했기에 다시 처박아야 한다 생각하나?”
“무슨 소리지. 그렇게 강한 이들이 너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들도 각자 자아가 있는데 당연히 내 시험에 통과를 해야 하는 것이 내 던전의 법칙이야!”
어떻게든 우리 애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즐기겠다?
나는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야. 내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나에게 복속되고 종속되어 영혼까지 저당 잡혀 있는데.”
나는 천천히 게임을 떠올렸다. 제1 스쿼드의 멤버들. 0과 1로 이루어진 도트와 더불어 일러스트.
그리고 내가 꼬박꼬박 소장권을 지른 원작. 나의 만기 적금이 들어간 펀딩. 내가 어떻게든 홍보하려고 쓴 장문의 나작소 리뷰들.
“그게 내 물건이 아니면 뭐란 말이지? 마녀라면 진실의 눈이라도 써 보지 그래.”
일단 루나를 제외한 케인과 제로. 레이첼은 나에게 신의 계약서로 묶였다. 리프는 골렘이니 종속되어 있고 루나는 일단 고용 계약서가 있을 터.
나름 근거가 있는 우기기. 레비가 문제긴 한데. 사실 진실의 눈은 나의 당당함을 평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시스템이다.
‘고로 내가 뼛속까지 우리 힐러로 새겨둔 레비니까.’
거기에 내 눈앞에 살아있는 레비는 몰라도 과금으로 내 손에 들어온 레비는 내 것이 맞다.
확실한 자신감으로 마녀의 눈을 바라보자 바다마녀가 아주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