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0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09화(209/373)
“왜 안 된다는 건가! 왜!”
카이만이 평소와 같은 냉정은 버리고 신관의 멱살을 잡아 벽으로 밀치며 그 시린 눈동자에 열기 가득하게 노려보았다.
그에게 목이 졸리듯 멱살 잡힌 신관이 컥컥거리며 양손으로 카이만의 손을 잡아 밀어내려 하면서 입을 열었다.
“시… 신성은 만능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당신들에게 쏟은 것들을 생각해. 뭐든 좋아.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당장!”
“포션도, 신성력도! 그 사람의 체력을 기반으로 회복을 돕는 겁니다!”
아주 강력한 신성은 죽어 가는 이도 살릴 수 있다. 다만 그 죽어 가는 이에게 최소한의 기력이 남아 있을 때만.
그 회복을 받을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가능한 법.
“이미. 이미! 두 사람 분은 넘게 피가 흘렀습니다. 신성은! 만능이 아닙니다.”
지독한 난산이었다. 이미 출산 전부터 급격하게 나빠진 몸.
원래도 그리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대륙에서 좋은 것들만 모아 먹어도 언제나 잔기침을 달고 살았고 몸은 체온 조절 아티팩트를 쥐여 주어도 남들보다 조금은 차가웠다.
사실상 신성력과 마법이 없는 곳이었다면 존재할 수가 없던 이. 금을 물처럼 써야만 숨을 쉴 수 있던 사람.
그런 몸이 안 그래도 약한데 태아와의 상성까지 맞지 않았는지 오죽하면 임신 후 누워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하던 대공비가 출산 시기까지 무사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크루거 가문의 저력을 보여 준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평민이라면 물론이고 귀족이라도 수시로 신관을 부르고 음료 대신 포션을 마실 수 있는 정도의 가문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아이를 포기하는 게 나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의 몸보다 아이를 더 사랑한 그녀와 그런 대공비에게 이길 수 없던 카이만이었지만.
‘그냥, 아이를 버렸어야 했다.’
아니면 초반에 기회가 될 때 절개하는 것이 나았으리라.
문제는 절개 후 회복할 때 포션을 쓴다면 그 고통이 심할 것이요, 포션 없이 회복하는 것 또한 대공비에게는 힘겨운 일이라 제발 무사할 수 있게 아이가 빨리 태어나는 것만을 기도했건만.
“카이만…….”
겨울날 한 번 분 입김보다도 옅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카이만이 신관을 팽개치듯 놓고는 침대 아래에 무릎 꿇고 그 뼈마디가 드러난 가녀린 손을 붙잡았다.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겠다. 부디 아이를 포기해. 헤레니아. 제발…….”
지금이라도 아이를 포기하면 정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는데. 저것이 뭐라고, 아무리 헤레니아가 애원했어도 처음부터 그녀의 생명을 갉아 먹는 것 따위 봐주지를 말 것을.
카이만은 제 기억에서 가장 낯선 감각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뺨으로 흘러내리는 더운 것이 헤레니아의 차가운 손으로 문질러져 사라진다.
“우리 아이잖아요…….”
자신이 본디 가진 피보다 두 배는 더 흘린 탓에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이제는 파랗게 보일 만큼 수척한 모습.
그 모습에 카이만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당장 대신관을 데려와. 리저렉션이 가능한 이를 찾아 어떻게든 끌고 와라.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
만신전의 대신관들 중 고명하디고명한 이. 그리고 그런 이가 수명을 깎아야만, 목숨을 바쳐야만 가능하다는 리저렉션.
애초에 그게 가능한 이들은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데다가 대부분 빈자를 구원하기 위해 방랑 중이었다.
거기에 리저렉션은 드래곤이 아닌 이상 죽은 지 단 하루 안에만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카이만은 자신의 명령에 급히 나가는 소리를 흘리며 손안에서 점차 더 차가워지는 그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
“제발… 제발.”
“…괜찮아요 난. 카이만…….”
내가 죽으면 불에 태워 주세요. 하늘에 보다 가깝게.
그리고 나를 바다에 뿌려 주세요. 물로 돌아가 우리 아이들을 언제나 볼 수 있도록.
덧없는 속삭임에 카이만이 신에게 비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헤레니아에게 빌었다.
“제발… 날 두고 가지 마라.”
일렁이던 시야가 숨 한 번 몰아쉬니 더운 것을 떨구며 명료해진다.
파리하게 질려 그 입술조차 색을 잃었지만 누구보다도 저 자신에게는 아름다워서.
그 차가운 숨에 자신의 온기를 묻듯 잠시 고개 숙여 맞춘 순간.
카이만의 눈이 차갑게 흐려졌다. 몸의 피가 거꾸로 돌며 심장에 얼음 송곳이 박히는 것같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처음이라 단 한 번 숨을 몰아쉰 뒤 신관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기록하라.”
카이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헤레니아의 아래에 있던 신관이 입을 열었다.
“…대공님. 아이는 나왔습니다만.”
처음부터 너무나도 싸늘해서, 손에서 점점 식어 갈 것도 없이 차가운 손을 계속 자신의 체온으로 데우듯 뺨에 대어 쥐고 있던 카이만이 느리게 대답했다.
“그런데 왜 조용하지?”
“…죄송합니다.”
헤레니아.
너는 내가 널 위해서만 아프다고 하면 화를 낼 것인가.
그래도 좋으니 지금 그 눈을 뜨면 안 되겠는가.
카이만이 무표정하게 몸을 일으켰다.
“둘 다 깨끗한 옷을 입혀 주도록.”
따스한 물수건으로 몸을 정성들여 닦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헤레니아는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카이만은 그 모습을 의자에 앉아 입을 열었다.
“아델리안.”
아들이면 아델리안으로 하자 했던가.
지금 와서는 의미 없지만.
헤레니아의 품에 차갑게 식은 아델리안을 천에 싸 안겨 주었다.
마치 어머니와 아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만 같은 모습.
‘당신이라면 죽은 아이라도 한 번 품에 안고 싶어 했을 테니.’
출산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거의 48시간 가까이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곁에 앉아 있던 카이만에게로 누군가가 다가와 몸을 낮춰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래? 모셔왔다니 다행이군.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24시간까지 약 20분 정도 남았습니다.”
카이만이 자신의 체온이 옮겨 가 미지근한 헤레니아의 손을 그녀의 가슴 위에 포개 주며 입을 열었다.
“모셔와.”
그래. 헤레니아가 자신을 두고 갈 리 없지.
카이만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대신관의 목숨은 그가 그토록 원하는 빈자들의 구제에 쓸 돈으로 보답할 수 있으므로.
‘쌓아둔 골드를 풀어서라도.’
최소 3년간 이 대륙에서 굶어 죽는 이 없도록.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대륙의 모두가. 수도의 빈민부터 저 챠비드의 수인족까지도.
빵 하나 구할 길 없어 죽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는 힘이 크루거에게는 있으니.
그리 대신관과 약조한 뒤 카이만은 헤레니아를 응시했다.
곧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
비록 아이는 살리지 못할지언정.
“…카이만 대공 저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대신관, 아직 8분이 남았다네.”
“그러나.”
카이만이 단 한 번도 헤레니아에게서 거두지 않던 시선을 노쇠한 대신관에게 옮겼다.
“그러나?”
마치 그런 단어는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죄송합니다!”
대신관이 낡은 무릎을 쿵 하고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신께서… 신께서.”
이미 끝나버린 시간. 돌이킬 수 없는 일.
“간섭할 수 없다 하십… 윽!”
카이만은 손아귀로 대신관의 목을 움켜쥐었다.
비록 가문을 이끄느라 그 힘을 크게 키우지는 않았으나 본디 카이만은 마법사.
손아귀에 마나가 흐르며 차가운 눈으로 내려본다.
“그게 무슨 헛소리지. 당장 리저렉션을 기도해.”
이제 와 그 알량한 목숨이 아까운가? 이 대륙에서 굶는 이 없게 하겠단 내 약속이 거짓 같은가? 왜?
왜? 왜? 왜?
“그게, 그게 아닙, 커헉!”
카이만이 대신관의 목을 조르자 다른 신관들이 달려와 카이만을 떼어내려 했다.
그리고 그런 신관들의 목에 카이만의 호위들이 검을 겨누며 물러서게 하자 카이만이 숨을 몰아쉬다가 이내 눈가를 내리며 손을 풀었다.
“내가 이렇게 빌겠네. 원하는 게 무엇인가. 무엇이든 해 줄 테니 부탁하네. 아니 간청합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대공 각하. 죄송합니다. 정말…….”
이 한 몸 그 무어가 아까워 아끼겠나이까. 이 낡아빠진 몸으로 한 생명을 살리고 더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왜 아끼겠냔 말입니다.
그런데 대공 부인의 혼이 이미 너무 멀리 가 있습니다.
마치 아주 예전 일인 것처럼 그 가닥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카이만은 그 이해되지 않는 말에 넋이 나간 듯 텅 빈 눈으로 대신관을 바라보다가 시계의 분침이 지나간 순간 호위의 검을 빼앗아 대신관의 목을 날렸다.
뿜어지는 핏줄기를 맞으며.
하나 단 한 방울도 하얀 침대를 더럽히지 않도록 마나의 막을 치고서.
“대신관님!”
“으아아! 이게 무슨!”
그 모습에 다른 신관들이 비명을 지르자 그들의 목마저도 전부 벤 뒤 카이만이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듯 훑었으나 손에도 이미 진득하게 엉겨 그 붉음이 더해져만 갔다.
“만신전에 이들의 목숨값을 보내도록.”
카이만은 차가운 숨을 뱉었다. 이제 24시간이 지났다. 이 아까운 시간을 알고 보니 리저렉션을 하지도 못하는 엉터리를 데려오느라 날려버렸다.
‘남은 건.’
황제가 지닌 부활의, 소생의 비보.
‘소문이지만.’
그것이라도 가져와야 한다.
“당장 수도로 가겠다. 워프 게이트를 준비.”
으에엥!
카이만이 수도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울음소리가 터졌다.
방 안의 모든 이들이 몸을 멈췄다.
굳은 얼굴로 모두 한곳을 바라보았다.
“으아앙! 으에엥!”
아델리안이 갓 태어난 덕에 눈물 없이 빈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나?’
‘리저렉션도 쓰지 못했는데……. 어째서?’
방 안에 있던 이들이 공포에 질렸다. 마법으로도 신성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괴이.
“…악…마?”
누군가 중얼거렸고 그 순간 카이만이 손짓하자 카이만의 호위들이 방 안에 남아 있던 사용인들을 전부 베어 죽였다.
‘아니. 악마일 리는 없지.’
헤레니아의 출산을 위해 이 방은 몇 번이나 축복으로 뒤덮인 곳.
악마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 평범한 소생도 아닐 터.
분명 인간이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는 존재.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무언가가 우리의, 헤레니아의 아이로 왔다.
“이 일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법.”
자결하라.
카이만의 말에 호위가 인사를 올린 뒤 스스로 몸에 검을 꽂으며 천천히 무릎 꿇는 것을 뒤로하고 그는 피로 물든 방에서 유일하게 성스러운 듯 깨끗한 침대로 다가갔다.
하얀 포대에 감싸여 울고 있는 갓난아기.
카이만이 붉어진 손을 뻗어 아델리안을 잡아 올렸다.
‘죽여야…….’
‘카이만. 우리 아이잖아요. 저 낳고 싶어요. 남자아이면 아델리안으로 해요.’
마치 환청처럼 아른거리는 목소리.
울음소리가 듣기 싫은 듯 아이의 얼굴 전체를 카이만의 큰 손이 덮는다.
이대로 조금만 힘을 준다면 이것의 목숨은 끊기겠지.
‘언제나 우리 아이를 사랑해 주세요.’
한 번만 힘을 준다면.
한 번만.
카이만의 손끝에 마나가 맴돌다 이내 사그라든다.
헤레니아의 아이가 지금 살아 움직이니까. 이 손안의 온기만은 진짜니까.
카이만이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헤레니아의 비명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침묵의 마법이 걸린 문.
그리고 어차피 헤레니아가 되살아날 거라 믿었기에 아이의 탄생도 죽음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대신관을 데려왔었다.
그러니 아델리안이 죽어서 태어나 24시간이 지난 후 첫 울음을 터트린 것은 이제 카이만만이 아는 사실.
“내 손으로 죽이지는 않으마.”
네가 무엇이건 어떤 존재건 입은 이 몸만큼은 헤레니아의 아이이므로.
* * *
“그러니 떨어져라, 가디아!”
카이만이 절규했다. 처절하게, 나에게서 가디아를 구하겠다는 듯.
불의 정수를 지금까지 다루어서 그런지 마치 몸 밖의 마나하트인 것처럼 공명하며 화염을 내뿜는다.
그것에 레이첼이 몸으로 받아내며 불의 정수에 대한 권한을 빼앗으려는 듯 굴지만 쉽지 않은 듯 이를 뿌득거렸다.
“그 괴물에게서 벗어나거라!”
아델리안이 죽어서 태어나 24시간이 지난 다음에 되살아났다?
그 말에 가디아가 나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본다.
‘적당히 감이 오긴 하는데.’
당장은 가디아의 이탈을 막아야 하니까.
나는 아주 얄밉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증거 있어?”
내 말에 불의 정수와 공명하며 불의 마나를 해일처럼 흩뿌리던 카이만이 순간 멈췄다.
“…무어라?”
“아, 그 말이 사실인지 증거 있냐고요, 아버지. 그냥 누이에게 혼란 주려고 하는 말인지 사실인지 어찌 알아?”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하는 말에 카이만의 눈이 흔들린다.
어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