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3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32화(232/373)
타고나기를 기름지고 풍족한 땅이 있다면, 챠비드처럼 태생부터 마르고 볼품없는 땅도 있다.
그리고 대륙에서 박해받는 수인족보다도 더욱 힘겹게 사는 사람도 있는 법이고.
비록 약이 제때 보급되어 죽은 이들은 적다 해도 전염병이 크게 번진 곳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병에 걸려 드러누운 이가 절반. 그들을 간호하다 기력을 소모한 이가 또 그 절반의 절반.
먹고 사는 것. 입고 쓰는 것이 전부 사람 손이 가는 일이었는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 태반이 눕거나 죽었으니 경우에 따라선 마을 단위로 없어진 곳도 허다했다.
한창 곡식을 뿌리고 키울 시간을 전부 전염병과 겨루는 데 쏟았으니 낱알이 얼마나 손 위에 쌓였으랴.
재산을 볼모로 돈을 빌리려 해도 가진 게 볼품없어 먹고살기 위해 남의 집으로 기어들어 가는 이들도 많았고 겨우 기력이 돈 몸으로 이제야 뭐라도 키우고 잡으려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나마 아사자가 속출하지 않은 건 비정기적으로나마 오는 구휼 덕분이었지.
“누군지는 몰라도 고마운 분이지.”
“아무렴… 다 서로 더 가지려고 하는 판에 그리 베푸는 곳이 또 어디 있어.”
“오만 신들을 섬기는 만신전에서도 그렇게까지 돕지는 않았단 말이지.”
“그런 분들이 천사야, 천사.”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물어도 늘 손사래를 치며 그냥 받으라고 곡물 주머니를 쥐여 주던 이들.
이번에도 아무 조각도 없는 마차에 아무 무늬 없는 천으로 곡물을 한 아름 덮어 오던 마차가 길거리 돌부리에 바퀴가 걸려 덜컹했다.
“어이쿠!”
바퀴 하나가 빠져 데굴데굴 굴러간다.
그 모습에 그동안 도움을 받은 이들이 제 일처럼 나서 바퀴를 잡고 마차에 실린 곡물 주머니를 옮긴 뒤 수리하자 몇 번이나 곡물을 나눠주던 이들이 도리어 미안해하며 머리를 긁었다.
“어휴. 감사합니다. 이번에 비가 와서 길이 험했는데 그 덕에 마차 바퀴에 피로가 누적된 모양입니다.”
“그런 말씀 마십쇼. 저희가 받은 게 더 큰데 이거 하나 못 돕겠습니까. 당신들 아니면 저희 전부 이번 계절을 못 견디고 부둥켜안은 채 죽거나 가족이 전부 먹고살려고 뿔뿔이 흩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년만 버티면 내년엔 곡식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 테니 받은 만큼 저희도 돌려 드려야죠.
하며 도란도란하던 가운데 마차를 수리하던 이들끼리 서로 눈짓했다.
“이거… 마차 축 안쪽에 작게 그려진 이거… 문장 같은 거 아니여?”
“맞네, 맞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알아둬야 우리가 보답할 거 아닌감.”
솜씨 좋은 조각사가 단번에 파낸 것같이 끊김 없는 그림.
원을 그리는 넝쿨과 안쪽 아래에 새겨진 둥근 원. 그리고 그 위에 피어난 꽃까지.
우연하게 알게 된 은인의 문양을 베껴 그리는 일들이 대륙 곳곳에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
‘파이얀. 안 되겠다. 베일은 집어치우자. 우리.’
네가 눈에 조금만 힘줘도 눈빛이 너무 무서워.
하며 웃던 아델리안을 떠올리며 파이얀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야.’
연기 하면 자신 있었는데 말이야.
파이얀이 분명 외웠는데 아리송한 신의 문장을 보며 끙끙댈 때마다 케인이 옆을 지나가는 건 뭔가.
그러면서 대충 툭 던지듯 정답을 알려줄 때마다 눈에서 마나가 튀어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성녀로 다닐 때 케인과 동반해야 하는데 눈빛 조절에 자신이 없어진 파이얀과 그 사나운 눈빛을 본 아델리안은 원래 예정했던 베일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하얀 레이스 안대를 선택했다.
‘누가 안대는 왜 썼냐고 하면 모든 편견을 버리고 눈앞의 당신을 오롯하게 알기 위해서라고 둘러대.’
아델리안이 레이스 안대를 주며 했던 말이 파이얀에게는 큰 울림이었다는 걸 아델리안은 알까.
“하여간 보스는 한번씩 사람 기분 묘하게 만든다니까.”
모습을 정체성으로 삼으면서도 몇 번씩이나 변화한 파이얀에게.
겉모습에 상관없이 널 보겠다는 말이 어떤 의미일지 계산적으로 한 말이 아닌 게 더 어이가 없었다.
“무서운 사람.”
나의 충성을 이렇게 강제로 강탈해? 헌신으로 복수하겠어.
장난스레 중얼거리며 파이얀이 누군가의 신성을 가득 머금은 노란 꽃 한 송이를 들었다.
이상하게도 마족인 자신이 들었지만 반발 없이 옅은 신성력을 뿜어낸다.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델리안에게 들은 신성이란 트레잇. 그것은 참으로 독특한 부분이 있었다.
파이얀이 아는 신성은 신성력이나 같은 말이었다. 신을 믿는 마음에 따라 그 능력이 생기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는 능력.
신성력이 강할수록 더 많은 신성 마법을 쓸 수 있으니 당연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성력이란 신관이 되기 위한, 혹은 독실하게 신을 믿는 이들이 개화하는 트레잇.
트레잇은 직관적으로 나올 때도 있지만 아리송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신성. 신성력이 서로 다른 트레잇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델리안이 전혀 다르다고 말하기 전까진.
‘아, 운 좋게 샤하드가 신성이 있어서 잘 되었지. 그거 보기 진짜 힘든데. 어? 신성력 트레잇 가진 사람은 신전가면 많지 않냐고? 신성이랑 신성력은 완전히 다른 거야.’
그러면서 뭐라더라. 신성이 쓰알급이라고 하면 신성력은 노멀하다고 했던가. 알아듣지 못할 비유를 했었지.
‘신성력은 말하자면 만들어진 빵을 나누어 받는 거고, 신성은.’
하며 특유의 그 오만한 웃음을 지었었다.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거든. 잘 키우면 반신 트리를 탈 수 있는 트레잇이니까.’
아주. 열심히. 잘 키워야 하는 데다 운도 미친 듯이 좋아야 하지만. 하고 덧붙였었지.
“도대체 보스는 뭐 하는 사람이야?”
이미 마족과 적대를 한 신들의 힘을 나눠 받는 신성력이 아닌. 아직 선택하지 않은 신성은 파이얀 자신의 마나와 전혀 충돌하지 않을 거라며 준 이 꽃.
“진짜 대륙을 어떻게 할 거야?”
그 쓰는 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병들고 다친 강아지를 길에서 데려온 파이얀이 꽃의 가지를 든 채로 천천히 그 강아지의 몸에 꽃을 너울지듯 쓸어내리니, 점차 몸이 회복되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내가 곁에 있고 힘을 알아볼 만한 강자가 없는 경우엔 레비의 능력으로 회복을 도울 테지만 널 시험하기 위해 혹은 진위를 가리기 위해 온 이들 앞에서 보여 줄 건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아델리안은 그냥 오만하고 기분이 좋으며 약간 신이 난 정도로만 보였으나.
“정복하고 싶으신 거야? 아니면 지배? 아니지. 뭐 그런 성격은 아니지 보스가. 그럼 뭘 할 거야, 보스.”
신이라도 될 생각이야? 아니, 아니지. 이미 보여 줬잖아.
“신을 만들고 있었구나. 당신.”
이노센트교. 수호교.
단순하게 보스가 싫어하는 그 악신교를 견제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건 알지만.
보스니까. 아델리안이니까.
“교단은 신이 있어야 성립되는 곳이니.”
참 거대한 것을 원하는 구나. 보스.
파이얀은 마족인 자신이 든 성화의 꽃잎 하나가 바스라짐과 동시에 전부 치유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 * *
감정이 가능한 합금판.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비밀이 얼기설기 얼룩진 합금판마저도 감정해 낸 개구리 감정인조차 손을 들고 못 하겠다 고개를 저은 서적.
둘 중 무엇이 더 가치가 높은지는 확실하지.
“날 도대체 어디로 보낸 거야, 레이첼?”
나는 암시장 새벽에서 돌아와 방에 들어와서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아티팩트로 마나 장막까지 켠 뒤 중얼거렸다.
속으로만 담고 있기에는 좀 무거워서.
그리고 화가 나서.
나는 치밀어 오르는 욕을 꾹꾹 참았다.
“아, 이해하지. 이해는 하지.”
뭐 누누이 내가, 어? 말했잖아. 천기누설의 죄는 크다! 말 못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 그런데 이건 아니지!”
이럴 거면 원작 말고 외전 형식으로 은근슬쩍 뭐라도 보여 주고 보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읽은 원작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과거가 지금 튀어 나왔는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내가 합리적으로 생각했는데.
“이게 먼저야.”
나는 합금판을 가볍게 두들긴 뒤 와인을 목 뒤로 넘겼다.
루프 혹은 회귀. 아니, 그냥 둘 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루프와 회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루프는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고 회귀는 되돌아가는 것이니까. 루프가 그냥 반복된 회귀 아니냐고?
사람마다 그 정의는 다르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이렇다.
적어도 회귀는 한 번 되돌아간 뒤 쭉 나아가면 끝이 있지만 루프는 나아가도 결국엔 다시 처음부터라는 것.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즉.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루프고, 누군가에게는 회귀란 소리다.
그리고 내 생각에 케인은 루프고, 회귀는.
‘아마도 살아 있는 신.’
그게 아니라면 살아 있는 신마저 루프 중이고 누군가가 더 있다?
그럼 내 능력으론 죽었다 깨어나도 아무것도 못 바꾼다.
그런데 레이첼이 날 이곳에 보낸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관여되었다는 거니까.
“정리하자.”
레이첼과 리프가 소설과 게임을 만들어 지구에 뿌렸지.
그럼 최소한 한 번은 루프에서 빠져나왔다는 소리.
그렇지만 루프를 끝낼 수는 없었다. 거기에 이 합금판의 감정된 기억과 레이첼의 악몽을 생각하면.
레이첼을 죽이고 드래곤 하트를 반쪽 낸 건 케인인데.
조각난 드래곤 하트는 불의 정수로 떠돌아다니고 케인과 레이첼은 내가 원작으로 알고 있던 것에서 일행이었지.
“루프는 루프인데 이게 원래 흐름이 아니다, 이거지?”
내가 파릇파릇한 새내기 덕후라면 몰라. 온갖 설정이 판치는 소설을 다 읽고 결국 케인 사가. 이노센트 사가까지 손댄 고인물이란 말이지.
그중 이런 설정 하나 없었을까 봐?
“원작의 원작이 따로 있구나.”
레이첼을 케인이 죽이고 드래곤 하트를 반동강 낸 시간.
그리고 레이첼이 케인과 같은 파티로 살아 있는 신과 대항한 시간.
둘 다 존재하며 적어도 첫 번째 시간은 합금판에 의하면 최소 수백 번 루프했다.
그런데 왜 살아 있는 신은 계속 그 루프를 이어가지 않고 비틀었을까.
이유로 생각되는 건 몇 가지 떠올랐지만 더 이상의 정보가 없어 함부로 단정 짓긴 힘들었다.
“…일단 합금판이 발부스에게 있었고. 그 합금판마저 감정해 낸 개구리 감정인이 이건 못 했단 거지.”
당장 발부스를 잡아 족치고 싶지만 사실 당장 잡아오긴 힘들다.
자신의 은신처에서 나오지 않을 테고, 등장하는 곳조차 랜덤이니까.
나는 오래된 요정의 글자로 적혔다는 서적을 흔들었다.
“들끓게 하네.”
내가 이거 포기할 거 같아?
감정도 안 돼, 읽을 사람도 없어. 거기에 가뮈르에게도 물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요정족의 언어라 불가능하다고?
“근성의 한국인 게이머.”
불가능은 없다.
“기적도 살 수 있는 판에.”
언어 스탯 하나 사는 게 일이겠어? 감정이 안 되고 하이엘프마저 알 수 없는 오래된 언어.
하지만 새벽의 소울로 기적을 사면 어떻게 될까.
지구에도 그런 거 있더라고.
제노글로시.
사람이 단 한 번도 듣거나 배운 적이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현상. 뭐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기엔 뭐하지만. 그런 걸 기적이라고도 하던데.
“산다. 그거.”
돈으로 살 수 있는 5천 소울은 개구리 감정인에게 털었다.
그럼?
게임하면 뭔데.
노가다지.
나는 분노가 섞인 웃음을 실실 흘렸다.
“할 거 많네, 할 거 많아. 살아 있는 신 덕분에 내가 할 게 많아.”
종교도 만들고, 파이얀 성녀 만들기도 해야 하고, 소울도 모아야 하고.
원래도 타도 악신교단, 타도 살아 있는 신이었지만.
우리 애들 데리고 무슨 짓을 몇 번이나 했냐, 너.
나는 남은 와인을 단번에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