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5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57화(257/373)
반복이라는 것은 확률의 근원이다.
그 아무리 일어나기에 희박한 확률의 무언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백 수천 번을 넘어서. 수만 수백만을 넘어가면.
그것이 가능한 확률이 0이 아닌 한.
단 한 번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법.
이곳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세계였다.
그렇다면 그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어느 누군가는 우연하게라도 그 영혼의 힘이 하늘에 단 한 순간이라도 닿지 않겠는가.
영혼의 힘이.
그 격이.
본디 자신이 입고 태어난 것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발끝에라도 닿은 순간. 가리어진 눈이 트이는 것이다.
이 세상이 마치 누군가 만들어 놓은 모형 정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내막이야 전부 짐작하지는 못하더라도 어설프게나마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늘의 끝자락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을 만큼 격을 높인 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누군가는 추앙했고 누군가는 추악했다.
어느 이는 추억했고 어느 이는 추모했다.
살아 있는 신을 받들어 모셔 자신도 이 루프에 얽혀 영생 아닌 영생을 살아가려 했고 어느 이는 살아 있는 신을 죽여 거대한 끝을 보려 했다.
혹은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고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것에도 손을 놓고 기억으로만 사는 이도 있었으며 어느 이는 수없이 사그라들었을 삶을 위해 기도하기도 했지.
하지만 그 모든 존재들의 기원도, 미움도 살아 있는 신에게는 아무런 감흥조차 되지 않았다.
원래 살아 있는 신이 자신의 편의를 위하여 원하는 모양으로 반죽한 이 세상을 그가 바라는 곳으로 되돌릴 때, 당연하게도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의 기억조차 되돌아가리라 여겼기 때문에.
그 어떤 발버둥을 치더라도 처음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므로.
하지만 아무리 강하고 질긴 금속으로 만든 검이라도. 아무것도 베지 않고 허공만을 가르더라도 수만, 수백만을 넘게 내리치면 아주 조금씩은 닳는 법.
세상은 왜 그렇지 않다 생각할까.
수많은 시간을 되돌리고 또 되돌리는 그 와중에 어느 한 부분은 느슨하거나 깨지거나 균열이 갈 수 있는 법.
살아 있는 신도 몇 번은 그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내가 만들어 낸 이 시간을 알아차린 존재가 있구나.
때때로는 자신이 닿은 진실의 끝자락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 있는 신을 죽이면 끝날 거라 여긴 무지몽매한 이들도 있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지.
하지만 살아 있는 신이 이토록 나태하고 허술하게 구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온 대륙이 도플갱어에게 삼켜져 멸망하더라도.
그 거짓된 삶을 영위하는 존재가 대륙을 뒤덮고 삼키고. 종국엔 진혼곡조차 바스러진, 그야말로 종말을 흐느끼며 멸망하더라도.
혹은 마족의 혼혈아가 결국 마계의 문을 여는 데 성공해 군단을 이끌고 휩쓸지언정.
붉은 하늘이 열리고 비 대신 불이 내리며 강은 끓고 바다는 마르며 대지는 바스라지고 마족들의 진군에 살아 있는 중간계 모든 것이 비명을 지르며 열린 마계의 문으로 하나둘씩 먼지가 되어 빨려 들어간다 하여도.
아니면 모진 핍박과 착취를 견디고 견디다 우연하게 각성을 완료한 인어족의 진정한 왕이.
이 세상 모든 물의 주인이 되어 그 내딛는 걸음마다 물이 범람하고 홍수가 일며 해일이 산처럼 일어 대륙이 전부 바다 아래에 가라앉아 모든 나는 것들은 머리를 조아려 잠시 쉴 틈을 나누어 받고.
모든 걷고 기는 것들은 물 아래에서 숨 한 줌의 자비에 목숨을 팔아 위대한 물의 왕의 자애를 노래하며 끊임없이 일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까짓 일들.
크게 계획이 틀어지면 무엇 하겠는가.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리면 되는 것임을.
그것이 살아 있는 신의 가장 큰 권능이요, 또한 가장 큰 방심의 원인이었다.
아무리 일이 잘못되고 망치게 되더라도.
결국 자신이 원한다면 세계를 다시 되돌릴 수 있기에.
조금의 어긋남. 약간의 뒤틀림. 적당한 실패 따위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번에 유독 많은 이들이 세계의 비밀에 대해 감을 잡거나 혹은 인지하였으며.
또한 누군가로 인해 원래는 매번 죽은 아이로 시작했던 아델리안이 이번엔 살아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까짓 게 무슨 대수라고.
어떤 일이 생기고 어떤 방해가 들어오며 심지어 살아 있는 신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 대륙이 멸망한다 할지라도.
뭐 어떤가. 수없이 다시 시작되는 세계에서 한 번씩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희박하더라도 일어날 확률이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이상한 것은 아닌 일이다.
* * *
“이게 말이 돼? 너 솔직하게 말해 봐. 속임수 썼지.”
레이첼이 바들바들 떨며 체이서에게 삿대질을 하자 체이서가 어깨를 으쓱이며 싱긋 웃었다.
“무엇이 말인가요. 제가 알아듣게 말해 주시겠습니까?”
“아니!”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그 태도에 레이첼이 버럭 소리치다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 찍었다.
“이 상황에서 12, 12 뜨는 게 말이 되냐고!”
나! 루나! 제로가 집 지어둔 곳은 다 피하고 시작지점 한 바퀴 돈 덕에 월급도 받은 데다 황금열쇠칸에 딱 맞춰 올라가?
거기에 더블이라 한 번 더 굴려?
“이건 명백한 사기게임이야.”
레이첼이 결국 체이서의 멱살을 잡고 탈탈탈탈 흔들어 댄다.
그러자 체이서가 종이 인형처럼 나부끼며 하하 웃었다.
“손으로 굴리는 것도 아니고 눌리면 자동으로 숫자가 나오게 해 둔 아티팩트인데 제가 어찌 사기를 칩니까아?”
흔들리며 싱글싱글 웃는 모습에 레이첼이 바들바들 떨었다.
“나… 케인보다 얄미운 녀석 처음 봐…….”
레이첼이 체이서를 탁 놓아주며 중얼거리자 루나가 그걸 슥 보다가 리프에게 속삭인다.
“레이첼이 저렇게 말리는 거 처음 봐.”
―그러게.
나는 그 모습에 이것저것 메모하다가 입을 열었다.
“체이서는 파이얀 쪽으로 파견 보낼 거야. 그동안 사이좋게 지내.”
“아, 그럼 파이얀에게 가기 전에 얼른 주사위 굴려, 얼른!”
나는 다시 불붙은 레이첼과 싱글싱글 웃는 얼굴의 체이서. 그리고 그 둘과 함께 다시 주사위를 굴리기 시작한 루나와 리프. 제로를 바라보았다.
이 와중에도 케인은 같이 게임 안 하고 이번에 얻었다는 힘을 정리하기 위해 명상 중이다.
유독 제로가 체이서를 탐탁지 않아 하는 얼굴이지만… 게임 몇 번 같이 하고 밥 몇 번 먹으면 좀 나아지겠지.
나는 체이서의 트레잇을 정리하며 잠시 생각했다.
[체이서 알타인_신을 등진 자.]대표 Traits : [외도마법SS+] [체술S] [고문술A-]
히든 Traits : [신성력B] [상담C]
신을 등진 자.
사실 저것으로 체이서의 변절은 확실시된 상황이라 마음이 한결 편하다.
‘파이얀이 게이트로 대륙 투어하며 씨 뿌리는 중이니까… 돌아오면.’
안 그래도 파이얀은 매혹과 꿈의 강림. 더욱이 정신 지배라는 트레잇을 가진 덕에 사람을 현혹시키고 선동하는 데 좋은데.
거기에 체이서를 붙인다?
정신과 감정 마법을 쓸 수 있는 데다 그 마법은 외도마법으로 존재 자체를 아는 자가 극히 드문 마법.
어지간한 신관에게 쓴다 하더라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확실히 교단 내에서도 이제 슬슬 우리도 정식으로 활동해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으니 말이죠.’
테이트리아도 그렇고 다른 소규모 나라도 그렇고.
만신전을 거의 모시면 모셨지 국교로 지정된 단 하나의 종교는 없는 편이다.
하지만 체이서가 말해 주길 악신교는 사실 테이트리아 제국의 국교가 되는 계획도 진행 중에 있다고 했었다.
나에게 합류하기 전 원래 그의 직위는 악신교단에서도 제법 높은 축에 속하는 집행자.
즉결 처형권이 있으며 단독 행동이 가능한 데다 정기적으로 교단에 돌아가거나 혹은 보고를 해야 하는 다른 교단원과는 달리 한동안 연락을 끊어도 살아 있는 신을 제외하면 강제할 수 없는 지위에 있었다.
즉 보직상 어느 파벌에도 들어가 있지 않은 살아 있는 신의 직속 휘하.
그러니 체이서는 단독 임무 수행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악신교단 내부에서도 갈린 파벌들끼리 각자 서로 숨기는 정보를 혼자 취득 및 취합이 가능했고 그 덕에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던 것.
그리고 체이서의 말대로라면 다가오는 축제 때 악신교단이 슬쩍 세리아의 세력 중 하나에 끼여 윤곽을 드러낼 모양이었다.
‘뭐 아무래도 성녀상 문제로 세리아가 악신교단에 빚을 진 모양이니.’
원작대로라면 악신교단 쪽에서 돕는 척하며 은밀하게 오랜 기간 동안 중독시킨 뒤 그것으로 좌지우지한 느낌이지만.
지금은 나 때문에 조금 비틀렸으니.
그래도 당장 보이는 큰 결은 같을 것이다.
상황을 조합하자면 축제 때 자신의 트레잇을 과시해 유독 강한 트레잇을 타고난 자가 없다는 이번 황실의 소문을 잠재움과 동시에 계승자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려는 세리아.
그리고 그런 세리아를 통해 이번 축제 때 양지로 대놓고 올라와 만신교에 속하지 않고도 황실이 인정한 종교임을 대중에게 인지시키려 드는 악신교단.
아마 후자 때 세리아뿐만 아니라 그동안 베르뷔트가 포섭한 아카데미의 귀족들과 더불어 교단 자체에서 포섭한 다른 귀족 및 만신전의 신관들로 여론을 몰아 제대로 된 종교인 척할 예정일 것이다.
‘그걸 나는 샤하드와 이노센트교로 맞받아칠 계획이고.’
원래 황실은 대대로 강한 트레잇을 타고난 곳이다.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세계인 이곳 특성상 강한 트레잇은 그 자체로 힘이요, 권력이다.
그런데 이다음 대의 황위를 이을 황실 인원 중 그 누구도 지금까지 제대로 된 트레잇을 선포한 적이 없는 가운데.
테이트리아 수도에서 크게 열리는 축제 때 세리아가 단독으로 트레잇을 내보인다?
‘대중이 생각하기에는 확고하면서도 적법한 후계자임을 낙인찍는 거지.’
하지만 여기서 샤하드도 보인다면?
‘애초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단 하나뿐인 존재와 최소한의 비교가 가능한 둘은 그 무게가 하늘과 땅 차이인 법.’
거기에 기본적으로 만신전에 속한 종교는 대놓고 어느 쪽을 지지할 수 없다.
만신전에 속한 종교는 여럿이서 하나이고, 하나이며 여럿이니.
어느 한 종교가 지지하는 순간 내전이 일어났을 때 종교대전 또한 함께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만신전은 자기들끼리는 갈라 치고 정치질을 해도 대놓고 황실의 후계자에게 줄타기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뒤에서는 몰래 하겠지만.
하여간 그냥 뒀다면 세리아가 대중의 눈에 제대로 된 후계자로 보일 테고 그때 만신전에 속하지 않은 신흥 종교가 후계자를 지지하는 파벌에 들어 있다?
그 종교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미묘해지는 일이다.
나라의 단 하나뿐인 다음 대 황제가 될 인물이 자신의 세력으로 받은 종교를 그릇되었다고 우긴다?
‘어느 간 큰 놈이 그러겠어.’
하지만 나는 한다.
내 간은 부유감으로 인해 뻥튀기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나라의 적법한 후계자?
내가 하나 더 지지해서 올린다.
‘샤하드 믿는다.’
조만간 점검하러 가야지.
그리고 귀족들을 위주로 뿌리를 내린 세리아를 지지하는 악신교를.
일반 백성들 위주로 지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노센트교가 저격한다?
만신전은 절대 나서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아카데미나 예전 페이아를 만났던 사냥제를 생각하면 축제 때 모일 세리아의 지지자들 중에 무조건.
‘도플갱어 포션을 쓴 이가 하나는 있겠지.’
나는 테이블을 두드리다 느리게 웃었다.
이번만큼은 일부러 꾸민 게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흑막의 미소로 사탕병을 그새 반이나 채운 체이서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시죠? 합법적으로 모았는데 말이죠.”
그에 체이서가 검은 비늘 같은 눈동자로 날 보다가 휘어 웃곤 슬쩍 사탕병을 손으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