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0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05화(205/373)
라베스.
대륙 최고의 향락 도시.
화려하기는 제국의 수도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답기로는 요정의 나라보다 아름답지만 수많은 이들의 눈물 위에 우뚝 서 있다는 도시.
바다와 큰 강, 숲과 산이 맞물려 아름다운 풍경에 기온 또한 비교적 온화하고 그 크루거 가문이 다스리는 영지라 사려고자 마음먹으면 못 구하는 게 없다는 도시였다.
그러니 챠비드에서는 길어도 3일, 라베스에서는 짧아도 3주, 제국의 수도에서는 못해도 3개월이라는 격언이 떠도는 거겠지.
상업이 발달한 데다 크루거 상단이 대주는 물품으로 말미암아 없는 가게가 없고, 도박이면 도박, 술이면 술, 거기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곳까지.
그러니 평생 단 한 번, 이곳을 지상 낙원처럼 생각하거나 혹은 카드패 한 장, 주사위 하나로 수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가 자신의 높은 이상에 닿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길에 눌러앉은 경우가 많았다.
화려하지만 위험한 도시, 라베스.
그러니 이곳에서 꿈과 환상을 좇아 잠시 머물다 가는 이들이라면 모르되 뿌리내려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라면 언제 어디서 하늘 같은 이가 파리 목숨처럼 자신을 잡아 터트릴지.
혹은 모든 걸 잃고 자신들보다 더 바닥에 놓인 이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어 이 화려한 도시에 붙박이처럼 사는 주민들에게 화풀이를 할지 모른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라베스의 주민들에게는 몇 가지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다.
너무 화려한 이, 혹은 너무 수더분한 이. 그리고 바닥까지 떨어진 이는 조심할 것.
남성과 여성, 노인과 아이를 불문하고 혼자 다니는 이를 경계할 것.
그렇게 크고 작은 규칙들은 때로는 더해지고 때로는 빠지며 어느 집은 7개요, 어느 집은 10개에 달하지만 그중 공통점이 있었으니.
‘아델리안과는 얽히지 말 것.’
어느 순간부터 퍼진 말.
망나니 아델리안.
무능력한 아델리안.
재능도 없이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난폭한 데다 위아래도 없고 수틀리면 사람을 끌고 가도 크루거 가문의 힘으로 입막음을 한다더라.
술이며 도박이며 색에 빠져 공부도 게을리하고 그 많은 돈을 물보다 더 헤프게 쓰며 금을 녹인 진창에 구른다더라.
그러니 잘못 얽히면 인생 망치는 거지. 눈도 함부로 마주쳤다가 뽑힌다더라. 아첨하다가 침이 튀겼다고 입에 주먹이 박혔다더라.
끝없는 구설. 그런 와중에 아델리안이 유흥을 위해 라베스를 떠났다는 말이 돌았다.
라베스 토박이들 중 아델리안에게 욕을 먹지 않고 뺨 한 번 안 맞아본 이 어디 있냔 소리가 있었다.
그러니 아델리안이 다른 곳으로 갔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 소식을 알린 게이트 직원이 술을 몇 번이나 얻어먹었는지.
거기에 수도에서 황녀와 얽힌 추문을 들었을 때는 환호했다.
부마로 들어가면 라베스로 돌아오지는 않을 테니.
‘차라리 가디아 아가씨가 낫지.’
‘가디아 님이 가주가 되는 게 맞아!’
‘그 누구도 아델리안을 바라지 않을 거야.’
그렇게 아델리안이 수도에 있다는 소리에 모두가 평화롭던 나날.
“야. 쟤들 뭐냐.”
지나가는 어지간한 여성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탄탄한 몸의 무투가.
그 길고 아름다운 붉은 머리는 높게 들려 하나로 묶여 허공에서 흔들리고, 빛나는 루비를 박아 넣은 듯한 눈동자는 심기 불편함이 일렁였다.
“그러게요. 마음에 안 듭니다. 제가 귀가 좀 좋아서. 물론 루나 선배께 비할 바는 아닙니다만.”
그리고 그 무투가보다도 조금 더 큰, 일행 중에서 가장 장신의 사내.
얼핏 순한 대형견처럼 보이는, 잿빛 머리에 녹색 보석안을 지닌 거구의 사내는 분명 웃고 있는데도 묘한 위압감 덕에 주위의 인파를 기세만으로 가르고 있었다.
“레이첼. 으르렁대지 좀 마. 곧 집에 가면 맛있는 거 먹여 줄 테니까. 알카이도에게 미리 말해 놨으니 만찬을 준비해 뒀을 거야.”
그리고 분홍색 머리의 토끼족 소녀와 검은 머리에 인식 교란 마법을 건 듯 흐릿한 사내가 하나. 더불어 너무나 마르고 가늘어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녹색 머리칼의 소녀.
그들 사이에 마치 보호되듯 걸으며 머리 위에 말캉해 보이는, 푸딩 같은 생명체를 얹은 사내.
‘아델리안?’
‘아델리안이…….’
‘돌아왔어?’
모두들 듣기 좋은 목소리와 남들보다 머리 하나씩 큰 데다 아름답고 잘생긴 이들 덕에 시선을 빼앗기다가 그 중앙에서 걸으며.
그 누구보다도 오만하고 교만하며 남을 깔보는 눈동자를 지닌 사내.
개망나니. 라베스의 수치. 크루거 가문을 갉아 먹는 좀벌레. 평민보다 못한 재능의 소유자. 숨 쉬는 것 외에 잘하는 거라곤 술 마시고 돈 쓰며 누군가를 희롱하는 것뿐이겠지.
요즘 안 보이니 속이 시원하다.
술 마시러 거리에 나와 저랑 비슷한 놈들끼리 몰려다니며 행패 부리는 꼴을 안 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에잇, 퉤.
그렇게 매일같이 욕하던 아델리안을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눈을 내리거나 도망치거나 가게의 창문을 슬쩍 닫았다.
“아델리안 님, 하지만…….”
“그나저나 말들은?”
“일행이 늘어서 모두 말을 타구 가면 길을 다 막을 거 같길래 먼저 본가루 보냈어요.”
무엇이 그리 화가 나는지 연신 기분 나쁘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붉은 머리의 여자와.
무엇이 그리 서글픈지 연신 기분이 가라앉았다는 티를 내는 잿빛 머리의 사내를 아델리안과 토끼족 소녀가 달래며 대로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라베스에는 엄청 큰 신전이 있거든. 제로. 오랜만에 트레잇이나 확인해 볼래?”
“예? 아, 아닙니다! 지금 대충 제 트레잇이 뭔지 아니까……!”
라비린에서 상냥함A. 당신은 상냥한 사람입니다. 적힌 목각판 받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기억에 선하다며 웃는 아델리안의 모습에 거구의 사내가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린 뒤 지나간다.
오늘이 죽을 날이라도 되었던 건지 아델리안을 오늘까지도 흉보던 이들이 그 무리가 지나가기 전까지 숨도 안 쉬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오늘이 죽을 날이라 우연찮게 말이 나오던 게 아니었지. 처음에는 크루거 가문의 눈치를 보며 술자리에서나 종종 하던 말을 카이만 가주도 아델리안도 없단 말에 나중엔 대로변에서 공공연하게 돌림 노래처럼 하지 않았나.
그냥 하루 일과처럼.
‘왜… 그랬지?’
그래도 아델리안은 못 들었을 테니. 대부분의 이들이 마치 죽다 살아난 거처럼 자신도 모르게 목을 매만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다 갑자기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방금까지 이 대로변에서 단 한 번이라도 아델리안의 흉을 입에 올린 이들 모두의 돈주머니가 깔끔하게 잘려 바닥에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뭐, 뭐야?”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살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다 같이 목을 매만졌었던 손을 떼자 아주 연하게 묻어나는 핏기.
“뭐야!”
아주 가늘디가는 실선 같은 상처가 목에 스쳐 있었다.
* * *
“하여간 케인. 성질이나 부리구.”
“아, 왜. 그 정도면 곱게 지나간 거지.”
―맞는 말이야.
“동의합니다. 레이첼 후배님.”
나는 자기들끼리 동의하네 마네 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 머리에 몸을 얹고 어깨에 발을 올린 레비의 몸을 통당통당 손바닥으로 치면서 입을 열었다.
“뭐를 동의한다는 거야, 계약자?”
내 손길에 레비가 한 손엔 사탕을, 한 손에는 사탕만 한 마정석을 들고 오물거리며 묻길래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다. 나도 모르겠네?”
뒤에서 너무 착한 거 아니냐, 케인 성질 다 죽었다. 그렇게 살 거면 첫 번째 부하 자리 내놔라. 하는 레이첼의 투덜거림과 그 모든 투덜거림을 무시하는 케인이 따라 걸어온다.
“아델리안 님의 본가라니 어쩐지 긴장됩니다.”
저보고 감히 어딜 이런 곳에 들어오냐며 혼내진 않으시겠죠? 하고 제로가 몸을 숙여 속삭이는 것에 나는 웃었다.
“아니, 요즘 리프랑 소설책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억울합니다. 저는 분명 역사서를 위주로.
“어제 보던 거 공작가의 그 공녀님, 왜 스테이크는 마… 읍읍.”
나는 리프가 무표정하게 내 입을 막길래 장난스레 읍읍거렸고 그런 내 모습에 루나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뒤에서 앞으로 흩날린다.
루나의 분홍색 머리칼이 턱을 간지럽히자 루나가 자신의 늘어진 귀를 헤어밴드처럼 아래로 묶어 머리카락을 고정했다.
“리프. 요즘 그 책 읽어?”
―네. 생각보다 배울 게 많은 소설입니다.
“그거 한때 라베스에서 유행해서 잘 알아. 그거 후속편두 있는 거 알아?”
―정말입니까?
그럼. 다른 곳엔 없어두 라베스에는 있지 하고 루나가 배시시 웃자 리프가 루나와 시선을 교환한다.
“놀다 와.”
용돈 줄까? 하며 내가 골드 주머니를 흔들자 루나와 리프 둘 다 고개를 내저었다.
“이따 알카이도 집사님께 인사드리구요.”
―일단 저도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희미하게 오만불손이라거나 몇이나 더 있는지 확인 어쩌고 하는 전음 같은 게 스친 거 같지만… 아니겠지?
“저 길로 쭉 가면 만신전. 이쪽 길은 유흥가니까 너희들은 금지다. 쳐다도 보지 말고.”
“아, 그리고 이 길을 돌아서 가면 레스토랑 맛있는 곳 있거든. 한번 가자. 그리고 경매장에도 한번 가야지. 그동안 분류한 발부스의 아티팩트를 더 털어야겠어.”
말은 두고 마차도 없이 왜 걸어 귀가 중이냐 물으면 이게 이유였다.
그래도 명색이 모두가 알기로는 이곳이 내 고향인데. 내가 풀코스로 대접은 못 해도 적당히 안내는 해야 되는 거 아니겠는가.
‘케인과 루나와 몇 번 나오며 지리를 익혀 두길 잘했지.’
물론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자꾸 내 주위가 텅텅 비기 시작했지만.
‘오랜만이네. 이런 취급도.’
아, 정말 고향 느낌이다.
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 생각이 났다. 그동안 돌아다닌 곳은 아델리안의 소문은 자자하게 나 있어도 초상화가 나돌아다닌 것은 아니라 내가 말하지 않으면 미리 알고 피한 이들은 없었는데.
이래서 내 구역, 내 앞마당 뭐 이런 말이 있는 건가?
나야 그게 디버프로 작용되어서 그렇지.
내가 웃으며 둘러보니 뭣 모르고 일하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귀신 보듯 깜짝깜짝 놀라며 말 그대로 호다닥 도망간다.
‘아니 그런데 악명이 더 는 거 같기도 하고?’
어째 내가 여기에 엉덩이 부비고 있을 때보다 반응이 조금 더 격해진 것 같기도 하다.
‘알카이도에게 물어봐야겠는데.’
“죽일까 보다…….”
“죽이자!”
“아, 제가 저치의 집은 알아냈습니다.”
―난 이쪽.
그 와중에 뒤에서 계속 헛소리하는 녀석들을 내가 혼내는데 유난히 케인만 조용하다.
이 자식 약간 철들었나 본데?
“케인 봐라. 조용하잖아. 루나도 다 알면서 애들이랑 장단 맞춰 주지 마. 내가 말했지. 가면 나를 좀 껄끄럽게 볼 수도 있다고. 신경 쓰지 말고 가자.”
내가 한소리 하자 레이첼이 인상을 구기며 입술을 쭉 내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위장약이라도 빨아 먹은 듯 개운한 얼굴로 변한다.
뭐지?
갑자기 모두 케인을 한번 바라보더니 날 다시 바라보고는 아주 후련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그 알카이도인가 뭔가 맛있어?”
“무슨 소리야.”
장르파괴 하지 마라, 진짜.
내가 레이첼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자 레이첼이 캬하하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거 음식 이름 아니야?”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