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4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41화(241/373)
이러면 안 그래도 마지막 불씨를 태우고 있는 자신의 수명이 더욱 타오를 것임을 알면서도.
천천히 숨을 쉬는 것만이 가능한 사람에게 전력 질주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면서도.
가낙스는.
케인은.
온 힘을 다해 검을 맞부딪쳤다.
“진실, 혹은 그것을 넘볼 수 있는 힘을 원한다 하였더냐.”
무한한 공간.
자신의 트레잇을 한계까지 혹사시킨 그것은 끝없는 대지를 장엄하게 드러냈다.
둘은 온통 갈라지고 부서진 파편들과 깊은 흉터로 가득한 곳을 딛고 서서 서로를 응시했다.
“그것을 줄 수 있으니 날 불렀겠지?”
무표정한 얼굴로 흘리는 음색.
그것에 가낙스가 크게 웃었다.
“그래. 방법은 있구나, 아해야.”
이제 스무 해는 겨우 보냈을까.
아직도 더 성장할 육신을 지닌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빨뿐만 아니라 손톱 발톱마저 잘려나갔다고는 하나 무려 자신을 상대하는 데 두려움도 주저도 없는 존재.
인간들 중 누구보다 강하며 인간이 아닌 것들을 포함하더라도 전성기 때를 생각하면 몇 손가락 안에 들 가낙스 자신이었으나.
유일하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격.
‘강함이 곧 격은 아니지.’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할 만큼 나약한 존재라도 그 영혼의 격은 드높을 수 있는 법.
“격을 쌓아라.”
“격?”
“너 자신. 너의 모든 것.”
강함, 그 강함을 이룩한 근본적 노력 혹은 질서. 생각하는 사고의 깊이, 넓이. 성품. 둘러싼 환경. 그 모든 것이 격의 조건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굴지 않고 짐승처럼 사고하며 행동하고 베풀고 누리면 모두가 그를 짐승의 격을 가진 존재로 대우하고.
반대로 그 존재에게서 신을 떠올린다면.
‘신격이 생기겠지.’
옥빛과 검은빛이 수없이 허공과 대지를 누리고 가르며 번졌다.
부딪치며 생기는 굉음과 더불어 칼날 같은 바람이 몇 번이고 용오름하며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음을 만들어 냈으나, 그 속에서도.
서로의 눈빛과 목소리는 고요했다.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노쇠한 이에게 아주 자비가 없구나.”
가낙스가 크게 웃으며 던지는 말에 케인의 황금색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격은 어찌 쌓지.”
농담도 안 받아주는 놈 같으니라고. 저렇게 꽉 막히고 소통이 안 되는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저놈의 파티가 대단하구나.
“네가 쌓고자 하는 격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겠느냐.”
마족의, 악마의 격을 쌓고 싶다면 그들이 할 법한 짓을 하면 되겠지.
가볍게 던진 가낙스의 말에 그의 목을 베어 낼 듯 스카를 휘둘러 반원 모양의 오러를 뿌린 케인이 그것을 같은 양의 오러로 상쇄하는 가낙스에게 입을 열어 물었다.
“사람을 죽이고 잔혹하게 인신 공양을 하는 것 등을 말하는 건가.”
“그래. 인간 실격의 격을 쌓겠다면야 그런 것도 상관없겠지만.”
보통 공양이라고 하면 누군가에게 바치는 것일 테니 스스로 굽히고 들어가는 격이 아니겠느냐.
네놈이 그럴 리는 없을 거 같고.
하며 가낙스 또한 시간의 힘을 빌려 케인을 멈춘 뒤 느리게 검을 들어 휘두르는데 그 멈춘 것 같던, 영겁 같은 시간 속에서 케인은 황금색 눈동자만 움직여 가낙스의 검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속박을 부숴 버린 듯 움직여 피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신이라 불리는, 신의 격을 가진 자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 거라 생각하지.”
그저 악신이라서?
케인의 말에 가낙스의 주름진 눈이 잠시 가늘게 길어졌다.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확실한 대상이 있는 질문이구나.”
하지만 만신전의 신들은 서로가 서로를 묶는 족쇄와도 같기에 그럴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만신전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만큼 형편없는 세력을 지닌, 보통은 신격조차 형성되지 않은, 우매하며 몽매한 이들이 신으로 여기는 그런 하찮고 거짓된 존재를 일컫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케인이 쉽게 무언가를 입에 올릴 이가 아니란 것을 가낙스는 본질적으로 느꼈기에.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살기를 섞은 공격을 하면서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대륙의, 우리의 삶에 신은 너무나 당연한 존재지.”
실제로 신이 존재하며 신성력을 내려주는 데다 가끔은 그 목소리를 들려주고 혹은 기적을 베풀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선과 악은 누구의 기준일까. 아해야.”
만약 우리가 신이라면, 그리고 흔한 개미 같은 곤충이 우리를 떠받드는 존재라면.
우리는 악일까.
그들을 피해 걷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산에 불을 지르기도 하며 어린아이들은 재미로 개미굴에 물을 붓거나, 하나 잡아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소꿉놀이를 하며 후추랍시고 빻아 뿌리기도 하지.
우리는 선일까.
그들의 생태를 알기 위해 마법사들이 연구하고 좋은 조건의 환경을 제공하기도 하며 개미굴에 침입한 천적을 없애 주기도 하고 먹을 것을 풍족하게 제공해 주기도 하기에.
“더 많은 이들이 믿거나 원하는 그 감정, 마음이 신의 힘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지. 보통 알려진 상식으로는.”
그래서 만신전에선 봉사활동을 하며 고아원을 운영하고 치료소를 겸하며 곳곳에선 작은 학교처럼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하지만 그 반대의 것도 신의 힘을 강하게 만든단다.”
두려워하고 증오하며 공포에 질려 하는 것조차 힘이 되기에 악신도 있는 법.
가낙스의 말에 케인이 그의 몸에 가까이 붙어 검을 찌르려 들자 가낙스가 오러를 실은 옥색 검을 휘둘러 밀어낸다.
하지만 그새 검의 모양에서 갈고리가 달린 체인으로 스카를 변경한 케인이 가낙스의 검에 체인을 휘감아 빠지지 않게 갈고리까지 걸어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며 입을 열었다.
“이러나저러나, 믿음이든 공포든 결국 누군가가 있어야 생성되는 에너지 아닌가.”
그런 것이 열매라면 사람, 혹은 아인족 같은 지성체는 열매가 자라는 밭.
“그 밭 자체를 망치려고 드는 건 왜지.”
“그건 보통의 상식으론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로구나.”
네 말대로 그리해 봐야 단 하나 이득조차 없는 것을.
“이득이 만약 있다면. 어떤 이득일까.”
양손으로 갈고리에 걸린 체인을 손아귀에 감아 팽팽하게 당기는 케인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끊어 부수려 오러를 검에 압축하던 가낙스가 눈을 마주했다.
“지금 열매를 수확하는 밭이 필요 없는 자겠지.”
또 다른 곳에 밭이 있거나 혹은 새롭게 밭을 가꿀 수 있는.
“열매도 밭도 아닌.”
그것들의 주인. 그의 목을 움켜쥘 힘을 갖는다면.
“네가 원하는 진실이 무엇인진 모르겠으나. 그 너머까지도.”
넌 알 수 있겠지.
* * *
“하하. 대단하네.”
긴 금발에 금색 눈을 가진 여인이 양손으로 자신의 팔을 감싸 부르르 떨며 하는 말에 옆에서 양피지에 잔뜩 마법 수식을 베껴 적던 소녀가 입술을 오리처럼 내밀었다.
“스승님. 제가 누누이 말하지만 스승님만 아는 것들을 혼잣말로 말하지 마세요.”
저 호기심 많은 거 알잖아요.
투덜거리는 소녀를 보며 금발과 금안을 가진 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알지, 알지. 히핀. 나의 제자.”
“소르페 스승님. 저 지금 숙제하느라 바빠요.”
소르페라 불린 여인이 자기 입으로 히핀이라고 부른 흑염소 수인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하얀색의 머리칼과 청백색 눈동자. 진한 커피색 피부와 주근깨. 거기에 검고 휘어진 뿔.
그 뾰로통한 얼굴마저 사랑스러워 보이는 자신의 제자이자.
‘사랑하는 나의 컬렉션.’
소르페가 입꼬릴 올려 히죽 웃고는 히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주 짜릿한 걸 어쩌겠어.”
오랜만에 예쁜 아이들도 모을 겸 유희도 할 겸 인간 마법사의 탈을 쓰고 눌러앉았는데.
그 가면을 한순간에 벗길 만큼 재미난 일이 지금 내가 있는 이 테이트리아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곳에 생겼는데 말이야.
그 비틀린 공간 사이로 삐져나오는 파동이.
이렇게도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데.
어지간한 실력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웬만한 드래곤도 느끼지 못하겠지.’
드래곤 중에서도 특히 마법에 능통한 데다 거리마저 가까운 자신이나.
‘아니면 뭐 힘만 무식하게 강한 레이첼 정도?’
그 정도가 아니면 아예 공간 자체가 분리된 곳에서 가끔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저 마나의 파동을 이렇게 명확하게 느끼긴 힘들 테니까.
하지만 레이첼은 마법까지 봉인한 무투가라는 이상한 유희를 접경지 어디에서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저 강대한 힘의 파동은 오롯하게 지금 나만 느끼고 있을 터.
이 얼마나 달콤한가. 세상 누구와도 다른, 오롯하게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니.
“자꾸 변태 같은 미소 지으며 계실 거면 몸 좀 돌려 주실래요, 스승님?”
“오늘따라 나에게 너무 박정해. 히핀.”
난 내 손수건에 향유를 묻혀 네 뿔을 매일매일 닦아줄 만큼 널 아끼는데!
뭔가 억울하다는 듯 속삭이는 소르페를 보며 히핀이 손사래를 쳤다.
“그 아끼는 뿔 저번에 살짝 자르려 하셨잖아요.”
“그야 언제 어느 때나 간직하고 싶어서?”
어휴. 마법사들은 다 하나같이 괴짜에 조금 미친 데다 일반 사람은 이해도, 상종도 못 할 족속이라는 어린 시절 말이 틀린 게 없네.
하고 중얼거리는 히핀을 보며 소르페가 키득거렸다.
“그러는 너도 이젠 마법사잖니.”
“아직 견습이죠. 얼른 등이나 돌리세요. 저 지금 숙제해야 하니까.”
제자에게 구박받는 마법사는, 특히 마탑의 주인 마스터의 칭호를 받은 마법사는 나밖에 없을 거야. 흑흑.
소르페는 일부러 우는소리를 하면서 몸 돌려 탑의 창가로 갔다.
그리고 아주 잠시.
밝은 황금색 눈동자가 엷게 빛나더니 둥근 동공이 찢어지며 점점 위아래로 얇고 길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호기심. 더는 참기 힘든걸.’
유희는 즐거운 꿈.
그러니 그 꿈을 억지로 깨고 드래곤의 정신으로 되돌리는 짓은 흔히 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이 아닌 드래곤의 정신으로는 대부분의 것들이 결국 무의미할 뿐이니까.
기쁨도, 즐거움도, 두려움도. 세상 모든 것들은 그냥 순리대로 흘러가겠지 하는 초월자의 시선.
그러니 그보다 더욱 선명한 감정을 느끼며 즐길 수 있는 유희를 중간에 포기하는 드래곤은 많지 않지만.
‘안 돼, 못 참아.’
소르페는 폴리모프한 인간의 눈이 아닌, 드래곤의 제대로 된 용안에 비하면 그 질이 아주 뒤떨어졌지만 잠시 눈을 바꿔서 저 너머의 일렁거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마나의 파동. 울부짖음. 격렬한 파괴와 소멸.
아는 만큼 보이고 즐길 수 있는 법.
단순한 음식만 하더라도 입에 넣고 씹는 게 다가 아닌.
사용된 재료와 소스의 종류, 그리고 그 안의 감칠맛과 숨은 맛을 알아차리는 혀를 가진다면 더욱 즐길 수 있듯.
인간으로서 누리는 유희의 즐거움을 일부분 반납하고 얻은 드래곤의 감각으로 소르페는 황홀에 가까운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는 가낙스 같은데.”
조금만 더 외모가 자기 취향이었다면 좋았을 그 인간 아이.
그 가진 재능이 너무나 탁월하여 평범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탐이 났지만 손에는 넣지 못한 인간.
‘비록 너무나도 강한 트레잇을 일찍부터 발현해 고정하느라 대가로 능력의 최고점을 잘라내 버리긴 했지만.’
빠르게 어느 선까지 강해지는 대신 그 이상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을 대가로 받은 인간.
하지만 그 말인즉슨 그 벽.
‘혹은 격.’
그 아래에서만큼은 대적할 자가 손꼽힐 텐데.
‘비록 필멸자라 기억의 거의 끝에 다다른 숨을 뱉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낙스와 이렇게 대등한 존재라니.
“궁금해… 아 너무 궁금해.”
소르페가 홀린 듯 중얼거리자 한참 양피지에 무언가를 적던 히핀이 벌떡 일어났다.
“스승님!”
“아이참. 알았어. 방해 안 할게. 너 방해 안 하게 잠시 외출 다녀올게?”
그 핑계로 난 저게 누군지 알아봐야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