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2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20화(220/373)
챠닥챠닥.
패밀리어 8호는 말캉하고 보드랍고 촉촉한 무언가가 자신의 부리를 챱챱 미는 것에 눈을 껌뻑였다.
슬라임도 아닌 것이 정령도 아닌 것이. 생긴 건 도마뱀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고정된 모양새냐고 하면 몸이 아주 연하게 움직일 때마다 물결치는 것이 금방이라도 다른 형태로 변할 것 같다.
“까매.”
―깍……?
챠닥챠닥 부리를 몇 번 치자 저쪽에서 금발머리를 한 인간. 아델리안이 소리쳤다.
“레비! 이리 와. 지지.”
“응!”
―까? 아? 악?
지지라니! 지지라니! 이래 봬도 자주자주 빗물이나 호숫물로 깃털에 앉은 먼지를 잘 닦는데!
‘물뚱땡이 도마뱀!’
패밀리어 8호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서 흔드는 스콘을 향해 양손을 들고 두 발로 도다다 걷는, 물뚱땡이 도마뱀이라 명칭한 레비를 노려보았다.
레비가 아델리안에게로 향하더니 몸이 흐려지며 어디론가 쑥 들어간다.
‘뭐지. 마법 생물?’
흔치 않은 외형에 정령과 비슷한 기운. 자신의 주인이 알면 좋은 실험체가 되리라.
―깍깍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어쩐지 날개 뒤쪽이 시원해진 기분이라 고개를 돌렸다.
“좀 시끄럽군.”
소파에 앉아 밧줄로 묶은 패밀리어 8호를 무릎에 올리고 있던 케인이 나지막하게 하는 말에 8호가 고개를 슬쩍 내린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깍깍거리는 것이 정말 듣기 싫었는지 케인이 손끝으로 8호의 부리를 잡자 순수한 마나가 부리를 둥글게 감싸며 꽉 조였다.
‘괴물!’
마나를 마법학적으로 제어해서 행한 행위가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하게 마나 자체를 부린 행위.
마법이라는 학문이 마나를 좀 더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으로 봤을 때.
방금 케인이 한 짓은 말 그대로 무식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아주 튼튼한 데다 마나가 새끼줄을 꼬아 붙은 것처럼 정교했다.
‘이러니 주인님이 탐내시지…….’
그것은 아무래도 수많은 노력의 결과물이라기보단 말 그대로 재능의 영역.
괜히 광산 도시 놀웰의 근처에서부터 지금까지 쫓아다닌 게 아니다.
어떻게든 케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8호의 주인은 그 완벽한 육체로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내 감시자고…….’
8호는 속으로 구슬피 울었다. 마음 같아선 ‘까악… 깍깍…….’ 하면서 흐느끼고 싶었지만 마나가 부리를 딱 조이고 있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나 잠시 옆방 다녀올게.”
“네, 다녀오세요. 보스.”
아델리안이 무언가 들고 방 밖으로 나가니 파이얀이라 불린 여자가 냉큼 일어난다.
그리고는 슬쩍 방 밖의 눈치를 보며 이곳으로 오는데.
패밀리어 8호는 이상한 기분에 슬슬 눈을 내렸다.
“왜 그러지.”
“아니, 나 잠깐 얘 좀 보려고.”
파이얀이 케인에게 잡혀 있던 8호를 살짝 들어올린다.
그리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뒤집었다가 엎었다가 거꾸로 들었다가.
‘어지러워!’
8호가 속으로 깍깍거리는 동안 파이얀은 진지하게 패밀리어 8호를 조물거렸다.
“아, 뭔가 이상한데. 자꾸 신경 쓰여.”
주물떡. 주물떡.
‘꽥! 패밀리어 살려!’
파이얀이 주물거리는 덕에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라 8호가 발버둥 쳤다.
부리는 마나로 꽉 고정되어 있어서 비명도 못 지르고 발만 바동거리는데 파이얀이 지긋하게 8호를 응시했다.
“너 뭔가 거슬려.”
‘뭐가요!’
“숨기고 있는 거 다 뱉어봐.”
‘부리나 풀어 주고 말하든가!’
아니, 처음엔 잡아온 김에 심문을 할 줄 알았다. 흑마법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언제부터 따라 다녔냐든가.
그런데 아델리안이란 그 인간 놈은.
‘일단 잡아서 케인 손에 있으면 끝났지. 더 급한 거부터 처리하자.’
하질 않나.
그러니 이건 절대 8호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석의 부하가 자신에게 집착하는 게 어찌 잘못이 될 수 있겠어.
패밀리어 8호는 핏빛처럼 붉은 눈만 슴벅거리다 슬쩍 고개를 돌렸고 그 모습에 파이얀이 목을 탁 쥐고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꽥!’
“흑마나 때문이 아닐까? 흑마나 좀 내 봐. 어?”
파이얀이 웃으며 하는 말에 패밀리어 8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려다가 콱 잡힌 덕에 바들거렸다.
몸속의 흑마나를 굳이 지금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쓸 리가.
패밀리어는 자체적으로 흑마나를 생산하지 못한다. 주인에게 받거나 혹은 흑마나가 많은 곳에서 흡수를 하거나.
그러니 쓰면 사실상 손해라 8호가 말귀를 못 알아먹는 척 ‘꽑?’ 하는 얼굴로 보니 파이얀이 차갑게 웃었다.
“얼른.”
패밀리어 8호가 스믈스믈 살기가 번지는 파이얀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마치 도와달라는 듯 눈알을 굴리는데 검은 머리 괴물은 마나를 조율하고 있고 다른 이들도 간식을 먹으며 관심이 없다.
아니, 무슨 큰일 한다는 파티가 이래! 이 죄 없고 연약한 새 한 마리를 이렇게 방치하고!
“진짜 콱 죽일까.”
너무 수상해서 손을 썼다고 하면 보스는 착하니까 넘어갈 거 같은데.
파이얀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아델리안이라면 몰라도 악한 짓을 하는 게 당연한 곳에서 살아오지 않았나. 원래.
그런 것에 거리낌 있었다면 미궁에서 초보자를 등쳐먹는 짓 따위 안 하고 지냈겠지.
누군가를 함정에 밀어 넣으면서도 죄책감 따위 없었다.
지금 운영하는 라피스도 나중에 이노센트나 아델리안과 연관 지어 수면 위에 떠오르는 날을 예상해 나름 깨끗하게 운영하는 거지.
수익만 따지고 운영했다면 원래 있던 암흑가의 조직보다 더한 나락이 가능했을 텐데.
그러니 파이얀은 진심이었다.
패밀리어 8호의 목을 꽉 쥐어 점점 조르는 것에 8호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까마귀 살려. 까마귀 살려!’
바동거리지만 아무도 돕지 않는다.
이 간악한 괴물 파티 놈들!!
패밀리어 8호는 살기 위해 몸속의 흑마나를 내뿜어 파이얀을 공격했다.
그 공격으로 잠시라도 자신을 놓치면 두 발로 뛰어서라도 아델리안에게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나마 이 파티에서 유일하게 덜 위험하니까!
“아? 아아…….”
그리고 패밀리어 8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그 흑마나를 파이얀이 천천히 흡수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떠돌아다니는 야생의 흑마나가 아닌. 누군가 한번 가공하고 정제한 것.
그것도 일반적인 가공이 아닌 한때 그 경지가 상당했던 흑마법사가 지녔던 순수한 흑마나.
그것은 파이얀의 손아귀를 파고들어 몸을 한 번 돈다. 느리게 무의식과 본능 저 아래 깃들어 잠든 무언가를 깨우기 시작했다.
* * *
릴리스. 로즈. 리온.
문득 조카 돌볼 때 주구장창 틀어주던 동요 메들리 중 한 구절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루비. 릴리. 라줄리. 그리고 파이얀.
파이얀이 자기 자신을 숨기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이름과 더불어 확고한 컨셉이었다.
그리고 그건 릴리스도 마찬가지.
보통 릴리스라고 불렀지만 누구는 리온이라 부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로즈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뭐 원작에서 릴리스는 서큐버스, 즉 몽마였고, 꿈속에서는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까.
군단장으로 등장했을 때는 요염하고 아름다운 서큐버스의 모습으로 릴리스라고 소개했지.
그리고 누군가의 꿈에서는 리온이라 불리며 그를 홀렸고.
케인에게는 로즈라고 속삭이며 환몽으로 이끌기 위해 몇 번이고 케인의 꿈에 찾아왔었다.
‘생각할수록 파이얀이었네. 파이얀이었어…….’
하지만 리온은, 아니 릴리스는.
‘헷갈리네!’
릴리스는 연한 분홍빛 피부와 연보라와 하늘색이 섞인 머리칼. 박하와 솜사탕이 섞인 것 같은 체향이 특징이었다.
게다가 서큐버스라는 확실한 종족 특징도 있었고.
파이얀은 요마족 혼혈일 뿐이지, 서큐버스로 각성한 건 아니었으니까.
‘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던 나날들.’
내가 조금 심란한 얼굴로 차나 마시며 말없이 소파에 앉아 있으니 무슨 수를 쓴 건지.
다시 청금색 머리와 눈, 하얀 피부를 가진 라줄리의 모습으로 파이얀이 기절한 까마귀를 내다 버리고는 슬금슬금 다가온다.
“보스. 화났어?”
“아니.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정말 이런 생각까진 일부러 안 했다.
안 했는데.
나는 나와 케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케인 옆에 자리를 잡는 리프의 손에 들린 책을 흘긋였다.
‘올해 최고의 책! 마룡 기사와 열두 부인들!’
그런 띠지가 걸쳐진 저, 저거 봐라, 저거.
‘하렘이나 부인이란 글자가 저거에서 나온 건 아니겠지?’
아직 가디아는 희망 있다, 그래도.
한동안 역사책이며 학문 서적을 미친 듯이 뒤지더니 요즘은 로맨스에 정착한 리프를 바라보다 내가 한숨을 쉬자 이번엔 레이첼이 내 눈치를 보다가 케인의 옆에 앉아서는 어깨동무를 한다.
왜 친한 척 중일까.
‘웃는다. 좀 웃는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레이첼이 웃는다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타는 속을 달래기 위해 식은 찻물을 다시 마셨다.
‘그래. 이건 인정하자.’
릴리스 코인은 물 건너갔다.
왜냐하면 릴리스는 파이얀이고, 파이얀은 저번에 케인이 하루 만에 목을 댕겅 다 날리며 돌아다닌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릴리스가 케인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자신의 강한 매료를 케인이 아무렇지 않게 버텨서였다.
흔한 거지.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원래도 매료라는 트레잇의 등급이 낮지 않았던 파이얀이 원작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서큐버스로 군단장까지 되었으면 말 다한 거다.
남성체라면 버티기 힘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견디니 처음에는 널 함락시키겠다며 적의 간부면서 자꾸 접근하더니, 나중엔 너라면 다르겠지 하며 합류하고.
그러면서 둘만의 유대. 어? 유구하잖아. 악의 여간부가 우리 팀이 되는 그런 클리셰의 왕도.
그러면서 피어나는 러브스토리.
‘없어.’
내가 이마를 짚자 갑자기 루나가 일어나더니 케인의 머리칼에 뭐가 묻었다며 만지작거린다.
‘…그래도 사이좋으니 보기는 좋군.’
내가 그 모습을 착잡하면서도 뭔가 기쁘게 바라보는데 파이얀이 슬금 다시 입을 열었다.
“보스, 나 더 강해진 거 같아요. 그래서 더 도움이 될걸?”
“…강해지기야 했겠지. 그래. 뭐 이렇게 된 거.”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파이얀이 서큐버스로 각성한 것까지 계획에 넣는 수밖에.
“서큐버스로 각성하고 나니 뭐가 다른 것 같아?”
사용자의 눈을 쓰기 전에 일단 본인이 체감하는 건 어떤지 물으며 깃펜을 들자 파이얀이 눈을 둥글게 뜬다.
“저 서큐버스야, 보스?”
어떻게 아냐는 말에 나는 담담하게 웃었다.
“예지안이 있거든.”
내 말에 파이얀이 자신의 입을 가리며 ‘이걸 예지안으로?’ 하고 중얼거리는데, 다 들린다. 인마.
“하여간 너 서큐버스야. 그래서 뭐가 달라진 거 같아.”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오늘따라 유난히 복작거리는 케인 근처를 바라보며 슬쩍 레비도 반지에서 내보냈다.
“계약자!”
“도련님은 바쁘니 일단 간식부터 먹구.”
레비가 나오자마자 나에게 달려들려는 걸 루나가 저기서 놀자며 데려간다.
난 루나와 리프. 레이첼과 레비가 케인의 근처에서 간식을 먹는 것을 보는 것으로 힐링하며 깃펜을 들었다.
“일단 트레잇이 강해진 기분이야. 원래는 내가 강하게 조절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오러 유저라도 경지에 따라서는 내 노예… 아니. 추종자로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보스.”
“그리고?”
“보스가 서큐버스라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날개가 생길 거 같은 그런 기분?”
파이얀이 장난스럽게 윙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턱을 괴었다.
방금 각성해서 자기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인지를 못 하나 본데.
뭐, 그건 케인에게 맡기면 굴려주겠지?
환각이나 유혹도 케인에겐 안 먹힐 테니 잔뜩 연습해도 될 테고.
나는 그전까지 파이얀과 대화하며 짜던 계획에 줄을 죽죽 긋고는 느리게 웃었다.
“파이얀.”
“옙. 보스.”
자신이 사고 쳐서 그런가. 군기가 바짝 든 거 같은 파이얀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너 성녀 할래?”
“…어?”
“성녀해, 성녀.”
내가 낄낄거리며 던진 말에 파이얀이 눈을 끔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