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3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37화(237/373)
―까아악! 까악…….
패밀리어 0호가 하소연할 때마다 음울하게 깔리던 흑마나가 일렁이더니 어느 순간 짙게 피어올라 동굴 안을 빽빽하게 채웠다.
“감히. 감히!”
그동안 공들였던 것들이 이렇게도 쉽게 망가질 수 있을까.
아무리 지금 자신이 이런 하급 리치의 몸을 입고 있다고는 해도 한때 경지에 올랐던 존재이거늘.
“어느 누가…….”
하얀 뼈로 된 손가락이 흑마법사의 머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린다.
어서 떠올려 보라는 듯.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던 흑마법사가 오염된 마나샘 안에서 몸 밖으로 빼낸 흑마나를 다시 흡수하며 부글거렸다.
‘그렇게 신중하게 감춰 둔 것들이 사라졌다면.’
그곳에 언데드들을 미리 만들어 오롯한 권속화 직전에 가둬만 둔 것을 아는 이는 흑마법사 자신뿐.
하지만 그 계획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는 몰라도 얼추 알고는 있던 것은 성신교도 포함이다.
‘하지만 굳이.’
정보의 노출만 따지자면 성신교가 가장 유력할 테지만.
그것으로 인해 얻을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는 너무나도 멀어지는 관계.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살아 있는 신을 위해 대륙의 혼란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흑마법사 자신이 만들던 언데드들을 빼돌리거나 파괴하는 짓은 할 이유가 없지.
‘더불어 그들의 지원도 들어간 일을 굳이 자기 손으로 망칠 만큼 어리석은 집단은 아니니.’
그렇다고 신전에 들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떠들썩하게 큰 행사처럼 굴진 않았어도 이렇게 조용하게 언데드들만 사라지진 않았을 터.
―까악. 깍!
패밀리어 0호가 부리로 자신의 깃을 정리하다 소리를 낸다.
“그래. 그러고 보니…….”
패밀리어 8호가 돌아오지 않고 있구나.
워낙 일을 멍청하게 하는 녀석이라 흑마나를 짙게 주지도 않은 탓에 언제나 허덕이며 구걸하듯 오던 놈이었는데…….
며칠째 그 애처로운 척 애원하던 소리를 못 들은 걸 보니.
흑마법사가 잠시 자신의 영성을 확인했다.
아주, 너무나도 깔끔하게 소멸된 패밀리어와의 끈.
“희한한 일이로다…….”
거칠디거친 쇳소리 같은 것이 굴렀다.
“소멸의 대가가 오질 않았다니.”
만약 그 멍청한 것이 제대로 몸을 숨기지도 않고 돌아다니다 모험가들같이 마나나 오러를 쓰는 이들에게 잡혀 소멸된 거라면 이리 깔끔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패밀리어라도 소멸하면 그 계약자에게 반동이 오는 법.
하지만 방금 패밀리어 0호가 말하기 전까지 기억에 떠올리지도 못했을 만큼 은밀하게 소멸했다는 게 이상했다.
“어쩌면…….”
그러고 보니 패밀리어 8호에게 마무리를 명령한 곳이 유독 더 많이 사라졌던가.
어쩌면 아주 강대한 힘을 가진 이가 패밀리어 8호를 붙잡아 정보를 캐낸 뒤 흑마법사인 자신에게 반동이 오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패밀리어 8호 정도의 반동이라면 흑마법사에겐 아주 강한 타격은 아니니까.
사역마의 소멸로 주어지는 고통을 노리기에는 아쉬운 정도.
그러니 패밀리어 8호의 소멸 자체를 숨길 필요가 있다면 반동이 오지 않게 소멸시키는 것이 더 이득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실력자는…….”
물리적인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영혼의 한 부분이 이어진 것.
그런데 그런 것을 이렇게 속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자?
거기에 언데드들을 찾아내 손을 댈 만한 인물.
흑마법사가 한동안 골몰히 생각하다 턱뼈를 한번 덜그럭거렸다.
“설마.”
가낙스.
그 노친네인가.
황실의 수호견. 늙어가는 시간 외에는 그 누구도 적수가 없다는.
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할 것 같은 일.
‘가낙스…….’
그자가 두려워 역심을 품었던 수많은 이들 중 그 누구도 수도에 발을 디디지 못하지 않았나.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지고 그 힘을 휘두르던 이라도 차마 제국의 황실만큼은 넘보지 못하게 한 장본인.
“…그래, 그 늙은이 정도가 아니면.”
영혼으로 이어진 권속과 지배자의 사이를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하긴 힘들겠지.
더불어 제국의 수도, 테이트리아의 아래에 언데드들이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고 처리할 명분도 충분하고.
황실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그 권위를 위해.
남들에게 알려 대대적으로 뒤집기에는 황실이 수호하는 수도에서 언데드라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너무 좋은 내용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렇게나 많은 언데드들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그래도 다 사라지지 않은 것 또한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패밀리어 8호를 가낙스, 그 노인네라면 영혼을 비틀어서라도 정보를 얻었을 테고.
그걸 바탕으로 찾은 곳은 들통났으되 다른 패밀리어들이 가다듬은 곳 대부분은 살아남았으니.
‘꼴사나운 충정이구나. 가낙스.’
흑마법사의 하얀 손가락뼈가 걸죽하게 넘실대던 오염된 마나샘 사이에서 유영했다.
“비록 대업이 조금 더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수명이 임계점에 달한 그 등을 떠미는 것을 안 할 수가 없지.
“한동안 언데드를 만들지는 못하겠으나.”
운이 좋으면 이 저주를 이기지 못한 가낙스를 얻을 수 있을 터.
“모든 시약을 꺼내 오거라.”
―까아악.
패밀리어 0호가 홰를 치며 날았다.
* * *
“수많은 신들의 가호 아래 만물이 그 고마움도 모르며 살아가는 꼴이라니.”
고작 돈 한 푼 두 푼을 위해 신을 찾고 평소에 얼마나 자신이 독실했는지를 우기다가.
그조차 안 되면 이번에만 따게 해 주면 다시는 도박장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 혹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겠다.
이번만 넘어가면 앞으로 신전에 더 자주 가겠다며 일어나서부터 자기 직전까지 찬양하겠노라.
아주 뻔뻔하게 신을 상대로 저울질하는 이들.
중년의 사내.
양면의 신 바사하의 대신관이자 그 허락된 양면의 힘으로 다른 신의 대신관에까지 오른 사내가.
하늘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한, 더벅머리에 콧잔등의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녀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래서 수도로 되돌아온 아델리안을 만나 무슨 대화를 했죠?”
대신관이 실눈을 살짝 휘어 웃으며 묻는 말에 양면의 신 바사하의 성녀, 에리엘 야리카가 입을 열었다.
“어… 그게… 저기…….”
“저번에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컸다며 실망하긴 했습니다만.”
아델리안, 그 망나니 공자가 되돌아왔으니 다시 할 수 있겠죠.
“그… 저희가 너무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도리어 그를 구원하는 일입니다.
타고나기를 이미 의미 없는 삶으로 태어났으니.
자신의 타고난 재능, 혹은 신념과 사상. 몇 번이고 꾸준하게 한 행동이나 노력.
그 모든 것이 트레잇으로 남는 이 세상에서.
제대로 된 트레잇 하나 없는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타고나기를 재능 없이 태어났으되.”
뚜렷한 신념이나 사상도 없으며 꾸준히 반복적으로, 하나의 재능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한 행동조차 없다는 소리.
“그런 이는 태어나기도 아무런 재능 없이 태어난 것도 모자라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리며 온종일 누워 머릿속에 그 어떤 유의미한 생각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그야말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이만이 가능한 일.
그리고 아주 가끔. 모든 것이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타고난 성품 또한 게으르고 의지박약인 이들이 있기야 하겠습니다만.
“보통 성인식 때 알게 된 자신의 트레잇에 충격을 받아 적어도 하나 정도는.”
흔하디흔하더라도 재능 하나 정도는 찾아내는 게 보통인데.
“아델리안. 그 망나니 공자 같은 인간 이하의 사람은 드문 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나 의욕은 없되 탐욕은 있는 이라면.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아닌.”
고작 골드나 다른 것으로 어떻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일에 쉬이 관심을 거두진 못하였겠지요.
“일단… 새벽으로 안내는 잘했어요. 이미 환전도 하신 거 같고요.”
“그래요.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새벽에서 기적을 살 줄 알았는데.”
개구리 수인 감정사를 찾아갔다고 하죠.
대신관이 인자하게 웃으며 양면의 신 바사하의 성녀 에리엘을 바라보았다.
“왜일 것 같으십니까.”
그의 말에 에리엘이 주근깨가 번진 얼굴을 살짝 들어 바라보며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감…정사를 찾아갔다면. 무언가를 감정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요……?”
말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는 얼굴.
하긴 감정사를 다른 이유로 찾아갔을 리는 없으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터.
다만 아델리안이라면 크루거 가문에서 이용하는 감정사들도 있을 텐데 굳이 왜 암시장 새벽에 존재하는 감정사를 찾았을까.
대신관이 혀를 차며 회초리를 들자 에리엘이 익숙하게 양팔을 걷었다.
짝, 짜악 하고 얇은 회초리가 피부에 감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발갛게 오른 팔을 소매를 내려 가리던 에리엘이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나중에 큰 고통을 한 번에 받는 것보다 이렇게 자잘한 고통을 수시로 받는 것이 나으므로.
대신관의 잔정에 감사를 올리며 물었다.
“무…엇인가요?”
“새벽을 시험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날에 기본적으로 제공되던 환전의 한계까지 소울을 바꿔서 한 것이.
시험 삼아 트레잇을 얻게 해 달란 소원이 아닌.
무언가의 감정이라니.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신의 계약서까지 들이밀어 감정한 덕에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과연 크루거 가문에서 감정할 수 없는 것이 있었을까요.”
크루거 가문이 원한다면 대륙 최고의 감정사가 발 벗고 나설 수 있도록 만들었을 텐데.
그리고 그 감정 물품이 무엇이 되었건 어지간해선 신의 계약서 한 장보다는 그 가치가 덜할 게 분명했다.
그보다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을 굳이.
암시장 새벽에까지 가지고 올 이유는 없으니까.
“아델리안. 그 망나니 공자는 아마도 시험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알아보고 싶었겠죠.”
“정확하게… 어떤 것을요?”
“암시장 새벽이 가진 힘, 그 수준 말입니다.”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만한 실력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는지.
아델리안이 생각한 최소한의 기준.
그것을 감정으로 시험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험은 몇 번 더 이루어질지도 모르지.
암시장 새벽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의 질과 더불어 그 익명성까지.
“아주 멍청하진 않나 보군요.”
혹은 같이 다니는 이들 중 하나 정도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인물이거나.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망나니 아델리안은 자신의 결점과 무능력을 가리기 위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외모가 출중하고 능력 있는 이들을 노예처럼 부린다고 하니.
“당분간은 그가 새벽에 흥미를 가지도록 잘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굳이 억지로 다가가지는 말고.
이리저리 알아봐도 암시장 새벽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을 테니.
“그가 알아서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파헤쳐도 나오는 것이 없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이 본능이니까.
“그가 나중에 접근한다면 많은 것을 알아오세요.”
어떤 트레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이권을 더 가지고 있는지.
중년의 대신관의 말에 성녀 에리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