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1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18화(218/373)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영원한 죽음을 받아도 좋습니다.”
살아 있는 신은 마나로 이루어진 검은 휘장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웅크린 자들. 빌고 빌어 기도하는 이.
허공에 다리를 꼬아 앉아 턱을 괴었다.
지루함 그 자체의 삶.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기꺼웠다. 저리 나오면 보통은 제 계획이 어그러진 일이라.
“말해 봐.”
“모든 것을 고하겠나이다…….”
결국 제대로 대륙을 휩쓸지 못한 전염병과 이름 붙지 못한 그저 그런 비보가 아닌 네임이 붙은 비보의 느린 수확들.
더불어 미궁의 존재까지.
‘미궁?’
살아 있는 신이 고개를 느리게 기울였다.
“최대한 남은 재료를 짜내고는 있으나 더 이상 도플갱어의 조각을 수집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신이 느리게 기억을 되짚었다. 너무나도 많은 기억들. 뒤섞인 것들. 이건, 이번이 아니고. 그렇다면 이 기억인가.
꽤 예전 일이었다. 단 한 번, 마침 변덕으로 도플갱어의 종주를 확인했던 그 순간 시야에 케인이 들어온 건 작은 재미요, 흥미였지.
가끔 그런 경우가 있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일.
절망하고 배신당하고 짓이겨지며 팔려 나가는 그 길이 아니라.
아주 가끔 퉁겨져 나간 것처럼 달라지는 일.
‘그야 모든 것에는 변수가 있으니까.’
이미 최초의 흐름에서 너무나도 많이 벗어났다. 비틀고 비틀어 이미 그 원형은 온데간데없이.
망가트리고 부수고 뒤섞어 새롭게 만든 시간과 장소를 돌고 또 돌고.
그 정해진 연극 같은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건 자신이니까.
그러니 살아 있는 신.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같은 행동을 하는 게 아닌 이상. 결국은 한 번씩 이렇게 자신이 깔아둔 길이 아닌 다른 곳으로 튕긴 케인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반가워서 인사를 했지.’
마침 가둬둔 재앙을 확인하는 김에 거기 있길래. 소소하게 선물을 했지.
동료가 생긴 것 같더라고.
죽이거나 혹은 서로를 배신하거나.
그리하라 말해 놓은 뒤 잊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억은 너무나도 많이 잠겨 있거나 혹은 풀려 있었으므로.
“신께서 직접 열어 주는 날이 아닌 한 도플갱어의 미궁은 불규칙하게 열리는지라… 처음엔 유독 이번은 늦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아하.”
살아 있는 신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두드렸다.
“그렇구나. 이번에는 변수가 더 생겼나?”
까다롭긴 하지만. 괜찮아.
도플갱어의 종주가 풀려났다면 지금쯤 몸을 숨기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대륙을 뒤엎는 천재지변이 되겠지.
그 또한 케인의 시련이 될 테고.
라비린의 대미궁이나 자신의 신전 같은 곳이 아닌 한 세상 모든 곳을 돌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아직 세상 전부에 흩어둔 격을 다 되찾지 못했음으로.
하지만 그러해도 상관없이. 예상한 것이 비틀어져도 단 하나의 목적만 성공하면 되는 거니까.
“내버려 둬.”
“예?”
“괜찮으니 내버려 둬. 남아 있는 것들만 써서 혼란을 일으키면 될 테고.”
혹은 그조차 부족해도 결국 진짜 도플갱어들이 이 세계를 혼란에 밀어넣을 테니까.
살아 있는 신이 나가 보라는 듯 손짓하며 허공에 드러누웠다.
“얼마나 더 버틸 참이야?”
고집도 세지. 굽히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것이 너인 것을 알지만.
“얼마나 모두를 나락 속에서 살게 할 건데.”
살아 있는 신이 비보에서 피어오르는 마나를 삼키며 눈을 감았다.
* * *
“곧 있을 축제에서 1황녀 세리아는 자신의 트레잇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지지를 받을 생각으로 파악됩니다.”
“그때 망신당하면 재미있겠네.”
“그리고 베르뷔트 같은 경우엔 혼자만 엮기엔 좀 아쉬워서요. 보스가 저번에 한번 말씀하신 대로 아카데미에 있던 다른 교단원들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샤하드랑 연계하면 될 거 같고요.”
“샤하드까지 끌어들이는 거면 판을 좀 더 얽어서 세리아도 끼울 수 있을 거 같은데. 세리아 측에 교단이 접근했잖아.”
나는 파이얀과 대화하며 종이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하면 악신교단의 드러난 얼굴, 양지에서 활동하는 베르뷔트란 가지 하나를 자르는 것과 동시에 언젠가 있을 황위 찬탈 메인 스트림을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다.
‘아, 성소 가긴 가야 하는데.’
사실 성소에 들르려면 황위 찬탈, 즉 제국의 내전이 일어나는 게 편하다. 혼란이 생겨야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 업적도 깨고.
‘게다가 거기 게임에서는 그냥 신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이라고 텍스트가 나왔어도.’
이곳에서는 진짜일 거 아니냐고.
이렇게 된 이상 정정당당하게 성소에 들어가려면 샤하드뿐이다.
샤하드를 적극 지원하여 황제로 만들면 뭐 성소 한번 정도 쓴다고 별일 생기겠냔 말이지.
“차 한잔 하시면서 대화 나누세요.”
“고마워.”
난 루나가 준 차와 쿠키를 받으며 인사했고 그 모습을 보던 파이얀이 날 지그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보스. 저 보스가 타준 차도 마셔 보고 싶어요.”
왜 그런 로망 있잖아요. 이 잔을 받으면 나는 널 진정한 오른팔로 여긴다 하는 뒷세계의 그런 낭만?
하며 파이얀이 생글생글 웃는데 저 멀리서 레이첼이 으엑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야! 그거 절대 마시지 마! 너 후회해!”
표정뿐 아니라 쩌렁쩌렁하게 경고까지 날려주고.
고맙네.
“왜?”
“왜긴 왜야. 맛이 없어! 맛이 나쁘고 못 먹는다는 맛이 없다가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아무 맛이 안 나!”
그 말에 파이얀이 레이첼 쪽으로 뒤돌아봤다가 다시 나를 스윽 본다.
“그렇다더라?”
아니. 그런데 그럴 수가 있나? 설탕을 넣으면 단맛이 나고 찻잎을 넣으면 하다못해 쓴맛이라도 나야 하는데.
말이 되나. 그게.
난 먹을 만하던데.
나는 일어나 티 테이블 쪽으로 걸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비밀리에 감정사 좀 찾아봐. 내가 가진 아티팩트들을 좀 정밀하게 확인하고 싶거든.”
“저번에 주신 것도 꽤 좋은 게 많았는데 더 있으세요?”
“더 있지. 더 있긴 한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귀한 것으로 신의 계약서에 인증받은지 모르겠단 말이지.
나는 당당하게 찻잎을 고르고 주전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레이첼은 얼른 루나가 우려낸 차를 마시고 양손에 과자를 움켜진 뒤 일어났다.
“난 저기 가서 제로랑 게임이나 할래.”
“왜? 여기 더 있지 않구.”
“막상 보면 또 궁금해서 먹어볼 거 같아.”
배달해 줘야지.
“그리고 새벽에 대해 알아봤어?”
“아, 그거요?”
내가 마법 포트로 물을 끓이며 묻자 파이얀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알아냈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뭔데.”
“그 새벽이라는 곳.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확인했는데. 아무도 입에 올리지를 못하던데요?”
마치 금제라도 걸린 듯.
“입 밖에 내려고 하면 뭐에 막힌 것처럼 굴더라고요.”
나는 찻잎을 털어 넣으며 낮게 침음을 흘렸다.
“난 괜찮은데?”
“그러니까요. 그냥 이걸 짐작하는 정도에 쓸 정보를 알아내는 것만 해도 꽤 힘들었는데 새벽이란 단어는 끝까지 안 나왔거든요. 보스.”
보스가 새벽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면 그곳의 명칭조차 몰랐을 거란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 설마 부유감 때문인가.
그럼 누설할 수 없도록 뭔가 정신적인 금제 혹은 마법 같은 게 걸린 공간?
일단 몇 번 가 보질 않아 확실하지가 않네.
“그건 나도 좀 알아보도록 하지.”
나는 우려진 찻물을 천천히 찻잔에 부었다. 옅은 다홍색의 차.
그 향기가 제법 괜찮다.
나 또한 잔에 따라 살짝 식힌 뒤 한 모금 마셔본다.
마실 만하구만.
내가 어떠냐는 듯 파이얀에게 눈짓하자 파이얀이 한 번 후 불어 식힌 뒤 꼴깍 삼켰다.
그리곤 갸우뚱 기우는 머리.
“저두 마실래요.”
―저도 한번.
나는 자꾸 고개가 이리저리 기우는 파이얀과 조금씩 따라 마신 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자리로 되돌아가는 루나. 리프를 일단 뒤로한 채 차 두 잔을 들고 바로 옆방으로 들어섰다.
“주사위의 신이여!”
“그런 신이 있습니까, 후배님?”
“없으면 이런 숫자는 나올 리가 없어… 아니, 왜 여기까지 쫓아와.”
나는 게임 잘 되어 가냐며 물으면서 제로와 레이첼에게 찻잔을 건넸다.
“아, 이걸. 아. 내가 또.”
“뭐 어떻습니까, 후배님.”
고민하는 레이첼을 보며 제로가 차를 홀짝였고 그걸 보던 레이첼이 슬쩍 자신도 한 모금 삼킨다.
“역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아. 아무 맛 안 나.”
“그냥 생수 마신다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제로 저게 더 나쁜 놈이었네.
나는 배달을 끝내고 다시 파이얀과 상의하기 위해 방으로 걸었다.
“뭔데.”
그리고 보이는 건 멍한 눈으로 까마귀를 쥔 파이얀과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마나 폭풍을 제어하는 케인. 루나. 리프.
“무슨 상황인데 이거.”
잠깐 차 한 잔 옆방으로 배달하고 온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파이얀의 주위로 휘감기는 마나 폭풍은 미친 듯이 거친데 옆방에서 느끼지도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제어하는 셋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
“그러니까 잠시 도련님이 옆방으로 가셨을 때. 파이얀이 케인의 손에 잡혀 있는 까마귀가 계속 신경 쓰인다구. 오시기 전까지 좀 보자더니…….”
―만지작거리다 눈을 마주하고는 말소리가 들린다고 하더군요. 관리자님. 그리고 나서.
“저러더군.”
케인이 여상스레 하는 말에 나는 무시하고 계속 말해 보라는 듯 루나와 리프를 바라보았다.
“마치 교감하는 것 같았어요.”
―아주 미약한 흑마나가 파이얀의 몸에 흡수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신경 쓰긴 했지.
애초에 그 미약한 흑마나를 지닌 패밀리어를 발견한 것도 파이얀이었고.
나는 마나 폭풍의 한가운데서 파이얀에게 꽉 붙들린 채로 기절한 듯 혀를 빼물고 있는 까마귀를 구경했다.
보아하니 패밀리어가 꾸민 함정은 아닌 거 같다.
원래 파이얀은 요마족 계열이었지.
순혈은 아닐 테고 아마 혼혈. 그렇지만 마족의 피가 흐른다는 소리.
요마족은 강한 마력이나 혹은 무력이 아닌 특수 능력 쪽으로 힘이 발휘된 이들이다.
파이얀의 트레잇에 매료가 있는 게 그 이유일 테고.
하지만 아무리 혼혈이라도 마족은 마족이니 기본적으로 일반 마나가 아닌 흑마나를 쓰는 마족의 본능 덕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찰나 붉고 푸른, 그러면서 동시에 엉켜 자색으로 빛나는 불길이 느리게 파이얀의 몸에서 피어오른다.
“무슨…….”
“위험하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한 발자국 다가가자 케인이 입을 열었다. 케인의 말대로 파이얀의 몸을 태운다기보단 그 머리칼 끝부터 살라먹는 것은 색뿐이다.
청금색으로 바꿨던 파이얀의 머리카락이 천천히 분홍색과 빨간색. 그리고 보라색이 오묘하게 섞인 색으로 변해 간다.
하얀 피부 또한 자색 불꽃이 일렁이며 아주 희미하게 아주 여리게 은은한 붉은 빛으로 변해 갔다.
‘어? 잠시만.’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마치 홀린 듯 바라보다가 문득 스쳐 지나간 일러스트에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으로, 혹은 아이스버킷이라도 한 것같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랑대는 보랏빛 섞인 온색 그라데이션 머리칼과 은은하게 붉은 색으로 빛나는 피부. 거기에 요마족.
우리 디버프사…….
“리온…….”
나는 양손으로 내 얼굴을 쓸어 올리다 이내 내 머리칼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