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0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00화(200/373)
“그럼 확인할 것은 다 했으니 돌아갈까?”
파이얀이 무난한 갈색 머리 갈색 눈동자로 리지를 바라보며 하수도 아래의 인신공양 흔적을 눈짓하자 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히 더 있다가 누군가와 마주치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리지의 수어에 파이얀이 으쓱였다.
“에이, 이 시간에 쓸데없이 하수도를 돌아다니는 이가 몇이나 있겠어.”
그래 봐야 범죄자들이나 혹은 몬스터 같은 것들이겠지 하며 파이얀이 덧붙이는데 순간 리지의 고개가 휙 하고 움직여 벽 너머를 가늠하듯 응시했다.
‘누군가 있다.’
리지의 수어에 파이얀이 미간을 좁혔다.
“아니, 이 야심한 시간에 냄새나는 하수도를? 그냥 부랑자 같은 건 아니고?”
‘강해.’
리지의 수어에 파이얀이 혀를 찼다.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들키기만 해도 모든 죄를 뒤덮어 쓸지도 모르는 일.
“황도라 좀 위험하긴 하지만.”
들키는 것보다는 낫겠지.
파이얀이 리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탈출할 준비해.”
‘잠시.’
파이얀의 긴 갈색 머리칼이 끝부터 천천히 허공에 녹듯 연기로 흩어지다가 멈춘다.
리지의 손 모양에 파이얀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 죽이게? 그게 더 별로지 않아?”
이곳에 온 적 없는 것처럼 사라지는 게 훨씬 편한 마무리일 텐데.
파이얀의 물음에 리지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기운을 감춰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이 같다.’
“네가?”
리지의 그 말에 순간 파이얀의 눈빛이 변했다. 재미있겠다는 듯 아주 흥미로운 것을 보는 눈으로 짙게.
파이얀이 잠시 리지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들어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지나 갈색의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하수도로 들어오는 거라 옷을 편하게 입고 오길 잘했네.”
그리고 천천히 변하는 외형.
청금색의 머리칼과 눈동자, 그리고 악취가 은은히 풍기는 하수도에서 머리를 맑게 해주는 연한 우드향.
조금은 유쾌하게 보이는 미남자, 라줄리의 모습으로 변한 파이얀이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보스가 왜 그렇게 구는지 알겠네.”
이거 좀 재미있을 거 같아.
* * *
“굳이 이 하수도까지 직접 내려오셔야 했습니까.”
“그 잔소리는 출발 전부터 들었어, 이옐.”
샤하드가 자신의 보좌관인 이옐의 말에 귀를 긁으며 대꾸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는 알아.”
그 습격의 날.
그날 이후로 얼마나 지났다고 마법으로 방비된 저택도 아닌 부랑자나 범죄자.
혹은 몬스터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도는 하수도에 직접 왔냐는 소리겠지.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성이 찰 거 같거든.’
샤하드가 자신의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로브의 인영을 흘긋 바라보았다.
자신의 방패.
이름은 이트라 밝힌 그 사내.
이노센트에서 동맹을 맺은 이들의 안위를 위해 붙인 최상급 골렘이자 감시자겠지.
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진짜였다. 애초에 오러 유저 상급인 이옐만큼만 강하다 해도 재생이 가능하며 심장 같은 중요 부위가 망가지더라도 장시간 활동 가능한 골렘인 이트가 이옐보다 활용성은 더 높을 터.
그런데 그런 이옐보다 더욱 강한 이런 것을 두고 몸을 사린다?
‘아까운 일이지.’
모든 정보는 최소 한 번의 가공을 거쳐 들어온다. 이노센트와 샤하드 개인이 가진 정보원들.
그 둘 다 성신교라는 광신 집단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그 지독한 행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1황녀 세리아가 손잡은 이들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사악한 집단인가 하는 의문.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자신이 손잡는 놈들이 얼마나 정신 나간 집단인지 그 정도는 파악하고 손을 잡을 것 아닌가.
지금 이노센트에서 주는 자료만 보면 그들은 대륙에서 씨를 말려야 할 악의 종자들이며 샤하드가 개인적으로 모은 자료만 따지면 그 정도까진 아니라도 흑마법사에 준하는 인신공양을 올려대는 악신교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성신교의 인신공양 제단을 발견했다는 말에 내려온 건 그런 의도였다.
「잠시.」
그리고 막 하수도의 모퉁이를 꺾어 들어가던 순간. 반 발짝 앞에서 걷던 샤하드의 방패이자 이노센트의 최상급 골렘.
이트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인간, 혹은 생명체가 냈다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
마치 금속을 두드리고 찢고 긁어 그 높낮이를 언어처럼 꾸며 만든 것 같은 조잡한 소리.
이트가 천천히 후드를 벗자 긴 하얀색 머리칼이 흩어진다.
「두 명이나, 둘 다 마나를 억누르고 있어 경지는 확인 불가합니다.」
상대도 동시에 알아차렸으나 살기는 없다는 덧붙임에 샤하드가 한걸음 나서며 이트의 비리디안 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성신교의 잔당일지도 모릅니다.”
이옐이 지금은 후퇴하시죠. 하는 말에 샤하드가 적금색 눈동자로 일렁이는 빛을 뿌렸다.
“아니. 강행한다.”
오히려 성신교의 잔당이라면 더 좋지.
‘오러 마스터였다면 이트가 감지하지 못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렇다면 오러 유저가 이쪽은 셋. 저쪽은 많아야 둘.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오러 마스터가 아닌 이상 이쪽이 힘없이 밀리지는 않을 테니.
“접근한다.”
「상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조우하기까지 약 3분.」
「2분.」
「1분.」
마지막 모퉁이를 돈다.
이옐은 느리게 마나를 끌어올렸다. 언제 어느 순간에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그리고 모퉁이를 돌자마자 풍겨지는 역한 피비린내.
환기를 위한 구조 덕에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는 제대로 느껴지지 않던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미친…….”
그리고 보이는 것은 참혹한 인신공양의 광경.
그리고 너무나도 이질적인 두 사람.
“하핫. 반갑습니다. 낯선 분들.”
청금색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한 미남자가 유쾌하게 웃으며 과장된 모습으로 예를 차려 인사한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있는 레몬색의 단발과 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인형 같은 소녀.
이런 하수도와는 어울리지 않게 레이스가 가득한 풍성한 드레스가 미풍에 살짝 흔들린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잔뜩 마나를 끌어올리던 샤하드와 이옐과는 달리 이트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리지.」
‘너였나. 이트.’
「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군.」
‘정확하게는 이트 너라는 건 몰랐지만. 익숙한 기척이라고 생각했지.’
「기척 감지는 네가 더 고성능이니.」
둘의 대화에 수어를 모르는 이옐은 이트의 말로만 짐작하여 허리춤의 검 자루에 올린 손을 내렸고 샤하드는 수어까지 확인한 뒤 천천히 마나를 갈무리하며 찡그렸다.
“수어?”
“신기하네요. 그쪽은 대화가 가능하다니. 반갑습니다. 제12 황자.”
청금색의 사내가 천천히 다가와 히죽 웃으며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샤하드 폰 테이트리아시여. 저는 라피스라는 작은 조직을 대리 운영 중인 라줄리라고 합니다.”
* * *
「그건 뭐지.」
리지가 라줄리, 즉 파이얀에게 받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꺼내 보여주자 이트가 물었다.
―양산. 내가 맡은 이가 무기로 쓰라고 주던데.
관리자로 등록된 순혈의 인간.
혹은 같은 골렘.
리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이한 조건의 존재에게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특별히 무기를 쓰지 않지 않나.」
―그녀, 음. 그 사람이 원해서 말이지.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컨셉?
보자마자 뇌리에 확고하게 남는 컨셉. 그것은 전략적인 선택 중 하나라고 했다. 꽃과 레이스가 붙은 사랑스러운 드레스와 레이스 양산을 쥔 소녀.
그것이 강력하게 뇌리에 박히는 순간 나중에 일이 생겼을 때 옷만 갈아입는 그 단순한 수고 하나만으로 누군가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
파이얀의 말을 떠올리던 리지가 당당하게 양산을 들어 보이자 이트가 ‘그녀, 음.’ 하고 이상하게 기침한 뒤 당당해진 리지의 모습에 자신의 금속 마스크를 매만졌다.
「무기라.」
―물론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우리의 신체지만 골렘이란 걸 쉽게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 요소로 무기를 드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은 의외로 너와 나 같은 골렘이 적으니까.
리지의 말에 이트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한쪽에서는 이옐이 입을 열고 있었다.
“라피스는 요즘 들어 황도에서 급격하게 커진 뒷세력입니다. 암살은 정식으로 의뢰를 받지 않으나 그 외 분야에서는 다른 조직의 장점만 흡수하여 강점을 보이고 있고, 암살도…….”
저번에 있었던 뒷세력 조직의 간부들 수십 명의 목이 잘린 사건을 라피스가 일으켰다는 소문이 있으니 뛰어난 암살자도 있을 거라 사료됩니다.
이옐의 속삭임에 샤하드는 마음껏 둘러보시라며 한쪽으로 물러난 라줄리를 흘깃했다.
‘그런 세력도 이노센트의 하부세력이었단 말이지.’
암살이라.
그때 와인향을 풍기던 로브의 사내. 살기로 샤하드 자신의 몸만을 굳게 만든 이들이 있는 조직이니 못 할 리는 없겠지.
거기에다.
“저쪽의 소녀도 그렇단 말이지?”
“네. 이노센트에서 연약한 저를 위해 붙여 준 아이죠.”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는 라줄리를 보며 샤하드가 살짝 찡그렸다.
겉보기에는 귀엽고 예쁘게 차려입은 인형 같은 소녀일 뿐이겠지만.
‘이트와 같은 최상급 골렘이라니.’
대체 이노센트라는 곳은 어떤 곳이길래 당장 골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탑에 가더라도 보기 힘든 최상급 골렘을 둘이나 밖으로 내보냈단 말인가.
아니, 과연 둘이 끝일까?
게다가 같은 최상급 골렘이라고 해도 정교한 톱니 덩어리에 마법으로 만든 인공 근육과 피부를 덮은 골렘 마탑의 최상급 골렘과는 달리.
이트는 하관에 착용한 금속 마스크 덕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리지는 말을 육성으로 하지 못하는 것만 제외하면 사람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런데 골렘이라니.
마법과 마학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지는 않으나 제 저주받은 몸뚱어리 덕에 수많은 책을 읽어 넓고 얕은 지식이라면 자신 있는 샤하드가 혀를 내둘렀다.
‘드래곤이라도 관여되었단 말인가.’
이트 하나라면, 그래. 솔직히 대제국 테이트리아의 황자인 자신을 위해 이노센트에서 아주 큰 출혈을 감행했다고 여길 수 있었다.
‘…어떤 곳이지. 그 곳의 주인은.’
신의 계약서를 썼으니 알고 있다.
그 비밀스러운 조직의 주인이 바라는 것은 이 대륙의 평화.
그런데 아주 윤곽만 드러난 힘만으로도 이 정도나 강대하며 거대한 조직의 주인이 고작 그걸 바란다는 말이 샤하드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손을 잡길 잘했어.’
성신교가 아무리 그 물속에 숨어 있는 세력이 크고 강하다고 해도 이노센트 또한 만만치 않으니.
“역겹네.”
벽 한쪽 틈에서 아주 작게 새겨진 성신교의 심벌까지 확인한 뒤 샤하드가 중얼거리자 라줄리가 웃으며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이럴 수 없지. 제물에 목을 매는 흑마법사라도 제국의 수도 아래서 이러긴 힘들 것이다.”
꼬리를 잡히면 온 대륙에 흑마법사 척살령이 내려질지도 모르는데.
그건 성신교도 마찬가지.
이 역겨운 공양이 그들의 것으로 확정 나고 그 엉덩이 무거우신 폐하께서 성신교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선언한다면 어찌 버티려고 이런 거지?
‘고작 세리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 여기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아카데미의 학생입니다. 왜 하필 아카데미의 학생일까요, 황자님.”
안 그래도 요즘 아카데미 학생의 실종 사건으로 예민해져 있는데 말입니다.
샤하드는 자신에게로 슬쩍 다가와 속삭이는 라줄리의 청금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답은 정해져 있는데 한번 던져보는 말투로 간보지 말고 대답하지 그래.”
역시 시원시원하시다니까.
샤하드의 말에 라줄리가 낄낄거렸고 그 모습에 구석에서 이트와 대화하던 리지가 다가오더니 어디 아프냐는 듯 아래에서 위로 올려본다.
“성신교의 교인 중 하나가 아카데미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숨기기 위해 다른 곳에 불을 지르고 있죠.
“결국 그 불은 번져 그녀를 전부 태울 텐데 말이에요.”
어리석다니까.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턱에 손을 대고 궁리하는 라줄리를 바라보다 이옐이 입을 열었다.
“적당한 정보는 서로 교환하거나 이쪽에서 구입할 생각 있습니다.”
“원하던 바.”
하지만 이런 냄새나는 곳은 좀 그렇죠?
라줄리가 로브 안으로 손을 넣더니 작은 종이를 꺼낸다.
“아시죠?”
저희 보스가 인감도장이라고 부르는 문양.
“이걸 제 수하에게 들려 보낼 테니 원하시는 시간과 날짜를 적어 주시길. 저희의 깊은 이야기는 그때 나누도록 하시죠.”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쓸모 있는 만남이 될 것입니다.
과장스레 예법대로 인사하는 라줄리를 바라보며 샤하드가 크게 내키지는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