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4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48화(248/373)
사람이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
누구나 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현실 도피였다.
힘들고 죽고 싶고 지겹고, 삶이 버겁고 도망치고 싶은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렇게 극단적으로 정신이 몰려서 원한 적은 없었다.
다만 매일 같은 삶. 누군가에게 쉽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일. 나도 어렸는데 나보다 더 어린 조카까지 나를 의지할 때.
‘그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내 삶이 이렇게 그냥 흘러가도 되는 걸까.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것들이 정말 최선일까.
정답도 없고 살짝 엿보고 따라 할 누군가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하는 게 옳고 맞는지 불안했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믿고 누군가도 나를 믿고, 우리 지금 잘 하고 있다고. 잘 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세상.
상상은 할 수 있는 거잖아. 내가 정말 옳은 일을 할 수 있고 그것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어쩌면 그것은 위선이자 자기만족일지도 모르지만 난 적어도 남에게 피해 없이 도움이 된다면, 위선도 자기만족도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욕심인가?
“좀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난 책임질 사람이 있어.”
내가 가장이니까. 레이첼은 나에게 도와달라고 네가 가장 적합하다고 했지만 그래서 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누가 돌보고 누가 일하지?
내 말에 레이첼이 으쓱였다.
“당연하지. 나 그렇게 생각 없는 드래곤 아니야.”
참고로 마지막 화 댓글까지도 뇌없첼은 달려 있다.
“영혼을 반 쪼개면 당연히 지금 삶에 지장은 없지. 그리고 정말 네가 저쪽에서 할 만한데 싶어서 가게 되면. 이쪽 시간은 멈출 거야.”
“…그게 된다고?”
내 말에 레이첼이 눈을 끔뻑거린다.
보아하니 지금 내가 생각하는 시간 멈춤이랑 레이첼이 말하는 시간 멈춤이 다른 모양인데.
“…어떤 식으로 멈추는 건지 자세히 말해 봐.”
나는 레이첼이 앞뒤 잘라 먹은 것들을 하나씩 나열해 가다 으쓱였다.
“이걸 시간을 멈춘다고 말하면 안 되지.”
기본적으로 케인이 있는 곳은 수많은 루프 중이다. 그건 시간축이 비틀리고 어긋나 있다는 소리.
애초에 그곳과 내가 있는 대한민국의 시간이 1 대 1로 딱 맞춰서 갈 리가 없지 않겠냐고.
그러니 그냥 그곳으로 내가 갔다가 와도 이곳에서는 마치 시간이 잠깐 멈춘 것처럼 거의 흐르지 않을 거란 소리였다.
‘무슨 5억 년 버튼 같은 느낌인데.’
버튼 하나 누르면 정신은 어디론가 날아가 5억 년을 강제로 버틴 후에 돌아오지만 그 직후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튼을 누른 사람은 그냥 눌린 기억만 있는.
물론 난 기억은 존재하겠지만. 그와 비슷한 것이다. 시간적인 부분에서.
“정말 나로 되겠어?”
뭔가 이런 것도 전문가 초빙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케인이 있는 곳에서 지구로 왔다면, 약간 다르게 생각하자면 다른 세상을 구한 전적이 있는.
즉 이런 일을 성공해 본 적 있는 누군가의 세계를 찾아 그 사람에게 의뢰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내 질문에 레이첼이 날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그럼 뭐 누가 있는데.”
너 말고 진심으로 해 줄 사람 누가 있냔 말에 내가 낮게 침음을 흘렸다.
“알고는 있지?”
수많은 루프 중의 세계에 끼어드는 것이기에 착각할 수도 있지만 기회는 아마 단 한 번에 불가하다는 거.
“뭐, 아마 그렇겠지. 그 빌어먹을 살아 있는 신이 우리가 차원의 틈을 뚫었다는 걸 알면 뭔가 조치를 취할 테니까”
살아 있는 신이 원하는 건 케인의 고통인데 여기서 살아 있는 신이 커스텀 가능한 누군가가 아닌 완전한 제3자를 밀어 넣는다는 것은.
케인이 겪을 고통을 덜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판을 뒤엎어 버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소중한 걸 내가 써도 되는 건가.
막말로 나는 잃을 게 단 하나도 없는 데다 동기도 단순하게 팬심 외엔 없는데.
내가 다 망치면?
“알잖아. 네가 실패한다고 해도 사실 큰 의미는 없다는 거.”
성공한다면 모르되 실패한다면 그냥 나는 아마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평소처럼 살 것이다.
영혼의 반은 레이첼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린다 했으니 그냥 일상의 지속일 뿐.
그리고 그건 케인 쪽도 마찬가지.
그냥 신이 내린 무한한 반복 중 단 한 번의 반역을 실패하는 것일 뿐.
늘 그랬던 것처럼 고통을 반복하는 것이다. 일상처럼.
‘그게 지옥이 아니면 뭔데.’
루프를 하게 되면 지금 쪼개져 나온 레이첼과 리프의 영혼 외 원래 그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기억이 지워진다고는 하지만.
너무 많은 반복으로 인해 기억이 덜 지워지거나 혹은 그 회차에 한해 진실을 알아버리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럼 생생하게 지옥임을 느끼며 한 턴을 살아가는 건가.
“네 말대로 우리 비슷한 일을 해결해 본, 말 그대로 용사님이 있다고 치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겠어. 우리를 얼마나 생각하고 행동할 거 같은데? 너보다 필사적으로 할까?
레이첼이 내 어깨를 쿡쿡 찌르며 하는 말에 내가 머리칼을 흩으며 고민하자 말을 덧붙인다.
“게다가 넌 손해 볼 일 없다니까.”
실패해도 그냥 살 수 있다니까?
하는 말에 내가 찡그렸다.
“가볍게 넘어가려 하지 마. 말 그대로 단 한 번의 기회잖아.”
모든 것의 책임. 그 고통. 단 한 번의 희망도 없이. 그런 것들을 겪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희였으니까.
“단 한 번의 기회 아니야. 한 두 번?”
물론 네가 그곳으로 가서 겪을 첫 번째 루프 때는 아델리안으로서 살아야 나중에 살아 있는 신을 속이기 더 쉽겠지만, 하는 말에 내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생각해 볼게.”
일단 레이첼을 돌려보낸 난 전부 구매했던 원작을 열어 1화부터 읽기 시작했다.
전부 읽은 뒤 생각하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세계인지.
하지만 그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는데…….
원래도 과몰입해서 읽던 케인의 삶이었는데 이것이 진실임을 알고 다시 읽기 시작했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내가 할게, 내가.”
결국 과몰입 오타쿠의 맹목이란 그런 거였다.
* * *
독한 사람이라고 하지.
집에 오면 바로 옷을 옷걸이에 걸고 샤워를 하는 사람. 식사를 한 뒤에 바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
담배 끊을게, 하고 말하고 그날 이후로 피우지 않는 사람. 알람은 단 한 번만 설정한 뒤 울리면 바로 일어나는 사람.
‘그게 나야, 나.’
얼추 많은 기억이 섞였다. 개중엔 이 세계에 녹아들기 위해 강수호의 기억을 없애고 아델리안으로 살았던 시절도 있고.
‘이건 좀 우울하니까 생각은 넘어가고.’
지금도 계속되는 권태. 허무. 나태. 침잠.
밤새워 과제나 업무를 본 뒤 점심시간에 딱 20분 눈 감았다가 이제는 일어나야 하는 그 순간보다 더한 괴로움.
마음만 먹으면 계속 자도 되는데.
지쳤으니까, 나는.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억하지 못했다면 모르되 지금 내가 있는 이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
내가 쥐고 있는 지금이 우리 애들이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 준 기회인지 기억했는데 이걸 내가.
이러고 있어?
“짜증 나게.”
이 감각이 무엇인지 안다. 내가 겪었던 실패와 허무함, 허망감.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한 그 순간들을 수십 수백 배로 뻥튀기해 둔 그 탈력감.
‘그게 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고자 마음을 먹으면 된다. 일단 뭐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된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0퍼센트지만.’
시도라도 하는 순간 그것이 아무리 희박한 확률이라도 0은 아니니까.
“하.”
정신이 들자마자 등골이 오싹했다. 이것은 부유감으로 막을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부유감이 가진 허점. 사각지대.
그것을 정확하게 노리고 들어온 체이서의 공격에 하마터면 영원히 넋 놓고 있을 뻔했으므로.
그 덕에 순간 열이 머리까지 치솟는 감각에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훑었다.
“체이서.”
부유감이 돌아온 듯 확 치솟던 열은 급격하게 내려가지만 그 비틀린 마음은 여전하다.
체이서를 잡아 족치기 전엔 풀리지 않을 심보.
내가 눈에 힘주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잠시 숨을 골랐다.
“…체이…서?”
저 바닥에 구겨진 넝마 같은 게. 피에 좀 절여진 저게. 체이서인가.
살짝 눈에 들어갔던 힘을 푼다.
그제야 나는 슬슬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건 케인.
분명 그 아티팩트로 이곳에 들어온 건 나와 제로, 그리고 체이서뿐인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내가 눈으로 의문을 던지는데 케인이 고개를 툭 흔들 듯 턱짓했다.
“일단 나가지.”
“기다려 봐.”
상황 정리 좀 하자.
케인이 나에게로 손을 뻗는데 내가 손바닥이 보이게 손들어 잠시 멈췄다.
당장 내가 품에 안고 있던 빨간책.
한쪽엔 지쳐 보이는 제로와 무표정한 케인. 그리고 처음 보는 금발에 금안을 가진 여자분.
처음 보는… 사람인데?
‘…누구세요?’
케인이랑 싸운 분이세요?
제가 얼핏 알기로는 노인분이랑 싸우러 갔다고 아니 당신은 아닌데.
‘아니, 케인이 외간 여자분을.’
난 어두운 동굴 안에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고 그런 날 제로가 보다가 다가와 시선으로 훑어내린다.
“아델리안 님. 괜찮으십니까? 다친 곳은 없는데… 혹시 아프거나 불편한 곳 있으십니까.”
“아니, 없어. 일단. 체이서는… 수거해 가는 것으로 하고.”
나는 넝마가 된 체이서를 흘깃했고 그에 제로가 끄덕이며 바닥에 쓰러진 체이서를 들어 올린다.
일단 우선순위는 이곳에서 나가는 게 맞지. 수습은 그다음에.
“이쪽으로.”
나는 잔말 말고 얼른 따라오라는 듯 먼저 가는 케인을 뒤따라 가다가 한숨을 쉬며 시무룩하게 걷는 금발의 여성분에게 입을 열었다.
“일단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우러 왔으니 케인이 가만히 있겠지?
“난 마탑의 마법사 소르페. 당신은?”
“아델리안 크루거.”
내가 장난스럽고 과장스럽게 귀족식 예법으로 인사하자 소르페의 눈이 조금 커진다.
“아, 그… 반가워.”
그 망나니 하려던 입 모양 다 봤다.
나는 내 후위를 점한 채 체이서를 어깨에 들쳐메고 오는 제로와 앞질러 가는 케인을 한번 바라보다 웃으며 소르페와 가볍게 악수했다.
분명 이곳은 아티팩트로 열린 무작위 야생던전.
그 수많은 야생던전 중 나와 제로. 체이서의 능력에 카운터 치는 던전으로 아티팩트가 포탈을 열었으니.
천운으로 케인이 같은 아티팩트를 바로 손에 넣었다고 해도 이곳으로 연결될 리는 없고.
대륙 어디엔가에 있을 이곳으로 이렇게 빨리 온 데다 그 인간 혐오의 케인이 누군가와 같이 왔다?
나는 이동하는 척 걸으며 사용자의 눈을 열었다.
[소르페_마탑의 주인이자 마법에 홀린 드래곤]대표 Traits : [드래곤SSS] [마법SS] [주시자의 눈S]
히든 Traits : [주조A] [편애A]
드래곤이었네.
거기에 주시자의 눈. 저거는 보통 트레잇을 확인해 주는 신관들이 주로 가진 트레잇이다.
타인의 트레잇을 확인 가능한 재능.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다용도로 쓸 만하니까.’
내가 만난 드래곤을 생각해 봐라.
레이첼, 레피드.
특히 레피드는 본가에서 저보수 고효율의 노동을 해 주고 있지.
어떻게 케인과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영업용 미소를 입가에 띤 채 소르페를 바라보았고 소르페는 어쩐지 불길함을 느낀 듯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