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4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40화(240/373)
“그럼 오늘 만신전의 역사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할게요. 힘내요. 성녀님.”
운명의 신 르웰르의 성녀 마리안느가 진주색 눈으로 시선을 던지며 하는 말에 파이얀이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진짜 성녀님에게 그런 소릴 들으니 늘 재미있다니까. 내일 또 봅시다.”
처음엔 마족과 성녀를 한곳에 붙여 둔 아델리안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지만.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란 말이지.’
아델리안에게 같이 들볶이는 사이라서 그런지 조금 각별해진 기분이고.
파이얀은 한참 배우던 만신전에 관련된 책을 덮고 일어나 벽에 붙은 큰 거울로 다가갔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정말 성녀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서야 할 텐데.’
실수해서 쪽팔리면 내가 파이얀이 아니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거울을 노려보던 파이얀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꼿꼿한 자세와 바른 걸음걸이.
비록 나중엔 안대를 쓰고 움직일 것이긴 하나 이리저리 불안정하게 흔들리지 않는 시선 처리와 더불어 앉았을 때와 서 있을 때.
무언가를 줍는 자세부터 반대로 허공으로 손을 올려 받는 자세까지.
누가 보아도 기품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우아하며 고결해 보이지만 절대 위압적이거나 거만하지 않은 분위기.
그것을 자세와 시선 처리만으로 얼추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보스는 참… 이상한 사람이야.’
일반적인 자세 교정은 보통 귀족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기품과 더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위엄이나 복종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살짝 고압스러운 면모를 강조한다.
하지만 아델리안은 자신이 생각하는 성녀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했던가.
‘이 일의 목적은 악신교의 세력을 갉아먹는 것이니까.’
만신전의 높은 지위에 오른 신관이라면 몰라도 평신도나 평신관 중에는 악신교의 첩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누가 악신교의 첩자인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나에게 있어. 문제는 정당성이지.’
그냥 지나가던 이가 저 사람은 사악한 종교를 믿는 이라고 손가락질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다만 그 손가락질하는 이가 떠오르는 신흥 종교의 성녀라면?
‘너 이단.’
그걸 위해서라면 이노센트교의 교세가 어느 정도 확장되어야 하는 것과 동시에 파이얀이 성녀로서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아델리안의 판단.
그리고 짧은 시간 빠른 신앙 전파를 위해 아델리안이 고른 것은.
‘뭐라더라…….’
프로파간다와 이미지메이킹. 그리고 후광효과.
‘잘 들어, 파이얀. 사람의 얼굴은 화장이나 머리스타일은 물론이고 피부빛에 따른 퍼스… 무슨 컬러가 있었는데.’
밥 먹으면서 보던 방송에서 뭐 많이 나왔는데 하고 중얼거리며 아델리안이 짜낸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빛이 내리쬐는 것을 등지고 말을 하는 것, 즉 역광이나 측광의 이용. 말투와 더불어 듣기 좋은 목소리의 선별.
‘성녀 하면 떠오르는, 천진난만한 데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나 약자를 지키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무대포적인 선한 이미지. 혹은 가녀리고 고결하며 더러운 것 따위 모르는.’
깃펜을 서걱거리며 배워야 할 것과 교정해야 할 것을 적던 아델리안이 무어라 말했던가.
‘그런 이미지보단 넌 역시 신비로우면서도 다정하고 자애로운 것이 잘 어울리니까.’
“서큐버스에게 별게 다 어울린다 하시지.”
파이얀이 키득거리며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서큐버스라는 종족적 특성으로 목소리에 아주 조금 마나를 섞으면 묘하게 더 호감을 갖거나 또렷하게 들리고 자주 생각이 날 것이다.
더불어 몇몇 유력인사들의 꿈에 강림한 뒤 마치 그 자기 자신이 계시를 받은 것 같은 꿈을 꾸게 만든다면.
굳이 정기를 빨지 않고 꿈만 조종한 뒤 나오는 것은 마족의 기운이 묻지도 않을 테니까. 부족한 정기. 즉 생명력은 아델리안이 무한정 공급 중인 마정석으로 대체 가능한 상태.
‘비록 효율은 조금 떨어지기야 하지만.’
그 효율 따위 박살 낼 만큼 값비싼 마정석을 사탕처럼 공급해 주니 굳이 아무 인간의 정기를 빨 필요도 없고.
본디 태어났을 때부터 반마족이 아닌 오롯한 서큐버스였다면 모를까 안 빨고도 지금까지 잘 살아온 덕에 필요하다는 느낌도 그다지 없었다.
문제는.
“그래도 나 스트레스 쌓인 거 같아.”
사실 파이얀은 그 성격이 원래 악독한 것에 가까웠으니까.
초보 모험자를 등쳐먹는 것도 모자라 필요하면 미궁의 몬스터에게 떠밀어 죽인 뒤 전리품을 노획하기도 했고.
자신을 믿고 마음을 푼 이들을 이용하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책감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반마족이라 그렇다기엔 어차피 누구나 이용하며 사는 것에 익숙했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너무 좋은 일만 하다 보니 이상하게 신이 덜 나는 것이.
“역시 음모를 꾸며야 재미있는데.”
그 베르뷔트라는 아이를 골탕 먹이려고 했을 때 얼마나 재미있었는데.
파이얀이 아아, 아쉬워라 하며 자신의 뺨을 매만지는데 문득 세이렌이 울렸다.
“레이첼?”
<그래! 나다!>
파이얀이 싱긋 웃었다.
이건 아무리 머저리라도 바로 알 것이다.
‘취했네.’
“무슨 일로 세이렌을 걸었어.”
<너어. 그러는 거 아니야. 나 섭섭해!>
이 정도면 일부러 몸의 마나를 억제하고 마신 게 분명하지. 옆에서 루나인 듯 레이첼, 그만해. 실례야. 하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울렸다.
“뭐가 섭섭한데?”
<고급 술집 라쉐느! 그거 네가! 읍읍!>
그래, 그거 라줄리 이름으로 운영 중이긴 한데.
뭔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리다 이내 루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파이얀. 미안해. 레이첼이 오늘 좀 취하구 싶다더니 마나두 억제해 놓고 엄청 많이 마셨어.>
그러다가 좋아 보이는 주점을 발견했는데 그곳은 회원제라 들어가기 힘들단 말에 알아보니까 라피스가 운영하는 술집이라는 거야.
하며 루나가 하는 말에 파이얀이 작게 웃었다.
“괜찮아. 원한다면 지금 바로 들어갈 수 있게 해 둘게.”
<아니야. 이제 우리두 슬슬 돌아갈 준비를. 아! 레이첼!>
<파이얀! 나와! 여자답게 술 한잔하자! 원래, 어? 술 마시고 샤워 같이 싹 하면 그게 바로 천국인데! 같이 한잔하자. 아델리안이 이렇게 따로 움직일 때 놀아야지!>
안 그러면 너도 그냥 일만 한다니까? 너 내 동생 레피드라고 알아?
아니, 투덜거리면서 엄청 열심히 일한다니까? 아델리안 손에 잡히면 일해야 한다니까?
하고 세이렌 너머로 울리는 말에 파이얀이 크게 웃었다.
* * *
<그런 이유로 오늘은 놀러 갑니다. 보스!>
“어, 알았어. 잘 다녀와.”
나는 파이얀에게 대꾸한 뒤 세이렌을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뭐랍니까?”
“오늘 파이얀도 루나와 리프, 레이첼이랑 한잔한다는데?”
내가 턱가를 문지르다 배부른 듯 의자가 아닌 내 몸을 엉금엉금 타고 오르는 레비를 잡아 그냥 내 머리 위로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로 우리도 좋은 곳에서 술 마실까?”
케인 그놈은 뭐 알아서 잘 대화하면서 술이라도 얻어 마시고 있겠지.
아니면 칼질이라도 열심히 하고 있든가.
내 제안에 제로가 미지근한 맥주 대신 시큼털털한 싸구려 포도주를 흔들다가 하하 웃었다.
“이미 오늘 마셨는데요. 굳이 좋은 술을 많이 마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나는 지금쯤 부어라 마셔라 할 레이첼과 그 일당들을 떠올렸다.
파이얀까지는, 음. 어울리긴 하는데.
루나도 은근히 식사 때마다 술을 즐기는 편이고 리프도 마다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가디아와 레비는 안 어울리고.’
나는 가디아가 그들과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 것을 상상하다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왕 놀러 나온 거 바로 위층에 숙소 잡아서 내일까지 둘러보다가 귀가하자.”
이런저런 보고서야 매번 받아 보고는 있지만 소소한 현장 분위기도 알면 좋으니까.
황성에 가까운 중심가에서 멀수록 아무래도 먹고사는 것이 좀 빠듯해지는 편이기도 하고.
치안이나 생활 분위기가 차이 나니 이런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만신전의 분위기도 좀 알아가면 좋지.
‘더불어 생각 정리도 좀 하고.’
파이얀에게 흙속성 비보 아티팩트를 알아봐 달라고 한 게 오늘 낮인데 벌써 세이렌으로 보고가 들어왔다.
마나나 마정석을 이용해 야생 던전의 입구를 만들어 주는 일종의 포탈 아티팩트.
나는 얼룩이 보이는 여관의 침대에 클린과 정화를 건 뒤 레비를 눕혔다.
많이 먹어서 그런지 대자로 뻗어 자는 게.
통통한 배를 바라보다가 뭔가 달라는 듯 자면서도 짧뚱한 손을 꼬물거리는 것에 베개 하나 안겨주는데 제로가 씻고 나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야생 던전이 뭡니까?”
내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깃펜으로 끄적거린 양피지를 읽으며 제로에게 답한다.
“말 그대로 야생 던전인데.”
지금까지 내가 갔던 곳은 대부분 인위적인 던전이었다.
바다마녀의 은혜나 결손의 던전같이.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고 유지하는.
하지만 야생 던전은 그 반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던전을 의미한다.
사실 나야 지구 기준으로 보자면 발생하는 원인이나 과학적인 이유는 전혀 짐작 안 가긴 하는데.
이곳 상식으로는 인간족이나 아인족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들 중 마나의 농도가 과밀해진 곳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했던가.
이노센트 사가를 할 때야 그냥 당연하게 있는 경험치나 아이템 벌이용 사냥 스테이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 패치되니 뭔가 이상하긴 했다.
대충 그런 게 왜 있어?
하는 느낌.
마나가 과밀하게 뭉쳐서 공간이 비틀어지고 그 비틀어진 공간에 몬스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거나 혹은 마치 무언가가 의지를 가지고 만든 것처럼 미궁같이 형성된다는 그것.
그냥 비틀린 공간만 있는 경우도 있고 던전핵이 있는 곳도 있다던가.
전자는 그나마 하급 던전이고 후자로 갈수록 강한 던전이라던데.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긴 해.’
나야 그 개념이 어찌 보면 익숙하긴 했다. 게임보다는 소설 쪽으로.
던전이니 헌터니, 레벨업이나 상태창 같은 것들.
물론 여기는 던전은 있지만 헌터는 없고 대신 모험가나 용병이 있지.
레벨은 없지만 트레잇은 있고.
상태창은 없지만 적어도 메인 트레잇은 등급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익숙한 소설과 다른 것은.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고 두어도 폭주나 이런 것으로 몬스터가 밖으로 튀어나온다든가.
혹은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 세계는 멸망한다는 그런 말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모험가들은 돌아다니다 던전을 발견해서 슬쩍 들어가 보고 아니면 바로 도망칠 수 있다는 소리.
뭐 전반적으로 소위 말하자면 칼밥 먹고 살기 좋은 세계란 소리다.
‘하지만 그것도 나중에 파워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는 걸 생각하면.’
어중간하게 강한 게 독일 수도 있긴 한데.
“신기하군요. 야생 던전이란 건.”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우리와는 큰 인연이 있는 종류는 아니니까.”
내가 물리학자나 과학자도 아니고 실제로 신이 존재하는 세상이니 더 할 말은 없지.
그냥 그렇게 된 세계구나,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케인이 다 할 테니까.”
엔딩 보면! 케인! 믿는다!
나는 그 포탈 생성 아티팩트가 왜 함정이라고 불리우는지 세이렌으로 들으며 정리한 양피지를 마저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