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5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51화(251/373)
어둠 속에서 체이서는 느리게 눈을 떴다.
입 안에는 피로 인해 비린 맛이 번지고,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앞이 흐릿한 감각에 고개를 한번 저어보지만 몸이 무거워 그조차 쉽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신의 무게.
내 육신이 이런 무게를 가진 고깃덩어리였구나 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질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잔인하네요.’
딱 죽지 않을 만큼 망가진 몸을 체이서가 확인했다.
거의 으깨진 것과 다름없는 손과 부러진 손목. 그 외 금이 간 곳곳과 뒤틀린 근육. 파열된 것까지.
더불어 오러로 몸속을 헤집은 덕에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장기와 더불어 금제처럼 가시를 박아 내린 덕에 쉽게 마나를 운용할 수 없도록 만든 것까지.
‘이 정도 악랄함이면 저희 교와 함께하셔도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성신교는 차라리 죽이면 죽였지 살려 놓고 이렇게 죽은 거나 다름없도록 만들지는 않으니 손길의 악랄함만 따지면 더하려나.
체이서가 그리 생각하다가 겨우겨우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비록 어둡다고는 하나 원래 그림자와 가까운 삶이다 보니 이 안이 얼추 식별되었다.
형편없는 몸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체이서 자신이 있는 이곳은 감옥이라기엔 너무나 호화스럽기 그지없다.
차가운 돌바닥도 아니니 피어오르는 냉기와 습기도 없을뿐더러 관리가 엉망인 곳은 자는 동안 사람을 갉아 먹는 쥐가 득실거리는 곳도 많으니까.
게다가 누군가가 고통으로 앓는 신음이나 벽을 때리는 웃풍도 없으니 감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창고에 가까운 곳이겠지.
‘자비롭군요.’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에 던져 놓은 것만으로도 이미 자비롭기 그지없다.
일부러 고통을 주기 위해 나무 감옥에 가둬 오물이 들어찬 곳에 반 정도 담궈 누워서는 자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구는 곳도 있으니.
‘탈출은… 무리겠군요.’
살짝 마나를 움직여 보니 몸속에 퍼진 케인의 오러가 반응해 고통을 준다.
이렇게나 정밀한 오러 활용이라니.
‘괴물 그 자체…….’
결국 몸의 회복도, 탈출 시도도 당장은 막힌 상태.
그러니 체이서는 괴로움을 오롯하게 느끼는 길 대신 계속해서 생각하여 조금이나마 고통에서 신경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건 뭐였을까.’
분명 침잠했다.
아델리안의 의식은 끝없는 자기 관조와 더불어 그 우울과 절망. 자괴감을 곱씹으며 맴돌고 있었다.
너무 위로도 혹은 아래로도 가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으로 가득 차 자신이 풀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게 맞았는데.
“이상하죠. 참.”
아델리안과 연결되어 있던 체이서만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으리라.
무한한 침잠과 무기력 속에서.
그 짧은 순간 해야 하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을 떠올린 그것만으로 아델리안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났음을.
그 순간 체이서가 느낀 그것은 놀람을 뛰어넘어 경의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누구나 그만두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쉬고 싶고, 누워서 움직이기 싫으며 숨만 쉬고 싶은 순간이 있으니까.
그것을 아주 강하게 느끼다 못해 매몰되던 그 시점에.
고작 할 일 하나가 생각났다고 정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 일기장이 아티팩트였나 싶지만.’
그렇다면 링크된 자신도 그 아티팩트의 효과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느낀 것은 잊고 있었던 동기와 그로 인해 깨어난 의지뿐.
“제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노라.
그렇게 나는 당신을 통해 증명하여 나를 달래고 싶고 합리화하고 싶었지만.
“패배감이 이런 거군요.”
링크되어 있었기에. 체이서는 아델리안의 감정을 거의 동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모든 무기력과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단순히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그 생각이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체이서는 자신의 가장 깊숙하게 박혀 있던 무언가가 깨졌음을 인지했다.
“제대로 대화를 해 봐야겠어요.”
흥미로운 사람임이 확실하니까.
“물론 내가 죽기 전에…….”
체이서가 쿨럭하고 피를 토하며 큭큭 웃어 내렸다.
* * *
“일어나!”
“컥!”
뭔가 묵직한 게 내 가슴을 콱 누르는 감각에 나는 숨을 토해 내며 옆으로 굴러 일어났다.
뭔데. 뭐야, 방금.
“일어나. 일어나, 계약자야.”
“…그래. 일어났다.”
두리번거리니 레비가 빵긋 웃으며 침대 위에 엎드려서 날 바라본다.
아마도 레비가 뛰어서 내 몸 위로 다이빙을 한 모양.
‘…몸무게 조절 가능하면서.’
일부러 좀 묵직하게 만들어 뛰어내렸나 보다. 나는 내 가슴을 쓸어내리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 입을 열었다.
“나 내장 파열되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어엉?”
물론 힐러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다. 잠이 깬 나는 일단 레비를 내 머리 위로 올린 뒤 기지개를 켰다.
이제는 내가 세수하느라 고개를 숙여도 내 머리칼을 양손으로 쥐고 잘 붙어 있는 레비다.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관리자님. 몸은 어떠십니까. 일단 심박수는 안정범위이긴 합니다만.
“일어났으면 빨리빨리 나와야지. 한참 기다렸잖아. 나 배고픈데.”
내가 방문을 열자 루나와 리프, 레이첼이 우르르 다가왔다.
아마도 자신들이 없었을 때 내가 수난을 당해서 신경 쓰인 모양.
“너희들도 잘 잤어? 몸은 뭐 괜찮아. 아무 이상 없고. 왜, 먼저 먹지.”
자신들도 잘 잤다는 루나와 그럼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리프. 다 같이 먹어야 맛있다며 나를 이끄는 레이첼을 따라 테이블로 가니 내가 일어난 기척을 읽었는지 제로가 제법 음식을 가득 차리고 있었다.
“일어나시자마자 육류는 좀 부대낄 거 같아서 흰살 생선을 메인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살만 발라 각종 허브와 레몬 등과 같이 찐 다음 산뜻한 향의 오일을 뿌린 생선찜을 제로가 내오며 하는 말에 나는 하품하다 말고 끄덕였다.
“난 고기가 좋은데.”
“물론 입맛 넘치는 사람을 위해 베이컨과 계란도 잔뜩 구웠으니 메인 드시고 드세요.”
역시 제로.
너랑 함께하길 잘했어. 나는 뭔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자리에 앉다가 문득 떠오른 것에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체이서는?”
“아직 살아는 있습니다. 챙겨 오라 하셔서. 어찌할까요, 아델리안 님. 그냥 죽일까요.”
제로가 살을 바르고 남은 생선 뼈 등을 비린내가 나지 않게 허브와 생강을 조금 넣어 푹 고아내 만든 뽀얗고 맑은 스프를 앞에 놓으며 피비린내 나는 대답을 한다.
“…아니, 죽이진 말고.”
후추 조금. 간을 보고 소금을 넣으려는데 제로가 먼저 톡톡 소금을 쳐준다.
간이 딱 맞네.
“소금을 미리 넣으면 아무래도 맛이 미묘하게 달라져서요.”
난 막혀라 잘 모르지만 끄덕였다.
“일어났나.”
그리고 어디서 한바탕 움직이고 온 듯 케인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지르며 오는 것에 레이첼이 쌍심지를 켜며 나에게 얼른 와 속삭였다.
“얼른 혼내, 얼른. 쟤가 너 버리고 가서 납치된 거잖아.”
다행이다. 체이서가 날 납치해서.
드래곤이라도 되었어 봐. 얼마나 더 쪽팔렸을까.
“케인아.”
내가 케인을 부르니 황금색 눈동자가 날 응시했다.
“앞으로 잘해라.”
“뭐야, 그게 끝이야?”
어쩌겠어. 케인 성격에 절대 그냥 이탈한 건 아닐 텐데.
다만 내가 이렇게 무르게 넘어가는 것이 보이면 불만이 쌓일 수 있는 문제였다.
왜냐면 제로는 나와 같이 끌려가 그 던전에서 고생했기에 면죄부가 주어지지만 케인은 아닐뿐더러, 애초에 케인이 있었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고 다들 파악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는 케인을 이해하고 사실 다른 파티원도 머리로는 케인이 그럴 만하다 판단하여 이탈했다고는 생각하겠지만.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게 맞지.’
나는 생선 스프를 한 스푼 떠먹으며 입을 열었다.
“왜 이탈했는지 설명 정도는 해야겠지?”
“그때 가지 않았으면 날 원하는 곳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곳을 공격했을 테니. 그러면 내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아질 게 뻔했고 판단하에 가장 나은 선택을 한 거다.”
케인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렸고 레이첼만 투덜거렸다.
“얼마나 강한 상대였는지 대충 짐작 가니 할 말은 적은데.”
그래도 뭔가 꼬투리 잡고 싶다며 그새 생선찜을 다 먹고 전투적으로 계란과 베이컨을 흡입하기 시작한다.
잘 먹네.
“이거 맛있어.”
자신 전용으로 새로 제작된 높은 의자에 레비가 앉아 긴 베이컨을 국수처럼 먹는 모습에 나는 그 동글하고 말랑한 머리를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체이서 상태는 어때?”
설마 죽, 아니 스프만 넘기는 상태라거나. 하며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제로가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뭘 먹어야 합니까?”
“당분간은 안 죽을 거다.”
제로와 케인.
뭘 해뒀냐, 진짜.
그래도 당장 위험한 상태는 아닌 거 같으니. 나는 이번엔 루나와 눈을 마주했다.
“소울은?”
“꽤 많이 모이긴 했어요. 만 단위는 넘었구요. 하지만 도련님께서 원하시는 소원은 독특하여 얼마나 소울이 들지 가늠이 안 되니까.”
―어차피 파이얀과 수도에서 하실 일이 남아 있으시니 최대한 많이 모아둔 뒤에 소원을 비셔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끼리 생각했는데. 파이얀부터 해서 축제도 있고 더불어 황녀도 만나야 하잖아? 그리고 중요한 건. 우리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에 왔는데. 일만 해야 해?”
어? 이 악덕한 고용주야.
하며 레이첼이 철근처럼 베이컨을 씹어 먹는 것에 내가 웃었다.
“레이첼아.”
“왜.”
생각을 해 봐. 어디 가서 네가 이렇게 재미있는 걸 경험하겠어.
내가 하는 말에 레이첼의 눈이 점점 커진다.
“대륙 전체에 퍼진 사이비 종교랑 붙을 수 있지, 황성에도 들어갈 수 있지, 인어족이랑도 만나봤지. 거기에 지루하게 길에서 시간도 안 버려. 우리 바로 게이트 타잖아.”
“…그건… 그렇지?”
“언데드 종류도 다양하게 봤지, 남들은 있는지도 모르는 던전에도 들어가 보지. 더불어 네 심장도 찾았지.”
“…그렇지.”
그럼 앞으로 나에게 잘해야 되냐 못해야 되냐.
“…잘?”
내가 넌지시 하는 말에 넌지시 레이첼이 대답한다.
뭐 레이첼의 원래 불만은 좀 놀고 싶다는 거였지만.
슬쩍 그런 건 뒤로 넘겼다.
“잘하자. 밥 먹어.”
“…그래.”
뭔가 이상한데 하는 얼굴로 레이첼이 빵을 씹는다.
다른 파티원들은 대충 알아챈 듯 레이첼을 바라보며 웃더니 식사를 마저 했다.
사실 한동안 좀 즐기라며 풀어줘도 되지만 날 이곳에 데려와 놓고 부유감과 사용자의 눈만 쥐여 준 게 괘씸해서 말이지.
‘그나저나 레이첼의 심장이 활성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건 역시 그거 때문인가.’
혹시 모를, 내 사망 이후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레이첼의 영혼 일부가 지구에 있을 테니까.
그래서 회복이 더딘 걸지도 모르겠다. 드래곤 하트는 영성과도 관계가 있다고 하니까.
“어제 신세 진 그 소르페와 연락할 방법은 알아 놓고 보냈지?”
“예, 세이렌 번호를 알아뒀습니다.”
제로의 말에 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마지막 남은 생선살을 입에 넣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럼 일단 체이서부터 보러 가자.”
상태를 보고. 어찌 되든지 간에 살아 있는 신에게로 되돌려 보낼 수는 없지.
네임드 적 유닛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 죽이거나 혹은.
‘공략할 수 있을까.’
나는 높아진 부유감 덕에 어쩐지 잘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