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5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53화(253/373)
하나 물어볼까.
모든 걸 가졌다고 하면 보통 무엇을 생각해?
아름다운 외모와 고귀한 혈통. 거기에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재산.
그리고 바로 재능.
세리아는 시녀에게 발마사지를 받으며 손거울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파도처럼 크게 넘실거리는 맑은 꿀색 머리카락과 투명한 자수정 같은 눈동자.
눈에 거슬리는 잡티나 점 하나 없는 피부와 늘씬한 몸.
거기에 스스로 생각하기엔 형제들 중 겨룰 자가 없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와 자신의 노력으로 생긴 재능까지.
‘그 멍청한 아델리안에게 성녀상을 받아낸 건 다 내가 잘해서니까.’
“황녀님은 정말… 발도 어쩜 이리 고우세요?”
“큼, 흐음.”
“아, 그러니까… 황태녀님 말씀드리는 거예요.”
시녀가 작게 감탄하며 하는 말에 세리아의 유모가 몇 번 큼큼 하자 시녀가 얼른 말을 바꾸었다.
그에 세리아가 싱긋 웃으면서 향유를 발라 반질반질하고 윤이 나는 발끝으로 시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듯 움직이며 가볍게 대답했다.
“유모도 참. 아직 정식으로 받은 호칭은 아니잖아.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마.”
“하지만 황태녀님. 다른 그 어떤 황족들을 데려와도 세리아 황태녀님을 능가하실 분은 없답니다.”
세리아의 유모가 한 걸음 더 다가와 둥근 빗을 들어 세리아의 구불거리는 머리칼을 잡고 살살 빗겨주며 온화하게 웃었고 그것을 올려다보던 시녀도 다시 조심스레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저도 그렇게 믿고 있어요. 아름다움과 고귀함. 황제 폐하는 초상화로만 뵈었지만 남은 황족분들 중 외모도 가장 닮으셨잖아요.”
“하긴 폐하께서는 금발에 검은 눈을 가진 분이시니까.”
사실상 계승권을 포기하고 나간 이들을 제외하고, 혹은 그 용기도 자원도 없어서 황실에서 숨죽여 지내는 이들 또한 빼고 난 뒤 그나마 계승권에 눈독 들이는 이가 있다면.
세리아 자신과 제12황자 샤하드. 그리고 제20황녀 페이아 정도였다.
그중 샤하드는 금색이 돌긴 했으나 붉은 빛이 더 강한 적금색인 데다 눈 또한 그러했으며 그의 어머니가 수도의 명문 귀족이 아닌 남부의 귀족 출신이라 피부색이 살짝 짙었다.
고작 피부색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은 원래 정통성 문제로 집안싸움을 할 땐 걷는 모습조차도 트집거리가 되는 법.
그리고 페이아의 경우 짙은 사파이어색 머리칼과 눈동자에 성격 또한 소심하기 짝이 없으니.
‘페이아는 아예 논외로 쳐도 괜찮아. 문제가 있다면 아마도 샤하드겠지만.’
암살자를 보내도 살아남는 데다 정보 또한 틀어막고 있어 꽤 신경 쓰이긴 했으나 사실 그 샤하드 아닌가.
‘병약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내가 봉인했던 트레잇이 천재 무골 신성이던가?’
아무리 몸을 보하고 마나를 북돋으며 각종 포션이나 영약을 알음알음 구입 중이긴 하지만.
‘비록 내 봉인을 풀었다곤 해도.’
그 덕에 병약해진 몸으로도 유흥을 즐기던 의지박약한 샤하드가 얼마나 강해졌겠는가.
오래 살고 싶다는 집념이라도 있었다면 술이 아닌 포션을 마시며 정신수양이라도 하면서 그 나약한 몸을 추스를 텐데.
그도 아니고 술에 빠져 살던 그 샤하드가.
그 약한 몸으로 온갖 파티에 참석하던 그 샤하드가?
‘뭐 수명은 좀 늘어났겠지만. 알 게 뭐야.’
그 늘어난 수명이 의미 없도록 세리아 자신이 황제의 위에 오르는 순간 그 목은 날아갈 텐데.
세리아가 고혹적으로 웃으며 손거울을 바라보는데 순간 자신의 머리칼을 매만지던 유모의 얼굴이 굳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유모?”
“어머, 네. 황태녀님.”
세리아의 유모는 세리아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봤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입으로는 웃는 소리를 내며 자꾸 머리카락을 빗듯 살짝살짝 머리카락을 들었다 놨다 하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리아는 일단 모른 체하며 자신의 머리칼을 삭,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왜? 머리카락에 뭐가 묻었어? 이상해, 유모?”
“그럴 리가요. 우리 황태녀님 어디가 이상할까. 언제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걸요.”
유모가 세리아의 말을 듣고는 머리카락을 넓게 펼쳐 목덜미를 덮는 것에 세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늘은 날도 쌀쌀하니 틀어 올린 머리보다는 이렇게 내린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흐응, 그래. 난 유모가 해 주는 거면 다 좋아. 이제 난 책 좀 읽다가 쉬고 싶어. 그래도 되겠지?”
“그럼요. 푹 쉬세요.”
세리아가 밝게 웃으며 으쓱이고는 유모와 시녀 둘 다 방에서 내보냈다.
“뭘 본 거지……?”
세리아가 큰 거울로 다가가 등 돌리고 서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확 들고 손거울로 큰 거울을 비춰보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눈동자.
그리고 목덜미를 바라보던 순간 세리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게, 뭐지?”
바로 보이는 것이 아닌 한 번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라 세리아가 눈에 힘을 주고 작은 손거울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목과 어깨에 걸친 부근에 보이는 희미한 갈색 점. 혹은 멍 같은 무언가가 눈에 비쳤다.
손가락 한 마디, 반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점이나 혹은 멍 같은 그것.
피부색의 변질.
세리아는 한쪽으로 머리카락을 모두 쓸어 넘긴 뒤 거울을 들지 않은 손끝으로 그곳을 매만졌다.
보드랍기 그지없는 피부지만 그 아래는 미묘하게 색이 더러웠다.
그리고 살짝 누르니 아주 미묘하게 얇고 탄력 있는, 너무나도 얇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촉감의 무언가가 피부 아래에 느껴졌다.
“…이게. 뭐야.”
세리아가 멍하게 손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 * *
레비가 회복을 시켜 주었다고는 하나 어쩐지 기분상 찌뿌둥한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내 뒷목을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여기?”
“네.”
제로가 지하 감옥 같은 곳은 너무 멀고 혹시 다른 사람을 홀려 도망칠까 봐 자신의 방 옆에 딸린 창고 같은 곳에 뒀다고 해서 왔는데.
여기 침대도 없지 않나?
나는 생각 없이 문을 슥 열었다가 다시 슥 닫았다.
“죽은 건 아니지?”
“예? 그럴 리가요. 숨 쉬는 기척은 언제나 확인 중이었습니다. 아델리안 님. 지금도 느리지만 호흡 중이기도 하고요.”
바닥에 피가 엄청나게 고여 있던데?
나는 태연하게 말하는 제로와 왜 따라 왔는지 알 수 없는 케인과 루나. 레이첼. 리프를 응시했다.
“너희 소울 벌러 안 가?”
“조금 이따가 소울 벌러 갈 거예요. 도련님.”
“우리가 뭐 소울 버는 노예야?”
“파이얀 찾아가서 밥이라도 좀 먹고 와. 레비도 바깥 산책 좀 시켜줘.”
나는 일단 상냥하게 대답하는 루나에게는 웃어 보인 뒤 성질내는 레이첼에게는 골드를 쥐여 주었다.
그리고는 리프에게는 내 머리 위의 레비를 안겨주며 말하자 리프가 입을 열었다.
―파이얀의 경우 내일 성녀 활동을 나간다 하던데 거기까지 따라 갈까요, 관리자님.
“잘 하는지 보고 와.”
내가 웃으며 루나와 리프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자 레이첼이 ‘나는 나보다 약한 놈에게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하며 다리를 옆으로 벌려 키를 낮추길래 적당히 레이첼의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케인에게는 고개 숙여? 으아억!”
“레이첼!”
내가 슬쩍 장난치자 레이첼이 내 머리를 농구공처럼 꽉 잡고 힘을 줌에 루나가 놀라 레이첼의 등짝을 퍽 때렸다.
“소울? 모아 주지. 하지만 소울, 바라지 마라.”
모아서 내가 쓸 거니까!
하고 레이첼이 루나와 리프와 나가는 걸 보며 한참 웃은 뒤 나는 다시 문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 부유감이 올라온 덕에 피를 함지박만 하게 흘린 사람을 문 뒤에 놓고도 별 생각이 안 드네.
미안하다, 체이서.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하며 문을 열었다.
옅은 피 비린내.
두꺼운 커튼이 쳐진 방 안에는 별다른 가구도 없는 상태에서 체이서만 바닥에 널브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죽기 직전은 아니야?”
아무리 봐도 지금 딱 산송장인데.
내가 소곤거리니 케인은 한번 고개를 내젓고 제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죽는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아델리안 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직 괜찮아요.”
“안 죽는다.”
둘의 말에 난 일단 뺨을 긁적이다 아공간을 열어 포션을 꺼냈다.
그리고는 쪼그려 앉듯 몸을 숙이자 제로도 같이 슬쩍 몸을 뭉친다.
“제가 할까요?”
“일단 대화는 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할 거 같거든.”
난 체이서에게 캐낼 거도 좀 있고 대화할 거도 좀 있는데 상태가 이 모양이니.
일단 내가 제로에게 포션을 넘긴 뒤 워낙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 코덱스를 꺼내 피를 치우고 정화를 돌린 후 의자와 테이블을 꺼내자 제로와 케인이 날 이상하게 바라봤다.
“일단… 앉히겠습니다.”
제로가 미묘한 표정으로 기절한 거 같은 체이서를 의자에 걸치듯 앉힌 뒤 입에 포션을 살짝 흘려 넣었다.
그러고는 제로가 케인에게 흘긋 눈짓하니 케인이 흠, 하며 고개를 기울인다.
그리곤 이내 제로는 내 쪽으로, 케인은 체이서의 뒤로 가서 섰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로는 나를 보호하고 케인은 체이서를 단숨에 죽이기라도 할 모양.
그리고 나서는 둘이 무슨 신호를 주고 받은지는 모르겠으나 체이서가 갑자기 쿨럭쿨럭 거리며 눈을 떴다.
“하아. 이렇게 또 뵙네요?”
체이서가 피를 많이 흘려 파리해진 안색으로 실실 웃으며 나를 바라보다 아는 체를 한다.
그에 내가 마주 앉아서는 마찬가지로 실실 웃었다.
“잘 지냈나 봐? 보기 좋다.”
“아, 그렇죠? 어느 분이 제 옷을 독특하게 염색도 해 주셔서.”
하며 체이서가 자신이 흘린 피로 물든 상의를 훑어보며 너스레를 떠는 것에 내가 코웃음을 쳤다.
‘역시 저런 놈이 하나는 있어야…….’
우리 메인 파티 별명이 무엇이던가.
‘소통불가 개노답파티.’
그나마 파이얀의 합류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생기긴 했지만 파이얀은 그 이유로 지금 일이 많지 않은가.
부려먹기 편한 고성능 유닛이 하나 있어야 해.
올라온 부유감 덕인지 원래는 내가 영입할 수 없는 적 네임드라서 그런지.
나는 아주 담담하게 체이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 어떠세요.”
내가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체이서가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검은 뱀 같은 눈에 즐거움이 가득해 보였다.
“너? 별로지.”
원래 꾈 생각이긴 했는데 대뜸 저렇게 나오니 괜히 또 냉큼 그러자 하기 싫어진 덕에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체이서가 킥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저 다용도로 쓰기 편한 데다 잘생겼고 말도 잘 들으며 제법 강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거기에 제 힘은 굉장히 희귀하면서도 범용성이 큰 능력이니 아래에 두셔도 후회는 없으실 텐데요?”
“쓰기 편한 데다 말도 잘 듣고 강하다라.”
중간은 좀 애매하게 충족되는 케인과 모두 해당되는 제로를 내가 흘긋 보니 체이서가 ‘아.’ 하다가 이번엔 흑흑 우는 시늉을 냈다.
“저 쓸 만해요.”
“의도가 뭐야?”
악신교단은 광신도로 유명한데 악신교단의 네임드인 체이서가 저렇게 쉽게 변심을?
게다가 중요한 건 변심을 택할 일이 아직 없지 않았나.
난 적당한 회유와 더불어 협박 및 강압성을 띠워 계약서에 지장 찍게 하는 아주 고약한 생각을 하던 와중에.
저렇게 홀랑홀랑 냉큼 넘어오려는 물고기를 보니 영 의심스러울 수밖에.
내가 가재미눈을 한 채로 말을 하자 체이서가 느리게 웃었다.
“저의 신이 거짓임을 알았으니까.”
적어도 제가 원하는 신은 아니더군요.
체이서가 묶인 채 의자에 기대 그 깊은 색의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케인을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응시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죠?”
‘강수호 씨.’
케인은 들을 수 없게.
제로는 보아도 이해할 수 없게.
입 모양으로 그리 말하는 체이서를 보며 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