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3화(23/373)
눈에 거슬리는 것 없이 하늘, 혹은 도시와 더불어 먼 곳의 바다가 보였던 라베스와는 달리, 녹음이 우거진 산과 회색 절벽, 어디선가 피어오른 검은 연기로 시야가 가득 찬다.
야외 워프 게이트인지 벽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음에 사방이 뻥 뚫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와, 새로운데.”
크게 심호흡하니 살짝 목이 간질간질하다.
라베스는 바다를 낀 해안도시였는데 놀웰의 경우 광산도시다 보니 공기에 매캐한 내음이 섞여 있었다.
“윽…….”
“우웨에…….”
그리고 옆에서 뭔가 질척한 것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말 세 마리가 전부 휘청거리며 토하고 있고 루나 또한 입을 막고 안색이 파리하다.
케인마저도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린 걸 보니… 이거…….
“너네, 멀미해?”
“도, 도련님은… 괜찮으세요?”
루나가 심호흡하며 건네는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다리가 휘청거리는 말의 고삐를 당겨 주며 입을 열었다.
“난 멀쩡한데. 일단 말들이… 문제네. 여관을 잡아 좀 맡겨놔야겠는데?”
이것도 부유감 트레잇 때문인가?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가 뜨니 다른 곳으로 와있는 기분이었지만 케인과 루나는 몸을 밀가루 반죽처럼 쭉 늘렸다 다시 치대진 것 같다고 중얼거린다.
말들도 마찬가지인지 위액은 이제 게워내지 않아도 축 쳐져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말발굽을 구르고 있었다.
이런 경우가 빈번해서 게이트 구조물을 기둥과 지붕으로만 되어있는 곳에 만든 것인가.
게다가 바닥은 격자 모양의 철조망으로 이루어져 살짝 아래에 공간을 띄워 놓고 있었다.
아마도 아래로 오물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모양.
나는 상태가 안 좋은 말의 몸통을 토닥토닥 쳐내곤 조금 정신을 차린 것 같은 루나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에 여관이 보이네. 루나, 케인. 일단 저쪽으로 가자.”
노리고 세웠을까.
게이트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법 으리으리하게 세워진 여관이 보인다.
누가 봐도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 생각되는 모양새.
아이디어 좋네.
워프를 타고 넘어올 정도면 주머니가 묵직한 편일 테니 멀미로 괴로운 상태에서 멀리 있는 여관에 갈 생각을 하기보단 당장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쉬고 싶을 테니까.
게이트 관리소에서 나오니 길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오늘 마치고 한잔하자고.”
“제프리는 어디 갔어?”
“벌목하러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던데.”
“오늘 광산에서 한 수레 캐기 전까지 나올 생각 마!”
라베스에선 여자건 남자건 아름답게 꾸민 이들이 많았지만 이곳은 상대적으로 무채색에 가까운 옷이 많고 광부나 벌목꾼으로 보이는 이들도 종종 지나갔다.
일반 주민과 상단. 용병과 여행객들이 수없이 오고 가는 것이 제법 번화한 곳이다.
나는 조금 두리번거리다 보니 여관에 거의 다 와 감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회복 겸 이곳에서 하루 쉬고, 지도를 확인 후 이동하는 게 낫겠어. 그리고… 어?”
툭.
“앗, 죄송합니다, 신사분!”
잠시 케인과 루나를 보며 걷는 와중에 누군가와 몸이 부딪혔고 나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너야말로 괜찮고?”
내 가슴 근처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한 키에, 조금은 마르고 푸석한 주황색 머리칼을 가진 꼬맹이.
그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넙죽 인사하곤 일행이 있는지 ‘야, 같이 가!’ 하며 꼬맹이가 뛰어가려는데 케인이 그 아이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켁! 왜, 왜 이러세요. 놓아주세요.”
“어… 어… 케인 님……?”
목이 조이는지 양손으로 케인의 손을 잡고 발버둥을 치는 아이의 모습에 루나 또한 당황한 듯 버끔거린다.
나 또한 한 손으로 어린아이의 뒷덜미를 잡아 대롱 들어낸 케인을 보며 당황해 말했다.
“뭔데, 왜 그래?”
“흥, 인간이란.”
야 인마, 갑자기 웬 종족 차별 발언?
내가 무어라 한마디 하기 전에 케인이 살짝 찡그린 얼굴로 아이의 발목을 잡아 거꾸로 들어 탈탈 털기 시작했다.
그리고.
털썩! 풀썩! 짤락! 쨔그락!
몸에서 후드득 쏟아지는 주머니들.
거기엔 아공간이 너무 눈에 띌까 봐 돈을 좀 옮겨둔 내 동전 주머니도 있었다.
“와, 언제.”
당황스럽네?
난 어느새 허전해진 허리춤을 더듬거리다 땅에 떨어진 주머니를 주워 다시 고정하곤, 뭐가 그리 억울한지 씩씩거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이거 안 놔? 나중에 후회할 텐데! 얼른 놔달란 말이야!”
허세는.
아이가 거꾸로 매달려 몸부림치는데 케인이 놓지 않고 한숨 쉬며 나를 본다.
“즉결 처분도 가능하지 않나.”
그거야 내가 귀족임을 밝힐 때 이야기고.
고개를 한번 저어내고 씩씩거리며 우리를 노려보는 아이를 한번 흘겨보았다.
“여기요, 순찰대원님. 여기요.”
“앗. 앗! 잠시만요! 저랑 대화 좀……!”
응. 늦었어.
나는 태연하게 웃곤 저 멀리 지나가던 경비대원을 불러 아이와 돈주머니를 인계했다. 주인을 몇이나 찾아가려나… 보통은 불로소득으로 들어가려나.
“와… 정말 손이 빠르네요…….”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정신 차린 루나도 소매치기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 감탄하는 모습에 나도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케인덕에 잘 넘겼네. 고맙다. 그나저나 이런 작은 주머니까지 아티팩트로 구비하면 눈에 띌까 봐 안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찌 다니는 거지?”
지금이라도 마법 물품으로 바꿔야 하나.
작게 고민하며 여관 밖에 마련된 마구간에 말을 맞긴 뒤, 잘 돌봐 달라는 의미로 팁을 주는데 케인이 작게 말했다.
“보통 일회용 도난 방지 스크롤을 쓰거나 옷 안에 묶는 곳이 있던 것 같더군.”
“그래? 나중에 마탑에 들려야겠네.”
코덱스도 채워야 하니까.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서 눈에 담은 여관은 게임 등에서 자주 본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1층은 주점 및 식당. 2층은 침실.
나는 셋이서 앉을만한 자리가 있는지 한번 눈으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식사부터 하고 방을 잡자.”
“좋아요… 여기 당근 수프도… 있을까요?”
게임이나 영화에서 본 이런 술집은 어두운 조명에 조금은 지저분하고 고성이 오가며 누군가가 주인공에게 시비 거는 곳이었는데.
고급 여관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깔끔하다.
상단이나 용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주를 이뤘으며 한쪽엔 바드로 예상되는 이가 류트 같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음악 소리 덕에 작은 잡담 정도는 묻히는 듯 다들 도란도란 대화하다 한쪽에서 어떤 용병이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큰 도끼에, 옷차림도 낡았지만,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뭔가 정말 다른 지역에 온 게 실감이 나는 순간이네.
라베스에선 저 정도로 무장한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날 보고 피하는 사람도 없고.’
“먹고 싶은 건 뭐든 시켜, 새로운 곳이니 음식도 색다를 거야. 궁금하네.”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선 웃으며 적당한 곳에 앉는데 테이블을 보니 흠집도 별로 없고 끈적이지도 않는다.
모험 초보라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확실히 고급 여관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만족스레 테이블을 보다가 이내 턱을 괴곤 양피지로 만든 것 같은 메뉴판을 할랑할랑 넘겼다.
“오, 특이한 거 있네. 곰고기 특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특수 부위 전부를 맛볼 수 있습니다.”
“3일 전 예약해야 한다고 적혀 있군.”
“저는… 산열매 모둠 주스 먹어보구… 싶어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켜.”
셋이서 메뉴판을 한 장씩 넘기며 궁리하는데 생각보다 먹을 게 많아서 각자 다른 것을 시키기로 했다.
케인은 뿔돼지 스테이크 정식에 레드 와인을, 나는 무지개 연어구이와 치즈 앤 크래커, 그리고 화이트 와인.
루나는 닭고기와 버섯이 들어간 크림 스파게티에 산열매 모둠 주스, 후식으로 빵과 베리류 콩피까지 알차게 시켰다.
“속은 좀 어때. 괜찮아?”
사실 여유가 생기자마자 하려던 말이 있지만, 원래 밥상 앞에서 잔소리는 하는 게 아니라고 조상님들이 그랬지.
나는 일단 무난하게 말을 던지며 둘을 바라보았다.
“네, 물을 마시구… 좀 쉬니까 훨 나아요…….”
하기야 안색이 아까와는 매우 다르다.
식전 빵과 수프가 먼저 나온다.
정식이 아니더라도 주나 본데. 케인에겐 크림 수프로 보이는 것이, 나는 감자 수프인가.
루나는 크림 스파게티를 시켜서인지 맑은 수프가 나왔는데 얼핏 보기엔 야채수프인 것 같았다.
“게이트 멀미로 고생하는, 돈 많은 여행가를 중심으로 영업하는 곳답게 바리에이션이 괜찮은데.”
하긴 이곳의 주 고객은 시간은 없고 돈은 많은 쪽일 테니 서비스 쪽으로 힘을 실을만하다.
나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중점인 감자 수프를 떠먹곤 본성보단 별로지만 나름 괜찮은 맛에 감탄했다.
역시 여행은 식도락이지.
정말 마음 편하게 여행 나온 건 아니지만, 즐길 수 있는 게 있을 때 즐겨야 하는 법.
작게 조각난 식전 빵도 같이 나온 기름에 살짝 찍어 먹으니 제법 맛있다.
레드 와인을 졸인 뒤 나무 열매의 오일과 섞은 듯 약간의 산미와 오일 특유의 부담스럽지 않은 풋내 등이 매우 잘 어울린다.
“맛있다아…….”
“역시, 앞으로도 숙소 같은 건 이왕이면 고급으로 잡자. 그럴만한 가치는 있겠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데 굳이 아끼며 다닐 필요는 없는 거지, 암.
메인으로 나온 음식도 퀄리티가 괜찮았다.
케인의 뿔돼지 스테이크는 제법 그 두께가 실하고 소스 또한 진해서 꽤 헤비한 맛이 예상되었다.
“흐음.”
케인이 낮게 숨을 흘리곤 그 두툼한 고기를 나이프로 가르니 힘줄이나 근막을 전부 제거한 듯 부드럽게 썰리는데 꽤 맛있어 보인다?
“나도 한입만.”
나는 케인이 조각내는 스테이크를 냉큼 하나 포크로 찍어선 빼앗아 입에 집어넣곤 몇 번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부드럽게 썰리던 모습과는 달리 예상보다 너무 부드럽지는 않아 치감이 좋으면서도 씹을 때마다 육즙이 진하게 빠져나오는 게 맛이 꽤 좋네.
노린내도 하나 없었고.
게다가 내가 시킨 무지개 연어도 기름기가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없어서 퍽퍽하지도 않았는데 비린내는 레몬 같은 것으로 잡은 듯 보였다.
특히 구웠는데도 살짝 무지개색이 도는 껍질이 쫄깃한 듯 부드럽고 그 특유의 지방 맛이 혀에 살짝 녹아 감미를 더한다.
나는 맛있다 맛있다 하며 둘에게 한 조각씩 나눠주곤 화이트 와인으로 입가심했다. 와인은 단맛이 적음에도 향기에 과일 향이 풍부해서 달달한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루나 또한 먹어보라며 스파게티를 나눠줬는데 느끼함 없이 감칠맛이 돌며 버섯 향이 그윽하다. 종종 씹히는 닭고기도 퍽퍽함 하나 없이 맛있고.
빵과 콩피도 단맛이 없이 간간한 빵에 여러 가지 산열매 등을 졸인 콩피를 살짝 얹어 먹으니 상큼하고 달콤한 게 입맛이 더 돌았다.
“만족스러운 식사였어. 본성만큼 괜찮은데?”
“맞아요… 여기 특산물로 만들었다는데… 맛있었어요.”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입술을 닦으며 웃었다.
“아, 맞다. 할 말이 있는데 말이야.”
“으에…….”
“이제 와서 생각난 듯 굴지 마라. 아까부터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더니.”
“들켰어?”
루나는 몇 번의 내 돌발 행동에 뭔지 모르게 걱정되는 듯 작게 괴로운 소리를 내며 메뉴판을 숨긴다.
오늘은 그거 아니야, 루나…….
“일단 둘 모두에게 하는 말인데. 사실 루나가 사고 칠 일은 없으니까 루나는 듣기만 해.”
배가 부르니 절로 몸이 뒤로 눕게 된다.
나는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 케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여기까지 따라와 놓고 이런 말 하면 안 믿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하는 일에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거야. 별다른 터치도 안 할 거고.”
느긋하게 다리 꼬아선 조금 남은 와인을 목으로 넘기며 웃었다.
“혹시 케인 네가 범죄를 저지른다 해도 강제로 그만두라 명령하진 않을 거야. 뭐 말릴 수는 있겠지, 네 동료로. 하지만.”
나는 숨을 조금 고르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케인을 바라보았다.
“네 주인으로서의 권한은 휘두르지 않겠단 소리야. 뭐 어찌 보면 방임 같아 보이려나.”
케인이 뭐 내가 말한다고 들을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율성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감내하며 책임지는.
나는 엑스트라답게.
케인은 주인공답게.
“싫어?”
장난스레 하는 말에 케인이 작게 피식 웃었다.
뭐야, 저 자식 웃는 근육 소실된 거 아니었어?
“그럴 리가. 오히려 내가 하려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