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0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03화(203/373)
‘다시 한번 묻겠네. 자네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곳의 안전.’
‘대가는?’
‘언젠가 한번 도움받는 정도? 뭐 들어보고 이상한 제안이라면 거절해도 좋아.’
‘고작 그것뿐인가.’
‘나에게 뭐가 더 부족하지?’
그리 말하며 오만하게 웃던 사내.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 라인하르트는 검을 오래 쥐어 거칠어진 손바닥으로 얼굴을 슥슥 문질렀다.
까슬한 굳은살이 피부를 긁는 감각에 잠시 생각이 환기되는 것 같다.
아델리안. 그 오만하디오만한 사내가 남기고 떠난 수많은 마정석과 금괴.
그리고 무려 백작급 몬스터인 사이클롭스의 부산물들.
그것을 자본금 삼아 접경지 가비오렌은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과가 쌉니다! 사과가 싸요!”
“한 달 장기 숙박 시 하루 한 번 샌드위치가 공짜! 저희 여관으로 오세요!”
라인하르트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 주점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비친 미소와 활기.
돈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은 활기를 부른다. 활기는 소비로 이어지고 소비는 다시 돈으로 이어진다.
접경지 가비오렌은 언제나 소모적인 곳이었다.
몬스터를 죽이고 그것으로 얻은 돈으로 내일 죽어도 여한 없을 듯이 흥청망청 쓰거나 혹은 그다음 날 죽어 유족들에게 사망위로금까지 더해져서 보내는.
오는 귀족들이라곤 군부에서 출세 욕심이 있는 몇몇 이들을 빼고 나면 좌천되어 왔다가 몇 년 채워 다시 중앙으로 나가려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끈 떨어져 한몫 잡을 생각으로 오는 멍청이들이 대부분이다.
본디 가비오렌은 몬스터 부산물을 공급하고 황실에서도 적당히 지원해 주는지라 원래도 흐르는 돈이 적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금액 대부분이 용병의 고용비나 토벌 의뢰비 혹은 몬스터 방비용으로 소모되고 다시 몬스터의 부산물로 들어오는 순환에 그치고 있었을 뿐.
‘하지만 아델리안, 그자 덕에 상황이 달라졌다.’
늘 소모에 가까운 가비오렌의 생태를 아델리안이 박살을 내었다.
가비오렌에서 순환되는 금액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 한번에 라인하르트에게로 쏟아진 것이다.
말 그대로 가욋돈이었다.
장부에 기록도 할 필요 없는 돈이었기에 다른 이라면 제 주머니에 쑤셔 넣기에도 바빴겠으나 라인하르트는 달랐다.
제대로 된 주둔지의 구축과 더불어 생활 인프라의 증축.
일반인보다 용병이 더 많은 기형적인 구조를 억지로 개편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 누가 몬스터가 날뛰는 접경지에 생활터전을 꾸리려 하겠는가.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말은 그냥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라인하르트는 깨달았다.
이자를 받지 않고 대출해 주어 근처의 화전민 혹은 소규모 마을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 생활구역을 비롯하여 상점들을 만들고 도로를 확장하였다.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하면 농사 지원금을, 가축을 키워 보고 싶다고 하면 축산 지원금을.
더불어 세금은 아이가 있다면 최대 5년간 면제에, 정말 몸뚱어리만 끌고 오는 이들을 위해 임시 거처 또한 병사들이 지어 줬다.
거기에 기본적인 무력을 지닌 용병들이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접경지 근처 생활 위수지역이었으므로 나무 방책이 아닌 돌로 석벽을 쌓아 안전을 높이고 최소한의 치안을 보장했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용병들도 이왕이면 보급, 혹은 배급의 기분이 나는 임시 마을보다 제대로 꾸며진 위수지역에서 지내려 하는 이들이 늘었고, 그것으로 돈이 굴러가기 시작하니 소문을 듣고 일반인들이 더욱 늘어나는 구조.
결국 가비오렌은 예전과 비교하여 꽤 커진 상태였고 그것은 전부 가비오렌의 힘으로 이어졌다.
언제나 몬스터와 싸우며 목숨을 건 불안정한 상태였던 이들은 고작 정붙일 곳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만으로도 돈뿐만이 아닌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언제나 날이 서 있던 이들도 몬스터와의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 아닌 빵 냄새가 나는 마을에서 잠시 쉬는 것만으로도 많이 밝아졌다.
더불어 사람 자체가 느니 마을에서 서로 마음이 통해 정착하는 이들도 늘어 혼자가 아닌 가족으로 이곳에 붙박는 사람도 생기는 정도.
‘공작급 몬스터가 내려와도 막을 수 있을 만큼이라고 했지.’
어떤 이는 많은 돈이 생긴 뒤 그 말을 듣는다면 무기나 혹은 전력 강화에 돈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라인하르트의 생각은 달랐다.
결국 강한 무기도, 다른 무언가도 결국 쓰는 건 사람이므로.
줄을 당기기만 하면 끊어진다.
칼은 벼리고 벼릴수록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사람은?
아델리안이 준 돈으로 용병들을 더 고용하고 무기를 사고 성벽을 강화하고 마법 발리스타를 더 늘리고.
그랬다면 단기간에 급격히 강해지기는 했겠지.
하지만 그게 몇 년이나 갈까.
그래서 라인하르트는 단시간에 전력을 끌어올리는 무기나 용병의 보충이 아닌 내실을 선택했다.
당장 튀어 오르는 전력 증가는 없어도 접경지 전체를 생각하면 안정적인 방법이므로.
‘그리고 강한 무력은.’
꼭 가비오렌에서만 구할 필요는 없지.
라인하르트가 마을의 분위기도 확인할 겸 주점에 앉아 까슬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던 가운데 누군가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
라인하르트의 비서관. 메이샤가 자신의 허리를 조금 넘는 키의 남자아이와 함께 들어오더니 라인하르트의 앞에 앉아 맥주와 사과 주스를 시키며 입을 열었다.
“예상한 시간보다 조금 늦었군. 그래, 어찌 되었나.”
“황실을 통해 신청한 기본적인 협조 공문 외, 따로 연락을 넣긴 했습니다.”
접경지 중 가장 큰 곳은 가비오렌이나 테이트리아 제국이 넓다 보니 가비오렌 외 다른 소규모 접경지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은 예전의 가비오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니 명목상으로만 지원해 주는 황실을 믿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접경지끼리의 협력도 전체적인 전력 증강에 있어서는 중요한 일.
지금까지는 각자 살아남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아델리안이 쏟아 낸 재화로 생긴 여유는 라인하르트로 하여금 접경지보다 더 큰 곳을 바라보게 했다.
“그래. 조만간 연락이 오겠지. 그리고…….”
문득 라인하르트의 눈이 양손으로 컵을 쥐고 사과 주스를 홀짝거리는 남자아이에게로 움직였다.
군청색의 머리칼과 녹황색의 눈동자. 고작 10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는 라인하르트와 눈이 마주하자 방실방실 웃었다.
“…저 아이도 확인했나.”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조금 일정이 늦어지긴 했습니다.”
메이샤가 들고 있던 맥주를 단숨에 벌컥벌컥 마시더니 소매로 입을 슥 닦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밀을 요하기 위해 그 비싸디비싼 신의 계약서까지 써서 알아보고 왔습니다. 저거… 진짭니다.”
라인하르트가 자신을 보며 방실 웃고는 사과 주스가 맛있는지 쨥쨥 하고 입맛을 다시는 남자아이를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골렘이 맞단 말이군.”
아델리안이 언젠가 있을 협력을 위해 초청한 단체 이노센트.
그곳의 수장이 누군지는 모르나 꽤 강력한 단체인 것 같았다.
저번에 놓친 흑마법사의 흔적이 사실은 흑마법사가 아닌 성신교라는 이들의 공양이었다거나 아직 외부로 반출이 되지 않은 사이클롭스의 피가 황도의 암시장에 등장한 적 있다는 정보까지.
전폭적인 금전적 지지와 더불어 정보의 공유 및 접경지까지 쉬이 들어오지 않는 물건들을 훌라라는 수인족 상단이 제공해 주는 것과 동시에 이쪽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대륙의 평화에 이바지할 것. 그것을 위해 협력할 것.
그 조건 하나만 요구하였고, 그것은 라인하르트 또한 바라던 바라 들어가기로 한 그 단체에서 자신의 가드라고 보낸 남자아이.
처음에 세이렌을 통해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최상급 골렘이라니.
하지만 겉보기에는 마나도 오러도 없는 인간 아이. 거기에 라인하르트가 직접 오러로 몸을 훑어도 완벽한 어린아이였다.
확인할 방법은 단 하나. 자르거나 찔러 재생력과 혹은 그 몸을 보는 것.
하지만 어린아이라 내키지 않았던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비서관인 메이샤에게 각 접경지로 편지를 보내는 일을 맡김과 동시에 마법사와 신관에게 이 아이에 대해 알아보라 전하였는데.
‘정말 골렘이란 말인가.’
[할아버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라인하르트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남자아이가 품에서 메모장과 목탄 연필을 꺼내 적어 보이는 삐뚤빼뚤한 글귀에 라인하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페오. 사과 주스를 더 시켜주랴.”
―……!
라인하르트의 물음에 남자아이, 아니 페오가 고개를 끄덕! 하며 방실 웃었다.
그 모습에 라인하르트는 페오가 와 자신에게 건넸었던 쪽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페오에요. 저는 이노센트에서 보낸 골렘이에오. 페오는 전격 마법을 잘 써요!]막 글씨를 배운 것같이 글자가 아닌 그림처럼 쓰여 있던 그 쪽지.
마법이라…….
접경지 가비오렌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인 마법사.
하지만 저 어린아이가 마법을 잘 다룬다 할지라도 얼마나 잘 다루겠는가.
‘이노센트의 생각이 무엇이지.’
라인하르트 자신을 감시할 거라면 굳이 저런 어린아이를 보내진 않았겠지.
어리다고 마음을 놓고 보여주는 이는 아니었으므로.
‘하다못해 아델리안에게라도 연락을 해 봐야겠군.’
라인하르트는 사과 주스를 한 잔 더 마시며 세상 행복하게 웃는 페오를 느리게 바라보았다.
* * *
―그나저나 관리자님. 제 동료들을 그렇게 배치하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리프가 심심했던지 자신이 사 온 책은 다 읽었다며 내 아공간에 마구잡이로 들어있는 책이라도 빼달라 하더니 문득 하는 말에 나는 무언가를 양피지에 쓰다 말고 입을 열었다.
“있지. 당연히.”
등급이 다 같은 최상급 골렘이라고 해도 전부 같은 스탯을 지닌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리프와 같은 최상급 골렘이라고 해도 리프처럼 마나 심장이 부서지거나 마나가 떨어지기 직전까지 무작정 칼과 화살을 맞아 가며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겠지.
리프가 재생에 특화되어 있기에 화살이나 칼에 몸이 다쳐 그것을 뽑아내고 절단되는 경우 다시 절단면을 몇 초 안에 가져다 대면 붙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골렘은 적당한 재생은 가능하나 절단면을 붙이는 정도까지는 무리인 것.
“미리 리프 네게서 네 동료들의 특징을 알아낸 이유는 내 나름대로, 하다못해 성격이라도 맞는 곳에 보내 주려고 한 거야.”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별. 혹시 모르니 침실이나 욕실 같은 곳에 뛰쳐 들어가도 무방하게 동성의 골렘을 매칭했다.
그리고 예를 들면 파이얀의 경우 잠입이나 정보 입수를 위해 움직이기 좋아하는 데다 당시 내 생각에 무력은 조금 약했기에 탐색 능력이 좋고 전반적으로 밸런스가 고르며 성격이 무던한 리지를 붙였지.
샤하드의 경우엔 세리아와 척을 진 상황이니 암살이나 무력 충돌 및 돌발 상황에 대비해 유일하게 음성 소통이 가능한 데다 오러 계열 골렘 중 가장 강한 이트를 배정했다.
라인하르트의 경우 사실 그 어르신만 따지고 보면 단일 무력으로는 골렘 중 누굴 붙여도 필요가 없어서…….
차라리 접경지에 도움 되게 마법사 계열 골렘 중 광역 공격에 특화된 데다 가족도 없이 적적할 테니 손주 노릇 하라고 페오를 보냈고.
―하긴, 관리자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내 간략한 설명에 리프가 이해했다는 듯 끄덕였다.
뭐, 아르만의 경우 보통 해상 전투가 이루어질 확률이 높은 필드인 데다 내가 알려준 해룡 트레잇을 얻고 난 뒤 시너지를 고려해서…….
<동업자! 너 정말!>
아르만까지 생각하다 울린 세이렌을 받았더니 훌라가 소리친다.
그에 나는 잠시 세이렌을 들어 흔들었고 그것을 본 리프가 꾸벅 인사하며 책을 들고 선실을 나갔다.
“왜 그리 호들갑이야.”
<저, 저. 저 아이 뭐야? 오늘 왔는데 너무 충격적이야!>
아, 훌라도 리프의 동료를 만난 모양이다.
그에 나는 턱을 괴며 히죽 웃었다.
“앞으로 널 많이 도와줄 친구야.”
둘이 잘 맞을 거야, 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