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4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49화(249/373)
기억이 합쳐지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럽거나 혼란스럽진 않았다.
다만 합쳐지는 순간 과도한 정보의 생성으로 내가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 위험한 일이 맞긴 했지만.
‘어차피 체이서의 마법 덕에 아무것도 못 하던 순간에 합쳐진 거라.’
의미가 없지.
그냥 문득 잊고 있던 영화나 책의 줄거리. 어린 날의 추억이 떠오른 그런 감각이다.
내가 아주 잊고 살던 기억도,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 혹은 그때 맡았던 향기. 그 바람, 온도, 습도.
그런 것이 불현듯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는 거니까.
그리고 보통은 오래된 기억일수록, 고통스러운 기억일수록 그것은 적당히 미화되니까.
‘아델리안으로서 겪었던 일들.’
그것은 즐겁거나 행복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제 와서 나를 망가뜨리는 고통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결국 지나간 과거이므로.
그리고 나는 강수호의 기억이 없이도 그것을 견디며 살았기에.
이제 양쪽의 기억이 모두 있는 지금은 아델리안의 고통을, 분노를, 그 슬픔을 강수호 때를 바탕으로 이해와 수긍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고통스러운 기억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으로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일단 케인 빼고 방에서 다 나가.”
난 일단 소르페의 마법으로 수도의 저택까지 워프하여 돌아온 뒤 터지는 탄식을 꾹꾹 참으며 웃었다.
‘욕 나오네.’
이런 게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 아닐까.
쪽팔리고 화나고 짜증나고 두렵고 서운하고 미안한데 그러면서 아니길 바라는.
‘그럴 리 없는데도.’
아까 얼핏 봤을 때 부유감이 다시 S까지 올라왔다.
그 말인즉슨 지금 느끼는 내 이 감정이 원래는 더 격렬하단 소리겠지.
나는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웃다가 애들이 전부 나가는 소리에 표정을 굳혔다.
“김케인, 앉아 봐.”
“김케인?”
그런 게 있어, 자식아.
갤러리에서 김케인, 홍루나, 박레이첼 이렇게 부르던 게 기억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참고로 나머지는 설가디아. 도리프. 이레비에 릴리스, 리온. 지금은 파이얀인 그 녀석은 이름이 너무 많아서 그냥 별명이 내 동생이었다. 하는 짓도 소악마 같은 느낌이 많아서.
‘현실도피 그만.’
자꾸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지려는 걸 잡고 나는 빨간색 책.
즉 내 일기장을 들고 흔들며 내 앞 소파에 앉는 케인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거 네가 나에게 안겨 줬다던데, 제로가.”
“맞다.”
“이게 왜 네 손에 있는데.”
“네가 줬다.”
아니, 이런 구라를? 케인 자식이 이런 거짓말을? 내가 언제?
이 형은 너 그렇게 안 키웠다?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번쩍 뜨고 보니 케인이 뒤늦게 말을 붙였다.
“아직 이곳에서 나가기 전 네가 그랬지. 쉴 때 그냥 쉬지 말고 틈틈이 뭐든 읽어 두라고.”
아마 내가 케인을 경매로 사서 데려온 초반에, 아직 저 녀석이 나보다 키가 작고 마르고 부서질 것 같았을 때.
체력 훈련만 하지 말고 쉬면서 뭐라도 읽으라고 하긴 했던 거 같은데.
잠깐 기억을 천천히 되짚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기억이 합쳐지며 수면 아래로 깊게 가라앉았던 예전 기억도 지금 뒤죽박죽 떠오르는 중이라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도 쉽게 기억나는 시점이기 때문에.
‘대부분 손가락 길이만 한 두께의 책이 즐비한 책장에서 고작 한 마디 정도의, 그것도 이름도 없는 책이면 뻔하지. 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 있네.
그거네.
나는 아주 당당한 얼굴로 나를 보는 케인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일기장인 거 알았냐 몰랐냐.”
“알았지.”
그래, 몰랐을 리 없지!
첫 장만 열어도 바로 어린 시절인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무슨 요일 이런 거 적혀 있는데.
모르면 이상하지.
“남의 일기장을 보면 안 된다는 거 몰라?”
내가 허허 웃으며 말하니 케인이 따라 웃는다.
“배운 적 없어서 몰랐는데.”
…지금 내가 케인을 때리면 정당방위는커녕 당연히 타격했어야 할 선제공격으로 판정되지 않을까.
“…왜 안 돌려줬는데.”
“네 것인 줄 몰랐다.”
그래. 표지에 내 이름이 안 적혀 있긴 하다만.
당연히 일기장이라 1인칭 시점이니 아델리안이 어쩌고 하며 본인이 쓸 리도 없다만.
내용상 추론 가능하고 저 녀석은 지금 트레잇 [완벽]을 얻기 전 트레잇에 이미 [천재]가 있던 놈이다.
물론 미성년자였으니 비활성화되어 있었겠지만 그 트레잇이 달리는 이유가 본인의 재능임을 생각한다면.
결론은 내 것인 줄 몰랐을 리 없고.
의도로 주지 않았다는 것.
더불어 이번에 내가 넋이 나갔을 때 일기장을 준 것은.
‘이 자식, 용도까지 파악해?’
읽기도 다 읽었다는 것.
나는 관자놀이에 손을 올려 꾹꾹 지압했다.
“해 줄까.”
“수박처럼 터트리게?”
케인이 느슨하게 앉아 꼬아낸 다리 위에 가볍게 걸치고 있던 손을 살짝 뒤집어 손바닥을 보이며 하는 말에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싶은 마음을 내리 찍으며 대답했다.
“다 읽었지.”
“읽었다.”
그나마 앞부분은 아델리안이 얼마나 서럽고 고통스러웠으며 반사회적인 데다 반항적이고 트레잇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깊은지.
뭐 그런 게 구구절절하게.
사연 있는 악역 조연처럼 쓰여 있었지만.
문제는 뒷부분이었다.
그나마 강수호의 기억을 성인식 이후로 돌려받은 아델리안의 입장에서는 뒤늦게 합쳐지는 ‘그냥 강수호’를 위한 정보 정리가 필요했다.
‘기억이 합쳐진다고 모든 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다 기억나는 건 아니니까.’
당장 아무나 잡고 3년 전 몇 월 며칠에 뭐 했는지 자세히 말하라 하면 못 하지.
하다못해 작년 네 생일날을 오전 0시부터 일어난 사건 순서대로 적으라고 하면 전부 떠올릴 사람 몇이나 되겠어.
그러니 혹시 깜빡 잊거나 할 경우.
거기에 내가 좀 이상한 부분에서 꼼꼼하니까.
‘더불어 뇌없첼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
기억이 다 합쳐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것저것 쓴 것들이 있었다.
나름 혹시 모르니 암호 느낌으로 한글로 적었던.
‘마치 나에게 보내는 편지. 혹은 타임박스 느낌으로 적은 것들.’
기억이 합쳐지는 이벤트 없이 사는 사람들도 한 달 후의 나. 혹은 1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니까.
그런 느낌으로 내가 날 기다리며 쓴 그것은 분명 이 세계와는 너무나 이질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는데.
“남의 일기장. 다 읽었냐?”
나는 무표정한 케인을 응시했고.
“그랬지.”
케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걸 죽여 살려.
물론 죽이면 안 되고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아니지.
지금은 있다.
죽여도 난 무죄일 것이다.
오만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다.
“너 예전에 나에게 내가 한글 적는 거 보고. 시간이 날 때 알려주는 게 어떠냐고. 우리끼리만 아는 문자가 있으면 나중에라도 쓸 일 있지 않겠냐고 하면서 배울 때.”
이거 때문이었냐. 이 속 검은 놈아?
내가 일기장을 흔드니 케인은 침묵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놈이 아주 살짝 웃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저 정도 되는 놈이어야 주인공 하는 거지.
그럼.
순수함과 정의로 점철된 주인공이 아니라. 악과 오기로. 지지 않는 불굴로 이룩하던 주인공 하려면.
저 정도 나쁜 놈은 되어야 하는 거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이마를 짚었다.
쪽팔린다.
내가 아델리안으로 느낀 그 수치와 겪은 모멸들을 저 녀석이 전부 아니까.
화가 난다.
왜 남의 일기장을 보고 지랄일까 저 주인공 놈은. 남의 소유물을.
비록 남의 소유물이 아닌 목숨도 종종 가치 없는 세상인 건 알지만.
짜증난다.
숨기고 싶은 것, 몰랐으면 했던 것, 그런 걸 알면서. 이미 나를 알면서 그냥 지켜봤네. 저놈은.
두려웠었다.
네가 모든 비밀을 다 알아 버렸을까 봐. 적지 않은 것조차 너는 케인이니까. 유추하여 전부 깨달아 버렸을까 봐.
서운했다.
그냥 빨리 주지 그랬어. 그럼 내가 널 초반에 더 쉽고 빠르게 도울 수 있었는데. 내가 일기장에 적어둔 것은 기본적으로 초반 육성트리의 비중이 컸으니까.
미안했다.
내가 너를 동정하고 동경하고. 그러면서도 무슨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를 구원이라도 해 줄 사명을 띤 것처럼 힘내서 모두를 돕자고.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적어서.
그래서 아니길 바랐다.
네가 전부 읽지 않았기를 나는 기도했었다.
“너 아주.”
어이가 없는 놈이라고 말하려는데 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맙다.”
“…뭐?”
“미안하고.”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다시 드높아진 부유감도 지금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실패할 일 없을 거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동등하지.
더불어 당장은 좀 쉬는 게 네가 해야 할 일인 거 같군.
그렇게 말한 케인이 날 두고 방에서 나갔다.
나는 뭔가 속이 울렁거렸다.
부유감은 상대를 좀 더 평면적으로, 일차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도 만든다.
초반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경매에서 그렇게 큰돈을 불러 케인을 산 것도.
그냥 게임머니를 다루는 느낌이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내가 응원하던 최애.
그것이 있는 세상은 솔직히.
한번 부유감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 지금이 아닌 초반의 경우.
움직이지 않는 웹툰이나 만화로만 존재하던 캐릭터의 MV가 나온 정도의 느낌이었다.
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네. 감동이다.
부유감은 나를 이 세계에서 죽음이나 상처. 부상의 공포를 줄여 주는 것과 더불어 게임을 즐기듯 간단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이 자신의 목숨, 자신의 고통을 그렇게나 가볍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라면.
타인은?
그래서 나는 초반에 정말 케인과 루나가 마치 놀이동산의 마스코트 같은 느낌이었다.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만져지고 대화도 가능하지만.
나랑 같은 사람이 아닌 무언가 다르게 존재하는 또 다른 캐릭터.
그리고 그건 강수호의 기억이 되돌아온 아델리안에게도 같은 일이었다.
강수호의 기억이 없는 아델리안은 이 세계가 곧 자신의 세상이었기에.
이곳에서 겪는 것만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그토록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울고, 화를 내고 기도하고 애원했지만.
강수호의 기억이 돌아온 아델리안은, 아, 그래서 나는 무능력했구나.
반쪽짜리구나.
당연하네. 하고 조금 속상하고 말았다.
부유감이 생겼었으니까.
그리고 그 상황에 적은 일기의 끝은 그랬다.
―실패하기 싫다. 실패는 내가 곧 죽는다는 의미고 그것은 내가 케인과 그 아이들의 행복을 이뤄주지 못한다는 소리니까. 제대로 된 엔딩을 보고 모두가 행복하게 만들자.
“나 좀 오만하네.”
웃었다.
지금껏 저런 식으로 생각이야 수도 없이 했지.
케인과 루나, 이제는 제로도. 리프와 레이첼, 파이얀과 레비까지.
전부 행복하게.
이 세계가 악신교단으로 인해 망가지지 않고 케인도 죽지 않고 누구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니까.
그래서 힘내자고.
그런데 그건 나 혼자만의 독백이고 생각이었으며 다짐이고 격려였다.
생각은 자유롭지. 오만하거나 불손하거나 불경하다 하더라도.
생각만 하는 게 뭐가 나쁘냔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 혼자만이 볼 수 있을 거라 여기고, 나의 동기 부여를 위해. 편하게 적었다.
케인은 자신이 내가 읽은 소설 속에 나오는 존재고, 나는 너를 읽었고, 그래서 너를 동정했고, 너를 불행하다고 여겨 멋대로 네 인생에 끼어들어 조종하고 방향을 비튼 것을.
이해하고 어찌 보면 용서하고, 그리고 그럴 권한을 주고 간 것이다.
내가 실패하지 않도록 하겠단 말은 그것이었다.
내가 자신의, 케인의 운명을 주무를 권리를 주고 간 것이다.
내가 책으로 네 인생을 읽었듯 케인도 일기장으로 날 읽은 거지.
내가 널 읽었음을 알았을 때 너도 쪽팔리고 화나고 짜증나고 두렵고 서운하고 미안한데 그러면서 아니길 바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래. 동등해졌네.”
나는 중얼거리며 일기장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