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4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43화(243/373)
며칠 동안 이어진 마나의 파동.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한쪽이 짙어지더니 어느 순간 그 기세가 확연하게 기울었다.
“가낙스. 아쉽겠어. 이래서 필멸자의 삶이란 가련하고 애틋하지.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했던 이들이라도 결국 인간이란 그 한계. 그 격을 꺾고 올라서지 못하는 이상 져버리니까.”
금색 머리에 금색의 눈동자를 지닌 마법사. 소르페가 창가에 앉아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중얼거렸다.
저 강대한 힘들의 향연.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는 마나의 파동.
그것을 방해 없이 즐기기 위해 소르페는 그렇게나 사랑하고 아끼는 제자, 흑염소 수인 히핀마저 휴가를 준다는 명목으로 만나지 않고 이 방에 머물며 저 하늘 저편을 며칠째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스튜가 다 되었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가고 이르게 마친 어른들은 일찍 집에 가기 아쉬워 되레 거리를 어슬렁대는 그 시간.
소르페는 가로로 길게 찢어진 용안. 그 눈으로만 보이는 황홀함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 너무 아름다워…….”
결국 가낙스라는 꽃은 지고 새로운 이가 꽃의 왕이 되었는가.
마치 하늘과 대지를 잇는 것 같은,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황금색 파동이 저 멀리에서 공간의 틈을 기어코 찢고 나와 수직으로 솟았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이것을 눈으로 보고 즐기는 이는 소르페 자신 하나뿐이겠지.
그 강렬한 힘!
“못 참아…….”
이건 참을 수 없어.
원래도 드래곤은 아름다운 것. 비보. 눈부신 보물에 집착하지만 소르페는 특히 더했다.
집착. 그 집착이 인간으로 유희 중인 소르페를 깨트리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유희란 하나의 삶을 오롯하게 즐기는 것.
그것이 비록 비참하거나 경멸스러울지라도 그것은 드래곤의 자아가 아닌 유희 중의 자아이므로 그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그것 또한 즐기는 것이 유희의 본질.
그리하여 드래곤 중에는 유희에 심취한 나머지 드래곤으로서의 기억을 완벽하게 봉인하고 유희를 즐기다 설정해 둔 수명이 끝나거나 혹은 설정해 둔 능력보다 강한 것을 만나 죽임당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드래곤의 유희란 진지한 것.
하지만 소르페는 지금 인간 마법사 소르페의 자아가 아닌 골드 드래곤 소르페의 자아가 일부 섞인 채로 저 하늘 너머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누군지 내 눈으로 봐야겠어.”
그리고 천금을 주거나 혹은 수많은 미녀, 미남을 안겨 주어서라도. 아니면 나라라도 하나 만들어 놓아 주는 한이 있더라도.
‘곁에 두고 이 강한 힘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면.’
소르페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검푸른 어스름이 짙어질수록 용안으로만 보이는 저 황금빛 마나 파동이 더욱 아름답게 너울진다.
활짝 연 창문의 틀을 밟고 올라 허공으로 몸을 던지듯 소르페가 뛰어올랐다. 저 파동을 따라. 그 시작점으로 소르페는 순식간에 좌표 계산을 끝내고는 텔레포트했다.
“도대체 누구길…….”
…래?
텔레포트로 몸을 나타낸 순간 소르페는 자신의 목을 베어 버릴 듯 휘둘러진 무광의 흑색 검에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젖혔다.
“누구지.”
흉흉한 황금색의 눈동자와 짙은 검은색의 머리칼.
조금 지친 것 같은 기색마저도 마치 신이 빚은 것 같은 외모.
단언컨대 소르페 자신이 누린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봐 온 모든 이들 중 가장 완벽한 얼굴.
소르페는 아주 옅게 베여 피가 배어 나오는 자신의 목을 잡고 입을 쩍 벌렸다.
“누구길래 이곳으로 왔지.”
“…미쳤네.”
그 파동은 분명 정제된 오러끼리 맞부딪혀 생겨난 잔해들.
즉 검술의 극한.
그런데 방금 한 말과 텔레포트로 나오자마자 목을 노린 것을 조합하면.
‘마나의 흐름을 보고 그것이 어떤 마법인지 알았던 거야. 즉, 마법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자신을 둘러싸고 번지는 아주 강한 살기. 그것이 주는 위협감과 더불어 그 압도적인 재능에 소르페는 전율하며 살짝 미간이 좁아지는 그 사내에게 입을 열었다.
“나는. 소르페.”
아마도 원래라면 마탑의 마스터 소르페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했을 터.
하지만 골드 드래곤의 특성은 지혜. 그래서일까.
본능적인 계산을 마친 소르페는 그 사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골드 드래곤 소르페.”
그 말에 당장이라도 유형화되어 자신의 온몸을 바늘꽂이처럼 찌를 것 같던 살기가 살짝 누그러진다.
“드래곤이 날 왜 찾아왔지.”
“그건…….”
소르페가 입을 열어 대답하려는 순간 눈앞의 사내가 아주 잠시 몸을 멈췄다.
그리고 번지는 강렬한 살기.
그것은 분명 아까와는 달리 소르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쏟아지는 살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 전보다 더.
순간 드래곤의 자아가 섞인 채로 이 앞에 서 있는 소르페의 몸마저 경직시킬 만큼 압도적인 폭력과 같은 형태로 사방을 휩쓸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을 한 그 사내가 소르페에게 손을 뻗는 순간.
‘…죽는다.’
반사적으로 죽음을 직감하여 몸에서 피가 전부 빠져나간 듯 심장이 얼음물에 처박힌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그때.
사내가 소르페의 팔을 움켜쥐고 짓씹듯 입을 열었다.
“날 당장 이동시켜. 수도에 있는 크루거 가문의 저택으로.”
“그…그래요.”
본디 소르페의 성격이라면 무슨 소리를 하냐거나 감히 자신을 그 혀 한번 놀리는 것으로 부려먹으려 했다거나 하며.
아주 불쾌감을 드러내며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자신도 모르게 그 사내의 팔을 움켜쥐고 같이 수도의 크루거 저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눈앞에 저택이 보이자마자 문이 아닌 허공에 마나를 유형화해 박차고 뛰어넘는 사내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강력한 방어 마법이 걸려 있었으나 사내는 원래 출입이 허용된 사람인지 울리지 않았고 드래곤인 소르페에게는 의미 없는 것들.
그렇게 방해 없이 저택의 가장 안쪽에 존재하는 방의 문을 연 순간.
“이건.”
소르페가 중얼거리며 사방을 훑어보았다.
부서진 방문과 더불어 바닥에 흩뿌려진 피.
‘일반적인 사람의 피가 아니야.’
저렇게 농밀한 마나의 향이라니.
마치 마나로 된 몸을 잘라 흘린 피가 저럴까. 살아 있는 생명체의 피라기엔 그 기질이 기묘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포탈인가.”
허공에 열었다 닫힌 포탈의 흔적에 아주 살짝 엉켜 있었을 만큼.
순수한 마나와 성질이 비슷했기에 가능한 일.
“말도 안 돼…….”
누군가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고 이 피를 흘린 이는 그것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뿌려 포탈이 닫히는 공간을 아주 조금 비틀었다.
그 덕에 점차 끊어지고는 있으나 느리게 새어 나오는 건너편의 기운.
“…던전.”
소르페가 중얼거린 말에 사내가 고개를 돌려 소르페를 바라보았다.
“드래곤이라니, 추적 가능하겠지.”
“아니. 이건 거의 불가능…….”
“가능해야 할 거야.”
아니면 내가 부족한 마법 소양을 채우기 위해 드래곤 하트를 쥐고서라도 역추적을 시도해 볼 생각이거든.
그 나직한 말에 소르페가 짧게 몸을 떨었다. 감히 드래곤을 우습게 아냐고 윽박지르기엔.
마치 본능에 새겨진 것 같은 그 알 수 없는 두려움.
분명 자신이 그리 쉽게 사냥당할 리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가는 무엇으로 치를 겁니까, 당신.”
“그건 나중에 내 고용주와 나눌 이야기라고 해 두지.”
…사냥?
소르페는 순간 자신이 아까 떠올린 단어에 위화감을 느끼다 당장은 그 생각을 뒤로 미루고 입을 열었다.
“대륙 전체에 흩어져 있을 야생 던전 중 하나로 이어진 거 같으니 빠른 시간 내는 무리입니다.”
“말할 시간에 어서 비틀어 열어.”
피가 틈새에 끼여 조금이나마 건너편의 기운을 흘려내는 지금을 놓치지 말고.
그 의도의 말에 소르페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일렁거리는 흔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망했다.’
망해도 아주 크게 망했다.
체이서 그놈이 날 억지로 끌고 함정 아티팩트로 연 포탈 안으로 들어온 것까지는 아주 위험한 상황.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으되 던전 안으로 들어오니 각자 다른 곳으로 떨어진 건 다행인 상황.’
거기에 제로도 포탈이 닫히기 직전에 나에게 뛰어들었으니 어디엔가 있을 거라는 건 아주 천운인 상황이지만.
“그어어어.”
“기긱… 그…긱…기.”
하필 내가 떨어진 곳 바로 근처에 몬스터가 있는 건 망한 상황이다.
누군가 내 상황을 안다면 그리 묻겠지.
님. 아이기스랑 코덱스는요? 망토는?
‘응, 아공간 안 열려. 아이기스 먹통이야. 망토 지금 파이얀에게 있어. 레비도 반지에 깃든 상태라 못 불러내.’
부유감이 없었으면 눈물이라도 찔끔 날 수 있을 거 같은 상황이다.
‘함정 아티팩트라더니.’
아마 체이서가 쓴 것은 내가 요즘 정보를 모으던 대지의 속성 비보로 만든 함정 아티팩트.
즉 사용자와 더불어 포탈을 넘는 이들을 카운터 치는 던전으로 보내 버리는 아티팩트였다.
‘아마 그래서…….’
이상한 마나 파장 같은 거라도 흐르는 던전이라 마법 물품 사용 제한 같은 게 걸려 있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이노센트 사가에서 본 인스턴트 던전 중에는 포션 아이템 사용 불가나 3인 파티 이하만 들어갈 수 있다거나 하는 제약이 붙은 곳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저 몬스터들.’
망가진 골렘, 그리고 석상같이 생긴 것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한 번씩 스쳐 지나간다.
빛이 희미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저 멀리 움직이지 않는 것들도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움직이지 않을까.’
아마 저런 것이 나온 이유는 체이서와 제로 때문이겠지.
체이서 그놈은 외도마법, 즉 그림자마법. 혈마법. 정신마법을 쓰고.
제로는 자신의 권속인 다른 도플갱어의 능력을 빌려 쓸 수 있어 다방면으로 대응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도플갱어 로드니까.’
둘의 공통점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
‘물론 제로는 누군가를 삼켜 권속화하지 않으니 의미가 덜하지만.’
함정 아티팩트가 그런 걸 고려한 거 같지는 않다. 그냥 입력된 대로 출력한 느낌.
나는 구석에 숨은 채로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며 주위를 살폈다.
종유석 동굴 같은 던전. 허공에 떠도는 먼지 같은 무언가가 발하는 빛과 더불어 동굴 표면에 군데군데 낀 이끼가 빛을 내는 덕에 아주 밝지는 않았지만 시야 확보가 가능한 상황.
‘이러면 체이서의 그림자마법이 활개 치기 좋은 상황 같기도 한데.’
혈계 마법으로 귀속된 크루거의 반지조차 안 열리는 걸 보면 마나가 아주 일그러진 곳일 수 있으니 체이서의 그림자마법도 안 통할 수 있지.
나는 마치 구명줄처럼 세이렌을 쥐고 주물거렸다.
비록 아무리 잡고 불러도 케인이나 루나는커녕 같은 던전 안에 있을 제로조차 연결이 안 되는 상태지만.
‘이래서 스트레스볼 같은 걸 팔았던 걸까.’
나는 말랑말랑한 세이렌을 만지며 잠시 숨을 골랐다.
‘움직일까 말까.’
솔직히 이런 말 하긴 싫지만. 상식이니 알아두면 편하다.
‘미아가 되면 자리에서 함부로 안 움직이는 게 맞아.’
산에서 조난당했을 때도 막 움직이다가는 더 곤란해질 수 있지.
나는 바위 틈새로 좀 더 몸을 구겨 넣었다. 이것이 일반인의 슬픔인가.
‘제로가 찾으러 오겠지.’
그럼 사는 거고.
혹은 체이서가 먼저 날 찾으면…….
“기기긱… 그. 극.”
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골렘 비슷한 것을 보면서 한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