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9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93화(193/373)
“아델리안 님. 정말 갑판 파티에 참여 안 하실 겁니까?”
제로가 내가 먹을 차와 간식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할 일도 있고. 번잡한 게 지금 안 당기네.”
“그렇다면 언제든 절 부르시면 무엇이라도 들고 오겠습니다.”
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엘리스의 해적단에 끼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따로 떨어진 이후. 엘리스는 인어족의 영역을 나와 근처 바다에 인원을 뿌렸던 모양.
그 덕에 정확한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소용돌이 지대도 아닌 외딴 바다의 어느 섬에서 잠시 쉬던 우리를 엘리스가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덕분에 배로 이동하고 조금 편해졌지.’
아무래도 바다 위를 직접 걸어 이동하는 건 일행에게 부담이 되니까.
선실 밖이 왁자지껄하다. 아무래도 인어족을 만나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해적들에겐 굉장한 어필 요소가 되는 모양.
리프는 책을 읽고 싶다며 잘 놀던 레비까지 데리고 갔다. 나머진 내가 쉴 때는 좀 쉬어야 한다며 보내놓긴 했지.
특히 케인은 사람들과 좀 부대낄 필요가 있기에 이 기회에 다 같이 술도 한잔하는 상황이라 사실 나도 끼고 싶긴 했지만 할 일이 있었다.
‘한 달이란 시간이 아주 길진 않으니까.’
남해군도에 온 김에 지금 할 만한 것들은 좀 처리해 놓고 본가에 돌아가는 게 맞지.
마치 오늘 약속 있는 김에 은행도 가고 사람도 만나고 물건도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오만함 트레잇 덕인지 내가 끼어서 같이 마시면 분위기가 영.’
무력보다는 신분제의 두려움이 더 큰지 케인에게는 해적들이 곧잘 술도 권하고 하는 반면 나에겐 슬쩍 잘못하고 흰자 보이게 눈 흘기는 강아지 같은 모습만 보이니 이렇게 선실에 있는 게 편했다.
‘이 김에 개인 면담도 하고.’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성까지 같이 부르며 방으로 오라고 하는 날.
혹은 교실에서 친구와 떠드는 중 반장이 다가와 선생님이 너만 교무실로 내려오라던데 하던 순간.
대학교 때는 교수님이. 입사를 하고 나면 사장이 혼자만 콕 찍어 방으로 부르면 누구나 저런 표정을 지을 것이다.
“나 불렀다며?”
레이첼이 아주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본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괜히 경찰관을 보면 신경 쓰이는 법인데 지금 짚이는 것도 있으니 더한 모양.
그 얼굴에 내가 피실 웃으며 테이블 건너편의 의자로 손짓했다.
“뭐 내가 잡아 먹냐. 앞에 앉아 봐.”
“아니이. 나 밖에서 술 마실 건데! 나 바빠! 내일 말하면 안 되냐?”
너 이미 술 다 마시고 실컷 놀고 하품하고 있는 거 봐서 부른 거야, 레이첼.
나는 눈을 데굴 굴리며 의자에 앉았다가도 슬쩍 일어나려는 듯 엉덩이를 들었다가 내 눈치를 보며 다시 앉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별거 아냐.”
“…진짜지?”
“당연하지.”
나는 레이첼에게 들은 것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기 위해 종이와 펜을 꺼냈고 그에 레이첼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리를 떨었다.
“아니. 뭐, 왜, 뭐!”
“…나 아직 아무 말 안 했다?”
도대체 뭐가 그리 걸리는지 괜히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던 레이첼이 심호흡한 다음 이내 삐죽거리는 얼굴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얼른 물어봐. 나 바빠!”
저러니까 더 의심스럽다는 걸 왜 모르는가.
하긴 드래곤인 데다가 어떤 유희를 해도 저 성격에 가시밭길 걷는 유희는 거의 안 해 봤을 테니.
나는 마법 처리를 해 단단한 깃펜의 끄트머리로 머리를 슥슥 긁으며 입을 열었다.
“그전에 마나장막 좀 쳐 봐.”
우리 파티원들이 워낙 유능해서 말이지. 지금 나누는 대화를 저 시끄러운 곳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다 들을 게 뻔했다.
“…내가? 싫어. 너 아티팩트 있잖아, 장막 치는 거.”
하여간. 나는 레이첼이 절대 안 한다며 버팅기는 모습에 아공간에서 아티팩트를 꺼내 마나장막을 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던전에서 본 거 말이야.”
“기억 안 나.”
얼굴을 보니 절대로 저건 모든 기억이 다 나는 중이다.
아니, 애초에 드래곤 하면 서브컬쳐계에서 유명한 말이 있지.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존재.
그런데 기억 안 날 리가.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나랑 같이 오래 차 마시고 싶어 할 줄은 몰랐네.”
술도 없는데. 괜찮아, 기억 날 때까지 차나 마시며 계속 있자. 하며 웃으니 갈등하는 얼굴.
“아, 그러고 보니 녹즙이 기억력에 좋다더라.”
거기에 한마디 더 하자마자 레이첼이 주먹을 불끈 쥔다.
“앗, 기억난다!”
레이첼의 서툰 연기를 난 굳이 짚어내지는 않은 채 깃펜의 촉으로 종이를 톡톡 찍었다.
“말해 봐.”
“…뭐부터?”
“언제의 기억이야?”
내 질문에 레이첼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억이 아니야.”
트라우마. 혹은 공포. 그것들의 대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에서 비롯된다.
물론 경험하지 않아도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지.
예를 들면 죽음이나 심각한 병. 혹은 부상. 무언가에 대한 상실.
심해나 우주 같은 제대로 겪진 않았으나 그래서 오는 공포도 있을 것이다.
다만 보통은, 한 개인이 가장 두려워하고 끔찍해하는 것. 절망적인 것을 겪게 한다면 그것은 보통 경험했던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진행이 너무 디테일했고 말이지.’
게다가 그 존재를 알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상황에서 정확하게 상상할 수 있을까.
애초에 존재 자체를 인지한 적 없는 것을?
레이첼의 악몽에 나온 양산형 골렘이나 기간트. 비공정 등이 그랬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같은 것이었으므로.
“거짓말하지 말고.”
그러니 이런 내 반응은 당연했고, 레이첼은 그에 자신의 가슴을 턱턱 치며 한숨 쉬었다.
“아, 억울하네! 거짓말 아니야. 정말이야. 그거 내 기억 아니야. 아마도.”
“아마도는 뭔데.”
내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묻자 레이첼이 복잡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넌 모르겠지만 말이야. 보통 그런 류의 환각 마법이나 영혼 마법 계통은 실제로 가능한 영역일수록 정교해지는 법이거든.”
문제는 아무리 유희 중이라 힘을 제어했다고는 하나 드래곤은 드래곤. 레이첼마저 순간 진실로 믿었을 정도라면 절대 막연한 공포만으로는 불가능하단 소리였다.
“상상과 기억은 엄청나게 다르지. 아무리 정교하게 상상을 한다고 해도 그 순간의 분위기. 냄새. 온도. 들리는 수많은 소리까지 동시에 상상으로 구현하기는 힘들어.”
하긴 리프가 그러했지. 수시로 변하던 풍경과 명확하지 않은 분위기.
본디 감정이란 게 거의 없던 리프의 공포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은 일그러짐의 종합이었지.
가장 수상한 제로와 레이첼은 너무나도 현실 같았고.
나머지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짜깁기가 된 느낌이었다.
레비만 해도 작열하는 태양과 사막은 한여름의 백사장을 늘린 것과 비슷했으며 루나는 본가의 저택과 더불어 제국의 수도에서 들을 법한 차별과 모욕이었으니.
혹은 몇 가지는 루나가 직접 들었을지도 모르는 말이었고.
케인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와 더불어 그 누구도 없는 세상.
그것은 어찌 보면 케인의 고향을 확장한 거나 다름없는 거니까.
“던전이 오롯하게 아무 것도 없는 것부터 만들어 낸 환상은 아니다. 하지만 네 기억엔 없다. 그런 거야?”
“맞아.”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몇 가지 적으며 묻자 레이첼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 쳤다.
찻잔이 살짝 들리며 찻물이 몇 방울 튀어 올랐다.
“아니! 전혀. 마음 같아선 그 던전의 마스터를 잡아 캐묻고 싶긴 한데. 그런 던전의 특성상 마스터도 정확히 그런 내용이 나온 이유를 모를 게 분명해.”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네 악몽에 나오던 그 골렘이나 비공정. 기간트는 언제부터 알고 있던 거야?”
슬쩍 떠보는 말에 레이첼이 눈을 끔벅거린다.
“골렘……? 아, 설마 그 이상한 뼈대 같은 게 골렘이야? 난 무슨 인형에 주술이라도 걸었나 했는데.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난 그것들을 본 적이 없어. 게다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비공정이나 인간이 탄 거대한 인형도. 그런 건 이 대륙 어디에도 없을걸?”
레이첼의 말에 나는 정령의 숲에 아직 묻혀서 마나를 모으고 있는 비공정을 떠올렸다.
그것의 출입 조건은 순혈의 인간일 것.
그리고 당시 봤던 입체적인 퍼즐의 모습은 드래곤을 사냥하는 모습이었지.
정보가 많아질수록 무언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게 기억이 맞다면?”
“아니, 내 기억에 없다니까.”
“그게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는 안다만 하나의 가정을 해 보자는 거지.”
그 악몽. 그것이 레이첼의 기억이 맞는데 어느 순간 어떤 연유로 기억이 봉인되거나 혹은 잊힌 거라면.
“그럼 가능한가.”
내 질문에 레이첼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부루퉁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의식의 저 너머까지 긁어 두려운 것과 마주하게 만드는 던전이니. 가능은 하겠지. 사실 네 말이 맞아. 내가 그냥 일반적인 종족이었다면 너무나 큰 충격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린 일일 수도 있지.”
하지만 절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수 없다는 레이첼의 말을 들으며 나는 머리를 굴렸다. 드래곤 로드면서 마지막까지 그걸 알리지 않은 원작의 레이첼.
게임에서도 최후의 최후까지 가서야 폴리모프 해제 키워드가 나온다.
더불어 아무리 무투가로 유희 중이라고는 하지만 마법을 절대로 쓰지 않고, 케인과는 달리 오러를 밖으로 빼내 날리거나 하지도 않지.
게다가 그 악몽은.
‘종족의 멸망만이 악몽은 아니었으니까.’
드래곤들이 하늘에서 추락해 땅에서 죽어 간다. 한 종족의 멸살. 거기에 그것만큼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너보다 강한 드래곤이 제약이나 봉인을 건 거라면?”
내 물음에 레이첼이 시원하게 웃었다.
“푸하하. 나보다 더 강한 드래곤? 불가능해. 내가……! 그 약간의 제약이 있는 지금의 상태라고 해도 본신의 힘만 따진다면 나보다 강한 드래곤은 있을 수 없어.”
내가 말을 안 해서 잘 모르나 본데 하며 레이첼이 말하기 시작했다.
“난 역대 최고의, 최강의 힘을 가진 존재야. 돌연변이나 다름없지. 원래도 레드가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나는 그 궤를 넘어섰어.”
네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와 같이 다니는 줄 아냐는 듯 으스대기 시작했다. 저러니 일반적인 드래곤의 이미지와 아주 잘 맞네.
“그렇다면 같은 드래곤이 아닌 신이라면?”
이번 질문에도 레이첼은 당당하게 웃었다.
“그 수많은 신들의 신격을 하나로 모은, 즉 유일신 정도 되는 힘을 가진 존재가 있는 게 아닌 한 불가능해.”
그리 말한 뒤 자신의 앞에 놓인 간식을 한입에 넣어 우걱우걱 삼켰다.
“내 본신의 힘이 반이 된 상태라 할지라도 나는 어지간한 드래곤보다도 강하거든. 알겠어?”
그런 레이첼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는 제법 식어버린 찻물을 냉수처럼 삼켰다.
본신의 힘이 반이 된 상태라는 말은 단순한 가정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보아온 소설과 플레이한 게임의 경험이 얼만데.
하나하나가 다 의심되는 것들뿐.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나같이 쓸데없이 아는 게 많으면 오히려 더 생각의 가지가 난잡하다.
그래서 그냥 대놓고 묻기로 마음먹었다.
“레이첼. 슬슬 털어놓아도 되지 않아?”
“뭐, 뭐를?”
내가 떠올리는 몇 가지의 가능성 중. 가장 유력한 것.
나는 레이첼의 가슴께를 바라보다 이내 눈동자를 움직여 레이첼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너의 악몽은 드래곤 하트에 관련된 건가?”
내 물음에 레이첼의 시선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