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5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58화(258/373)
그것은 케인으로서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아니, 사실 아델리안을 만난 뒤로 겪은 것들은 모두 그러한 면이 있기는 했었지만.
유독 더 그러했다.
이런 것을 기시감이라고 했던가. 겪지 않았던 일임에도 이미 한번 겪어 본 것같이 느껴지는 것을.
케인은 가낙스와 검을 마주하며 그와 대적할 때마다 마치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그만큼 강해져 간다.
본래의 경지를 되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무언가 부서지고 혹은 누군가 휘말려 다치거나 죽을 수 없는 이 가낙스의 공간에서.
케인은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불의 심장이 뿜었던 불의 마나와 기백의 인어족들에게서 갈취하듯 흡수한 물의 마나.
거기에 본디 케인은 숨을 쉬는 것처럼 마나를 모으고 있었던 터라 자신의 몸에 내재된 것까지.
남은 평생을 바쳐도 얻기 힘들 정도의 마나를 몇 배나 몸에 품고도 그것을 녹여 낼 정도의 재능.
그리고 그 재능에 잡아먹히지 않고 제대로 표출할 수 있는 존재.
케인이 자신의 힘을 줄이거나 혹은 제어하지 않고 뿜어내자 그야말로 가낙스의 공간이 갈려 나갔었다.
가낙스를 만나고 나서 몇 달 지나지 않아 이루어낸 성과라고 하기엔 거룩하기까지 한 경지.
결국 가낙스가 자신의 남은 생을 불살랐음에도 그 끝은 부스러진 옥빛 검이 흩날리는 것이었다.
“…진실 너머를… 볼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렇다면… 이것도 도움이 되겠지…….”
재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타고나는 법. 그렇기에 누군가가 모방은 할 수 있을지언정 보통 타인이 타인에게 줄 수는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공간과 시간이라는 재능은 너무나 기묘하여 마치 재능이 자리한 공간 자체가 옮겨지듯이.
가낙스는 자신과 함께 사그라들었을 자신의 재능을 케인에게 넘기며 마지막 숨을 뱉었던가.
그로 인해 가낙스가 만들었던 그의 공간이 깨지며 드러난 세상은, 그 격이 오른 케인의 눈에는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런 것을 미시감이라고 했던가.
분명 늘상 봐 온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것 같은 그 기묘한 감각.
마치 낯선 공간에 갇힌 것같이.
그리고 그것을 확실하게 잡기 전에 케인은 소르페를 만났었다.
그렇게 아델리안과 체이서가 얽힌 것을 알았고.
그 이후는 어떠했던가.
‘진실.’
진실과 그 너머까지.
‘격을 쌓으라 했던가.’
단순하게 물리적으로 강해지는 것으로 오르는 격은 미미하다.
그것을 케인은 느꼈다.
신격을 결국 쌓지 못했다고는 하나 손꼽히게 강한 가낙스를 꺾고 그의 트레잇을 삼키고.
그것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케인은 자신을 둘러싼 공기 자체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보더라도 그전까지는 단순하게 그것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가진 장단점이나 얼마나 강한지 혹은 약한지.
그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정확하게 무어라 말할 수는 없으나 무언가의 본질에 아주 조금 더 다가가 눈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완벽하게 웃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울고 있음을 안다.
정성 들여 조각한 아름다운 조각상이 사실은 그 정성이 악의로 이루어졌음을 읽어낸다.
피는 꽃이 언제쯤 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부는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내일까지 흘러갈지 예상이 된다.
그것은 확실히 다른 세상이 열린 것과도 같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나 많은 정보에 부하가 걸려 눈과 코, 입과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지도 모르겠으나.
격을 쌓은 몸은 그것을 숨 쉬듯 인지한다. 지금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느껴지고 들리며 보이는 것들이나.
좀 더 격이 쌓인다면 아예 닫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케인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세계의 위화감. 흐르는 구름과 저 하늘마저도.
마치 언젠가 수십 번은 본 것처럼.
절대 그럴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날씨란 것은 매일 같고 매년 같아 보이나 수백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절대로 같은 날이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구름의 모양, 흘러가는 자리. 번지는 여명의 색과 나뭇잎의 지고 핀 자리.
그 모든 광경은 매일 같아 보여도 사실은 달라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젠가 한 번 정도는 본 적 있는 것만 같은 느낌.
주위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한참을 바라보면 그 사람을 원래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
단 하나의 친분도 나눈 적 없는 이들인데.
이 세상 모든 것이 분명 낯선 것임에도 낯익게 다가온다.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무슨 생각해?”
케인은 아델리안을 바라보았다.
“명상.”
모든 것을 축약해 그리 말하니 아델리안의 푸른 눈이 한 번 위아래로 움직이다가 고개가 기울어진다.
케인은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움직이는 몸을 그대로 두었다.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듯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몸을 마치 제3자의 느낌으로 대하다 등 뒤에서 제로가 자신을 잡아 앉히고 루나와 리프가 상자 하나를 들고 오는 것에 미간을 좁힌다.
“무슨 짓이지.”
살기는 없다.
되레 있다면. 무언가 이 감정을 꼭 정의 내려야 한다면 약간의 즐거움과 호기심, 그리고 측은함.
그렇기에 케인은 자신의 등 뒤를 잡은 제로를 그대로 두었다.
“소르페 알지?”
알지만 굳이 안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건가.
그리 말하는 케인의 눈빛에 아델리안이 싱글싱글 웃으며 손뼉을 짝 쳤다.
“아, 글쎄 레이첼이 그러는데 말이야.”
그 말에 케인의 황금색 눈동자가 아델리안 너머로 향한다.
문 뒤에서 레이첼이 빼꼼 고개를 내밀다 후다닥 사라졌다.
“소르페가 그렇게 미인을 좋아한다네?”
케인은 일말의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자신을 슬쩍 눌러 잡은 제로를 밀 듯 일어나려는데 아델리안이 앞에서 다시 잡아 누른다.
“내가 소르페에게 얻을 게 좀 있거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케인의 무뚝뚝한 말에 아델리안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말했다.
“양심적으로 말이야. 사람이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그에 케인이 잠시 말문을 닫았다.
“별거 아니야, 케인. 금방 끝나.”
아델리안이 다시 손뼉을 가볍게 치자 루나와 리프가 가져온 상자를 근처 테이블에 올리더니 펼쳐 열었다.
각종 모양의 빗과 가위. 향유부터 해서 피부에 바르는 것들과 작은 거울.
말 그대로 몸을 치장하는 용도의 물건을 모은 상자.
거기에 리프는 아공간에 뭘 넣어왔는지 옷을 하나씩 빼서 케인의 몸에 슬쩍 대보고 다시 넣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제로는 그 상자에서 나온 빗으로 케인의 머리를 빗어 정리하더니 한 손에 가위를 들기 시작했다.
“무슨…….”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인데.”
특급대우는 해 줘야 하지 않겠어?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다, 김케인.
그 김은 왜 붙는지 알 수 없었으나 케인은 한숨을 쉬며 아델리안을 바라보았다.
* * *
그래. 솔직히 그럴 만하다.
주인공이잖아.
물론 소설에서나 주인공 하면 주인공 특혜로 모든 걸 다 가져도 개연성 있다지만 현실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우리 모두가 이 삶의 주인공입니다 하면서.
그런데 가끔은 현실이 더 소설 같은 법이다.
케인이 그렇다.
성격 빼고 다 가진 놈이다. 그 성격도 좀 모난 구석은 있을지언정 사악하거나 비겁하거나 악독하진 않으니까.
‘저 정도면 양반이지.’
살아 있는 신보다는 자비롭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정리 좀 해 볼까.’
1. 살아 있는 신은 케인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루프를 수도 없이 하고 있다.
2. 그 이유는 아마도 케인의 영혼을 깎기 위해서.
3. 살아 있는 신의 다른 목표는 이곳의 성좌가 되는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3번 아래에 물질적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있는 ‘추정’이란 딱지를 붙였다.
4. 엔딩에 가면 케인과 살아 있는 신은 거의 비등한 존재가 된다.
그럼 뭐, 완벽한 정답은 아니라도 얼추 나오는 거지.
살아 있는 신은 성좌가 되기 위해 케인에게 고통을 주며 루프를 하고 있다는 것.
아무리 뼈에 사무치는 원한과 분노가 있다 하더라도 한두 번도 아닌 무수히 많은 루프를 하면서까지 고통을 줄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아주 번거로운 방식으로. 그냥 단순 고문이나 잔인하게 죽이는 게 아닌, 10년 이상 걸쳐서?
‘나라면 절대 못 할 거 같은데.’
그러니 단순하게 증오나 복수심은 아닐 것이다.
보통 이렇게까지, 루프의 중심인 살아 있는 신 본인도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 가면서까지 수없이 행한다?
이런 정성이 따로 없다. 정말 어떻게 보면 극진한 대접이지.
그러니 그런 사실을 미루어 보자면 살아 있는 신은 세계 자체를 몇 번이나 되돌릴 수 있는 권능을 지니고도 아직까지 성좌는 되지 못했으며 아마 그 이유는 케인 때문일 것이다.
‘그나저나 지구에서 본 성좌는 보통 신화에 나오는 이들이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보통 소설의 주인공은 여러 성좌 중 하나를 배후성으로 골라 직업도 얻고 도움도 받고, 뭐 그런 전개로 이어지는데.
살아 있는 신이 노리는 이곳의 성좌는 단 하나뿐인 지고한 자리인 모양이다.
한두 명의 영혼이나 삶도 아닌, 세계 자체를 루프시킬 정도의 힘을 가져야만 넘볼 수 있는 자리.
‘…그럼 케인도 가능한 거 아닌가?’
나는 잠시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내 인지 밖이다. 너무 스케일이 커지는 데다 알지도 못하는 영역이다.
저걸 뭐 내가 케인을 서포팅해 주네 마네 하는 건 불가능한 부분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걸 어찌 돕는다는 말이야.
‘그냥 루프나 끊을 수 있는지 궁리해야겠지만.’
이건 그나마 내 생각의 한계가 닿는 영역이었다.
케인이 그만큼 강해지면 된다.
어찌 보면 역설적인데 성좌가 될 만큼 강해지는 것과 루프를 끊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게 뭐가 다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주 크게 다른 부분이었다.
살아 있는 신을 누르고 케인이 성좌가 되려면 진짜 그 한계를 어디까지 높여야 하는지 감도 안 오지.
무조건 살아 있는 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야 할 테고 다른 조건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성좌에 대한 걸 아무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루프를 끊는 건 조금 다르다. 아주 잠깐만, 살아 있는 신의 권능을 아주 잠시라도 무력화할 수 있을 정도만 격을 쌓아도.
영혼을 쪼개 지구로 보낸 레이첼과 리프가 있으니까.
루프되는 이 세계에서 도망칠 틈을 조금이라도 만들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므로.
‘레이첼이나 리프가 영혼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지구로 옮겼다면 그것 또한 루프를 부수는 일이니까.’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모델을 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단순했다.
‘크게 벌인 일, 전부 수습하는 것과 동시에 케인에게 격을 넘긴다.’
나는 아공간에서 호문클루스의 알을 꺼냈다.
이노센트교의 심벌이자 숭배 대상이며 신의 분신으로 소개될 이 녀석.
“네 이름은 케인이다.”
나는 알을 두드렸다. 이노센트교가 퍼지며 쌓이는 신성 같은 건 아마 이 알에게 쌓이겠지.
그리고 이 알의 이름은 내가 케인으로 정했다. 내가 교를 만들고, 내가 알을 심벌로 삼았으며, 내가 케인이라 이름 붙였다.
그럼 그런 내가 이 알의 진정한 주인을 케인으로 여긴다면?
‘어차피 케인의 호문클루스이기도 하고.’
케인의 피가 묻은 덕에 1만 년 후면 영혼도 없이 다만 케인에게 적합한 육신이 튀어나올 알이다.
고로 케인 맞춤이란 소리니까.
이곳은 신이 있고 신성이 있으며, 정신 마법이 있고 영혼 마법이 있다.
믿고 행하면 트레잇이 되고 의지가 물질이 되기도 하는 곳.
그러니 꼼수인 데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보험은 될 것이다.
‘남은 건 소르페인데.’
부유감을 함부로 깎을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의 트레잇을 얼추 알 수 있는 소르페의 등장은 호재였다.
그리고 레이첼이 친구라며 놀러 갔다 와서 해 준 말도 있으니.
‘물고기를 낚으려면 미끼가 화려해야 하는 법.’
나는 웃으며 루나와 리프. 제로를 불렀다.
“케인 단장 좀 시켜볼까, 우리?”
미인계 좀 써먹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