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2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22화(222/373)
어지간한 방만큼이나 거대한 욕탕.
곳곳은 꽃과 풀로 장식되어 있고 곳곳에 놓인 장식품이 화려했다.
꽃잎을 듬뿍 뿌리고 즙을 섞은 덕에 이 큰 욕탕 안의 물이 불그스름하게 번져 향기가 피어오른다.
그곳에서 세리아는 몸을 담궈 욕탕의 턱에 살짝 엎드려 기대 기분 좋은 듯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이렇게 행복하다니.”
손을 까닥하니 조금 떨어진 곳에 놓여 있던 컵이 스륵 허공으로 솟아 세리아의 손으로 빨려 들어간다.
과일의 즙과 화이트 와인을 섞은 뒤 얼음 대신 포도를 얼려 띄운 주스를 한 모금.
덥디덥게 열 오른 몸 안으로 시원한 것이 흘러 내려가는 기분에 세리아가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나 친화력으로 고르길 잘했어.’
어떠한 트레잇으로 빌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마법이나 정령, 혹은 소환이라든가.
하지만 그런 것들은 훗날 강력하게 발전할지 몰라도 당장 쓸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정령은 그나마 낫지만 정령이나 소환수 같은 경우는 계약 이후의 친밀도가 매우 중요한 법.
그래서 좀 더 범용성이 강한 대신 대성하려면 공이 많이 들어가는 마나 친화력을 골랐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가벼운 물건 정도는 잡을 수 있는 데다 마나를 이용한 그 어떤 힘을 다루더라도 유용하니까.
‘나중에 퍼레이드 때 시연하기도 나쁘지 않고 말이야.’
가을이 끝난다. 그럼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 대대적인 축제가 열린다.
평소에는 황성에서 나오는 일이래 봐야 다른 귀족이 연 파티나 모임 외에는 없던 엉덩이 무거운 황족들이 대외적으로 일반 국민 앞에 나서는 몇 안 되는 행사.
잘 꾸며진 퍼레이드용 마차를 타고 외곽까지는 아니지만 중심부 시내를 한 바퀴 돈다.
어찌 보면 암살에 매우 취약한 순간이지만 그래서 시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끝내는 것이 제국의 저력을 보여 주는 일이므로.
평소에는 황족이란 일반 국민들이 보기 힘든 존재로 여겨지기에 인파가 많이 몰리며 그만큼 눈도장 찍기 좋은 행사.
‘그곳에서 내 트레잇을 제대로 드러낸다면.’
세리아의 봉인 덕에 계승권 서열이 빠른 형제자매들 대부분이 별 볼 일 없는 트레잇으로 암암리에 소문이 퍼져 있다.
이번 황실의 핏줄이 온전치 않다는 망언까지 돌 정도.
하지만 세리아 자신이 돋보인다면 일반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겠지.
“그나저나.”
이곳 저곳에 깔아 놓은 세리아의 개인적인 정보원들 덕에 아델리안, 그 멍청한 망나니가 다시 황도로 돌아왔다는 건 보고받았는데.
‘그 보고만 들어왔을까.’
분명 아델리안이 수도에 도착하면 뒤따라 붙어 동향을 파악하고 기회가 된다면 정중하게, 데리고 오라고 해뒀는데, 붙여둔 요원이 은퇴하기로 했다던가.
‘이해할 수가 없네.’
저번에는 세이렌의 이권을 들고 왔으니 그 망나니가 이번에도 빈손으로 오진 않았을 거라 여겨서 이번만큼은 샤하드보다 먼저 가로채려 했는데.
세리아가 온기 번지는 수면 위를 손끝으로 쓰다듬자 떠다니던 붉은 꽃잎들이 엉겨 붙었다.
“뭐, 아무리 몸을 사리면 뭐 해. 어차피 퍼레이드 이후 무도회장에는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세리아가 말갛게 웃었다.
* * *
“이럴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대신관의 물음에 성녀 에리엘이 피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팔뚝을 소매로 가리며 눈치를 살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 무능력한 망나니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신관이 얇고 낭창이는 나무로 만든 회초리를 하얀 천으로 닦은 뒤 기름을 발라 한 번 더 문지르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토록 바랄 텐데요. 이상하군요. 달려들 거면 한참 전에 달려들었을 텐데.”
아니면 아직 새벽에서 구할 수 있는 그 기적이란 행위를 신뢰하지 못하는 걸까요?
보기에는 인자해 보이는 대신관이 부드럽게 웃으며 하는 말에 에리엘이 슬며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 카이만 대공이라는 분이 못 하게 한다든가…….”
그분 무섭다던데… 하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대신관이 내려보며 혀를 찼다.
“신을 섬기는 성녀가 어찌도 그리 유약한지.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카이만. 그의 악명은 대륙에 자자하니까. 제국뿐 아니라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그의 힘, 재력. 그 냉정한 성품까지도 어느 것 하나 유명하지 않은 게 없다.
그의 유일한 오점이 그 망나니임을 생각하면, 그것만이 유일하게 카이만의 인간적인 면모라고들 말했다.
공과 사에 철저하고 상과 벌에 엄격하면서도 뱀 같은 구석이 있는 카이만이 유일하게 지닌 오점.
‘그 냉혈한도 인간이기는 한 게지.’
제 핏줄이라고 무른 걸 보면.
그렇다고 아주 풀어 놓은 건 아니라 새벽에 대놓고 오질 못하는 건지.
한동안 황도를 떠나 있던 아델리안이 되돌아왔을 때 붙여 둔 아이가 살짝 이상해져서 돌아오긴 했지만.
‘여러모로 이용 가치가 있어.’
제국에 존재하는 세 명의 대공.
북부의 방패라 불리는 게드만 대공. 바다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남부 제독, 그리고 돈을 빌린 이들의 입에서는 황금 거머리라고 불리지만 실질적으로는 황금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카이만 대공.
이렇게 셋은 황실에서 부르지 않는 한 사실상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과 연결된 유일한 연결고리는 후계자들뿐.
하지만 북부 대공의 후계자는 아이스 엘프 혼혈로서 제국보다는 북부의 어딘가에 있는 아이스 엘프의 땅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남부 제독의 후계자 아르만도 마찬가지. 애초에 남부는 먼 데다 그곳 사람들의 기질이 거칠다는 편견이 박혀 있어 황도에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거기에 아르만은 후계자 교육을 잘 받은 덕에 미숙하긴 해도 쉽게 휘둘릴 인물은 아니지만.
‘아델리안은 다르지.’
성인식을 기점으로 조금 변했다지만 기본적으로 아델리안은 언제나 재능을 갈구했다.
라베스와 거리가 떨어진 황도에 있는 대신관도 알 만큼.
카이만 대공의 후계자 중 빛나는 한 명인 가디아와 녹이 슨 아델리안.
가십이란 그런 거니까. 모두가 그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야깃거리로 삼았고 언제나 따라오던 것이 조롱과 웃음 아니었나.
그러니 아델리안은 나이가 차 속마음을 숨길 수 있게 되었을지언정 절대 트레잇에 대한 갈망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짧은 나이의 평생을 그리던 것일 테니.
“이번에 수도로 온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잘 구슬려야겠습니다. 하며 대신관이 인자하게 웃었다.
“그럼… 저… 제가 다시 접근하는 건가요?”
늘 대신관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뭔가 아델리안의 곁에만 가면 원하던 대로 진행되지 않는 기분에 살짝 꺼려진 에리엘이 눈치를 살피며 묻자 대신관의 주름진 손이 에리엘의 하늘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을 찾게 하고 믿게 하는 것이 성녀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 손길에 에리엘의 시선이 흔들렸다.
‘하지만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은 누군가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부수는 것인데도요…….’
에리엘이 소매 안으로 손을 넣어 오돌오돌하게 부푼 상처를 매만졌다.
* * *
‘솔직히 능력을 인정받고 싶긴 했지.’
파이얀이 생각했다. 그거 참으로 안일한 소망이었다고.
‘아니, 그야 그렇잖아. 보고 듣고 배우며 자란 게 그런 거니까.’
쓸모 없으면 가치가 없다. 대우받으려면 그만한 가치를 보여 줘야 하는 법.
제법 인심이 부유한 도시는 또 모르지만 대륙의 곳곳은 아직 야박하기 그지없었다.
완벽한 인간족이 아니면 당연한 종족 차별. 그나마 외모가 인간과 똑 닮은 파이얀은 그것에서는 조금 자유로웠으나 가족이, 믿을 만한 동료가 없다는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오롯한 내 편, 그것이 얼마나 사무쳤던가.
그래서 아델리안이 좋았다. 단순하게 말로 우리 서로 잘하자. 우린 친한 친구니까 혹은 동료니까 하는 입 발린 것들보다 확실한 게 신의 계약서니까.
허무맹랑하며 구속력도 없는 혀 놀림이 아닌 아주 철저한 조약과 약속들.
파이얀은 그게 너무나 마음에 들고 좋았기에 아델리안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좀 더 신임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마정석을 흡수하며 강해지기도 했고 약간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요마족 혼혈이 아닌 완벽한 요마족이 되지도 않았나?
‘하지만 안일했어… 난 바보야.’
파이얀이 시무룩하게 눈앞의 존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꼭… 해야 할까? 우리?”
처연하게. 눈에는 물기가 어리게.
너무 어리면 연기 같으니 적당히 보일 듯 말 듯.
고개의 각도. 눈가의 잔떨림. 조심스레 가슴 앞으로 맞잡은 양손.
“내 생각엔… 안 해도…….”
“해야지.”
나쁜 놈.
파이얀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는 케인을 바라보았다.
“…냄새 나.”
“몸에는 좋은 것이라.”
알지! 아는데!
“나 오늘 몸도 안 좋고…….”
“이제 아델리안이 회복을 쓸 줄 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괴물자식.
파이얀은 자신의 말을 전부 쳐내는 케인을 보다가 그냥 미간을 좁히며 비딱하게 서서 한숨 쉬었다.
“아, 하기 싫다고!”
저 녹즙 저거! 먹기 싫다고!
케인 저 괴물이랑 대련도 하기 싫어!
“나 성녀라며. 성녀면 막 여리여리하고 그런 포지션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닐까?”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 파이얀을 보며 케인이 성큼성큼 녹즙을 들고 다가왔다.
“먹고 죽진 않는다. 더불어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
“이미 냄새로 죽을 거 같은데…….”
결국 구석까지 몰린 파이얀이 입술을 떨다가 결심한 듯 케인에게서 녹즙을 받아들었다.
―표… 표표.
아래에 불을 대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번씩 올라오는 기표가 표표거리며 터진다.
마치 썩은 늪지대의 무언가를 퍼올려 담은 것 같다.
파이얀은 무심코 심호흡하려다가 오히려 숨을 꾹 참았다.
그 냄새마저 뱃속으로 넣기 싫다.
한 손으로 코를 잡고 다른 손으로 잔을 쥔 뒤 이내 원샷한다.
“이게 무슨……!”
파이얀이 허겁지겁 준비된 사탕을 몇 개나 입에 넣었다.
보통 코를 막으면 맛이 안 느껴지는 것이 상식 아닌가?
‘오늘 상식이 파괴되었어.’
파이얀은 사탕을 와작와작 씹으며 단맛과 엉기는 덕에 더 괴로운 녹즙의 잔맛을 체감하며 무릎을 꿇었다.
“아으… 으아아!”
다시 모습을 라줄리로 돌린 덕에 흔들리는 청금색 머리칼을 쥐며 신음하는 파이얀을 바라보다 케인이 스카를 쥐었다.
“시작할까.”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
이렇게 괴로운데 대련까지!
아무리 서큐버스의 능력을 몸에 얼른 익히라는 의도인 건 알지만!
서큐버스의 가장 큰 능력은 무엇인가.
매료와 더불어 꿈에 스며드는 능력인데.
매료는 당연히 안 통하고 지금 눈을 시퍼렇게, 아니 황금색으로 뜨고 있는 케인인데.
파이얀이 수도에 있는 크루거 저택의 지하 연무장에서 눈에 불을 켜고 일어나 케인을 노려보았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파이얀의 몸에 연한 분홍색과 보라색 기운이 일렁거린다. 누군가 그것에 제대로 잠식되면 한동안 파이얀의 꼭두각시처럼 굴겠지.
그것에 마나를 실어 유형화시킨 후 몸에 갑옷처럼 두른 파이얀이 으르렁거리듯 입을 열었다.
“…한 대라도 내 손에 맞으면 너, 그 자리 내놔.”
보스의 오른팔 자리!
자신에게로 뛰어들며 외치는 파이얀의 말에 케인이 무표정하게 시작 동작도 없이 스카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