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4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47화(247/373)
정신마법. 감정마법.
인간의 감정을 강제로 죽이거나 잡아끌어 조종하는.
그리고 정신을 조작해 세뇌하고 불신하게 만들며 기억을 엉망으로 뒤섞는.
‘누군지 몰라도 가장 처음 이 마법을 만든 사람은 악의로 뭉친 사람이겠죠.’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마법이라기엔 너무나 많은 것에 가시 돋친 마법이기에.
외도 마법이란 그런 것들의 집합이었다.
말 그대로 옳은 길이 아닌 마법들. 마나가 아닌 다른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들.
피와 그림자의 일렁거림. 누군가의 정신과 감정을 이용하는 것.
자연스럽게 그것을 배운 이도 비틀리고 망가지게 되는 마법을 만든 이가 선한 사람일 리 없지.
그러니. 체이서가 아델리안에게 쓴 마법 또한 그런 것이었다.
모든 마법에는 그 목적이 있는 법.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그 마법이지.
그렇다면 체이서가 행한 감정의 공유. 링크 마법은?
‘언제였더라.’
우리 어린 시절 카이자. 당신이 그랬던가요.
‘나 사람 죽이기 싫어……. 왜 나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해? 나도 너처럼 행복해지는 마법을 배우고 싶어…….’
당신이 괴로워 울고 있으면 몰래 행복해지는 마법을 걸었었죠.
비록 아주 잠시 이유 없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의 조잡한 마법이었지만.
카이자,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행복함을 줄 수 있는 마법이라고 그랬던가.
‘하지만 우리의 신이 그렇게 다정한 것을 가르쳐 줄 리가 있나요.’
행복은 중독이죠.
기쁨과 행복, 쾌감과 환희는 약물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사람을 중독시키고 결국 그것을 느끼기 위해 매달리게 되니까.
‘그 마법은 그런 걸 위한 마법이었을 뿐.’
그러니.
‘감정 공유? 그런 게 있다면 오해나 다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이라니.
근사하잖아.
체이서는 으스러진 손끝에서 번지는 고통만큼이나 기억으로 번지는 아릿함도 또렷하게 느끼며 낮게 웃었다.
‘역시 카이자. 당신은 틀렸어요.’
하지만 맞기도 해.
이 얼마나 아픈지. 고통스러운지 견디기 힘든지.
물은 더욱 진한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체이서의 허무와 탄식을 아델리안에게 느끼게 하기 위해 걸었던 마법이 역으로 침범당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으나 아델리안과 연결된 체이서에겐 영겁처럼 느껴졌다.
물리적 시간과 사고의 시간은 다른 법.
숨 한 번 내어 쉬는 그 짧은 찰나에 번진 길고 긴. 농밀하며 응축된 감정들.
그것이 실타래처럼, 혹은 더운물에 떨어진 한 방울 시럽처럼.
굳고 진한 것이 무르고 묽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절망. 하지만 다시. 그리고 다시 절망.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지만 기약 없는 견딤.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 강한 게 아니라 강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분리되고. 망가지고 뒤틀리고 그러다 합쳐지더니.
“…오만하군요. 당신은.”
체이서가 크게 웃었다. 미친 듯이. 그 검고 짙은 눈이 더욱 짙어지더니 느리게 더운 것이 흘러내렸다.
“제가 지다니, 이것도 생각조차 못 했는데.”
그것과 동시에 무언가 깨지는 감각에 체이서가 피를 토하며 의식을 놓았다.
* * *
누구나 그렇겠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게 더 아프지.
예를 들면 철없는 어린 시절. 자아가 비대할 무렵.
주위에서 유망주. 기대주. 다음의 슈퍼스타.
이런 소리를 들으며 뛰고 달리는 것이 자유롭던 시절에. 내 몸을 다루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수월하던 순간.
‘누구나 빛나는 순간은 있겠으나.’
강수호는 어린 날이 유독 그랬다고 생각한다. 유소년 축구단에 들어가 그 질투심 강한 나이의 아이들이 모인 집단에서도 널 위한 전술이 맞다고 인정받던 그 순간.
상대를 돌파하고 공으로 그물을 흔들 때의 짜릿함.
각종 대회의 상과 트로피. 인터뷰 세례를 받으며 세계적인 축구 선수와의 만남을 협회에서도 지원해 주던 시절.
국내는 좁다며 어릴 때부터 해외로 나가는 게 낫지 않냐면서 서포터즈들이 붙던, 오롯하게 나의 재능. 나의 노력이 인정받던 시절.
하지만 격한 몸싸움과 태클로 인한 인대의 파열과 부상. 재활. 부상. 유리 무릎.
‘뭐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마치 내 세상 하나가 끝장나 버린 거 같던 순간.
뒤늦게 운동이 아닌 펜을 쥐고 동료가 아닌 친구를 만들려고 했고.
뒤에서 누군가 웃으면 혹시 내 이야긴가 싶어 괜히 뒤통수가 간질간질하게 신경 쓰이던.
‘그래서 나는 집착했을지도 모르지.’
주위의 누구도 고통과 실패. 절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 주지 않았을 때.
그렇게 꺾여 가면서도 부러지지 않던 것이 위안이 된 건.
‘또래에게 기대기는 그 아이들조차 어리고 몰랐으며 어른들은 일단 언제나 위로와 동정을 했으니까.’
아직 어린 나이니 뭐든 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그 말이.
내 모든 노력을 허무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래서 누군가 생각하면 의아하고 이해되지 않으며 바보 같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인기도 없고 재미도 없고 사이다도 없는 소설에 빠졌던 거겠지.
그렇게 힘들어도 결국은 묵묵하게 걷는 게 위로가 되어서.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한데.’
한창 감성 풍부한 나이였으니까.
케인의 이야기는 느리고 길게. 자세하고 장황하게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골렘인 리프가 최대한 정보 전달을 위해 재미를 빼고 정보를 넣은 이유겠지만.
거기에 하루 한 편도 아니었지. 같이 나이를 먹어 갔다.
어린 날에는 도피로 잡았던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그냥 습관이자 일상이었지.
가볍게 뛰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을 무렵 또 무슨 일이 생겼더라.
나는 졸음운전 하던 덤프 트럭이 일가족이 탄 차를 쳐도 고작 신문에 아주 작게. 명함만 한 크기로 겨우 기사가 나는 줄 몰랐다.
때로는 나지 않는다는 것도,
2년째 아직 깨어나지 못한 누나와 유치원에서 엄마가 없다는 게 뭔지 알아온 조카.
나의 아픔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입을 다문 덕에 그렇게 벌어서 어디다 쓸 거냐며 오늘 술 한잔하자는 이들을 뿌리치고 살던 삶.
결국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주 조금은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었던 거겠지.
‘네 말대로 할게, 레이첼.’
한 번에 너무 많은 기억이 쏟아진다. 어지러우면서도 중심은 움직이지 않았다.
* * *
나를 나로 완성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일까.
자의식일까.
그럼 자의식이라는 건 무엇일까. 너와 나를 가르는 것.
그리고 나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
가정하건대. 사고를 당해 몸과 기억이 분리되었다면.
한쪽은 육신만이, 한쪽은 기억만이 존재한다면 타인은 누구를 그 사람으로 여길까.
자신과의 추억은 없지만 그 얼굴, 그 몸짓, 그 표정, 그 목소리를 가진 사람과.
모든 추억은 존재하되 다만 스피커의 모습으로 대화만 할 수 있는 쪽이라면.
누구를 정말 그 사람으로 여길까?
‘난 진짜 아델리안이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나는 아델리안의 기억도 습관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와 아델리안은 서로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 기억인데 내가 아닌.
하지만 어찌 보면 익숙한 감각이기도 했다.
그냥 꿈을 꾸고 그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과 비슷했다.
꿈에서 날거나 귀신을 후려치는 것은 실제로 내가 한 게 아니지만 그 기억은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네가 손해 보는 건 단 하나도 없을 거야.”
“그렇겠지. 네 말대로라면.”
적금을 털어 펀딩을 마친 날 나는 레이첼을 만났었다. 그냥 어느 순간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눈을 뜬 뒤에.
꿈이라고 생각했지. 사람이 그런 일을 겪으면 당연하게 흘러가는 사고방식이다.
아니, 눈 떴는데 내 집도 아니야. 눈앞에 엄청난 미인이 갑자기 나보고 다른 세상을 도와달래.
‘그럼 당연 꿈이지.’
꿈이 아니라며 우겨도 사람이 꿈이라고 여기지, 상식적으로 ‘아, 이거 현실이구나. 난 내가 선택받은 사람일 줄 알았어.’ 하고 누가 생각하냐고.
“수없이 반복되다 보면 하나씩 달라지는 게 나오길 마련이지. 확률의 문제라고 그러더라고, 어떤 엘프가.”
“아, 엘프.”
“반복되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격을 쌓는 데 성공한 데다 아주 우연하게 감시하던 눈도 매섭지 않은 순간이. 수천 수만 번 중 한 번은 있을 수 있잖아?”
“아, 있지.”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레이첼이 퍽 하고 정강이를 걷어찬 후에야, 그 고통으로 꿈이 아닌 걸 알았었다.
폭력주의자 같으니라고!
난 그제야 눈앞의 레이첼이 진짜 그 레이첼인 걸 알았었다.
아픈 정강이를 매만지며.
“그런데 왜 나야.”
“네가 우리를 제일 사랑하잖아.”
레이첼이 보여 준 증거는 명확했다.
펀딩 금액 1위가 2위의 100배 정도 더 썼더라고.
그래, 그게 나야.
난 그나마 모으고 모아도 한 줌 나올까 말까 한 케인 사가의 애독자 중 적어도 남들보다 100배는 더 과몰입한 오타쿠였던 것이다.
“내가 능력이 안 될 수도 있잖아.”
마음으로만 되는 일은 없으니까.
내가 봐온 케인의 삶을, 그 처절함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그게 내 능력 밖의 일이면 나 말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러니 반으로 쪼개자. 네 영혼을.”
네가 그곳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한번 보고,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일부분 담은 그 게임.
“이노센트 사가에서 네가 모든 엔딩을 보면.”
단순한 운이나 애정이 아닌.
고민과 판단력이 필요하니까. 그 모든 엔딩을 보려면.
“그 뒤에나 넌 우리에게 오는 거야.”
“그러니까 날 반 쪼개서 하나는 먼저 넘어가 밑밥 까는 작업하다가 내가 게임 뭐 같네 하고 포기하면 그냥 다시 빼오고.”
아니면 남은 내가 가고?
이 무슨 주먹구구.
나는 벌레 씹은 얼굴로 앉을 의자와 테이블, 종이와 펜을 요구했다.
아니, 왜 레이첼이 넘어왔는데. 다른 애들은 뭐 하는데.
“나 무시하네. 내가 얼마나 격조 높은지 알아? 나니까 이 벽도 넘어온 거야.”
“돌이끼는.”
“이 차원이 판단하기에 완전한 생명체가 아니면 좀 더 쉽게 같이 넘어올 수 있거든.”
나는 손사래를 치며 레이첼이 만들어 준 의자에 앉아 펜을 쥐었다.
“됐고, 제대로 설명해 봐. 그러니까 루프 혹은 회귀라고?”
아니, 원작에는 그런 말 없었잖아. 하는 말에 레이첼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루프, 회귀한답시고 죽고 다시 똑같은 내용을 돌이끼가 적는다고 생각해 봐.”
루프물은 글빨 잘 서는 작가도 리셋할 때마다 내용 우려먹는다고 욕먹는 경우가 허다한데.
나는 고전 애니메이션 중 또들리스 에이트를 잠시 떠올린 뒤 웃었다.
“잘했다. 루프물로 안 가길 천만다행이야.”
루프, 루프의 주체는 아마 살아 있는 신. 그리고 그 신이 노리는 것은 케인.
그렇게 여기는 이유는 케인이 죽으면 다시 시작되기 때문에.
하지만 정확하게 케인의 무엇을 노리는지는 알 수 없음.
지금의 레이첼이 인지한 루프만 해도 수백 단위. 그렇다면 인지 못 한 횟수는?
시작점은 비슷하지만 분, 초까지 같지 않으며 루프 후의 진행도 100% 같지 않음.
아마 살아 있는 신이 늘 같은 행위를 하는 것에 질려 있을 확률이 높다.
“루프의 주체는 살아 있는 신인데 케인이 죽으면 되돌린다. 그럼 케인을 죽이는 게 목적인데.”
하지만 원작에도 나와 있듯 살아 있는 신도 케인과 동귀어진 하지 않았나.
“단순히 죽이는 것이 목표면 그냥 루프 시작하자마자 케인을 찾아가 죽여도 되지 않나?”
내가 종이에 정리하며 한 질문에 레이첼이 머리를 긁었다.
“처음엔 시간을 되돌리느라 너무 많은 신력을 소모해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려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초반엔 기억이 없는 거 같아.”
그리고 강해질수록 기억을 되찾는데 보통 신이 강해지는 건 신격을 높이거나 마나의 집약체를 삼키는 거니까.
“그럼 적당히 기억이 되돌아왔을 때 케인을 죽이면 될 텐데. 왜 굳이 자신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해진 뒤에야?”
나는 계속해서 레이첼에게 질문했다. 질문하고 정리하고 예상하고.
그러다 문득 깨달은 듯 그렇게 말했던가.
“케인이 불행하기를 바라는구나.”
배신당하고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이용당하고 모욕당하더라도.
그렇게 삶을 버티고 버티게.
최대한 길게 그 삶을 지옥처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어차피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니 자신을 죽일 힘을 가진다고 해도.
신을 죽일 힘을 가졌어도 불행하도록. 그렇게.
그래서 내가 케인을. 너희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구나.
기억을 찾기 전 무의식 속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