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1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17화(217/373)
―까악.
패밀리어 8호는 분수대에 앉아 수면에 고개를 이리저리 비추며 기쁘게 울었다.
슬쩍 날갯죽지로 정수리를 건드려 본다.
인어족을 만나 소용돌이에 휘말리길래 주인님의 쥐새끼가 죽은 것 같다고 염사하자마자 아델리안 일행이 다시 해적선에 복귀를 해 버리는 바람에.
보고 제대로 안 하냐고 수도에 와서 패밀리어 0호에게 머리깃털이 뜯겼던 패밀리어 8호였다.
하지만 그것도 예전 일. 드디어 주인님을 만나 아주 조금이지만 흑마나도 직접 받아먹고 외각의 빈민들에게서 부정적인 에너지도 빨아먹다 보니 이렇게나 검고 반질한 깃이 다시 났다.
―까아악.
분수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 이 날렵한 부리와 다시 풍성해진 머리. 꼬인 깃 하나 없는 날개까지.
이래서 패밀리어는 주인의 곁에서 너무 떨어지면 안 되는 법. 괜히 영적인 결속만 약해지고 흑마나만 모자라고 좋은 게 없는 것이다.
―깍깍깍.
패밀리어 8호가 웃었다.
비록 주인이 바빠 영속을 견고하게 마무리하기 전에 또 일을 나오긴 했지만 이제는 먼 곳에 있지 않으니 언제든 보충 가능한 일.
신나게 홰를 치며 날아올랐다. 주인님이 노리던 쥐새끼. 그 검은 머리의 무시무시한 녀석이 언제 수도로 올지 몰라.
매일매일 워프 게이트소에 출석해서 기다리다 퇴근하는 요즘이었다.
조금 떨어진 나무에 올라 나오는 이들을 대충 확인하다가 그 괴물들이 보이면 냉큼 도망쳐서 보고하면 되는 일.
워낙 주인의 흑마나를 적게 먹고 다닌 탓에 신전 근처에 가도 들키기 않을 만큼 존재감 없는 패밀리어 8호만이 가능한 감시역이었다.
다른 패밀리어들은 그동안 주인의 흑마나를 많이 먹어 분명 그 괴물들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불길함을 내뿜었으니까.
―까악.
이번에야말로 성공해서 상으로 주인의 흑마나를 한 움큼 받으리.
그렇게 기쁘게 나무에 앉아 자리를 지키던 그때.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스!”
“오랜만.”
맑은 목소리가 보스라고 부른 것에 대답한 저 목소리.
익숙하다, 익숙해.
패밀리어 8호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워프 게이트의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금색 머리칼과 잘생겼지만 너무나도 오만한 분위기의 사내.
이제 막 게이트에서 나오는지 그 뒷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리고 곁에는 황족도 아니면서 무슨 저런 괴물들만 데리고 다니는지…….
아무리 흑마나가 적어 걸릴 확률은 낮다지만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패밀리어 8호가 더욱 기척을 죽이며 아델리안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런데 머리에 뭘 얹고 다니는 거야?
패밀리어 8호가 말캉해 보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는데 순간 그 오만한 인간에게 보스라고 부른 청금색 머리의 여자가 문득 눈동자를 들어 바라본다.
―……?
방금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에이, 설마. 아니겠지.
패밀리어 8호가 착각이었길 바라며 소리도 내지 않고 나무 위에 웅크려 앉아 있는데 청금색 머리칼의 여자가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이쪽을 가리켰다.
“저거!”
순간 아델리안과 더불어 그 일행의 눈동자가 전부 이쪽을 향한다.
패밀리어 8호는 그 섬짓한 광경에 최대한 일반 까마귀인 척 부리를 열었다.
―까…까악……?
“잡아!”
―까아악!
도망쳐야 해. 얼른!
발로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박차고 날개를 크게 휘젓는다.
당장 도망가기 위해 허공을 따귀 치듯 날아오른 순간 검은 뱀 같은 것이 몸을 퍼더덕 휘감았다!
―꺄아악.
얼마나 다급했는지 까악 하는 울음소리가 갈라진다. 검은 깃털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냥 까마귀가 아닌 거 같은데. 어찌 생각해?”
채찍에 꽁꽁 감겨 와들와들 떨어대는 8호를 뭔가 분석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아델리안이 케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그 말에 케인이 유독 서늘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로 8호를 한번 훑어보았다.
눈빛의 날카로움에도 질량이 있었다면 지금 자신은 몇 조각으로 분리되었을까.
8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와, 이거 신기한 느낌이네. 뭔가. 보스, 이거 안 죽이고 나 주면 안 돼?”
“파이얀. 저 까마귀는 왜.”
―까악?
그리고 꽁꽁 묶인 8호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청금색의 여자. 파이얀이라고 했나?
8호의 눈동자가 급박하게 움직였다. 눈앞의 금색 머리와 금색 눈동자의 저놈들은 글렀다.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참한 까마귀 그 자체가 되어 8호는 냉큼 파이얀을 바라보며 친한 척을 해대기 시작했다.
―까악. 까아아악. 깍.
“상태가 이상한데.”
아니야!
아델리안이 고개를 기울이며 하는 말에 8호가 바락했다. 고개를 기울이니 그 머리에 올라간 말캉한 생물체도 기우뚱해서 뭔가 더 꼴 보기가 싫었다.
“엄청 약해서 몰랐는데. 이거 흑마법사의 패밀리어인데?”
그러다 문득 붉은색 머리칼을 가진, 저번에 듣기로는 레이첼이라 불린 이가 하는 말에 아델리안의 푸른 눈동자와 케인의 황금색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오호라?”
아델리안이 입꼬리를 길게 올려 웃었다.
* * *
일단 스카를 채찍으로 만든 것에 감긴 그 까마귀를 아공간에서 꺼낸 밧줄로 묶었다.
“새장을 사서 넣을까.”
내가 한 손에 구슬피 우는 까마귀를 잡고 고민하자 레이첼이 슥 대답한다.
“그냥 까마귀가 아니고 흑마법사의 패밀리어라서 일반 새장 정도는 부수고 탈출 할 수 있을 테니 지금이 나을걸?”
나는 그 말에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묶어놔야겠네.
“흑마법사라니.”
―그거 만져도 되는 겁니까.
수도에 있는 크루거 가문의 저택으로 가는데 루나가 찜찜한 얼굴로 엄지와 검지만 움직여 까마귀를 집더니 나에게서 빼앗아 간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케인에게 넘기는데.
거기에 제로는 내 옆에 서 있던 케인을 반대로 당기며 비집고 들어와 거리를 벌렸다.
가끔 기발하게 시도하고 애매하게 실패한 음식도 밀어주더니.
너네 케인 취급 이게 뭐냐! 우리 파티 최강 딜러인데. 딜수저가 여기에선 대접을 못 받네.
‘하긴 귀족 힐러는 지금 내 머리 위에 있으니.’
까지 생각했다가 나는 얼른 레비를 꼬셔 반지에 넣었다.
수도에서 아주 광고를 하고 다닐 뻔했네, 이거.
물론 인어족인 것은 바로 들키지야 않겠지만 쓸데없이 이목을 끌면 귀찮아진다.
희귀한 생물 애호가나 마법사들이 알면 귀찮게 들러붙을 테니.
레비의 안전을 위해서 얼른 넣은 뒤 나는 파이얀에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어?”
라피스라줄리 컨셉의 파이얀이라 청금색의 컬러와 우디향이 눈과 코끝에 감돈다.
시원하게 웃는 얼굴을 비추며 파이얀이 입을 열었다.
“아니, 뭔가 머리카락 한 올만 잡고 톡톡 당기는 것같이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보스.”
흑마법사의 패밀리어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붙어 있었을까.
악신교단도 아닌 흑마법사인데.
길게 잡자면 케인의 고향에 갔을 때부터, 혹은 그 이후.
그동안 케인도 루나와 제로. 리프와 레이첼까지 합류하며 꽤 파티의 전력이 강해진 상태인데도 발견을 못 했다.
이유는 일반 까마귀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까. 아주 극미량의 흑마나가 깃들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카이만이 불의 정수를 이용해 불의 마나를 다뤘고 레비가 물의 마나를 다뤘듯이.
마나란 그 속성이 각양각색이고 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부 뒤섞여 퍼져 있다.
그러니 극미량의 흑마나가 근처에 있다고 해도 시체는 어디에든 있는 법이고 부정한 감정 또한 어디에든 묻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니 몰랐던 건데.
‘그걸 파이얀 넌 어찌 알았냐고…….’
일단 지금 사용자의 눈을 켰다간 지나다니는 사람들까지 얼결에 읽을지도 모르니.
“저 잠시 빠졌다가 나중에 저택으로 귀환해도 될까요. 아델리안 님?”
제로가 잠시 허공으로 시선을 긋더니 서글서글하게 웃는다.
“왜?”
“시장 좀 둘러보려고요. 괜찮은 거 있으면 사서 가겠습니다.”
“짐 혼자 들기 힘들 텐데.”
내가 자연스럽게 레이첼을 바라보자 레이첼은 뭐 어쩌라고 하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저렇게 정이 없다, 드래곤이. 동료가 장바구니 무겁게 들면 한 손 내밀수도 있는 것을.
“제로 혼자 가두 괜찮을 거 같아요. 짐이 많으면 크루거 저택으로 보내 달라구 하면 되니까.”
“그렇다잖아.”
레이첼이 팔꿈치로 날 치는 것에 나도 마찬가지로 공격했다.
* * *
“지금 몇이야?”
“못해도 넷입니다. 루나 선배님.”
[같이?]“혼자 가능합니다.”
게다가 대놓고 우르르 움직이면 들키잖습니까.
아델리안이 파이얀과 대화하는 동안 일반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로 말하며 제로가 웃었다.
“넷 전부 다른 소속인 것 같군. 그중 7시 방향에서 뒤따라오는 이는 단순하게 세이렌을 필두로 한 사업적 목적으로 정보를 모으는 중인 듯하다.”
“그럼 나머지 셋만 확인하면 되겠군요. 서로 다른 소속이라면 동시에 확인해야 할 필요도 없을 테니.”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제로가 케인의 말에 한번 고개를 끄덕인 뒤 아델리안에게 입을 열었다.
“시장 좀 둘러보려고요.”
아델리안의 허락을 받은 후 제로는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 안쪽 골목으로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집어쓰는 로브의 후드.
‘7시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셋.’
따라붙은 쥐새끼들.
그리고 그 셋 중 둘에게 느껴지는 미약한 살기.
단순한 처리라면 자신보다 케인이 더 잘할 테지만.
‘뒤를 캐내면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로는 아델리안의 파티에 각자의 자리와 더불어 맡은 바 임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케인 선배님은 검이죠.’
사실 검이라기엔 그 힘만 생각하면 더 험한 무기가 생각나지만.
루나는 모두를 연결하는 끈과도 같다. 리프는 방패이며 레이첼은 언제나 앞을 열고 오는 것을 받아치는 존재.
레비는 아델리안이 그토록 자주 말한 힐러의 위치가 공고하고.
그렇다면 제로 자신은.
‘저는 그림자가 아닐까요.’
그리고 보통 그림자라 불리는 것들은 이런 일을 하는 법이니까.
제로가 손을 뻗어 막 사과를 고르는 척하다 몸을 드는 사내를 확 잡아 골목의 어둠으로 끌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는 말을 하기도 전에 사내는 자신의 사지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혹한의 추위에서 얼음을 깬 강물에 처박힌 듯.
몸이 뻣뻣하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으로 좁게 달라붙는다.
“쉿. 들키면 안 되거든요.”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낮게 속삭인다. 그것에 사내가 눈알만 겨우 데굴 움직였다.
“괜찮아요. 죽이거나 할 생각은 없어요.”
경고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지.
“그냥 질문 하나에만 대답해 주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제법 상냥한 목소리.
하지만 사내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자는 끝없는 심연이라고.
저것에 빠져 삼켜지면 안 된다고. 본능이 소리를 지른다.
“어디서 오셨어요?”
마치 언어라는 것을 박탈당했다가 그 말 한마디로 허락받은 것처럼.
그제야 사내는 자신의 혀가 제대로 움직이는 것에 안도하며 대답했다.
“무…무슨…….”
“모른 척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몇 명 더 알아봐야 하거든요.
“험하게 굴고 싶지 않습니다. 성히 가셔야죠.”
사내는 죽기 직전까지 몰려도 입을 열지 않는 훈련을 받았다. 강한 고문을 견디고 약물에도 내성이 있으며 수십 시간을 굶고 마시지 못해도 바로 눈앞에 있는 음식을 탐하지 않을 정신력을 가졌다.
손가락이 분질러지고 끊기고 관절이 망가지는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지. 그렇기에 감히 대륙에서 가장 부유하며 이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가문의 혈통을 뒤따른 게 아닌가.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정신과 육신의 저항일 뿐.
영혼은 어찌 단련해야 했을까.
‘안 되겠네요.’ 하고 사내의 고개를 돌린 공간에서 보이는 녹색의 보석.
그것은 영혼을 농밀하게 응축한 공포. 자아의 소실, 의지의 상실. 내가 나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주어야 할 것 같은 피식자의 항복.
“…황…실…….”
사내의 단말마 같은 속삭임에 제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