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1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14화(214/373)
“으으…….”
아르만의 부관 호슈아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들었다.
“꿈……?”
꿈이 이렇게도 실감 날 수가 있나?
거대한 해룡에게 집어삼켜지는 꿈이라니.
‘이것도 드래곤 꿈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마탑 복권이나 하나 사볼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호슈아가 자신의 옷에 매달려 있던 외알안경을 찾아 한번 천으로 닦은 뒤 눈에 올렸다.
“아르만 님. 도련님.”
나무로 된 창문의 덮개로 인해 선실 안은 제법 어두웠다. 살짝 비틀린 아귀로 스미는 빛만이 지금이 오전임을 짐작케 한다.
선실 안에는 침대 위 자신 뿐. 호슈아는 어쩐지 불길해지는 기분에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몸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휘청거린다. 넘어지기 전 붙박이로 박힌 선박 특유의 가구를 잡아 몸을 지탱한 뒤 고개를 들었다.
“아르만 님!”
굳게 닫힌 선실의 문을 열자 순간 밝아진 사방에 호슈아가 눈을 찌푸렸다.
―끼야.
눈을 찡그려 좁아진 시야로 들어찬 빛 덕에 보이는 건 없으나 귀로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잘박이는 물소리. 마치 거대한 노가 수면을 한 번 치는 것 같은 큰 소리.
“어? 호슈아. 좀 더 누워 있지 그래.”
그 강한 빛에 익숙해졌을 때쯤 들리는 아르만의 목소리에 호슈아가 난간으로 다가가다 멈칫했다.
―끄유?
아직 흔적만 있는 머리의 뿔. 거칠어지지 않은 비늘이나 도드라지지 않은 마디들.
하지만 배가 살짝 기울 만큼 난간을 쥔 앞발에 난 물갈퀴와 분명 유체임에도 불구하고 배와 맞먹는 크기.
“아, 아르만 님?”
씨서펜트라기엔 발이 있고 일반적인 몬스터라기엔 둥글둥글하지만 드래곤에 가까운 외모.
설마설마하는 얼굴로 호슈아가 아르만을 바라보니 아르만이 시원하게 웃었다.
“맞아.”
“새로운 변종 몬스터?”
“해룡이… 어?”
둘이 동시에 말하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 모습에 해룡이 둥근 머리를 갸우뚱했다.
“예?”
호슈아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게 꿈이 아니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하늘이 보이는 밖인데?
그 모습에 아르만이 웃었다. 이 정도로 놀란다면 나중에 얼마나 더 놀랄지.
“인사해. 마린이야.”
아르만이 고개를 틀어 난간을 쥐고 있다가 다시 바다로 풍덩 들어가는 해룡의 유체를 손바닥으로 가리키자 호슈아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름이 그게 뭡니까. 품위와 근엄은요.”
그게 왜 필요하지? 하는 얼굴로 아르만이 바라보자 호슈아가 머리를 쥐었다.
“선전용으로 쓸 이름을 새로 짓는 건 어떠십니까. 돌아가면 난리가 날 겁니다. 도련님의 입지는 더욱 굳어지고 견제는 더욱 짙어질 겁니다. 그리고 당장 보기에는 거의 갓 태어난 상태로 보이는데.”
제대로 지킬 수는 있을지. 아무리 신처럼 추앙되는 해룡이라지만 저렇게 누가 봐도 막 태어난 새끼의 상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호슈아가 고뇌에 빠지는 걸 보며 아르만이 물었다.
“생각보다 안 놀라네.”
“놀랐습니다! 너무 놀라서 오히려 지금 침착한 상황입니다. 그동안 헛소리라고 생각한 게 눈앞에 있는데 어찌 안 놀랍니까.”
호슈아의 말에 아르만이 큭큭 웃다가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건 둘째 치고. 문제는 다른 데 있어.”
“뭡니까.”
“배가 안 움직여.”
아르만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호슈아는 떨리는 손끝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모터의 해초를 풀면 된다면서요. 바람을 일으키는 스크롤이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모터에 완전히 엉켜서 박살 났고 해룡이 배를 삼키면서 미스트가 부러져 돛을 못 세우네?”
바람이 의미가 없지?
그 말에 호슈아의 시선이 남부에서는 신으로 취급되는 해룡, 마린에게로 옮겨 갔다.
“밧줄 있습니까?”
“배를 끌고 갈 수 있을 리가.”
“탈까요.”
“우리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지 없는지 배운 다음엔 늦지 않을까?”
―퍄야?
입에서 바닷물을 뿜어 아르만의 등을 촉촉하게 적셔 준 마린이 둥글둥글한 뿔이 간지러운 듯 배에 긁는 걸 보며 호슈아가 말없이 아르만을 바라보았다.
“마린은 아기야.”
“압니다.”
무풍지대. 돛과 모터가 박살 난 배.
남은 건 남자 둘, 새끼 해룡 하나.
“언젠간 제독께서 찾으러 오실 겁니다.”
“그렇겠지?”
비록 슬슬 다시 해적들이 대규모로 움직이는 데다 가문을 견제하는 다른 남부 귀족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덕에 서류의 바다를 지휘하는 아버지지만.
언젠간 하나뿐인 아들을 찾긴 하겠지?
아르만이 햇빛이 좋네 어쩌네 하며 잠시 고개를 드는데 순간 저 멀리서부터 물이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풍지대.
말 그대로 바람이 거의 없는 이곳은 수면도 잔잔한 편이라 물비늘이 반짝이는 것도 잘디잘았으나 저 끝에서부터 크게 일렁이는 윤슬.
그것을 발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강한 바람이 아르만을 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머리칼이 흐드러질 만큼 강한 바람에 아르만과 호슈아가 고개를 드는 순간 그들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얗고 품이 넉넉한 옷을 입은 사내였다.
단발에 가까운 청록색의 머리칼과 올리브색의 눈동자. 소매가 한 뼘은 더 길어 손이 보이지 않는 옷 덕에 날개같이 보이는 팔을 가볍게 뻗으며 갑판으로 내려앉은 이가 아르만을 바라보았다.
“누구냐.”
그에 아르만의 앞으로 호슈아가 나오며 경계했다.
암살자라고 하기엔 살기가 없고 지나가던 배의 일원이라기엔 이 망망대해에 보이는 건 난파선뿐.
무표정한 사내가 호슈아와 아르만을 번갈아 바라보다 소매를 흔들 듯 하자 허공에 물로 글씨가 새겨진다.
[저는 이본입니다. 이노센트에서 당신을 위해 보내졌습니다.]허공에 물로 쓰인 글자 너머로 이본의 얼굴이 일렁거렸다.
* * *
크루거 성이 북적거렸다. 가주 카이만이 오랜 외유를 끝내고 돌아온 것이다.
“거기! 그 통 조심해! 흔들리면 맛이 변한다고!”
“아침부터 약한 장작으로 구워야 밤에 바삭하게 먹을 수 있다니까? 저녁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
“걸린 태피스트리는 전부 회수하고 새로 달아야지. 빨리빨리!”
아무리 단 셋뿐인 대공가의 가주라 해도 이리 조용하게 귀환할 수 있는지
뒤늦게 카이만이 본성에 왔음을 알게 된 터라 온 성이 술렁이던 가운데.
가디아는 식탁에 앉아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표정을 굳혔다.
마치 그의 죽음에 눈물 흘린 날이 꿈이었던 것처럼.
그 순간은 북받치는 감정에 매몰되어 그렇게나 애원하는 마음이었지만.
‘어색해…….’
언제나 바쁘고 무언가에 몰두하던 카이만. 그의 얼굴보다 뒷모습이 익숙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져도 부족한 것처럼 무언가 한군데 망가져 아무리 채워 넣어도 전부 흘러가던 것처럼.
그러던 카이만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으려니 가디아의 입장에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니었다.
“입맛이 없나 봐?”
“조금.”
그 와중에 아델리안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거는 것에 가디아가 냅킨으로 입술을 가볍게 두드리며 대꾸했고 그런 둘을 카이만이 느리게 바라보았다.
“그래도 익숙해져야지. 앞으로 계속 이럴 텐데.”
다음엔 나 없이 둘이 먹어야 할 거 아냐. 하는 아델리안의 말에 가디아가 슬쩍 카이만을 바라보았다.
“왜지?”
“난 수도에 갈 거라서.”
“나도 갈 예정인…….”
“아직 방학이잖아.”
부녀간의 정을 돈독하게 쌓으라고.
하며 아델리안이 음식엔 거의 손대지도 않고 일어나며 으쓱였다.
“나 빼고 할 말 있을 테니 비켜줄게.”
“아델리안.”
“궁금할 거 아냐.”
그렇다고 내 앞에서 듣긴 눈치 보일 테고.
“어머니 이야기 말이야.”
가디아가 따라 일어나려다 멈칫했다.
그걸 본 아델리안이 몸을 돌리며 손을 흔들었다.
“가디아.”
흠칫. 카이만의 낮은 목소리에 가디아가 잠시 숨을 돌리다 느리게 다시 앉았다.
* * *
너무 입맛이 길들어졌다. 분명 맛은 있는데 제로가 만든 게 더 맛있는 데다 저런 분위기에선 딱 체하기 십상.
‘냉큼 가디아에게 맡기고 빠져나오길 잘했지.’
카이만과는 적당히 입을 맞춰 놨으니 가디아가 그때 한 말은 무어냐 해도 불의 정수가 뿌린 강한 마력으로 인한 망상증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방으로 걸으며 습관적으로 크루거의 반지를 한번 돌렸다.
원래라면 카이만이 돌아온 이상 반납하긴 해야 하는데.
내가 왜?
당당하게 갈취했다. 어차피 이것의 용도는 가문의 권위와 가주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게 크니까.
누가 반지에서 골드를 빼서 뿌리나. 안 그래도 크레딧을 미는 와중에.
게다가 단순하게 골드 때문이면 다른 방법도 있고.
“파이얀.”
<네. 보스.>
“조만간 수도에 올라갈 건데, 상황은?”
<좋아요.>
나는 파이얀과 대화하며 문을 열었다.
“도련님 오셨어요?”
“왔냐?”
―잘 오셨습니다. 막 티 타임을 가지려던 차입니다.
“아델리안 님. 이쪽에 앉으세요.”
“계약자다!”
나는 나에게 뛰어와 안기는 레비를 도닥이며 어이가 없이 웃었다.
아니, 각자 방 다 따로 내줬는데 쟤들은 내 방에만 모여서 뭘 하는지.
물론 내 방이라고는 하나 거의 하나의 집처럼 안에 작은 방들이 더 있는 공간이긴 한데.
이젠 당연하다는 듯 내 팔을 잡고 올라가 어깨를 밟더니 내 머리 위에 엎어지는 레비의 모습에 느리게 한숨을 쉬었다.
반은 정령이라 그런지 사실 무게감은 거의 없긴 한데. 너무 모습이… 좀 그렇지 않나?
나는 루나가 말려 줄까 싶어 슬쩍 바라보았고 루나는 당연하다는 듯 내 머리 위의 레비에게 쿠키를 준다.
‘반지걸이 다음엔 레비걸이?’
걸이로 유용한 재능은 필요 없는데.
으쓱이며 소파에 앉아 차를 받았다.
“내가 오기 전에 아티팩트를 꽤 많이 넘기고 왔는데 그것들의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이지?”
내가 차를 마시며 파이얀과 세이렌으로 대화하자 다들 각자 하던 걸 마저 한다.
루나와 레이첼은 레비와 간식을 먹고 리프는 책을 읽었다.
제로는 안쪽에서 하루 지나야 더 맛있다며 어제 밀봉한 파운드 케이크를 가져오고 있고 케인은 차를 마시며 스카를 여러 모양으로 변형 중이다.
그 익숙한 모습을 눈으로 훑다가 나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상한데.”
<뭐가 말입니까 보스?>
분명 발부스와 내기를 할 때 크루거의 전 재산과 맞먹을 만큼 판돈이 올라갔단 말이지.
그 말은 발부스가 가진 아티팩트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높단 소리.
그런데. 꽤 많은 양을 파이얀에게 팔라며 주고 왔는데 그 대금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적다.
“내가 알기론 남은 아티팩트도 대부분 고만고만하단 말이지.”
‘눈 감은 성녀상’ 같이 대륙에서 찾기 힘든 정말 귀중한 것도 남아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걸었던 것은 대륙에서 골드를 끌어 모은, 그것도 몇 세대에 걸쳐 부를 쌓은 크루거의 재산.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나는 레이첼을 통해 분류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가능성이라면 분류가 완벽하지 않으니 생각보다 고가의 아티팩트가 더 많다는 것.
혹은 너무나도, 가치를 측정하기 힘들 만큼 귀중한 것이 섞여 있단 소리.
‘그래 봐야 레이첼이 모르겠다고 한 건 몇 가지 안 된단 말이지.’
너무 오래된 요정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서적과 이상한 합금판. 뭐 그런 것들이었다.
보통 아티팩트는 품고 있는 마나가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희귀도가 나뉘는 편인데 그것들은 마나가 거의 없는 것들. 아마도 그냥 발부스의 개인 용품으로 추측되었던 것들인데.
“일단 나머지를 처분해 보고 생각하는 게 낫겠군.”
조만간 수도로 올라가 ‘새벽’에도 가 봐야 하니까.
나는 차를 마시며 레비의 꼬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