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3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35화(235/373)
“힉, 히힛. 흐, 하하. 뭐 할까, 응? 나 뭐 할까. 그러려고 부른 거 아니야? 응?”
히죽히죽 입꼬리가 올라간다. 손에 날카롭게 마나로 손톱을 만든 것을 잊은 듯 뺨을 긁다가 번지는 핏기를 보고는 그게 무엇이 그리도 웃긴지 배를 잡고 웃는 카이자를 살아 있는 신이 무료한 눈으로 응시했다.
“결국 케인은 못 만났나 보군.”
체이서가 광기의 카이자로 완성시킨 걸 보니.
살아 있는 신이 나직하게 읊조린 말에 카이자가 연한 황금색 눈동자를 들어 살아 있는 신을 바라보았다.
“케인? 케인이 누구야?”
카이자의 질문에 피어오르던 마나의 장막 틈으로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마나로 만든 의자의 끝을 두드리는 게 보였다.
“어쩌면 너에게도 구원자가 되었을.”
굽히지 않고 부러지지 않으며, 꺾이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짓밟고 짓밟아도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등만을 보여 주던.
모든 인간의 믿음. 그 등불이었던 사내.
“아주 가끔.”
‘내가 다시 시작할 때마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니.’
무엇이 트리거가 되는지는 몰라도 아주 가끔 카이자가 케인을 만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럼 케인은 자신보다 나이는 많아도 어쩐지 동생이 생각나는 외모의 카이자를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다니지.
“그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특히 네게.
이리 광기에 젖어 살육 인형이 되지도 않고 서로 잃은 가족을 투영해 가며 신뢰를 쌓고.
그러다 어느 순간.
“네 가장 깊은 곳에 내가 박아둔.”
신앙을 일깨우면, 그래서 그 손으로 배반이란 선물을 케인에게 쑤셔 넣는 순간.
그에게 아주 실금 같은 고통을 줄 수 있었을 테니.
“아쉬워라.”
케인을 만나 살아 있는 신의 손에서 벗어났다 여기며 행복해하던 카이자의 절망마저도 살아 있는 신의 힘이 되었을 터.
“이번에도 광기에 물든 널 쓸 곳은 많겠구나.”
이 세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힘이 너무나 많아.
그 덕에 언제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진 않지.
속성 비보를 삼켜 힘의 경지가 높아지고 쓸모없는 생명들을 줄이다 보면 세계를 유지하는 부담이 덜어지니.
‘하지만 단번에 많은 것들을 파괴하고 죽이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니까.’
살아 있는 신이 연한 황금색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는 카이자를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도 넌 악몽이 되어 줘.”
피비린내 가시는 날 없도록.
카이자를 내보낸 살아 있는 신이 허공에 드러누우며 숨을 흩었다.
“이번에 언데드 웨이브나 몬스터 웨이브는 언제 일어날까.”
지원하거나 유도한다 해도 늘 비슷한 시간에 그것들이 터지진 않으니.
가끔은 없이 지나가던 순간도 있고.
다만 그런 것들이 크게 터질수록 이상함 없이 필요 없는 생명들을 많이 거둘 수 있는 법.
그것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살아 있는 신이 세계를 얽맨 힘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과.
이 세계가 망가질수록 케인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것.
“이렇게나 공들이잖아. 케인.”
널 위해. 내가 이다지도. 그나마 다행이지. 많은 기억이 봉인되어 있다는 건 그만큼 지루함도 덜하단 것이니.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면. 오롯하게 홀로 이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면.
이미 지쳤을 테니까.
“이번에도 공들여 널 망가트려 줄 테니까.”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길.
낡고 바스라져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길.
그 영혼이 지치고 마모되어 있기를.
별의 옥좌에 앉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일까, 원래.
성좌.
그 찬란함을 가지기 위한 억겁의 시간.
“포기하지 않아.”
최초의. 그 아주 까마득한 첫 번째 시간에서 내가 네게 한 일을 나는 후회하지 않아, 친구.
살아 있는 신이 느리게 웃었다.
* * *
[해룡의 가호SS, 신념A]아르만은 얇은 석판에 음각으로 조각된 자신의 트레잇을 몇 번이고 눈에 담았다.
마치 그게 허상이진 않을까 싶어 천천히 그 파인 홈을 손끝으로 매만지던 아르만이 고개를 들어 마린이 헤엄치는 수평선 근처를 바라보았다.
‘당분간 마린은 내 소유의 섬 근처에만 있게 해야겠지만.’
알에서 나와 모든 게 신기한 아기 해룡은 당분간 섬 근처의 바다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트레잇과 더불어 마린의 존재를 당분간 감춘 상태에서 세이렌의 남부 독점권으로 인해 발생되는 여유의 돈으로 해군 전력을 증강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남해 군도 제어가 가능하지.’
남해 군도는 바다와 많은 섬의 군집. 그 특성상 완벽한 지배는 불가능하다.
섬 하나하나에 해군 기지를 세울 수도 없는 데다 세워도 모든 섬의 해군 기지가 옳게 굴러갈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남해 군도의 귀족들이 부리는 사병이나 해적들을 압도하는 전력을 아르만이 가진다면.
비대칭 전력.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편하게 남부를 지킬 수 있겠지.
―쀼우.
마린이 입으로 쏘아낸 물이 아르만의 등으로 날아오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막에 가로막힌 것처럼 원형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꾸!
“젖어도 되는데.”
무표정한 얼굴. 단발에 가까운 청록색의 머리칼과 올리브색의 눈동자.
아르만이 자신에게로 날아온 물줄기를 막아 바다로 되돌리는 최상급 골렘. 이본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자 긴 소매끼리 겹쳐 소매 안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이본이 허공에 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 미리미리 훈육하기를 권고합니다.]―쁘!
마린이 물갈퀴가 있는 앞발을 들어 수면을 턉 내리치며 다시 물줄기를 입으로 뿜자 이본이 그것을 고대로 다시 바다로 휘게 만들며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은 어려서 제가 제어 가능하나 나중에 성장한 뒤엔 장난으로 뿜는 물줄기에 사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허공에서 아롱아롱 새겨지는 물로 된 글자에 아르만이 머리를 긁다가 으쓱였다.
“그렇네. 내 생각이 짧았어.”
아르만이나 다른 기사들처럼 오러를 어느 정도 다루는 이들 사이에서만 마린이 지내다 일반인을 만나면 힘 조절이 안 될 수도 있지.
아르만이 끄덕이다가 살짝 짓궂게 웃었다.
“하지만 그건 내일부터.”
아르만이 몸을 돌려 상의를 벗어 갑판 위에 던지면서 난간을 발로 밟아 마린이 내뿜는 물줄기에 일부러 맞아주며 바다로 뛰어내렸다.
첨벙 소리와 함께 아르만이 바다로 떨어지니 마린이 큰 눈을 더 크게 휘둥그레 뜨고선 얼른 헤엄쳐 다가와 머리로 슬쩍 들어 자신의 등에 태우곤 신나게 헤엄을 친다.
그에 아르만이 살짝 돋아 아직은 흔적 정도로 낮게 솟은 뿔을 쥐고 크게 웃으며 물살을 갈랐다.
“아직 아르만 님도 치기 어린 나이라면 그러한 나이인지라…….”
성인식은 지났으되 성숙한 사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순간.
신나게도 물살을 가르는 아르만을 보면서 호슈아가 외알 안경을 옷으로 닦으며 하는 말에 이본이 무표정한 얼굴로 아르만을 응시했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제가 지켜 드릴 테니까.]관리자께서 바라시는 대로.
* * *
“솔직히 말하는데. 이런 곳을 아델리안이 데려와 줄 거 같아?”
살짝 어두운 조명에 달콤한 향이 번지는 술집.
술을 나르는 예쁜 여자도 예쁜 남자도 많은 데다 뭔가 서로 끈적한 시선도 오고 가는 것이.
대중적인 술집은 아닌 것 같았다.
“확실히 도련님께서 우리를 데려오시진 않을 거 같지만.”
[동의.]“난 말이야. 아름다운 걸 좋아해.”
레이첼이 아주 낮게 속삭였다.
보석으로 가득한 레어? 희귀한 아티팩트나 예술품으로 가득한 드래곤의 공간?
“기본적으로 우린 눈이 즐거운 걸 좋아하거든.”
그래서 아는 동족 중에는 예쁜 인간만 모으는 괴짜도 있다며 아마 그녀가 케인을 보면 눈이 뒤집힐 거라며 낄낄대던 레이첼이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아델리안이랑 다니면서 내가 얻은 게 뭐야.”
술! 폭력! 그런 것에 젖어 살던 나를! 이렇게 신전에 가둔 것처럼 재미없게만 하고!
레이첼이 맥주를 단번에 들이켜더니 이내 가슴을 팡팡 치며 하는 말에 루나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심장 반쪽.”
“…아, 그건 맞는데!”
“이렇게 비싼 술집에서 술 마실 돈?”
“그것도 맞긴 한데!”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바라보던 리프가 고개를 한번 저어내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가운데 원형 무대에 오른 조인족이 날개를 살짝 펼치며 애절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에 리프는 문득 다 읽지 않은 소설을 떠올렸다.
‘사랑은 병이야. 누군가만을 위해 헌신한다는 선택을 하나의 객체가 내리는 것이 어찌 병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
리프는 한참 격정적인 순간에 쓰인 대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사랑이 병이라면 맹목 또한 병인 것인가.
가끔 아델리안이 미묘한 얼굴로 ‘리프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가도 좋아.’라고 말한 것을 리프는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것은 도대체 어떠한 의도를 가진 명령인가 하고 분석했던 순간이 있었으나.
‘책이란, 글이란 대단하지.’
타인이 되지 않아도 자기 자신과 다른 생각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그곳에는 리프 자신이 떠올리지 못하는 의도와 목적들이 가득하다.
직접 경험하진 못해도 아주 조금씩 완고한 생각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동시에 아델리안과 아주 오랫동안 돌아다니며 본 사람들과 풍경들.
그래서 지금은 아주 조금이나마 그 말을 이해했다.
아델리안은, 자신의 관리자는 묘한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을 저에게 품고 있구나 하고.
보통의 귀족들이 당연하다는 듯 평민과 노예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과는 달리.
정말 물건으로 만들어진 골렘인 자신을 그는 말 그대로 ‘리프’로 여기는 것이구나.
효율적으로 전시 상황을 제어 및 보조하며 다른 지성 없는 일반 양산형 골렘들을 관리하고 다루기 위한 용도로 생성된 자아를.
당신은 진실로 하나의 객체로 여겨 주었기에 내가 단순히 골렘이라 따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였기에.
‘그래서 그렇게 물으셨구나.’
리프가 잠시 떠올리던 책을 기억 속에서 덮고 느리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행동 패턴은 기본. 방어. 공격. 자율에서 자율을.
전투 패턴은 수호 대신 탱킹을.
이 중 중요한 건 전자의 행동 패턴.
기본적인 상황 판단이 가능한 상태에서 성향을 조절하는 행동 패턴의 경우 다른 건 다 몰라도 자율 패턴만큼은 원래 잘 쓰이지 않는 것으로 리프는 기억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자율적 행동이 가능하므로.’
잠들기 전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기본적 지식은 남아 있으니까.
자율로 설정된 골렘의 경우 관리자의 명령에 불복종 가능하며 심한 경우 자신의 마나심장을 대가로 관리자 살해까지 가능하기에.
말 그대로 자유의지의 씨앗이 심겨진 것이니까.
“언젠가 다시 물으신다면.”
그때는 제 의지로 당신을 따르고 있음을.
말해 드려야지.
“리프 생각은 어때!”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리프를 냉큼 끄집어 올리듯 레이첼이 묻는 것에 리프는 무표정하게 메모장을 들었다.
[일단 레이첼이 잘못한 듯.]“와! 너 내 말 안 들었지! 저녁 뭐 먹자고 물었는데!”
“저녁 먹자구 한 레이첼이 잘못한 거 같아.”
왜냐면 우리끼리 저녁 먹구 들어가서 또 제로가 한 저녁 먹을 거잖아.
루나가 리프의 편을 들며 하는 말에 레이첼이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일단 나 무조건 잘못부터 하고 들어가는 거야?”
레이첼이 빛을 품은 루비 같은 눈으로 억울하다는 듯 바라보며 하는 말에 리프가 살짝 웃었다.
이런 시간이 즐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