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9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94화(194/373)
‘정황상 불의 정수가 레이첼의 드래곤 하트가 맞아.’
심증뿐이지만 사실 내 안에서는 거의 100%로 그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맞아. 네가 본 내 악몽의 내용은 내 드래곤 하트와 관련되어 있어.”
내 질문에 레이첼이 표정을 굳히다 결국 입을 연다. 그에 나는 이마를 문지르다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펜을 잡았고 레이첼이 그런 내 손목을 잡았다.
“이거 누구에게도 비밀이야. 기록도 남기지 말고 입도 열지 마. 알겠어?”
“…좋아. 대신 모든 걸 다 말해 주면 좋겠는데. 혹시 알아? 내가 도움이 될지.”
내가 펜을 놓으며 웃자 레이첼도 내 손목을 놓으며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네가? 퍽이나. 아니지… 저 자식 은근히 쓸모 있으니까 뭐라도 나올지도…….”
“앞에 있는데 대놓고 중얼거리면서 고민하지 마라.”
하여간 힘만 세서. 나는 잡혔던 손목을 허공에 한번 흔들 듯 털며 입을 열었다.
“마나를 밖으로 방출하지 않는 것도 그것과 관계있지.”
“…맞아.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야.”
레이첼이 천천히 손을 올려 자신의 가슴 위에 얹었다.
“나에겐 드래곤 하트가 반밖에 없어.”
“언제부터?”
내 물음에 레이첼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어지간히도 말하기 싫은 듯 입술만 달싹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기억의 모든 순간부터.”
저번에도 잠시 말이 나왔지만 드래곤은 망각하지 않는 존재.
알에서 깨어난 이후부터. 아니지, 알에 있으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기부터 아마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에 드래곤 하트가 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드래곤 하트가 반이었다면 그냥 그것이 원래 온전한 모습이 아닌가? 왜 반이라고 생각한 거지?”
내 물음에 레이첼이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으며 흉흉한 눈으로 이를 으득 갈았다.
“아니. 이건 절대 반일 수밖에 없어.”
그녀가 손을 들어 손날로 허공을 위에서 아래로 자르는 흉내를 내었다.
“내 하트. 이렇게 되어 있거든. 아주 절묘하게,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져 있지. 그래서인지 내 몸 안의 마나는 컨트롤할 수 있지만 외부의 마나는 쉽게 제어가 안 돼.”
레이첼이 한번 말을 쉬며 찻주전자를 들어 뚜껑을 열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잘못하면 마법 한번 쓰려 하다가 내 주위가 터져 나갈 수도 있단 소리야. 이 말이 웃긴 게 뭔 줄 알아?”
드래곤 하트가 반으로 잘린 난 마법을 목숨 걸고 써야 한다는 거야.
레이첼이 말을 흩으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마법의 근원이자 종주인 드래곤이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하다못해 폴리모프조차 외부 마나와 연계해서 써야 해. 그 말은 난 본신으로 현현하는 것조차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단 소리야.”
그런데 난 분명 크고 거대한 내 몸을 가지고 하늘을 날며 브레스를 쏘아대고 즐긴 기억도 가지고 있단 말이지.
레이첼이 그리 중얼거리면서 다리를 꼬아 앉으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기억이 조작된 부분은?”
“절대 없어.”
단호하다. 레이첼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저게 맞다는 건데.
말이 안 되잖아.
“어느 시점까지는 드래곤 하트가 반쪽이 나 있어도 마치 완전한 하나가 있는 것처럼 살았단 말이지. 아무 의심도 없이.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된 거야.”
허공을 툭툭 치는 것 같은 손사래. 빈정거리는 느낌이지만 웃으며 말하는 모습과는 달리 눈에서는 붉은 돌이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운 불꽃이 일렁거리는 것 같다.
자존심덩어리 그 자체인 드래곤. 개중에서 가장 다혈질이며 파괴적이고 흉폭한 성질이라는 레드드래곤.
그런데 이런 부조리함과 말이 되지 않는 현실에 레이첼이 받는 스트레스와 분노는 얼마나 강하고 깊을 것인가.
‘폭력중독자.’
화가 나고 화가 나서. 드래곤이 마법을 목숨 걸고 써야 한다는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서 몬스터를 쓸어버리며 억눌렀던 건가.
‘그래서 원작에서도 게임에서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기 전엔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녀도 죽음을 각오하고 본체로 현신했던 거겠지.
문제는 사실관계가 너무 뒤엉켜 있다는 것이다.
“제로를 불러 줘.”
“그래. 난 나가서 술이나 마실 거니까 오늘은 더 부르지 마.”
레이첼이 평소와는 다르게 가라앉은 분위기로 손만 흔들며 나간다.
내가 마나장막을 만드는 아티팩트를 아공간으로 회수하며 테이블을 정리하는데 제로가 슬쩍 들어왔다.
“저. 뭐 잘못한 거 있습니까?”
“없어. 거기 앉아 봐.”
내 얼굴 보자마자 잘못한 거 있냐고 묻는 걸 보니 이건 역시 종족불문하고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구만.
나는 제로에게 마나장막 좀 치라고 하며 레이첼 때문에 슬쩍 놓았던 펜을 다시 들었다.
“내가 왜 불렀는지 짐작은 해?”
내가 펜으로 양피지를 톡톡 치며 하는 말에 제로가 자신의 큰 체구를 억지로 뭉쳐 작게 만들며 어쩐지 잘못한 거라도 있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충은… 짐작합니다.”
그래? 제로 녀석 언제 저렇게 심계가 깊어졌지.
나는 오호라 하며 턱을 매만졌다.
“뭔데.”
“…던전의 악몽 때문이 아니십니까.”
네가 레이첼보다 똑똑한 건 맞는 거 같다. 내가 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 그래서 말인데.”
내가 말을 덧이으려던 순간 제로가 의자가 아닌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그 모습에 내가 놀라 말없이 바라보니 제로가 고개를 숙였다.
“전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델리안 님. 정말입니다. 저는…….”
어쩐지 우울하게 깊어진 보석안으로 제로가 고개를 든다. 나는 그 모습에 저 녀석이 왜 저러는지 단박에 깨달았다.
“널 탓하거나 위험 인물 취급하려고 부른 거 아니니까 일단 다시 앉아 봐.”
나는 일단 제로의 어깨를 잡아 의자에 다시 앉혔다.
물론 이번에 본 내용 덕에 제로가 얼마나 위험도가 높은지 새삼 깨닫긴 했다.
어찌 보면 메인 인카운터 중 흑마법사가 연류된 언데드의 준동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제로가 더 악질이긴 해.’
어제의 동료가 오늘 스켈레톤이 되어 맞싸우는 것보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도 동료 그 자체지만 사상만 바뀌어 싸우는 게 더 지옥 같긴 하겠지.
‘그런데 뭐.’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내가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아닌 한, 인간이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게다가 제로는 계약서라는 보험이라도 있지, 악신교단은 그마저도 없다.
‘게다가 실제로 하길 했어, 뭘 했어… 어?’
나는 제로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 던전에서 본 악몽 말이야.”
내가 웃으며 건네는 말에 제로가 시선을 내린다.
“그거, 기억이지?”
“아닙니다.”
내 물음에 제로가 아주 단박에 대답을 했다. 진실이라는 듯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나름 자신의 진실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던 거 같은데.
나는 낄낄거렸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야지, 제로야.”
그렇게 단박에 부정하면 네가 내 말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보여주는 꼴밖에 덜 되냐.
나는 의자를 당겨 앉았고 그 모습에 제로가 움찔거린다.
“숨기지 말고 전부 말해.”
“…정말 제 기억이 아닙니다. 저 아닙니다.”
“그럼 또 다른 너라도 된단 소리인가.”
내가 여상스레 읊은 말에 제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기억이라는 것은 결국 있었던 일에 대한 뇌의 저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모든 일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아주 중요한 것들, 혹은 중요하더라도 결국 잊히는 기억은 무의식으로 넘어가기 마련.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삭제되진 않겠지. 그러니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부터 시작되는 가장 두려운 공포를 보여주는 바다마녀의 던전에서 그런 악몽이 나온 것일 터.
지금의 제로는 당연히 저런 적이 없지만 레이첼의 악몽도 그렇고 제로의 반응에서 나는 확신했다.
‘돌이끼. 도대체 원작에서 뭘 얼마나 감춘 거냐.’
나를 이곳으로 보낸 레이첼, 그리고 이곳에서 드래곤 하트의 반이 없어 함부로 마법을 쓸 수 없는 레이첼.
그 힘의 격이 다르나 결국 둘 다 레이첼인 건 맞다.
그렇다면 단순한 짐작이다. 하지만 다년간의 서브 컬쳐계에 몸담은 강수호로서는 거의 확신했다.
‘이거 일종의 회귀나 루프물이라도 되는 거 같은데.’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를 보는 제로에게 환하게 웃어주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제로야.”
“예, 예… 아델리안 님.”
“그냥 아는 거 다 털어놔라.”
그게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한 길이니까.
* * *
일렁거렸다.
눈앞에서 색채가 옅은 번짐으로 녹았다.
‘예뻐.’
보고 있으면 포근하고 아늑한 빛.
생명체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몸의 내부까지 금속이나 돌로 이루어진 골렘이 아니라면 보통은 말랑한 부분이 있고 그것은 물로 이루어졌다.
가진 힘이 강대하여 태어나기 전부터 힘을 쪼갤 수밖에 없었던 레비니아였다.
무사히 성인이 되어 계승식을 치렀다면 바다 그 자체의 힘을 다룰 수 있었을 존재.
다만 지금은 회복과 정화의 힘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레비는 그 눈 또한 특별했다.
‘사심 없이 나를 정말로 아끼는 빛.’
아주 어릴 때나 본 적 있던 무조건적인 우호와 애정의 일렁거림.
‘어째서?’
모든 감정의 일렁거림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레비니아 자신을 향한 꽤 깊은 진심이 담긴 감정만이 옅은 아우라처럼 비친다.
동굴에 자신을 데리러 왔던 형제들 정도의 악의나 적의는 보이지도 않는 수준.
자신을 팔아넘길 생각에 사로잡혔던 바룩에게서나 부정적인 색채가 일렁거렸지, 보통은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경멸, 호기심, 친밀감. 혹은 동정심이나 우월감까지. 아주 희미하게 품는 것들은 눈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레비는 자신을 볼 때마다 따스하게 일렁거리는 색으로 몰아치는 아델리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얼른 그의 다리에 붙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파동은 아니었으나 어쩐지 닿고 있으면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처럼 마음속이 따뜻해졌으니까.
처음 본 순간부터.
‘사실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레비니아 자기마저도 자신을 저런 일렁거림으로 볼 수는 없었을 테니까.
저런 일렁거림으로 레비니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숨기지 않고 약한 부분을 다 보여 줘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말이지. 저 녀석 어떻게 치료가 안 될까?”
아델리안이 레이첼과 제로하고만 놀아 주던 것도 잠시.
지금은 레비를 불러 슬쩍 신의 계약서를 들이밀며 케인을 눈짓하자 레비니아가 큰 눈을 껌벅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세심한 컨트롤 같은 거 잘 못해.”
양손에 물의 마나를 묻혀서 샥샥 비비니 연한 푸른색 잉크처럼 변한다. 그것을 레비니아가 신의 계약서에 처덕하고 손도장을 찍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해.”
한 손은 계약서에 그리고 다른 손은 아델리안의 가슴 위에 척 올리며 말하니 아델리안이 눈썹을 까딱거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엘프나 페어리. 노움이나 드워프. 그리고 인어족은 요정족이야.”
“그건 나도 알지.”
아델리안이 눈을 길게 휘며 오만한 얼굴로 웃었다. 저 따스하고 부드러운 일렁거림이 아니었다면 오만하며 자기만 아는 인간족이라고 생각했을 표정으로.
“요정도 정령이야. 특히 나는 아성체 상태라서 더욱 물질계보다는 정령계에 친화력이 높아.”
“그래서?”
“정령은 계약이 가능해.”
레비니아가 헤 웃으며 아델리안의 가슴을 챠닥거렸다.
“나 대신 네가 해. 계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