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화(2/373)
기분 좋게 잠이 들었던 거 같다. 쩝쩝 입맛을 다시니 어째 공기마저 달다.
눈 뜨기 싫어서 사그락거리는 이불을 안고 고개를 비비는데 문득 마지막으로 본 글자가 생각났다.
‘레이첼?’
참나, 나도 모르게 실실 헛웃음이 났다. 레이첼이라니 말이 되나.
그 오만한 레드 드래곤은 소통 장애만 모아 둔 것 같은 케인의 파티에서도 다혈질로 유명한 히로인이었는데.
‘그렇게 정중한 메시지?’
GM이랍시고 히로인 이름을 차용한 모양인데 어지간해야지,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히로인이 무슨 답장이야 답장은.
그나저나 내 침대가 이렇게 매트리스가 좋았던가.
오늘따라 아주 몸이 착착 감기다 못해 내 몸의 모양대로 만든 것 같다.
“아델리안 님.”
멀리서 소심한 박수 소리가 들린다. 마치 손바닥끼리는 붙여놓고 손가락으로만 치는 박수 같은…….
‘어 이거…….’
케인 파티에서 소심함을 담당하던…….
나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켜서 소리쳤다.
“루나!”
“히익! 잘못했어요!”
하얀 털 뭉치 두 개가 아래로 쑥 꺼지는 잔상과 더불어 화려한 방 안이 보인다.
멍하게 잠이 덜 깬 눈으로 둘러보니 하얀 귀를 양손으로 누르고 쪼그려 앉아서 떨어대는 소녀가 한 명. 그리고 화이트와 골드를 기본으로 꾸며진 화려한 거실.
아니, 이거 방인가?
나는 네다섯 명이 누워도 될 거 같은 침대 위에 있었다.
“이거 뭐야.”
“흐앙, 죄송해요. 깨워서 죄송해요오…….”
하지만 일어날 시간이신데…….
입으론 뭔가 꽁시랑 거리고 눈에선 눈물을 퐁퐁 쏟아내는 소심한 토끼족 소녀에 화려한 방.
나도 모르게 일어나 거울로 향했다. 긴 황금색 머리칼과 푸른 눈, 싸가지 없어 보이는 얼굴.
이거, 이거. 그거잖아.
“내 특전…….”
“우으… 아델리안 님…….”
아델리안.
* * *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황금의 귀공자]대표 Traits : [금력(A)] [오만(S)]
히든 Traits : [부유감(S)] [사용자의 눈(SSS)]
나는 손을 휘저어 특성 창을 껐다.
반나절 동안 멘붕하며 알아낸 건 여긴 이노센트 사가 안이라는 것.
원작인 케인 사가엔 ‘아델리안’, 즉 내가 없었고 이 NPC는 내 펀딩의 특전으로 추가된 옵션이니까.
히로인 중 한 명인 가디아의 동생이자 케인과 가디아의 회상에만 등장하는 말 그대로 쩌리 엑스트라.
“으아아!”
쨍그랑!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자 눈치를 보며 케이크를 먹던 루나가 포크를 떨군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분홍 눈에 분홍색 머리를 한 토끼족을 노려보았다.
“아우…….”
“울지 마. 울면 케이크는 영영 못 먹을 줄 알아.”
야단났다, 야단났어.
나는 울지 않기 위해 기다란 자신의 귀를 잡아 입을 막는 토끼 소녀에게서 고개 돌리곤 다시 내 머리를 쥐어뜯었다.
‘미친 강수호. 그냥 뻔뻔하게 메인 스트림에 넣어달라 했어야지! 돈을 그 정도 냈으면 당당하게 표지에서 주인공 옆에 서 있는 비중의 캐릭터라도 요구했어야지!’
뒤로 갈수록 초인이 판치는 이노센트에서 고블린 만큼이나 무능력한 데다 결국 가문의 인장이 필요한 가디아에게 목이 쓱싹 잘리는 엑스트라.
주인공인 케인을 위해서라면 가문도 동생도 등질 수 있는 가디아의 차가운 성격을 나타내는 장치로나 쓰이는 역할.
나는 순간 서늘해진 내 목을 손으로 슥 만지다 이젠 거의 식어버린 눈앞의 찻물을 삼켰다.
“루나, 펜이랑 종이 좀 가져와.”
“네! 도련님!”
내 눈치를 살피던 루나가 케이크를 못 먹게 한다는 말 대신 다른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신나서 달려 간다.
누가 토끼족 아니랄까 봐, 개빠르네, 정말.
눈 깜짝할 새 돌아온 루나의 손에서 종이 뭉치와 깃펜을 빼앗아 당장 기억나는 것들과 더불어 트레잇을 적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돌아갈 수는 없는지.
이런 건 사실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이해했으니까.
중요한 건 어떻게 해피 엔딩을 볼 것인가. 그것이다.
애초에 케인 파티가 똥망한 건 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게임에서도 원작에서도 강해질 기회는 도처에 있었고 십중팔구까진 잡지 못했어도 반타작은 했으니까.
문제는 단 하나.
케인 파티의 구성원이다. 개노답 삼 형제도 아니고 개노답 7남매(비 물리).
의견 소통? 그게 뭔가요?
인간 불신 케인. 난폭한 손맛 주의자 레이첼. 쌀쌀맞다 못해 남자라면 일단 얼리고 보는 가디아에 소심 울보 겁쟁이 루나.
사람이… 아니, 지적 생명체가 7명인데 메인 캐릭터가 저 모양이다.
나머진 멀쩡한가 하면 그게 아니니까 케인이 그렇게 대륙의 재앙을 막아도 오히려 다들 케인이 원흉인 줄 알지.
앗, 당신이 저희를 구했나요? 하고 칭송하려 해도 닥쳐. 죽어. 혹은 얼음 마법이 날아오는데 누가 알아주냐, 누가.
기억나는 유물의 위치와 던전 파훼법을 한글로 몇 장이나 써대던 나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루나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레이첼이 양심은 있었는지 단 하나 챙겨준 특전인 ‘사용자의 눈’으로.
[루나 인덱스―울보 토끼족 메이드]대표 Traits : [소심함(S)] [귀여움(A)]
히든 Traits : [각력(A)] [광분(C)]
나는 히든 트레잇에 붙은 광분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봤다.
‘저건 안 돼.’
저 특성은 없다고 살아야… 아니, 개화시키면 안 되는 특성이다.
소심함 트레잇이 답답했던 나는 루나를 전투에 몰아서 써버리는 만행을 저질렀고, 그 결과 공격 후퇴 아이템 사용 모두 내 손을 떠나 버렸지…….
게임이 아닌 현실이 된 이곳에선 저 특성이 어찌 발휘될지 모르지만 궁금하지 않아. 절대.
나는 루나의 특성을 종이에 적은 뒤 다른 히로인들의 특성도 기억나는 만큼만 정리했다.
나중에 만나서 사실과 비교할 수도 있고 특성에 따른 공략법도 미리 세울 수 있으니까.
‘문제는 케인인데.’
[케인―칭호 당장 기억 안 남]대표 Traits : [불굴(SSS)]
케인의 이름과 특성을 적은 뒤 팔짱 끼고 앉아 종이만 노려봤다.
다른 특성? 히든 특성? 그런 게 저놈에게 중요하진 않지. 중요한 건 저 망할 불굴이란 특성이다.
처음부터 트리플 S였는지 초반엔 그냥 S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저게 진짜 함정 특성이란 게 문제지.
그냥 저 특성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읽었을 땐 ‘와 역시 주인공. 웅장해진다.’ 하고 생각했었다.
[불굴 : 이 특성은 해당 인물의 정신력에 따라 확률적으로 무력, 체력, 재생력을 유지 시키며 확률적으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처음엔 와 좋아 보인다 하고 생각한 특성이고 막상 써보니 나쁘지 않았다.
막말로 빨간 포션 하나 없어도 케인만 따로 적정 던전에 넣어 굴리면, 죽기 직전의 상처를 입어도 불굴의 의지라는 상태 이상이 떠 HP 1로 계속 생존했으니까.
처음엔 다들 개꿀이라 생각했지.
온갖 노가다가 다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저 불굴이란 특성이 사실은…….
케인의 정신력을 연료로 쓰는 특성이란 걸 알기 전까지.
깨닫고 났을 땐 그 어떤 NPC랑도 상호 작용 불가.
히로인과의 대화 및 행동 불가.
혼란이나 세뇌 같은 정신 공격에 대한 저항이 500%로 올라가 있는 상태 창을 보고 누군가는 환호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아니야.’
과몰입 오타쿠라고 부른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몬스터를 만나면 뜨는 공격 버튼 외 아무것도 눌러지지 않는 주인공을 어떤 이는 편하다고 좋아할 수도 있겠지.
‘난 아니야.’
좀 말재주가 안 좋은 의미로 기가 막히고 인간 불신에 불굴 아니었으면, 저거 개복치였을 거 같은데? 하고 생각되는 주인공이라도 나에겐 나름 소중했다.
‘어차피 원작에 개입 안 하면 내 목이 뎅겅이란 것도 주효했지만.’
간단하네. 케인을 찾아서 무슨 일이 있어도 불굴이란 특성을 지우고 시작한다.
그게 지금 최선이다.
* * *
혹자는 내 상황을 알게 된다면 이리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위험한 게 싫으면 그냥 목 잘리기 전에 누나인 가디아에게 다 넘기고 살면 되는 거 아니냐?’
응 아니야~
게임 설정상 대륙에서 제일 돈이 많은 크루거 가문의 모든 권한은 가주에게 몰집 되어있다.
어떻게?
응 마법으로~
혈통으로 내려오는 가문의 마법.
이것은 장자 우선이라 내가 죽지 않는 한 우리 누님은 내 허락 없인 1쿠퍼도 가문의 창고에서 꺼내 갈 수 없다.
절대적으로 협조한다고 맹세하고 계약서 쓰고 난리 부르스 추면 안 되냐고?
응, 안 돼.
남자 불신에 원래 개차반으로 설정된 아델리안의 말을 가디아가 잘도 믿겠다.
게다가 가주가 되면 대륙 어디에 있건 마법으로 돈을 꺼낼 수 있는데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아델리안에게 와서 아쉬운 말을 하는 가디아?
팬아트도 그렇게 나오면 온갖 쌍욕을 먹을 거다. 개연성 없다고.
게다가 이러나저러나 내가 개입 안 하면 소통 불가 개노답 파티는 바뀌는 일 없이 그대로 굴러가 케인의 악명이 온 대륙에 퍼지는 엔딩만 남겠지.
드래곤에 빙술사 등이 섞인 파티에서 누가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내겠는가.
괜히 케인에게 반한 여자들로만 굴러간 파티가 아니다.
그들을 감당할 다른 사람이 없던 거지. 맹렬한 사랑 정도가 아니면 버틸 수 없는 파티야 그건.
“결국 나님 뿐인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한숨만 나온다.
그나마 이 정도로 현실감 들지 않고 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 드는 건 내 히든 특성인 부유감 때문이겠지.
저게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애매하지만 이렇게 살갗에 닿는 바람도 볕도 현실적인 곳에서.
‘어차피 게임이니까’ 하고 생각이 귀결되는 걸 보면 내 정신적 방벽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내가 애써 바꿔서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며 앞으로의 일에 그 전쟁에 겁먹고 싶지도 않고, 일단은 가즈아!
“아델리안 님.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자기 머리만 한 분홍색 솜사탕을 든 루나가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다 나에게 물었다.
“경매장.”
한쪽 귀만 꺾여 쳐진 모습이 귀엽다.
나는 누님 스타일을 좋아해서 로리 타입인 루나는 미는 히로인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보니 눈이 즐겁네.
늘어진 토끼 귀를 잡아 쭉쭉 당겨주며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루나에게 다시 나는 입을 열었다.
“성년이 되어야 특성이 개화하거든, 게임 설정상?”
“아우우… 네?”
“토끼족은 15세가 성인이라 넌 이미 소심함을 바꾸긴 글렀지만 인간은 18세가 성인이라 생일 전에 대표 특성을 바꿀 수 있단 말이야.”
“으아… 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귀 좀…….”
이노센트 사가의 시작점은 주인공이 이미 성인이 된 후지만 이곳에 온 이후 며칠 동안 내가 알아본 바로 지금은 원작 소설의 초중반.
게임으로 치면 2년 전이었다.
예상이 맞다면 주인공의 생일 2달 전.
‘가족이 악신의 제물로 몰살당하고 지나가던 흑마법사에게 끌려가 생체 실험당한 뒤, 도망쳐선 도움을 청하는 사람마다 뒤통수 맞고 결국 노예로 팔려서 지금 경매장 지하에 있을 시간이다 이거지.’
잠깐만 떠올려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만 같다.
말로 하니 짧지, 저 구르는 걸 몇 권에 걸쳐서 하는데 저 중 사이다는 딱 한 번.
흑마법사의 배에 칼을 꽂아버리는 장면뿐이었다.
‘돌이끼 개자식.’
잠시 원작자에게 돌을 던지는 묵념의 시간을 가진 후 나는 말랑 보들한 감촉의 귀를 놓아주었다.
아, 저거 중독될 거 같은데.
처음부터 날 이곳으로 던져넣을 생각이었을까.
아델리안으로 눈 뜬 이곳은 크루거 가문의 본가가 위치한 향락 도시 라베스였고 거기엔 대륙 최대의 경매장이 있었다.
인신매매는 불법이라지만 거의 사장된 법이나 다름없으니 대륙은 늘 인신매매가 들끓었고 많은 인간과 아인족이 이곳에서 거래된다.
케인도 순박해 보이던 촌장이 준 물 한 잔에 이곳으로 팔려 왔고 말이지.
원작에선 어떤 암살 집단으로 바로 팔려 가고 게임에선 망겜의 망스트라인 내가 사서 검술을 연마하기 위해 살아있는 허수아비로 쓴다.
그러다 아무리 개 패듯 패도 검술 F도 안 뜨니 그냥 되판 다음 암살 집단으로 팔려 가는 것으로 바뀌었지.
그 많은 일을 겪었어도 복수하겠단 의지를 꺾은 적 없던 케인은 첫 살인 훈련과 동시에 불굴이란 특성을 띄우는데…….
그땐 뭔가 감동하고 이제 사이다의 시작이겠지? 하고 기대했던 어린 시절의 나. 그냥 창 닫아라, 제발…….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경매장 안으로 동반 출입 가능한 일행은 셋입니다.”
VVIP 전용 게이트 앞에 서 있던 엘프 문지기의 말에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들어섰다.
어차피 하나는 루나고 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호위로 붙은 이들 중 들어오겠지.
아직 본 경매는 시작 전이지만 VVIP의 특전으로 메인 상품을 제외한 물품은 미리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케인을 사러 가는 건 곤란해.’
주색잡기나 하던 망나니가 경매장에 와선 특정 인물을 경매 시작 전에 골라서 사 간다?
그것도 좋은 특성을 가져 쓸모가 정해진이도 아니고 아직 트레잇 확인 전의 인간 남자를?
아무리 평판에 신경 안 쓸려고는 하지만 그건 좀 아니지…….
‘그리고 누가 경매 시작 전에 먼저 사갈 리는 없어.’
그랬다면 게임상의 아델리안이 케인을 샀을 리도 없으니.
일단은 그냥 경매장에 구경 온 듯하다가 본 경매에서 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일단은 위층부터 가 볼까.”
나는 별다른 의도 없이 놀러 온 것처럼 말하며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