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9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99화(199/373)
남해 군도에는 여러 금지가 있다.
대표적인 소용돌이 지대와 그 근처에 있던 폭풍우의 섬.
까다롭기로 유명한 해양몬스터 크라켄의 영역.
그리고 마나엔진이 달린 배가 없으면 탈출할 수 없다던 무풍지대 등.
“이건 미친 짓입니다, 아르만 님.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예?”
아르만의 부관이 신전에서 받아온 하급 성물을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산한 밤안개와 달이 없는 그믐밤. 거기에 금지 중 하나인 무풍지대의 위압은 성수에 담근 뒤 신관의 축복까지 받은 성물을 쥐고 있음에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여기까지 와서도 그런 말을 하면 쓰나.”
부관이 달라붙으며 하는 말에 아르만이 와인을 병째로 들이켜며 피실 웃었다.
태연하게 말하는 체했으나 병을 쥔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걸 부관은 눈치채지 못한 채 아르만에게 붙은 그대로 성물을 손이 하얗게 될 만큼 붙잡고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무풍지대 아닙니까! 그래도 지금 초입이니까 늦지 않았습니다… 히익, 유령선!”
아르만의 부관이 눈을 슬쩍 떴다가 바로 확 감으며 아르만에게 더 붙었다.
남해 군도의 금지.
무풍지대는 그 악명에 걸맞게 초입부터 곳곳에 부서지고 삭은 배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떠돌고 있었다.
사람이 노를 저어 움직이는 게 가능한 크기의 배로는 오기 힘든 먼 바다.
하지만 정작 바람은 거의 불지 않는 지역.
그 두 가지의 조건이 합쳐진 이곳은 그 악명이 제대로 알려지기 전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가로질러 가던 이들의 안일함과 재수 없는 폭풍우 따위가 만들어 낸 난파선으로 가득했다.
그믐밤이라 시야가 넓지 않은 지금도 흐릿하게 파손된 배들이 곳곳에 보일 정도니 원래는 얼마나 더 많단 말인가.
“마나엔진이 고장 나기 전에 나갑시다! 들은 바에 의하면 해류도 약하고 태풍도 거의 안 오는 데다 바람마저 잘 안 부니 해초들이 어마어마하게 자라서 스크류에 잘 엉킨다던데요!”
부관이 성물을 꽉 쥐고 하는 말에 아르만이 달래듯 그의 어깨를 도닥이며 대답했다.
“이 바다가 얼마나 깊은데, 괜찮…….”
덜컹―!
아르만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희미하게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배에 살짝 진동이 온다.
그러고는 무언가 덜걱 덜걱 하더니 천천히 멈추는 배.
그것에 부관이 입을 뻐끔거리다가 무언가 자신이 말하면 더 악화될 것 같단 얼굴로 한 손을 올려 입을 막았다.
“너무 놀라지 마. 정 안 되면 해가 뜬 뒤 잠수해서 스크류에 감긴 것들을 풀면 될 테니.”
그 모습에 아르만이 부관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이런 상황을 아예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배가 무풍지대에서 멈추니 오싹하다.
‘하지만 나까지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
사실 아르만은 혼자 오려 했다. 혹시 잘못되더라도 자신만 잘못되면 될 테니.
하지만 걱정된다며 죽어도 되니 같이 가자면서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울고불고하며 쫓아온 게 아르만의 부관이었다.
그러니 살려 보내야지.
아르만은 괜히 자신이 말을 해 부정 탄 게 아니냐며 자책하는 부관의 등을 몇 번 더 두드렸다.
“혹시나 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스크롤이나 소소한 물품을 가져왔으니까 차라리 한숨 자는 게 어때.”
“하지만… 혹시 모르잖습니까. 이런 곳에서는 유령선이 나온다던데…….”
배까지 멈췄으니 도망가기고 힘들 테고. 저라도 불침번을 서겠습니다. 하며 와들와들 떠는 모습에 아르만이 피식 웃었다.
“그럼 그들의 배를 빼앗으면 될 것 아니겠어?”
아르만이 장난스레 하는 말에 부관이 투덜거리려 고개를 들었다가 순간 움직임을 멈춘다.
그믐달이 뜬 밤.
그렇지만 그 어두운 밤이라도 별빛은 존재하기에 희미한 윤곽으로 어슴푸레하게 보이던 사방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가끔 들리던 나무가 비끄덕거리던 소리, 아주 잔잔한 물소리와 더불어 무언가 흘러가는 소리가 모두 지워진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본능과 어서 확인해야 한다는 본능.
‘하지만…….’
저번에 만난 그 엘프보다는.
아르만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보이는 건 거대하디거대한 해룡의 머리.
그 짙은 청람색의 비늘과 주황색의 눈동자.
그것이 집채만 한 입을 쩍 벌리더니 그대로 배를 삼켰다.
* * *
“난 네가 놀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페어리퀸이 들여보내 준 동굴을 따라 걸으며 하는 말에 묵묵히 곁에 서 있던 케인이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지.”
페어리를 만날 때면 늘상 몸이 줄어드니까. 저번에 접경지에서는 케인이 따로 활동한 덕에 경험이 없었을 테니 좀 놀라지 않을까 했는데.
눈동자를 움직여 케인을 바라보니 당황한 기색 하나 없다.
“살기도 없었으며 네가 하던 일이 있었으니.”
내가 사탕을 굴리며 돌아다니는 것과 더불어 살기가 없었다는 것 덕에 몸이 줄어들고 수면 위에 떠 있던 것도 그러려니 했단 소리.
‘역시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더니.’
어지간한 일은 케인 자신이 해결할 수 있어서일까. 나라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지금 여긴 어디인지 생각하느라 바쁠 텐데 저 녀석은 수틀리면 다 부수고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서 편한 것이다.
이래서 먼치킨이란.
이래서 주인공이란!
나는 혀를 몇 번 차며 식물의 뿌리가 여기저기 드러난 동굴을 쭉 걸었다.
“그 망토는 어떤 아티팩트지.”
생각보다 동굴은 길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벽에 드러난 식물의 뿌리가 은은히 뿌리는 빛 덕에 어둡지는 않았으나 지루했다.
그건 케인도 마찬가지였는지 나에게 묻는 말에 내가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몸을 가볍게 해 주고 잠시지만 허공에 띄울 수도 있지. 마나가 많고 망토의 주인으로 확실하게 인정받으면 그것으로 날 수도 있고.”
나중에 점프와 급가속, 급감속을 특별한 몸의 부담 없이 도와주는 요정의 신발까지 얻으면 내 이속 관련 아티팩트는 졸업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당장은 망토만 얻어도 좋다. 아예 부담을 줄여주는 요정의 신발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부츠 아이템으로 속도 보정을 받으면 적어도 파티원들의 짐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테니.
“이제 짐처럼 들려갈 일이 줄어든단 말이지.”
아직 요정의 신발은 없어서 저번 소용돌이 지대처럼 최대한 빠르게 전장을 벗어나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야.
적당한 이동 정도면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거란 내 말에 케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그나저나.”
너무 오래 걷는데.
아무리 페어리 정도로 사이즈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내가 가볍게 동굴을 둘러보았다.
부유감 덕에 환상은 확실히 아닐 테고. 그렇다고 단순하게 길이 길다고 하기엔…….
느리게 동굴 벽에 손을 대니 까슬한 흙벽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나는 케인을 흘긋 보며 입을 열었다.
“길이 반복되는 걸까. 아니면 단순하게 길다고 생각해?”
“글쎄.”
뭐 있네.
저 녀석 성격에 무언가 이상하다 싶으면 단박에 말해 줬을 것이다.
혹은 이상하지 않다면 이상하지 않다고도 말했을 텐데.
‘글쎄?’
나는 눈을 조금 가늘게 떴다. 아마 함께 온 것이 케인이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좀 더 빠르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케인이니까. 무언가 이상하거나 위화감이 든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나에게 말해 줄 거라 생각한 게, 케인이라 오히려 내가 너무 마음을 놓은 게 패착이었다.
‘아니 믿었던 도끼 놈이?’
나는 웃으며 아공간을 열어, 보란 듯 양피지에 [케인 : 녹즙 1회]라고 적었고 케인이 양피지를 빼앗으려 손을 뻗는 순간 얼른 아공간에 집어 던졌다.
“억울한데.”
“물론 그러하시겠지.”
보아하니 망토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깨닫고 해야 한다고 듣거나 알아차린 모양.
나는 주위를 가볍게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벽에서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한 번 꺾어 표시한 후 다시 걸었다.
보통 이런 건 두 가지지. 빙빙 돌게 하거나 혹은 환상 등으로 눈속임을 하거나.
하지만 부유감 덕에 후자는 아닐 테고 같은 길을 빙빙 돌게 하는 류라고 생각했다.
다만 확신을 얻기 위해 나무뿌리를 꺾었고 역시나. 한동안 걸으니 내가 꺾은 뿌리가 달랑거리며 나를 반겼다.
간단하네.
“케인.”
나는 케인을 부른 뒤 손가락으로 가볍게 벽을 툭툭 쳤다.
“부숴.”
내 말에 케인은 왜냐고 하거나 그래도 되냐는 질문은 하지 않은 채 바로 묵빛의 스카를 들어 해머로 바꾼 뒤 벽을 쾅! 하고 쳤다.
흙더미가 무너지며 안쪽이 깊게 팬다. 하지만 다른 공간이나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닌가. 그 옆에.”
쾅!
우수수 무너지는 흙더미. 나는 태연하게 코덱스를 꺼내다가 아직 소용돌이 지대 이후 실드를 채우지 못한 걸 기억하고는 곱게 아이기스를 허공에 띄웠다.
“이번엔 이쪽?”
쾅―!
뭐 동굴 무너지면 케인이 알아서 지상까지 굴을 파 주겠지. 암. 그렇고말고.
동굴이 뭔가 살살 일렁거린다. 마치 이러지 말라는 듯 연약한 느낌으로 저 끝 쪽에 빛이 반짝이는 것도 같지만.
“이번엔 반대쪽 부숴 보자.”
내가 귀를 막고 말하자 케인이 말없이 스카를 휘두른다.
귀를 막았음에도 크게 쾅 하고 흙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시끄럽다.
아이기스 덕에 내 쪽으로 튀는 건 없었지만 등 뒤를 흘겨보니 우리가 지나온 길이 거의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있었다.
“그냥 다 부수면서 가 볼까?”
내가 실실 웃으며 하는 말에 케인이 그러든지 하는 눈으로 스카를 쥐는데 저 앞쪽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것이 깜빡거리더니 순간 사방이 환해졌다.
마치 얼른 이쪽으로 오라는 듯 동굴이 넓어지며 몇 미터 앞에 야광 이끼로 가득한 방이 보였다.
아마도 원래라면 다른 방법이 정석이겠지.
뭐 뿌리가 튀어 나와 있었으니 그것의 패턴이나 혹은 마나의 흐름. 아니면 망토가 만족할 때까지 근성을 보인다거나.
‘하지만 알 게 뭐야. 치트키를 옆에 두고 안 쓸 이유가 있나.’
이해는 간다. 나야 워낙 아티팩트가 많은 데다 그것들의 가치가 높은 것들이 많아 무덤덤하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으니까.
바람 비늘의 망토 정도면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쳐 얻을 만한 아티팩트니 산 넘고 물 건너 고생고생해 가며 얻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내가 왜.’
이걸 얻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나에겐 필요한 아티팩트인 게 맞지.
그런데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못 얻어도 상관없거든.
나는 마치 얼른 이리로 오라는 듯 반짝거리며 허공에 동동 떠있는 망토를 바라보았다.
“함정 있냐?”
“글쎄.”
“여기도 싹 돌아가며 벽 다 부숴 볼까?”
내 말에 허공에 둥둥 떠 마치 아우라를 뿌리듯 빛나던 망토가 빛이 점점 죽는다.
“혹시 모르지. 저거도 가짜일지. 꽤 그럴듯한 모습으로 방심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망토도 한번 망가뜨려 보자.”
내 말에 케인이 스카를 해머에서 검으로 바꾼다. 검 끝에 살짝 톱니도 생긴 것이 대충 휘둘러도 그 끝에 걸리면 찢어질 것처럼 살벌했다.
그 모습에 망토가 빛을 죽이더니 슬쩍 내 쪽으로 날아온다.
이노센트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에고 아티팩트는 미궁 도시 라비린에 있는 대미궁의 99층에 존재하는 에고소드뿐.
그러니 제대로 된 자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원래 무언가의 인정을 받고 어쩌고 한 조건이 달린 아이템은 저런 모양인지, 어째 케인과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바람 비늘 망토를 내가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