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2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25화(225/373)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마리안느가 입을 버끔이다가 어쩐지 속이 타는 기분에 제법 식은 찻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런 말을 하긴 무엇하지만 마리안느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보았을 때는 몰라도 볼수록 눈을 빼앗기는 얼굴.
그 아름다운 외모 덕에 나중에 그녀를 두고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운명을 타고난 이.
그래서 운명의 신이 직접 계시를 내려 갓난아이 때부터 신전에서 자라며 자신의 외모를 가리는 비술을 익히지 않았나.
그래서 평소엔 조금 신비롭게 보이는 말투도 사용하고.
‘지금은 어이가 없어서 되지도 않네.’
그래도 호감을 얻기 위해 아주 살짝. 아주 조금만 얼굴을 보여 줄까 했는데.
호감을 갖기는커녕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인지한 사람 중 얼굴이 왜 안 보이냐는 그런 흔한 질문조차 하지 않는 데다가.
“저는! 당신을 도우러 왔다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네가 왜 날 돕냐고. 이유가 뭔데. 날 돕고 싶으면 성심성의껏 날 도와야 하는 이유를 말해 봐.”
아니, 돕는다고 하면 그냥 좋다고 해도 되는데. 아무리 그래도 성녀인데. 성녀인 것을 증명하라거나 그런 것은 다 제쳐 놓고.
돕고 싶으면 매달려 보라는 저 태도라니!
‘정말 저 사람이 종결자일까?’
너무 얄미운데?
아무리 신께서 저 사람에게 가서 도우라 하였지만. 이게 맞나?
마리안느가 자신의 눈을 문질렀다.
물론 바라본 운명들이 아델리안을 중심으로 비틀리고 비껴 나가고 있음을 안다.
단 한 번, 성녀로 각성했을 때 모든 운명을 읽은 날.
뇌가 녹아 미치기 전에, 망가지기 전에 르웰르의 가호로 대부분의 깨달음을 봉인하였기에 많은 것을 떠올리진 못한다.
다만 운명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정도.
단 한 번으로 끝나야 했을 지옥이 누구에게는 끝없는 굴레라는 것.
하지만 아델리안은 과거의 운명은 보이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운명과 깊게 연결된 사람들도 조금씩 물들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아델리안은 운명을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이고 운명의 신 르웰르는 비틀린 이 굴레를 끝낼 인물로 여겼기에 자신을 보낸 것이다.
그나마 아델리안과 깊게 엉긴 사람이 아닌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의 운명은 읽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아델리안이 성녀를 이용해 무언가를 꾸민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도우려 온 것이었다. 다른 이의 운명에서 슬쩍 보인 여자는 진짜 성녀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운명의 신 르웰르의 성녀인 마리안느가 도움이 될 테니까.
‘신께서도 도우라 하셨고, 나도 돕고 싶어서 온 거긴 한데…….’
뭔가 얄밉단 말이지.
“신께서 인도하셨어요.”
“아, 그러니 날 돕는 이유는 신의 의지다?”
“네. 바로 그겁니다.”
신의 뜻으로. 당신을 돕기 위해 이곳에 온 성녀. 그게 바로 접니다. 마리안느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델리안을 바라보았다.
“왜?”
“예?”
“아니, 운명의 신이 무슨 이득이 있어 날 돕는데.”
아니 그야… 어긋나고 비틀린 운명의 굴레를 되잡기 위해서…….
그런데 이런 말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간 비밀을 누설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세하고 깊게, 알아듣기 편하게 말할수록 그 반동으로 오는 것들이 존재하는 법.
심한 경우 마리안느 개인의 목숨이 아닌… 더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으므로.
“갑자기 찾아와서. 성녀라고 말하면서 신이 날 도우라고 하는데. 증거 있어?”
내가 널 뭘 믿고 도움을 받아야 하냐며 난 너 말고 도움받을 이들이 너무 많은데 어딜 순번도 모르고 날 도우려 하냐는 말에 마리안느가 어쩐지 뒷골이 뻐근해졌다.
“아무나 날 도울 수 없어. 검증된 능력과 더불어 날 배신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맹세라도 하지 않는 한.”
소파에 느슨히 앉아 오만하게 말하는 아델리안을 보며 마리안느가 이게 맞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안 되는데, 신께서 꼭 도우라 했는데 하는 조바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 저는 능력이 출중합니다. 후회하실 리 없습니다. 제가 모시는 신께서 이르셨으니 제가 어찌 배신하겠습니까.”
성녀라는 직함은 운 좋게 받은 게 아닙니다, 하며 마리안느는 자신도 모르게 아델리안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보세요. 누군가에게 제가 필요하다는 운명을 읽고 오지 않았습니까.”
성녀… 필요하시죠?
“게다가 신께서 도우라 하셨는데 이보다 더한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어떤 이해득실도 따지지 않는 헌신이 가능한 법입니다.”
마리안느가 자신의 가슴 위에 한 손 올려 자신의 필요성을 피력하는데 그 모습을 보던 아델리안이 느리게 웃었다.
“그럼 중간에 신이 내 뒤통수를 치라고 하면?”
“…네?”
“그럼 어쩔 건데.”
“네?”
아니… 저희 신께서요? 왜요?
* * *
누군가의 앞에서 표정을 감추고 살지 않아서인지.
일부러 좀 신비로운 척, 고아한 척, 예언자인 척 뭔가 복선 같은 한마디를 던져야 할 때가 아니면 허당이네.
얼굴에 표정이 다 드러난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 하는 저 얼굴.
자신의 신을 굳건하게 믿는구만. 역시 성녀다.
‘하지만 이곳 신들은 전지전능한 유일신 개념이 아니라서.’
신성을 잃으면 몰락하기도 하고 애초에 만신전이 있는 것 자체가 그렇지.
단 하나의 완전한 신이 없기 때문이니까.
나는 오류가 난 듯 다시 눈을 껌벅거려 대는 마리안느를 바라보았다.
뭐, 아마도 나에게 한 말 대부분은 진실일 것이다.
최소한 운명의 신이 내가 필요하니까 마리안느를 보낸 건 맞을 테니.
다만 그게 무조건 이득이냐는 거지.
나와 케인. 그리고 우리 파티. 내가 지금까지 손을 잡은 사람들.
앞으로 끌어들일 이들.
그 정도만 해도 살아 있는 신을 죽일 순 있을 텐데.
‘애초에 원작 생각하면.’
이곳의 만신들이 제대로 그 구실을 했다면 멸망했을까?
초반엔 몰라도 갈수록 대륙이 지옥처럼 변해 갔는데. 누구나 자신의 신을 부여잡고 기도하며 매달렸을 텐데.
“정 그렇게 날 돕고 싶다면야.”
나는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 아공간에서 신의 계약서를 하나 꺼냈다.
“당신의 신을 걸고 맹세하며 여기에도 서명해 줘야겠어.”
최소한 둘 이상의 신은 걸어야지.
내 말에 마리안느가 머뭇거리다 생각해 볼게요, 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 모시는 신에게 물어볼 생각인지.
“좋아. 대신 우리 쪽 정보만 캐서 나가려는 걸 수도 있으니 날 돕든 안 돕든 선택하기 전까진 내 집에 있어 줘야겠어.”
하며 내가 제로를 부르자 문이 열린다.
“방을 하나 내어 드리고 정중히 모셔 드려. 밤낮으로 뭐 불편한 것 없으신지 눈여겨 바라보고.”
“예. 아델리안 님.”
대놓고 감시하라 읊고는 나는 쿠키 하나를 들고 아작아작 씹었다.
아몬드 쿠키.
그 향부터 다른 걸 보니 제로가 만든 거네, 이거.
나는 일단 풀 죽어 제로와 함께 나가는 마리안느를 바라보다 슬쩍 내 앞에 앉는 루나를 응시했다.
“저렇게… 막 대해두 괜찮을까요. 도련님?”
하긴 이곳은 진짜 신이 있고 신성을 받아 쓸 수 있는 세계이니.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신의 미움 혹은 증오를 받을 수도 있단 소리.
하지만 난 턱을 괴고 태연하게 말했다.
“괜찮아.”
이 세계의 멸망. 자기들 손으로 해결 못 했잖아.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첼이 날 이곳으로 데려온 것 자체가 그것의 반증이지.
거기에 운명의 신마저 종결자라 칭하며 성녀를 붙이려 했다?
내가 뭐 신이 보냈다 하면 다 받아 줘야 하나? 그들이 그냥 베푸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 접근한 걸 텐데.
물론 너무 고자세로 나가면 오히려 손해겠지만. 직접적으로 운명의 신 르웰르를 욕한 건 아니니까.
간당간당한 수준이지.
‘뭐 아마도 마리안느는 날 돕게 될 테고.’
내가 아주 딱 잘라 거절한 것도 아니니 어지간하면 돕는다며 결론이 날 것이다.
사실 도움받으면 좋긴 했다.
좀 구닥다리 올드한 느낌으로 부제를 단다면 ‘우당탕탕 파이얀의 가짜 성녀 소동’ 작전에서 진짜 성녀의 조언을 받는 게 얼마나 큰 이득이겠는가.
“그럼 저분이 같이 한다구 하면 파이얀 대신 하시는 건가요?”
“응? 그럴 리가.”
마리안느가 합류한다고 해도 그녀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생각은 없다.
진짜 내 사람은 아닌 데다 난 진짜 성녀가 필요한 게 아닌, 사람 잘 홀리고 꼬시고 지배하고 다룰 성녀라는 이름의 파이얀이 필요한 거니까.
‘다만 혹시 모를 만신전에서 나올 성녀조사단 이런 게 있을 수도 있고, 성녀들만 아는 무슨 제약이나 조건을 들을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마리안느가 이득이긴 하지만.’
내 말에 루나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뭔가 정말 도련님께서 하시는 일이 거대한 거구나 하고 생각이 들어요.”
그 말에 나는 잘게 웃는 소리를 흘렸다.
“처음엔 세리아가 황족이라 부담스러워하더니. 이번엔 마리안느가 성녀라 부담스러워?”
“…조금은요.”
나는 그 진한 분홍색 눈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귀를 쓰다듬고 가볍게 톡톡 당겨 주었다.
“성녀는 사람 아닌가.”
배신은 죽음뿐이지, 뭐.
“…하긴 그렇죠? 그분도 사람이니까.”
도련님의 진가를 아시겠죠.
하는데 순간 너무 살벌하게 생각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이게 다 악신교단 때문이다.
나는 선량했는데 선량한 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악신교단 그 저력이 두렵다.
“그나저나 파이얀은 어떻게 되어 가?”
“다른 건 얼추 할 만한데 꿈에 들어가는 건 힘든가 봐요. 케인에게 단 한 번두 성공 못 했어요.”
…케인에게 성공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닐까?
“꼭 꿈에 들어가서 케인을 농락할 거라던데요. 당한 만큼 갚아줄 거라구.”
꿈이라고 해서 케인이 케인이 아닐 거 같아?
하지만 원래 고렙 몬스터에 들이박다 보면 상대적으로 나머지 애들이 쉬워지는 법이니까.
첫 상대가 케인이면 실패하더라도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종교 이름은 생각해 봤어?”
이곳은 진짜 신이 있는 곳이라 어쩌면 말에 신성이 깃들 수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우리 파티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만들고 싶은데.
내 물음에 루나가 환하게 웃는다.
“수호교요.”
“기각.”
와. 소름 돋았다.
내 본명이자 아델리안의 미들네임이 튀어나오니 아주 그냥, 와, 이건 좀.
“네? 왜죠?”
대충 만든 교리랑도 얼추 내용이 맞는데? 하며 루나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니 늘어진 귀가 허공에서 찰랑인다.
“안 돼. 절대 안 돼. 다시 생각해 봐.”
왜지. 딱인데. 다들 찬성했는데 하며 순진무구하게 날 바라본다.
아니, 그걸 왜 다 찬성해.
“다시 잘 생각해 보자. 더 좋은 게 있을 테니.”
하다가 문득 나는 생각난 것이 있어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꺼낸 것은 예전에 결손의 던전에서 얻은 호문클루스의 알.
유백색의 그것은 단단하지도 않고 누르면 뱀 알의 껍데기처럼 살짝 말랑하게 들어가는 약간 부드러운, 가죽 같은 껍데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케인의 피를 먹어 케인의 혈계 정보가 들어간 덕에 1만 년 후 케인의 아바타로 활용 가능한 호문클루스가 나올 수 있다고 레피드가 그랬지만.
‘아무리 내가 존버의 한국인이라지만 1만 년 존버는 무리지.’
그러니 이번 생에 적당히 쓰자.
은은한 유백색의 알은 보기에도 꽤 뭔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알꾸. 일명 알 꾸미기를 하면 더 있어 보이지 않을까?
“이걸 일단 성물 삼아 볼까 하는데 어때?”
혹시 일이 너무 잘 되어 신성이 쌓여도 영혼이 없는, 1만 년 후에 탄생 예정인 케인의 호문클루스.
아, 너무 쓰기 좋은 아이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