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6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60화(260/373)
차라리 자신도 어리석고 아는 게 없었다면.
어린 시절처럼 그냥 두려움에 굴복하고 의지했었더라면 괜찮았을까.
체이서는 그림자 안에 깃든 채로 그 일렁이는 공간에 드러누워 위를 바라보았다.
‘그냥 멍청해서 아무런 의문도 의심도 없이 믿음만을 가지고 살았으면 좀 나았으려나요.’
사실 멍청하다 혹은 우둔하며 어리석다 지칭하였으나 살아 있는 신을 믿으며 심취한 이들은 생각보다 배운 자가 많았다.
평민보다는 귀족이, 귀족만큼 학자나 마법사들도.
그런 자들도 살아 있는 신이 보여 주는 그 대단한 힘.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기적을 눈앞에서 보고 나면 믿지 않는 일이 드물었다.
비록 그것이 다른 신들도 할 수야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최고위 사제의 목숨을 담보로 하거나 혹은 악신 계열이라면 막대한 재물, 혹은 제물을 써야 가능한데.
살아 있는 신은 내키는 날 몇 명이라도 되살리는 걸 보여 줬기 때문에.
물론, 그것만으로 어찌 신으로 모시는가 한다면.
‘쥐락펴락하기 때문이겠지.’
살아 있는 신을 직접 대면하여 그 장막 너머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영혼으로 깨닫는다.
저자는 신이라고.
일정 격에 다다른 자는 더했다. 일반 사람이 볼 수 없는 경지를 볼 수 있으니까.
신이 아니라면 닿을 수 없는 곳에 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살아 있으니 그것에 더욱 홀리는 것이다.
‘저는 좀 다르지만 말이에요.’
고통을 주고 두려움을 주고. 도망쳐도 반복되는 삶을 보여 주고.
그러면서도 끝나면 품에 안고 고생하였다며.
너무나도 다정하게 속삭이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네 편이라고.
보여 줬던 환상들은 결국 물거품이나 다름없으나 자신은 영속한다고.
‘어린 시절엔 그 다정함에 혹한 적도 있지만 말입니다.’
머리가 굵어지니 알겠더군요. 결국 뺨을 때린 것도 살아 있는 신이면서 뺨이 아프냐며 달래 주는 것으로 아이를 구슬린 거나 매한가지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체이서가 알아차린 이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이미 많은 것에 지치고 허무함을 느낀 뒤였으므로.
도망치거나 혹은 반항하거나.
그 어떤 것을 해도 수없이 겪은 환상처럼 결국 의미가 없을 것을 알았기에.
하지만 그것은 정신 마법을 사용하는 체이서였기에 더욱 의지가 마모된 것인지도 모른다.
간혹 그 전능을 알면서도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거부하고 벗어나려는 이들은 언제나 존재하였기에.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전부 제가 잡아들였죠.’
집행자.
살아 있는 신을 거부하거나 배신한 이들의 처단 및 체포, 이송. 감금을 시행하거나 단체가 아닌 단독으로 실력 행사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직위.
지금까지 살아서 활동하는 집행자는 체이서 혼자뿐이었으나 조금 후면 카이자가 추가될 터.
‘카이자.’
체이서가 어둠 속에서 일렁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손잡고 왔을 텐데 말이에요.’
살아 있는 신이 말하길 카이자가 혹 케인을 만나게 되면 그대로 두라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케인이 있는 곳으로 유도했을 것이다.
체이서가 잠시 팔짱을 낀 상태로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을까요.’
카이자를 중간에 빼내 오는 건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신이 만족하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카이자에 대한 권한은 살아 있는 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하지만 나중에 교육이 끝난 후 지원 요청으로 빼낸다면.’
아델리안에게 말한 뒤 동의를 구해야 할 일이지만.
‘주인은 아무래도 그런 것에 관대한 편인 것 같으니까.’
그 의식세계를 찰나 간에 공유받은 적 있는 체이서라 완벽하지는 않아도 아델리안의 행동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아델리안은 의외로 차가우면서도 다정하니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사람에게는 냉정하다.
하지만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은 제법 챙기는 편이고.
그중에서도 유독 더욱 아끼는 이들은 같이 다니는 그 괴물들.
‘전 아직 한참 멀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종속으로 받아준 이상.
울타리의 가장 끝에 나동그라져 손가락만 걸친 상태라도.
아델리안은 말 정도는 들어줄 인물이기에.
‘카이자…….’
어쩌면 생각보다 이르게 당신을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 *
“보스, 저 기생오라비는 뭐야?”
나는 살짝 감탄했다.
분명 이 대륙에 기생오라비라는 단어는 없을 텐데.
내 귀에는 그리 들리는 걸 보면 레이첼이 뭔가 통역 기능을 잘 해 놓기는 했나 보구나.
방 안에서 아주 성스러운 외양으로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있던 파이얀이 체이서를 보자마자 짝다리를 짚으며 한 말에 나는 하하 웃었다.
“앞으로 너와 같이 다닐 동료.”
“싫어.”
내 말에 파이얀이 대뜸 거부했다. 레이스 안대를 손으로 뜯어내듯 풀어서는 은보라색 눈동자로 체이서를 노려본다.
“왜?”
너 파이얀에게 뭔 짓 했냐? 하는 눈으로 내가 체이서를 흘깃하니 체이서가 우는 체하며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난 것은 처음인데 말이에요. 주인.”
내가 님 자를 붙일 때마다 경기했더니 그래도 한 글자는 빼주는구나…….
나는 눈에 쌍심지를 켠 듯 체이서를 노려보며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움직여 토도독 토도독 소리를 내는 파이얀을 바라보다 크루거의 반지를 한 번 도르륵 굴렸다.
심신 안정.
반지를 낀 손의 손목을 가볍게 흔들어 레비를 속삭이니 반지 안에서 회복 중이던 레비가 허공으로 팡 튀어나와 파이얀에게 안긴다.
남녀노소 귀엽고 말랑말랑한 것을 보면 기분이 풀리는 법이니까.
“파이얀!”
“…레비!”
지금처럼.
레비를 끌어안고 만지작만지작하는 파이얀을 보며 일단 우리끼리 대화하겠다는 듯 체이서를 바라보자 체이서가 한숨을 푹 쉬며 내 그림자로 녹아내리듯 들어갔다.
그러자 파이얀이 가볍게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더니 은보랏빛 머리칼과 은보라색 눈을 가진 성녀 리온이 아닌 금청색 머리와 눈을 가진 라줄리로 모습을 바꿔 나를 응시했다.
“데려온 녀석은 꽤 유능해. 더불어 눈치도 좋은 녀석이라 쓸모도 많고.”
내가 소파에 앉으며 하는 말에 파이얀이 어딘가에서 쿠키를 꺼내 레비에게 내밀며 입을 열었다.
“보스가 그렇게 말한다면 능력적인 면에서는 탁월하겠죠. 그런데 그 자식 없어도 저 혼자 잘 해낼 수 있어.”
분명 내가 알기로 체이서와 파이얀은 직접 맞부딪힌 적은 없는데.
이 묘한 적대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뭐야?”
내 말에 파이얀이 레비의 앞발…이라고 해야 하나 손을 조물거리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할게요, 보스. 케인 그 녀석은 인정해. 강하니까.”
그런데 어디서 굴러온 녀석인지도 모를 녀석이 왼팔이 되는 건 싫다며 테이블을 탕 치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하고 눌렀다.
들어줄 가치가 없는 헛소리였다.
“내가 네 팀으로 생각한 건 총 셋이야.”
내가 헛소리 말라며 얼른 앉기나 하라는 말에 파이얀이 입을 삐죽대며 맞은편 소파에 앉는다. 나는 메모지와 깃펜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
“한 명은 아직 합류 전이지만 이름은 소르페. 만신전의 일부 신관들과 같이 상대방의 트레잇을 확인 가능하지.”
물론 나처럼 히든 트레잇이나 칭호까지 확인 가능한 건 아니니 그 정확도가 떨어질 테지만.
“이걸로 아마 만신전에 숨은 악신교의 교원들을 일부 추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더불어 체이서의 능력은 아무래도 파이얀같이 살짝 뒤쪽과 발이 닿아 있는 이가 쓰기 유용하니까.
“부려먹어. 네가 나인 거처럼.”
어차피 체이서는 그런 거에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다 보니 내 저택에 있을 때에는 제로에게 배워 레비에게도 선배님이라 했으니까.
분명 파이얀에게도 잘할 것이다.
능글능글하고 유들유들한 면모가 있는 체이서라서.
‘그래서 이상하게 맞는 말을 해도 믿음이 덜 가는 단점이 있지만.’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체이서도 합류하면 아마 더 속도가 날 테니 이노센트교를 밖에서 보기엔 제법 세력이 커진 종교로 보이게 해 주면 좋겠어.”
실제로 너무 믿고 의지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체이서와 파이얀을 꾸린 것이었다.
둘 다 정신과 관련된 힘을 쓸 수 있으니.
당장은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더라도 끝난 후에는 그것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는 없는 종교며 없는 신이므로. 믿는다 하더라도 신성력을 받는다거나 할 수는 없으니까.
지구를 생각하면 구휼과 자비, 나눔과 사랑 등으로 종교는 굴러가지만.
이곳은 다르다.
실제로 신이 있는 곳이며 신력이 존재하고 신성과 신성력이 쓰이는 곳.
상처를 낫게 하고 독을 해독하고 앞날을 봐주거나 저주를 풀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노센트교는 내가 만든 가짜이기 때문에 카이만의 힘으로 식량이나 의복, 약재 등은 받을 수 있어도 신의 힘.
즉 신성력과 관련된 것은 내가 샤하드를 흔들어 받은 저 꽃에 담긴 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를 너무 오래 지속하면 안 돼.’
한 번에 크게 치고 빠지는 게 낫다.
“제국의 끝자락부터 수도로 거슬러 올라오듯 신자를 모아서 축제 때 공식적으로 샤하드를 지지하는 그때까지만 타인이 보기에 괜찮은 세력으로 불려주길 바라.”
“그다음은 저랑 아까 그 체이서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뒷수습하면 되는 거고요?”
내가 가볍게 발끝으로 내 그림자를 두드리자 어둠이 일렁이더니 어느 순간 체이서가 소파에 앉아 으쓱이고 있었다.
“어렵진 않은 일이군요. 주인.”
“마찬가지. 누군가의 마음을 부풀리고 빼앗는 건 쉬운 일이죠.”
“그것을 곱게 꺼트리고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하고 넘기게 하는 것도.”
“사실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죠. 보스.”
체이서의 말을 중간중간 파이얀이 가로채며 말했지만 체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쿠키를 녹여 먹는 레비에게 손 인사를 한다.
“소르페까지 합류하면 지금보다 좀 더 바쁠 거야, 둘 다.”
난 파이얀이 내어준 차를 마시며 낮게 말했다.
소프페는 제국을 돌아다니며 악신교로 의심되는 신관이 있으면 명단을 작성하게 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명단은 1차로 체이서가 걸러줄 예정이었다.
“모든 신관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캐는 건 무리지만 예상 인원을 추려주면 교의 일원인지 확인하는 건 아주 어렵진 않으니까요.”
아마 그런 곳에 잠입하는 이들이라면 악신교의 심벌도 들고 다니진 않을 것이나 자신은 얼추 그런 이들의 특징을 안다며 체이서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체이서까지 확인하고 추린 명단의 인물 중 축제 때 만신전의 축하 행렬에 참여하는 이를 파이얀, 네가 라피스로 확인해 줘.”
“하긴 기껏 정체를 알아도 시골에 박혀 안 올라오면 의미가 없으니까. 이왕이면 개중 직위가 높은 신관 위주로 마무리 정리해 드릴게, 보스.”
그리고 그런 둘을 보다가 나는 한 번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날, 축제의 날. 이노센트교의 교주도 내세울 거야.”
내 말에 파이얀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야, 나는 성녀니까. 뒤에서 고아하게 피 안 묻히는 게 좀 더 자비롭게 보일 테고. 그러니 이단 선포를 하고 제대로 나설 이는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어. 보스가 할 거지?”
성녀는 아무래도 신이 아끼는 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뭔가 대놓고 세속적인 걸 하기 힘드니까.
나는 약간 참담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케인이야.”
내 말에 파이얀은 멈칫하고 체이서 또한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그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보스. 그건 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만신전 소속인 척 들어앉은 악신교 출신 신관들이 시비 거는 걸 케인이 욱하지 않아야 하는데.
문제는 이걸 케인에게 업적 몰아주기를 하려면 무조건 케인이 대중들 뇌리에 이노센트교의 교주, 혹은 대신관 정도의 자리에 앉은 것으로 꽂혀야 하는 것이다.
“요즘 케인이 말 잘 들어.”
“그래서 얼마 전 가출했어?”
“그리고 저를 만난 겁니까?”
내 변명에 둘이 웃으며 한마디씩 하는데.
가슴이 아프면서도 든든했다.
“그렇게만 케인 견제해.”
사고 안 치게.