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9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95화(195/373)
“제발! 제발 내 아이를 살려주시오.”
손가락마다 낀 반지와 질 좋은 천으로 만든 옷. 고급향수의 향내와 영양을 잘 섭취한 덕에 반드르한 피부는 중년의 사내가 얼마나 부유한지 잘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란 불신자에겐 공평한 법.
아무리 돈을 신전에 쏟아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단기간에 생긴 병이나 상처가 아닌 타고난 몸이 약하여 새어나가는 생명력은 어쩔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대로 뛰어 본 적도 없는 게 이 아이인데. 너무 원통하구려. 이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사내가 웅크려 엉엉 울었다. 그 품에는 마르고 가냘픈 아이가 이미 숨이 죽어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려 안겨 있었다.
얼굴만이 분칠을 해 살아있는 것처럼 희고 뺨은 장밋빛이 도는 게 마치 자는 것 같았으나 손끝이나 드러난 발목은 퍼렇게 질린 상태.
“이런… 그러게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희의 살아있는 신을 믿는다면 행복할 일만 남으셨다고.
그런 중년 사내의 귀에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그 잘난 만신전의 신들에게 돈과 신앙을 바쳐봐야 무엇합니까. 남은 것은 이리도 차가운 아이일 뿐.”
“미안, 미안하오!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어. 죽은 이도 살린다는 게, 그게 말이 되지 않으니까.”
잘게 주름진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한 달에도 수백 골드가 만신전의 신전에 헌금으로 들어갔다. 많은 헌금으로 받는 특혜. 성수와 축복 그리고 치료.
그것들이라면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발… 제발 부탁하오.”
사내가 아이를 안고 엎드려 빌 듯 간청하자 로브를 입은 이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 기울였다.
“하긴… 저희의 신은 관대하며 포용력이 넓으시니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성신교의 품에 안긴다면…….”
로브의 인영이 분칠 덕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발간 아이의 뺨을 가볍게 매만졌다.
그의 손이 지나간 자리가 분칠이 벗겨지며 퍼렇게 질린 피부가 어렴풋하게 드러났다.
“그럼 저희 살아있는 신의 기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만신교의 신들은 죽은 것들.
그것은 모습도 없이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말만 지껄이는 입만 산 허깨비에 지나지 않을 뿐.
그렇게도 위대한 신이라면 어째서 죽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따라오세요.”
“고맙소! 고맙소. 내 정말 아이만 다시 보게 해 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주겠다 약속할 수 있소.”
로브를 입은 이가 등을 보이며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중년의 사내가 아이를 안고 일어나 비척비척 따랐다.
“리저렉션 같은 마법은 드래곤조차 자주 할 수 없죠. 만신전의 대사제라 해도 자신의 수명을 깎아야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죽은 지 하루. 드래곤이라면 사흘 안에 해야 하는 법.
“하지만 그 아이는 죽은 지 사흘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마법으로 시신의 손상을 억제했다고는 하나 죽은 지 3일이 지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저 중년의 사내가 있던 곳에서 이곳, 성신교의 교단 본부까지 오는 길은 게이트를 탔다고 가정해도 7일은 족히 걸린다.
어딘지 쉬이 밝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데다 제대로 길도 없으며 근처에는 작은 마을 또한 존재하지 않으니까.
다만 아이를 살려야겠단 절박함으로 단 하나의 끈처럼 살짝 닿았던 인연을 쫓고 쫒아서 성신교의 본부까지 왔을 터.
“기적을 받으러 오신 분이군요.”
“성신의 품에 안기십시오.”
“우리의 살아있는 신을 위해 기도하시길.”
로브의 인영과 중년의 사내를 스치는 이들은 전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마치 세상이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자신만은 살아남아 행복할 거란 믿음을 지닌 이들처럼.
그런 모습을 눈이 불거져 보던 중년의 사내가 잠시 멈칫거리다가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광신도의 집단.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아이를 살려만 준다면야 그 광신의 소용돌이에 제 한 몸 던질 준비쯤이야 되어 있었다.
이미 죽은 지 한참 지난 아이를 다시 따스하게 안을 수만 있다면 뭔들 못 하겠는가.
만신전의 대사제가 오더라도, 드래곤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절대로 살릴 수 없는 아이.
고작 마법으로 문드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란 이 세계의 상식을 부숴준다면.
광신이 곧 상식이 될 것이다.
“이제 예의를 갖추세요. 고개를 들지 말고 황제보다 더한 존경과 공경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성신교의 가장 안쪽, 가장 거대한 문.
그 문 앞에서 읊조리는 말에 중년의 사내가 아이를 안고 고개를 숙였다.
대륙의 누구를 데리고 와도 힘으로 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거대한 문에 로브의 인영이 손을 올리니 마치 구름이 흩어지듯 부드럽게 문이 열린다.
그리고 탁, 하고 피어오르는 향기로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향기가 어둠속에서 번졌다.
그 공간은 어둠이자 빛이고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혼돈이었다.
곳곳에 듬성듬성 놓인 속성 비보.
그것들이 마치 심지에 불을 붙인 초처럼 느리게 소멸하며 피워 올리는 거대한 마나.
그 마나가 한데 모여 밤하늘처럼 어두우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없이 눈부신 것들로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허공에 누군가가 떠올라 속성 비보들이 소멸하며 내뿜는 마나를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눈을 뜨자 그 휘광이 마치 불처럼 일어 어둠속에서 아찔하게 흔들렸다.
“성신이시어.”
입구부터 무릎을 꿇고 기듯 걸어 들어가니 등 뒤에서 문이 스륵 닫힌다.
마치 밤하늘에 빠진 것처럼, 혹은 밤하늘이 비친 수면 위를 걷는 것과도 같이 사방이 어둡고 빛이 났다.
“당신을 향한 신앙으로 한걸음 들어가겠나이다.”
높은 마나의 밀도 덕에 목소리가 마치 물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웅웅거리며 깨졌다.
어둡고 밝은 공간, 그 중심에 떠있던 이가 손을 들어 살짝 움직이니 중년 사내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컥 하고 마른 숨을 토하며 이내 잘게 경련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몸이 온전함을 확인하는 것처럼 자잘한 경련이 몇 번 이어지더니 쿨럭거리던 숨이 잦아들며 이내 잠든 것처럼 고르게 번진다.
품에 안고 안아 냉기는 돌지 않았어도 온기조차 없던 아이의 몸이었는데, 점차 자신의 팔 안에서 따스하게 차오르는 감각에 중년 사내가 짐승처럼 오열했다.
그 모습에 로브를 입은 인영이 사내를 뒷걸음질로 물리고는 홀로 이 공간에 남아 고개 숙여 입을 열었다.
“기억은 정리되셨습니까.”
사내의 물음에 허공에 떠있던 이가 느리게 바닥으로 내려왔다.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으나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신.
손가락을 퉁겨 마나를 뭉쳐 가운 같은 것을 몸에 두르고 마찬가지로 허공에 마나를 뭉쳐 보이지 않는 의자처럼 만들어 앉아 무료하게 턱을 괴어 음색했다.
“아직, 어차피 그것은 급한 게 아니다.”
언제나 조금씩의 변수는 있었으니. 기억이라는 것은 대조할 무언가가 있어야 우선순위가 높은 법.
“결국 내가 모든 힘을 찾으면 되는 것을.”
미려한 목소리. 짙은 마나 덕에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어둠속에 일렁이는 모습으로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만 고르고 다듬은 것 같은 목소리만 공간에 울렸다.
“쓸모없는 것들은 죽여라. 필요한 이들은 내게로 데려와.”
당장이라도 별의 옥좌에 오를 수 있으나 그러지 아니한 것은 단 하나 있는 변수를 없애기 위해.
“좀 더 살아있는 것들을 죽여. 무가치한 몬스터나 아인족은 필요 없다. 그들은 이미 패배한 족속들이므로.”
위대한 승리자. 인간족은 하찮은 목숨 하나하나가 내 힘을 누르고 있으니.
“이 세계를 움켜쥐고 있는 것에 내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비보들은 언제 다 가져올 거지?”
가장 필요한 지식만이 뇌리에 남아있다.
별의 옥좌와 관련된 것들. 나아가야 하는 방향. 비보의 위치 같은 것들.
원한다면 너무나도 많아 잘게 잘게 쪼개둔 기억을 삼켜 흡수하면 되지만 지금 그럴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조금이나마 기억을 돌리시는 게 편하진 않으시겠습니까.”
“기억이 많다는 것은 상념이 많은 것. 몸을 단련하는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불필요한 감성에 젖을 필요 없다는 듯 어둠이 웃었다.
“가장 완벽한 육신을 가장 완벽하게 꽃피워야 하니까.”
어서 나머지 비보를 찾아오도록.
잠시 손짓하더니 어느 순간 로브를 입은 이는 자신이 문밖에 나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닫힌 그 거대한 문을 보며 로브의 인영이 로브 안쪽에 새겨진 성신교의 문양에 손을 얹고 느리게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살아있는 신을 위해.”
* * *
계약자?
갑자기. 여기서요?
나는 방실 방실 웃는 레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허, 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일종의 정령사를 하라?”
“응!”
너무 해맑은데.
이미 귀부인 레비의 일러스트는 내 기억에서 부스러기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게 뭔데.”
내 물음에 레비가 짤뚱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탱탱 쳤다.
곤약 젤리 같았다.
“나는 네게 마정석을 지원받을 수 있어. 그냥 양도랑은 달라. 계약을 하게 되면 계약자가 주는 것은 일종의 계약지속품으로 들어가니까 효율이 더 높아져.”
그럼 내가 다시 각성하는 데 좀 더 시간이 빨라지지. 하고 으스대는 게 귀여워 물끄러미 바라보다 웃었다.
“내가 얻는 건?”
“내 힘을 네가 쓸 수 있어. 물론 물의 마나를 제어해서 다방면으로 응용하는 건 나를 거쳐야 할 테지만.”
단순한 규모가 작은 힐이나 정화 같은 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말.
“솔직히 말해 봐, 레비. 너 단일 힐이나 정화 안 되지.”
“응!”
참나.
나는 크게 웃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내가 레비를 힐러로 원하는 건 알았는데 컨트롤에 자신은 없고 마나도 좀 더 효율적으로 모으고 싶다 이거구만.
하긴 종종 보아온 레비의 능력을 생각하면 다급한 전투 와중에 힐을 적재적소에 넣긴 힘들 터.
“바다 근처라면 모르지만 멀어질수록 나는 물의 마나를 아끼기 위해선 수면에 들어가야 해. 그러니 계약자인 네 물건에 깃드는 게 최선이고. 게다가 그 물건은 내 힘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아티팩트여야 해.”
레비의 말에 나는 턱을 매만지다가 아공간에서 코덱스를 꺼내 흔들었다.
“이 정도면 어때.”
내 물음에 레비가 큰 눈을 껌뻑거리다가 방실 웃었다.
“그 정도 아티팩트로는 안 돼. 내가 각성 전이라서 이런 거지, 사실은 아주 아주 강하고 위대하단 말이야!”
짧은 다리와 꼬리로 바닥을 딛고 서서 양손을 만세 하듯 위로 올리는 모습에 나는 통통한 머리를 토닥였다.
그동안 레이첼이랑 너무 붙여놨나?
나는 레비를 보며 크루거의 반지를 돌리다 문득 손을 바라보았다.
“이건?”
반지를 낀 손을 흔들었다. 혈계 마법이 걸린 아마 이 대륙에서 가장 큰 아공간 아티팩트.
“그런 게 있었어?”
아티팩트의 가치를 함부로 알 수 없게 마법이 걸렸는지 내가 손을 흔들고 나서야 반지를 본 레비가 해바라기처럼 웃었다.
“좋아! 그럼 계약할까!”
“그전에.”
레비가 달려들기 전에 내가 손바닥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케인을 치료할 수 있는 건 맞지?”
“그건 계약자가 해야지. 잘해 봐!”
레비가 양손을 불끈 쥐고 하는 말에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