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2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29화(229/373)
피딱지가 번진 얼굴과 망가진 몸. 한동안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도망친 덕에 더럽고 낡은 형상의 집단.
그러면서도 그중 형형한 눈.
하지만 그런 눈을 한 이는 단 한 명뿐.
그 여자의 뒤에서 겨울날의 쥐새끼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희망이란 곁불을 쐬고 있는 저 나머지 것들은 이미 탁하디탁한 눈이다.
그런 그들을 절벽 위 도드라진 바위까지 몰아세운 체이서가 낮게 한숨을 흘리며 탄식했다.
“왜 다들 이렇게 교의 마음을 모르시는지.”
조금 속상하고 그러네요.
짧게 자른 검은색 머리와 뱀의 비늘처럼 번들거리는 검은 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체이서가 마치 그린 것같이 싱긋 웃었다.
“쉽잖습니까.”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습니까.
납작 엎드리라면 엎드리고. 기라면 기고.
“죽으라 한다면 죽으면 되는데.”
체이서가 느슨하게 웃었다. 외도 마법을 쓰다 보면 많은 것이 무뎌진다.
피를 이용한 혈 마법, 그림자를 이용한 그림자 마법.
그리고 사람의 정신과 감정을 이용한 정신 마법.
그중 정신 마법을 파고들면 저런 의지도, 분노도, 사랑도, 기쁨도.
그 무엇 하나 허망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체이서는 그때그때 드는 감정에 대한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즐거우면 웃고.
왜냐면 그 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져 버릴 것들이니까.
‘어차피 부조리와 분노는 허상일 뿐이건만.’
감정이란 게 얼마나 복잡한 척 구는 단순한 것인지.
지나가던 이 아무나 잡아 뺨을 내려치면 화를 낼 것이요, 보석을 쥐여 주면 기뻐하겠지.
애정을 보이는 것을 망가뜨리면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하지 그것으로 기뻐하는 이 없다.
짧은 환상. 약물. 혹은 단순한 꽃 한 송이로도 휙휙 변하는 것이 사람의 감정인데.
“그 분노도 억울함도. 슬픔과 노여움. 서러움과 증오마저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지는 것들.
“그러니 그냥 돌아오세요. 집행자의 권한으로 사면해 드릴 테니. 카이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살아 있는 신께서 당신을 좀 아끼시는 것 같으니까.
체이서의 말에 카이자라 불린 여인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뒤에 숨듯 옹기종기 붙어 있던 다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살… 살려준다고?”
“그럼 그냥 지금이라도…….”
“우리가 잘못한 건 없잖아. 그렇잖아.”
“그냥 돌아가자, 카이자. 응? 돌아가자.”
등 뒤의 웅성거림에 긴 검은 머리와 옅은 황금색 눈동자를 지닌 카이자가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우리 모두를 네가 살려 주겠다?”
“설마요.”
당신만이지.
체이서가 검은 크리스털로 깎아 만든 뱀머리의 지팡이를 잡고 다른 손의 손바닥에 톡톡 두드리며 하는 말에 카이자의 뒤에 모여 있던 이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카, 카이자. 저거 다 헛소리인 거 알지?”
“살려 줄 리가 없잖아. 그렇잖아. 그 체이서가 널 살려 줄 리 없어!”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 카이자 어떻게 좀 해 봐…….”
아, 제가 또 뭐 그리 모진 사람이라고 그러실까.
체이서가 유들유들하게 웃자 카이자가 옅은 황금색 눈으로 노려보며 이를 으득였다.
“어차피 살아 있는 신께서 추살령을 내린 건 아니잖아? 그냥 우릴 보내줘.”
자신들은 선택받은 인간이란 사실에 너무 심취하여 가족들이 교를 등에 업고 경솔하게 군 건 사실이지만.
고작 다른 파벌의 사업을 가로챘다는 이유만으로 죽일 필요는 없잖아.
카이자의 말에 체이서가 짐짓 난처하다는 듯 표정하다 다시 웃었다.
“그야 그렇지만 언제는 우리가 그분께서 시킨 일만 했던가요?”
쓸모없는 것들을 죽여 공양하고 필요한 이들을 모아 힘을 기르는.
이 대륙을 한번 힘으로 정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지극히 인간적인 이권에 대해선 오히려 그분은 너무나 느슨하죠. 아주 기본적인 이념만 우리에게 제시하고 베풀 뿐.
원하시는 것 하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시는데.
“단 하나의 목적을 제외하면 그 외의 것들은 망가지고 비틀려도 적당히 넘어가 주시는 아주 자애로운 분 아니십니까.”
그러니 그걸 믿고 일을 벌이다 교단에 피해를 입힌 후 도망치는 걸 선택했지. 당신들은.
뭐, 사실 피해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에요.
“저 바쁜 몸입니다. 집행자라는 업이 얼마나 할 게 많은지 아십니까.”
살아 있는 신의 이름을 빌려 헛짓거리 하는 이들이 한둘이어야죠.
대부분은 신의 은총을 이용해 자신의 세력과 배를 불리는 데 쓰고는 있지만.
원래 파벌이라는 게 그렇죠.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세력이 적은 쪽이 잘못한 법입니다.
“어쩌겠어요. 그분 대신 추살령을 발동할 수 있는 대신관이 존재한 파벌을 건드린 게 잘못이죠.”
태연한 체이서의 말에 카이자가 입술을 질근 물었다.
“…죽은 듯 살게. 내 가족과 조용히.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서.”
마침 절벽이니 그냥 이 뒤로 뛰어들었다고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체이서… 우리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랐잖아. 우리 친구였잖아.”
그 이해할 수 없던 세월을 우리 같이 보냈잖아.
교의 방식을… 그분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가 있었잖아. 너도 나도.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는 카이자의 모습에 체이서가 검은 눈동자로 짙게 응시했다.
“그랬죠. 그런 시절이 있긴 했죠.”
하지만 결국 원망도 의문도, 모든 괴리감과 의문은 헛된 일이란 걸 이제는 알거든요. 제가.
사람은 넘지 못하는 것 앞에서 결국 무너지고 포기하게 되는 법이라.
제가 당신보다 먼저 이렇게 되었음을 통탄해 주세요.
“카이자. 어리석네요.”
제가 누군지 알면서 짐덩이를 그렇게나 애지중지 끌고 다니고.
그리고 일부러 지금까지 제 말을 받아준 이유는 그동안 소모한 마력을 회복하기 위함이었겠죠?
체이서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카이자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윽고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마치 장갑처럼 덮이는 검은색의 오러.
길고 날카로워진 손톱을 보이며 카이자가 새끼손가락부터 느리게 오므렸다 펴길 반복했다.
“널 죽이기 싫어, 체이서.”
그럼 교단에서 절대로 추살령을 거두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그냥 네 선에서 날 보내줘.”
내가 정말 널 죽이기 전에.
옅은 황금색 눈을 번뜩이며 말하는 카이자를 보면서 체이서가 하. 하고 크게 웃었다.
“아시잖아요.”
검은 크리스털로 만든 뱀머리가 체이서의 가슴을 툭 친다.
“절 죽여 봐야 신께서 되살리실 거라는 걸.”
“대신 그건 진짜 네가 아니겠지.”
“뭐 좀 더 교에 충성적인 뇌가 되긴 하겠죠.”
그런데 그게 지금과 뭐 얼마나 다르죠?
어차피 모든 것이 재미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데.
즐거움과 기쁨마저도 단순한 감정의 허상일 뿐인데.
“오늘 당신이 겪을 고통과 슬픔, 분노와.”
절망까지도.
그 모든 것은 덧없고 허무한. 온기도 촉감도 모양도 없는 것이니까.
“알아두세요.”
감정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리고 일부러 시간을 끈 것은 카이자 당신만이 아니니까.
체이서가 스태프의 끝을 바닥에 탕! 하고 찍었다.
카이자가 그의 마법을 방어하기 위해 마나의 막으로 자신을 비롯한 일행의 몸을 감쌌다.
하지만 체이서의 정신 마법이 마나 장막으로 방어한 앞이 아닌 바닥에서 솟구쳤다.
“이건……?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정신 마법은 강인한 의지만 있으면!
카이자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으아아! 그때 당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했어!”
“카이자!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언제나 네가 싫었어. 기생충같이 내 몫을 빼앗고 내가 왜 언니란 이유만으로 희생해야 해? 왜 내가!”
카이자의 옅은 황금색 눈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급한 대로 카이자는 손에 두른 오러를 풀고 맨손으로 날뛰는 자신의 가족들을 잡아 목을 조르고 머리를 쳐 기절시키기 시작했지만.
“고작 그 정도로요?”
체이서가 다시 스태프로 바닥을 탕 치니 정신 각성 마법이 장막 안을 채운다.
혀를 빼어 물고 기절했던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다.
꺼졌던 의식을 억지로 끄집어 올리자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다시 증오에 찬 눈으로 서로를 비난하며 몸을 떨었다.
“이게 다 네가 태어나서! 너 때문에!”
“죽어. 그냥 죽어버려!”
카이자는 자신의 가족이 후려친 손바닥에 고개가 돌아갔다. 도망치고 있던 와중에도 빼지 않던 반지의 장식에 긁힌 듯 카이자의 뺨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본디 마나와 오러가 흐르는 몸이라 자신을 때리는 손이 아플까 봐 오러를 풀고 그대로 맞아 준 것에 불과해 사실 아프지도 않는데 눈물이 고였다.
그리곤 분노에 찬 눈으로 증오에 차 서로를 공격하는 자신의 혈육들을 하나씩 옷으로 묶고 재갈을 채우기 시작했다.
기절해도 각성마법으로 일어나는 터라 그렇게 제압하니 그 묶인 몸으로도 상대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어떻게든 공격하려 하기에 카이자가 이를 갈았다.
“체이서어!”
널 죽이면 풀리겠지!
카이자가 마나 장막을 거두며 손에 검은 오러를 길고 날카로운 손톱처럼 뒤집어씌운 채 체이서에게로 뛰쳐 들었다.
“카이자. 역시 약 한 달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도망치면 판단력은 흐려지는 법이죠.”
제가 무슨 마법을 쓰는지 잊으신 건지 혹은 아슬아슬하게 남은 마나를 쥐어짜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
마나 장막을 해제해 줘서.
가족의 손이 부러질까 봐 오러를 잠시 거둬 주어서.
체이서가 웃으며 스태프를 휘둘렀고 카이자의 가족 중 한 명이 손찌검 했을 때 생긴 붉은 실선.
그 가는 핏자국이 일렁이더니 뒤로 크게 날아가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도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흥분해 증오와 악의가 섞인 말을 웅얼거리던 이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 아주 가느다란.
바늘 같은 핏기가 뚫고 지나간 머리에서 천천히 붉은 것이 퍼진다.
그리고 그것이 가시가 되어 다시 다른 이를 꿰뚫고 그 꿰뚫린 것에서 흘러나온 피가 다시 다른 이를 뚫었다.
그 모든 것들이 눈을 한 번 채 깜빡이기도 전에.
카이자의 손톱이 체이서에게 닿기 전에 일어난 일.
“아. 아아?”
섬뜩하게 터지는 파육음.
그 소리에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카이자가 고개를 돌렸다.
“절 너무 원망하진 마세요.”
신께서 바라신 것을 행하는 것인지라.
그분께서 추살령은 내리지 않았지만.
“당신의 부서짐은 바라셨기에.”
나른하게 흩어지는 목소리.
카이자는 자신의 등 뒤로 비산하는 붉은 살점과 핏방울을 바라보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분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수백 수천 번 중 한 번 정도는.
당신이 탈출한 뒤 검은 머리와 황금색 눈동자의 사내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럼 놓아주라고.
하지만 한 달이란 시간 안에 만나지 못한다면.
이번은 아닌 것이니 망가뜨리라고.
“마치 수백 번 해 본 분처럼 말씀하셨지만.”
그분은 신이니 제게 그러하셨듯 수많은 미래를 환상처럼 보신 거겠죠.
하여간 그분이 수없이 본 미래의 갈림길 중 결국 카이자 당신은 그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을 가진 사내를 한 달 안에 만나지 못했으니.
“저로선 별수 없습니다.”
악의는 없어요.
체이서가 웃으며 멍한 눈으로 눈물을 쏟아내는 카이자의 머리를 스태프의 끝으로 꾹 눌렀다.
“어서 오세요. 카이자.”
광기의 세계로.
체이서가 자신의 모든 마나를 카이자에게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