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0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04화(204/373)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노아입니다.”
“저는…….”
“반갑습니다. 하하. 저로 말씀드리자면.”
한동안 이 마차를 타고 같이 움직일 테니 통성명을 하자는 말에 다들 돌아가며 악수하기 시작했다.
사내가 셋, 여인이 둘.
노아는 어쩐지 설레는 마음에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마차의 시트에 엉덩이를 붙였다.
‘저번에 본 말들도 대단하던데 크루거 성에는 희귀한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델리안 크루거 공자가 티 파티 대신 열린 사냥회에서 타고 온 그 말들!
‘대단했지…….’
노아가 꿈꾸듯 눈을 풀었다.
갑자기 슬쩍 뒤로 가는 시늉을 해도 투레질이나 뒷발 차기를 하지 않을 만큼 성격도 좋은 데다 교육까지 잘 받은 말을 시작으로 털 뿌리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짙어지는 베이스에 하얀 점 얼룩이 대단한 챠비드산 야생마에.
‘제일은 그 말이었지.’
성깔은 사나웠지만 그럴 만했다.
옆으로 가는 무빙에다 뒷걸음질까지 가능한 지능의 전투마라니.
‘절대 그건 승마용 말이 아니었지.’
그때 너무 호들갑을 떨었을까.
아델리안 공자의 그 푸른 눈이 자신을 한참 보더니 뒤늦게 연락이 온 것이 아닌가.
‘그 덕에 크루거 가문에 취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카데미 따위 알 게 뭔가. 어차피 아카데미는 졸업이 너무나 어려운 곳이라 몇 년 휴학은 신경도 쓰지 않는 곳.
귀족의 자제가 되어 다른 귀족의 아래에 들어가 일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격이 깎이는 일이라고는 하나.
‘그, 크루거 가문이니.’
오히려 인정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셈.
동그랗고 큰 안경에 오밀조밀한 얼굴, 갈색 더벅머리에 밤갈색 눈동자를 지닌 노아가 기분 좋게 싱글 생글 웃고 있는데 8인승 마차에 탄 다른 이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수가 좋아서 가긴 가는데…….”
“설마 뭐 죽이기야 하겠어?”
노아가 손가락으로 눈을 가린 더벅머리의 앞을 스윽 매만졌다.
설레임 반, 걱정 반.
마차에 탄 이들은 모두 노아 자신처럼 기대감과 흥분이 아닌 오묘한 감정이 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지?’
그 크루거 가문 아닌가.
외형과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아주 무례한 행위지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
조금은 낡았다거나 아주 좋은 옷감이 아니긴 했으나 다들 평민이라기엔 제법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 다들 귀족이거나 혹은 돈을 한 푼이라도 가지고 있는 평민 출신일 터.
그렇다면 크루거 가문에 고용되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닌데 저리 구는 건 왜일까?
노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무언가 물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려던 찰나 어느 사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탄식했다.
“다 좋아, 다 좋지! 보장된 직장! 후려치지 않은 보수!”
“그런데 왜 고용주가 그! 아델리안이냐고 왜…….”
‘아…….’
노아는 살짝 벌어진 입을 슬쩍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해는 되네…….’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크루거 가문. 그곳에 고용되는 이라면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다른 곳보다 대우가 좋다. 그러니 어차피 잡일이라도 할 거라면 그곳에서 하려는 이들이 성 밖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겠지.
‘하지만 그것도 정식으로 고용되었을 때의 일이니까…….’
노아 자신이야 무려 그 크루거 가문에서 엄선한 말들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는 장점 하나만 보고 덥석 계약서에 사인했지만 저들은 다른 것이다.
아델리안이라는 이름은 그런 무게였다.
대륙에서 가장 부유하며 이 제국에서도 힘 있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지만.
아델리안 공자가 발탁하여 고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을 줄 정도의 무게감.
소위 말한 악명.
‘그야… 별수 없긴 하지.’
수도에까지 파다하게 입소문이 나 있지 않은가. 그의 트레잇이.
아델리안 공자는 소위 말하는 무능력자.
‘듣기로는 금력에… 타고난 성격이나 외모와 관련된 트레잇만 있다지?’
물론 외모나 성격에 관련된 트레잇이라도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다르다.
예를 들어 충직함이나 올곧음. 성실함이나 부지런함.
이런 것이 트레잇으로 붙었다면 아주 높은 귀족 출신이 아닌 한, 어디에서 일을 하더라도 신전에서 발급한 트레잇 증명서 한 장만으로도 고용될 수 있겠지.
‘하지만 아델리안 공자가 그런 게 붙었을 리 없고…….’
트레잇은 재능이다.
물론 후천적으로 노력하여 개화시킬 수도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트레잇은 조금이라도 타고나야만 생기는 거였다.
예를 들면… 다리가 없이 태어난 이가 각력이라든가 발재간 같은 트레잇을 타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탑에 많은 돈을 기부해 골렘 의족이나 마법 의족을 받는다 해도 마찬가지.
미친 듯이 노력해도 기구를 잘 다루는 능숙함 같은 게 붙지 발재간이 붙지는 않는단 소리.
그래서 아델리안이 유명한 거였다.
아델리안 공자. 그 혼자만 무능력한 이로 시작했을까?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제법 썩어빠진 귀족은 많으니까.
성년이 지나 신전에서 트레잇을 알아보기 전에 술이나 마약, 도박 같은 것에 어린 시절부터 빠져 산 귀족들이 한둘이었겠냔 말이지.
그래도 나는 평민과 다르니까. 혹은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다르다. 하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 법.
그리고 그렇게 멍청하게 세월만 보낸 이들 중 한 명씩 별 볼 일 없는 트레잇을 가진 이들은 꼭 나오길 마련이다.
그런데도 왜 아델리안만이 이토록 유명할까.
“나, 난… 사실 지금까지 내가 가진 재주가 제법 쓸 만하다고 생각했어.”
“나도…….”
“저도 그렇습니다.”
크루거 가문에서 일하는 것도 마다하고 지금이라도 그냥 그만둘까 하며 고민하던 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왜냐면… 그, 아델리안이잖아.”
“쉿. 그래도 크루거 가문에서 편하게 오라고 내준 마차인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렇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군요. 그 아델리안 공자가 우릴 보고 괜찮다고 했다니…….”
내 능력이 내 생각과는 달리 별 볼 일 없었을지도…….
아델리안 공자의 안목…을 생각하면.
하고 속닥거리는 소리들.
“그야. 그 크루거 가문에서도 결국 그 흔한 검술D 하나 개화하지 못했을 정도면.”
사람 보는 눈도 마찬가지로 재능 없겠지 하는 탄식.
그래. 그게 문제였다.
신전에서 트레잇을 확인 후 별 볼 일 없는 트레잇을 부여받은 이들은 뒤늦게 돈으로라도 트레잇을 개화시키니까.
뛰어난 검술을 어거지로라도 배워 죽도록 굴리며 온갖 포션을 먹이고 뛰어난 스승을 붙여 한 걸음 한 걸음.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조언하고 자세를 바로 잡아 주고.
그럼 어지간한 몸치가 아닌 한 최하급의 검술 트레잇이라도 붙는다.
아니면 매일같이 마정석을 가까이하거나 특수한 포션을 먹어가며 비싼 값에 공수해 온 정령석을 이용하면 정말 최소한의 마나에 대한 재질, 정령에 대한 감응만 있어도 정령이나 하다못해 마나에 대한 트레잇도 얻기 마련.
물론 평민들이야 그런 트레잇을 가지면 작은 마을에서는 와 하고 우러러볼 정도의 재능이다.
‘하지만 귀족가에서는 다르지.’
억지로 개화시킨 트레잇은 ‘양식’ 취급을 당하니까.
그러니 처음부터 검술이나 마법, 정령술에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한, 어중간한 재능이라면 오히려 양식 취급 당하지 않게 성년 이후에나 제대로 배우는 실정.
그런데 그 아델리안은.
‘크루거 가문이니까 정말 오만 방법을 다 써봤을 거야.’
그런데도 그 크루거 가문이 소문을 잡지 않는 걸 보면 무능력한 게 사실이란 소리일 테고.
그 말은 정말 세상 모든 것에 재능이 없단 소리니까.
그래서 저들은 불안한 것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을 인정하고 고용했다는 것이.
‘하지만.’
노아는 흔들리는 마차의 벽에 기대 생각했다.
‘혹시 모르지.’
그 아델리안은 사실 무능력한 이가 아닐지도?
‘물론 확실하진 않지만.’
사냥제 때 봤던 그 오만하며 고압적이고 누구보다 귀족 같으나 화살 하나 제대로 날리지 못하는 아델리안이 아닌.
‘내 안목은 그렇단 말이야.’
말에게 기능을 100% 발휘하는 안목 트레잇이 아주 잠시. 아델리안을 봤을 때 반응했으니까.
물론 지금 와서는 그때의 그 찰나에 대한 기억이 너무 옅어져 꿈인가 혹은 착각인가 싶을 정도지만.
‘뭐 어때.’
난 말만 볼 수 있으면 좋은걸.
노아가 느리게 웃으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 * *
소설이나 드라마. 이런 걸 보면 꼭 한번씩 등장하는 게 골육상쟁. 형제의 난. 가족끼리 피는 나눠도 권력은 나누지 않는다.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대륙은 조금 남달랐다.
‘아무래도 트레잇이 있으니까.’
누가 더 강한지 혹은 능력이 있는지. 하다못해 희귀한 트레잇이 있는지. 그것이 집안에 더 도움이 되는지.
재능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건 그런 것이다.
가끔은 불필요한 싸움을 줄여 준다는 것.
그러니 지구에서 흔히 보던 장자 상속, 혹은 아들만 후계자로 가능. 이런 게 뿌리박힌 곳은 아니었다.
‘카이만만 빼면 말이지.’
물론 진짜 의도는 모든 어그로는 아델리안에게 몰아주고 가디아를 안전하게 키울 명목이었겠지만.
대외적으로 카이만은 무능력한, 트레잇도 별 볼 일 없는 아델리안을 편애하며 공공연하게까지는 아니지만 넌지시 후계자로 밀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반지를 끼고 있지만.’
나는 크루거의 반지를 한 번 돌리며 턱을 괴었다.
하지만 실상은 혹시 정말 그럴 리 없지만 미쳐 가지고 감히 크루거 가문의 직계에게 이를 드러낼 방계가 있다면 가디아 대신 바칠 제물이었지.
원작에서는 아예 아델리안이 나오지 않았고 이노센트 게임에서는 가디아가 케인을 만나 케인이 하는 일에 돈이 필요하다고 여겨 가문의 실권을 쥐기 위해 임시 가주를 맡고 있던 아델리안의 목을 날린다.
그리고 원작이건 게임이건 카이만은 나중에 불의 정수와 불완전한 합일을 이루어 나타나 가디아의 손에 죽지.
‘이리저리 내가 한 게 있으니 목은 이제 안 날아가겠지만.’
문제는 원래라면 카이만이 지금 가디아를 부르는 내용은 원작이나 게임에서나 없었다는 것.
아마 그 변수는 레비가 가지고 있던 폭풍우의 구슬 때문일 테고.
‘알카이도가 알아본 바로는 우리 쪽에서 얻지는 못해도 그들도 들고 귀환하지 못할 정도의 추적 상태라고 했던가.’
원래라면 슬슬 대두되는 전염병이나 다른 문제들로 악신교단이 득세하며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올 준비를 해야 할 테지만.
‘내가 열심히 기고 뛴 보람이 있네.’
솔직히 그렇잖아. 원래라면 악신교단 쪽으로 들어간 뒤 카이만이 어쩔 수 없이 그걸 얻기 위해 악신교단과 손잡는 계기가 되는 폭풍우의 구슬인데 그것이 이렇게 붕 떠버리다니.
원작이건 게임이건 있었던 일이 아닌데 벌어졌다는 건 무조건 나 때문이지.
‘장하다.’
나는 나에 대한 치하를 제로가 유독 공들여 만든 케이크와 차로 대신하기로 했다.
“여유가 있나 보지.”
“당연한 소릴.”
나는 내 앞에 등을 보이고 앉은 케인이 하는 핀잔에 피실거렸다.
케인의 마나회로를 조금씩 회복시키는 일. 이거는 아델리안의 손재주를 타는 일이 아니라 강수호의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라.
중간중간 간식 먹을 짬 정도는 난다는 말씀.
레비의 힘을 빌려 뭔가 기원. 집중력. 의지의 힘. 이런 것으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케인 안의 물의 마나를 야금야금 퍼즐 맞추듯 그 거칠고 사나운 것을 조금씩 다루는 감각.
물론 그 행위의 주는 케인이고 난 보조에 불과하지만.
‘효과는 있단 말이지.’
나는 내 무릎 위에 엎드리듯 누워 마정석을 사탕처럼 빨면서 조는 레비를 쓰다듬으며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도련님! 곧 항구에 도착해요!”
“아, 그래? 해적기는 다른 것으로 바꿔 뒀고?”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루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항구다. 워프 게이트가 있는.
오랜만에 라베스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